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사상 최대 적자 발표한 독일기업들… 전쟁 공포 분위기 이용해 부실자산 재평가
이라크 위기가 세계경제에 끼치는 영향을 분석한 국제통화기금(IMF)의 4월 ‘공식보고서’(World Economic Outlook)가 독일언론에 흘러들었다. 이 보고서는 이라크 전쟁이 4주 이상 지속될 경우 파괴적 경제효과가 미국과 유럽에 우선적으로 엄습할 것이라고 분석하며, 특히 유럽경제의 중심축인 독일에 0% 경제성장이라는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는 2001년 국가부채가 국내총생산의 3%를 넘기며 유럽연합의 허용치를 초과해버린 독일경제가 앞으로 자국 내 경기후퇴를 넘어 유럽경제 전체를 위협하는 시한폭탄으로 작용하리라는 진단이다.
2003년은 새로운 출발의 해
그러나 국제통화기금은 치명적 진단서에 매우 역설적인 의견, 즉 “전쟁이 단시일 내로 끝날 경우 세계경제와 주식시장에 긍정적 효과를 낳을 것이다”라는 유혹적인 진단을 첨부하고 있다. 이는 1991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맞선 미군의 참전 개시로 미국과 독일 등 각 나라 주식시세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단 몇 시간 안에 국제원유가격이 3분의 1 이상 떨어진 기억들을 되살리기에 충분했다.
커져가는 전쟁의 공포와 어두운 경기전망이 유럽기업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고 있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 3월 초 파리에 본사를 둔 세계 제2의 미디어 기업 ‘비방디유니버설’(Vivendi Universal)은 230억유로를 넘어서는 2002년 적자액을 발표했다. 연이어 프랑스텔레콤(France Telecom)이 200억유로 규모를, 도이체텔레콤(Deutsche Telekom)은 무려 250억유로에 다다르는 천문학적 적자규모를 공개했다. 이 여파로 도이체텔레콤 주식은 하루 만에 10% 이상 하락했으나, 한때 주당 103유로에 이르던 시세가 이미 10유로대로 곧두박질친 이후라 독일 주식시장에 커다란 충격을 주지는 못했다. 나아가 도이체텔레콤 대표는 사뭇 의연한 모습으로 2003년은 ‘새로운 출발’의 해가 될 것이라고 선언하는 용기까지 보였다. 원화로 환산하면 약 34조원에 이르는 적자를 낸 기업 대표가 도대체 어떤 근거로 이러한 자신감을 내보이는 걸까 의문은 이 기업의 대차대조표를 들여다보면 쉽게 풀린다. 도이체텔레콤의 2002년 매출액은 전년대비 11%가 증가한 537억유로, 세금공제 전 영업순이익도 무려 163억유로를 넘어선다. 왜 163억유로가 넘는 영업이익을 낸 기업이 250억유로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적자기업으로 둔갑해버린 것일까. 그 차액인 약 400억유로는, 이른바 지난 ‘신경제’ 기간에 도이체텔레콤이 세계 곳곳에서 사들인 기업들의 가치와 이동통신 허가권 가치를 2003년 현 시점에서 재평가하면서 생긴 ‘자산평가 손실액’이다. ‘자산평가 손실액’에 의한 적자는 프랑스텔레콤과 비방디유니버설에도 공히 적용된다. 왜 이 시점에서 자산재평가인가 그런데 기업들은 왜 하필이면 이라크 전쟁 가능성으로 주식시장이 바닥을 모르고 하락하는 현 시점에 기업 신용도를 땅에 떨어뜨릴 수 있는 ‘자산재평가’라는 모험수를 둔 것일까. 전쟁이 주는 공포의 무게는 ‘사상 최대 적자’라는 충격을 여론의 관심 밖으로 몰아내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최근 독일언론의 보도태도에서 읽을 수 있다. 무모한 확장경영으로 빚은 ‘신경제’의 마지막 거품을 ‘전쟁의 공포’에 동승해 슬쩍 걷어내는 효과를 보여주듯, 적자관련 보도에 독일언론들은 하루 이상의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다. 베를린=글·사진 강정수 전문위원 jskang@web.de

사진/ 250억유로의 적자규모를 발표하는 도이체텔레콤 사장 리케(좌). 그는 “2003년은 새로운 출발의 해”라고 공언했다.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통신업체 도이체텔레콤 본사. 전쟁 공포 분위기를 틈타 신경제 기간에 사들인 자산을 재평가했다.(우)
커져가는 전쟁의 공포와 어두운 경기전망이 유럽기업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고 있다고는 단정할 수 없다. 3월 초 파리에 본사를 둔 세계 제2의 미디어 기업 ‘비방디유니버설’(Vivendi Universal)은 230억유로를 넘어서는 2002년 적자액을 발표했다. 연이어 프랑스텔레콤(France Telecom)이 200억유로 규모를, 도이체텔레콤(Deutsche Telekom)은 무려 250억유로에 다다르는 천문학적 적자규모를 공개했다. 이 여파로 도이체텔레콤 주식은 하루 만에 10% 이상 하락했으나, 한때 주당 103유로에 이르던 시세가 이미 10유로대로 곧두박질친 이후라 독일 주식시장에 커다란 충격을 주지는 못했다. 나아가 도이체텔레콤 대표는 사뭇 의연한 모습으로 2003년은 ‘새로운 출발’의 해가 될 것이라고 선언하는 용기까지 보였다. 원화로 환산하면 약 34조원에 이르는 적자를 낸 기업 대표가 도대체 어떤 근거로 이러한 자신감을 내보이는 걸까 의문은 이 기업의 대차대조표를 들여다보면 쉽게 풀린다. 도이체텔레콤의 2002년 매출액은 전년대비 11%가 증가한 537억유로, 세금공제 전 영업순이익도 무려 163억유로를 넘어선다. 왜 163억유로가 넘는 영업이익을 낸 기업이 250억유로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적자기업으로 둔갑해버린 것일까. 그 차액인 약 400억유로는, 이른바 지난 ‘신경제’ 기간에 도이체텔레콤이 세계 곳곳에서 사들인 기업들의 가치와 이동통신 허가권 가치를 2003년 현 시점에서 재평가하면서 생긴 ‘자산평가 손실액’이다. ‘자산평가 손실액’에 의한 적자는 프랑스텔레콤과 비방디유니버설에도 공히 적용된다. 왜 이 시점에서 자산재평가인가 그런데 기업들은 왜 하필이면 이라크 전쟁 가능성으로 주식시장이 바닥을 모르고 하락하는 현 시점에 기업 신용도를 땅에 떨어뜨릴 수 있는 ‘자산재평가’라는 모험수를 둔 것일까. 전쟁이 주는 공포의 무게는 ‘사상 최대 적자’라는 충격을 여론의 관심 밖으로 몰아내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최근 독일언론의 보도태도에서 읽을 수 있다. 무모한 확장경영으로 빚은 ‘신경제’의 마지막 거품을 ‘전쟁의 공포’에 동승해 슬쩍 걷어내는 효과를 보여주듯, 적자관련 보도에 독일언론들은 하루 이상의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다. 베를린=글·사진 강정수 전문위원 jskang@web.d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