전쟁이 임박한 시점에서 마비된 외교, 분열된 유럽연합과 나토, 그리고 처참한 유엔의 모습
미국이 최후통첩일이자 “세계의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이라고 외친 3월17일이 지났다. 이번주에 어쩌면 미국은 마지막 외교절차를 포기하듯 완료한 채 전쟁의지를 실행에 옮길지 모른다. 전쟁 이브인 이 시점에 되돌아본 이라크 사태의 전개과정이 흥미롭다. 특히 이라크전을 정당화하려는 외교적 여정을 보여주는 논리와 윤리적 관점이 관심을 끈다. 이 여정은 이번 사태를 둘러싸고 그동안 미국과 유럽, 그리고 세계 관계가 어떻게 변화됐는지를 보여준다.
유엔, 극명한 대립의 상황
지난해 여름 미국경제 위기설과 함께 이라크 침공 가설이 서구언론을 넘나들을 때만 해도, 전쟁 실행에 대해 유럽과 미국 간에 표면적으로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 어차피 미국이 전쟁을 일으킬 바엔, 그래서 사담 후세인을 내몰 바엔, 미국에게 이라크 점령을 통해 얻는 경제적 이득을 고스란히 안겨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 뒤 사태수습에 대한 여러 의문과 함께 이라크 침공 가설은 차츰 현실이 돼갔다. 그러나 정작 미국이 이라크의 위험성과 전쟁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유엔을 찾았을 때, 세계인은 미국이 보인 태도에 실망을 금치 못했다. 미국은 세계의 동의를 구하는 게 아니라, 전쟁 의지를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태도를 취했다.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이라크를 전쟁에 의해 수정하고 민주화 시킨다”는, 미국에겐 확연한 듯 보이는 일명 ‘예방을 위한 전쟁’은 세계 지식인들과 평화주의자들을 납득시키지 못했다. 문제의 근본을 망각하고 인권을 무시한 “일방적이고도 단순한 힘에 기반한 카우보이식 윤리”라는 비판의 소리가 일기 시작했다. 뻔히 보이는 미국의 경제적 흑심은 이러한 비판의 소리를 더욱 키워줬다. “원래 권리에 기반하는 질서는 강자를 제어하면서 약자의 힘을 북돋워주는 것이어야 함에도, 전쟁할 권리(사실상 권리라기보다는 독단을 실행하는 일에 다름 아니지만)는 이론적으로 어떤 나라건 원하기만 하면 전쟁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일이다. 따라서 현실에서 이 가능성은 강자에게, 특히 최강자에게만 한정되는 권리가 되고 마는 것이다.”(취리히대 조그 피시 교수) 이제 세계가 당면한 문제는 21세기 군사대국 미국이 9·11 사태 이후 표명한 ‘새로운 힘의 논리’에 기반하여 제시한 ‘전쟁과 평화의 함수’를 어떻게 소화할 것이냐다. 미국쪽이 “현실을 직시하며, 그 논리를 수긍하자”고 외쳤다면, 반전쪽은 “현실의 위험을 직시해야 하고, 진정한 전쟁과 평화의 함수는 그런 논리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고 외쳤다. 지난 2월15일 전 세계를 흔든 반전시위는 후자의 목소리였다. 유엔은 이런 극한 대립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 장소다. 미국은 전쟁을 실행하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미국에게 달렸음을 세계 만방에 알리고자 했다. 반면, 미국의 독자노선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로 갈등하는 유럽은 반전입장을 조심스럽게 표명하며, 전쟁을 연기하는 것으로 자위해야 했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해제를 위한 ‘유엔 결의안 1441’ 처리는 이러한 양상을 그대로 반영해준다. 미국이 미국의 논리로 유엔의 지지를 얻어 전쟁을 실행하면, 유엔 이사회는 미국 국회나 마찬가지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합법적인 전쟁’ 기대 무너져
미국의 ‘새로운 세계질서’와 이에 맞서는 유럽의 움직임이 외교적 차원에서 절정에 달한 때가 3월 셋쨋주였다. 이 기간은 미국이 3월17일로 정해놓은 최후통첩일을 받아들이느냐를 두고 유엔 안보리가 투표를 하기로 예정된 주이며, ‘반전의지’의 마지막 생사가 달린 주였다.
15개국으로 구성된 유엔 안보리 투표에서 9개국 이상이 미국에 동의하면, 그동안 연기된 전쟁은 유엔이 인정한 가운데 실행에 옮겨질 상황이었다. 어느 나라가 동의하고 어느 나라가 반대할 것인가라는 의문과 함께 유엔 안보리 소속 국가들 간에 전보다 더 숨막히고 치열한 외교전이 펼쳐졌다. 프랑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반전표명 TV 인터뷰가 이 주의 시작과 함께 실시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3월10일, 프랑스 대통령이 직접 대외적으로 ‘No’를 표명했다. 그동안 프랑스는 독일과 함께 반전의사를 비추며 전쟁에 협력의사를 밝힌 유럽의 다수 국가들에 맞서왔다. 그러나 국내선거 때문에 이번 사태 초반부터 반전입장을 분명히 할 수밖에 없던 독일정부와 달리, 확실한 입장보다는 서둘지 말고 유엔이 보낸 이라크 무기시찰단을 지원하며 ‘가능한 평화를 모색한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그러다 이날, 프랑스는 대통령 입으로 직접 ‘노’라고 대외적으로 외친 것이다. 시라크는 안보리 회의에 대통령이 직접 출두할 것이며, 거기서 반대표를 던질 것이고, 여차할 경우엔 비토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리고 이는 세계 질서가 미국의 독자노선으로 좌지우지되는 걸 막고, 다원주의에 기반해 국제적 권리를 보유하기 위해서라고 덧붙였다. 이어 러시아도 프랑스와 뜻을 같이 한다는 의사를 밝혀, 프랑스·러시아의 비토권 행사 의지는 3월 셋쨋주 미국의 전쟁외교에 급브레이크를 걸었다.
9표를 얻기 위한 외교적 노력이 결실을 맺어 ‘유엔이 동의하는 합법적인 전쟁’을 할 수 있으리라는 미국의 기대는 프랑스와 러시아의 비토권 앞에서 수포로 돌아갈 판이었다. 그렇다면 체면상 무효가 될 동의표를 얻기 위해 투표를 강행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또 전쟁을 연기할 것인가 아니면 유엔의 동의 없이 비합법적 전쟁을 할 것인가
아조레스에서 진행된 미국·영국·스페인의 정상회담이 막을 내린 3월16일 현재, 세계의 언론과 정부의 움직임은 후자의 가능성을 전하고 있다. 이 가능성이 가장 빠른 시일 내에 현실화되면, 넷쨋주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전쟁이 대변하는 현 세계의 양상은 마비된 외교, 분열된 유럽연합과 나토, 그리고 처참한 유엔의 모습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평화는 유토피아인가
그동안 이라크 사태를 두고 펼쳐친 논지들을 되새김질하며 평화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이 시점에서 문득 떠오르는 책이 있다. 하버마스의 <영원한 평화>(1995)다. 칸트의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1795)가 출간된 지 2세기를 기념하며 펴낸 이 책에서 하버마스는 칸트의 평화이념을 지나치게 유토피아적이라고 비판하면서, 현 시대상을 반영한 평화구축을 모색하고 있다.
칸트의 시절과는 달리 국가의 절대권이 날로 약화돼가는 현 사회에선, 여러 사회적 이유로 쉽게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에서 하버마스는 출발한다. 시민의 자율성은 이제 더 이상 국가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므로, 영원한 평화를 구축하려면 세계의 범주 속에서 모든 국가들이 참여할 수 있는 대중의 공간을 건설할 줄 알아야 하고, 범세계적으로 적용이 가능한 인권보호법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썼다. 또한 법과 윤리를 혼동해서는 안 되며, 법은 윤리에 종속되는 것이라고 시사하고 있다.
전쟁 이브의 세계 현실은 하버마스식 평화구축에서 더욱더 소원해지는 듯 보인다. ‘어쩌면 칸트의 평화이념뿐 아니라, 평화이념 자체가 유토피아적 이념이 돼가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고, 영원한 전쟁 이브가 계속되기만을 기원해야 할 시점이다.
파리=이선주 전문위원 nowar@tiscali.fr

사진/ 이라크 무기사찰단 결과 보고를 받고 있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미국의 기대와 달리 프랑스는 비토권 의지를 분명히 했다(좌). 미국과 영국은 이라크의 무장해제 시한을 3월17일로 못박았다. 3월 넷쨋주에 전쟁 분위기는 최고조에 이를 전망이다(우). (GAMMA)
지난해 여름 미국경제 위기설과 함께 이라크 침공 가설이 서구언론을 넘나들을 때만 해도, 전쟁 실행에 대해 유럽과 미국 간에 표면적으로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 어차피 미국이 전쟁을 일으킬 바엔, 그래서 사담 후세인을 내몰 바엔, 미국에게 이라크 점령을 통해 얻는 경제적 이득을 고스란히 안겨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 뒤 사태수습에 대한 여러 의문과 함께 이라크 침공 가설은 차츰 현실이 돼갔다. 그러나 정작 미국이 이라크의 위험성과 전쟁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유엔을 찾았을 때, 세계인은 미국이 보인 태도에 실망을 금치 못했다. 미국은 세계의 동의를 구하는 게 아니라, 전쟁 의지를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태도를 취했다.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이라크를 전쟁에 의해 수정하고 민주화 시킨다”는, 미국에겐 확연한 듯 보이는 일명 ‘예방을 위한 전쟁’은 세계 지식인들과 평화주의자들을 납득시키지 못했다. 문제의 근본을 망각하고 인권을 무시한 “일방적이고도 단순한 힘에 기반한 카우보이식 윤리”라는 비판의 소리가 일기 시작했다. 뻔히 보이는 미국의 경제적 흑심은 이러한 비판의 소리를 더욱 키워줬다. “원래 권리에 기반하는 질서는 강자를 제어하면서 약자의 힘을 북돋워주는 것이어야 함에도, 전쟁할 권리(사실상 권리라기보다는 독단을 실행하는 일에 다름 아니지만)는 이론적으로 어떤 나라건 원하기만 하면 전쟁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일이다. 따라서 현실에서 이 가능성은 강자에게, 특히 최강자에게만 한정되는 권리가 되고 마는 것이다.”(취리히대 조그 피시 교수) 이제 세계가 당면한 문제는 21세기 군사대국 미국이 9·11 사태 이후 표명한 ‘새로운 힘의 논리’에 기반하여 제시한 ‘전쟁과 평화의 함수’를 어떻게 소화할 것이냐다. 미국쪽이 “현실을 직시하며, 그 논리를 수긍하자”고 외쳤다면, 반전쪽은 “현실의 위험을 직시해야 하고, 진정한 전쟁과 평화의 함수는 그런 논리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고 외쳤다. 지난 2월15일 전 세계를 흔든 반전시위는 후자의 목소리였다. 유엔은 이런 극한 대립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 장소다. 미국은 전쟁을 실행하느냐 마느냐는 전적으로 미국에게 달렸음을 세계 만방에 알리고자 했다. 반면, 미국의 독자노선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이냐로 갈등하는 유럽은 반전입장을 조심스럽게 표명하며, 전쟁을 연기하는 것으로 자위해야 했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해제를 위한 ‘유엔 결의안 1441’ 처리는 이러한 양상을 그대로 반영해준다. 미국이 미국의 논리로 유엔의 지지를 얻어 전쟁을 실행하면, 유엔 이사회는 미국 국회나 마찬가지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합법적인 전쟁’ 기대 무너져

사진/ 반전을 표명한 자크 시라크(왼쪽) 프랑스 대통령과 부시 미국 대통령의 대립은 현재 세계의 분열양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GAM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