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21세기 첫 민중혁명의 탄생

329
등록 : 2000-10-11 00:00 수정 :

크게 작게

선거혁명 좌절에 분노한 유고 군중… 밀로셰비치의 아성을 직접 부수기까지

(사진/지난 10월5일 시위군중들이 국영 TV 방송사 건물 옆에 주차돼 있던 경찰차 위로 올라가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의 13년 철권 장기집권은 선거혁명에 좌절한 민중의 분노를 버티지 못하고 끝내 무너졌다. 유고연방의회가 성난 데모군중에 점령된 지 하루 만인 10월6일 밀로셰비치는 권좌에서 물러날 뜻을 밝혔다. 자욱한 최루탄가스와 화염 속에 21세기 문턱의 첫 민중혁명으로 기록되는 순간이다. 경찰과 관영 언론들마저 밀로셰비치에 등을 돌리면서 세르비아는 정권교체기로 들어서는 상황이다.

오랫동안 밀로셰비치의 충실한 입 노릇을 해왔던 국영 <탄유그통신>은 10월5일 야당 대통령후보 보이슬라브 코스투니차를 “새 대통령 당선자”로 부르기 시작했다. 지난 9·24 대선 1차투표의 승자인 보이슬라브 코스투니차 야당후보는 이날밤 관영 TV에 출연해 “크고 아름다운 자유 세르비아”의 탄생을 선언했다. 세르비아 야당 지도자들은 ‘유고위기관리위원회’를 구성해 권력의 진공상태를 메울 채비를 하고 있다.

데모군중이 유고연방의회를 점령할 때만 해도 밀로셰비치가 막판 뒤집기에 나서 피를 부를 가능성이 없지 않았다. 밀로셰비치의 사회당 정권을 받쳐온 두 기둥인 경찰과 관영 언론이 보이슬라브 코스투니차 진영에 가담했다 해도, 보안군과 군부도 문제였다. 최근의 페루사태에서처럼 격변기의 나라들이 다 그렇듯, 마지막 변수는 군부다. 그러나 밀로셰비치의 하야 선언 직후 군부는 야당후보 코스투니차 지지를 선언했다. 여기에는 세르비아에 큰 영향력을 지닌 러시아가 외무장관 이고르 이바노프를 중재인으로 파견, 밀로셰비치와 코스투니차의 면담을 주선한 것이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 98년 밀로셰비치에 밉보여 물러났던 몸칠로 페리시치 전 유고 합참의장 같은 이들이 군부를 상대로 “사태에 개입할 생각 말고 코스투니차를 지지하라”고 설득한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로선 군부가 사태해결의 전면에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어보인다.

밀로셰비치, 당분간 건재


한때 밀로셰비치의 행방을 두고 온갖 억측이 나돌았다. 군부대 벙커에서 마지막 반격을 준비한다는 우려섞인 소식도 들렸다. 그로서는 대세를 거스르며 피를 부르는 무력진압이냐, 순리에 따라 물러나느냐의 갈림길에서 후자를 택한 상황이다. 여느 독재정권들이 붕괴과정에서 그렇듯 독재자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하는 수단인 망명길도 밀로셰비치로선 어려운 선택이다. 보스니아 내전과 코소보전쟁에서 저지른 범죄행위로 헤이그 국제전범재판소에 기소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곳 보스니아에서 만난 한 고위 정부관리는 “자존심 강한 그로서는 아마도 자신의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자살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국제전범으로 잡혀 재판정에 서는 수모를 당하기보다는 죽음을 택하는 것이 그로서도 손쉬운 결단이 될 것이란 얘기다.

그러나 밀로셰비치는 당분간은 건재할 듯하다. 밀로셰비치는 권좌에서 물러난 뒤로도 자신의 정당인 사회당을 이끌어 갈 뜻을 분명히 했다. 코스투니차와의 막후협상에서 이러한 타협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높다. 전범으로 체포돼 법정에 서거나, 외국으로 추방당하지 않는다는 언질도 오간 것으로 알려진다.

이번 유고의 정치격변은 선거혁명이 밀로셰비치 정권의 술책으로 좌절되는 상황에서 분노한 사람들이 거리에 나서 정권을 무너뜨린 민중혁명의 성격이 짙다. 15개 야당연합후보로 나섰던 코스투니차 후보는 9·24 대선 1차투표에서 적어도 51.33%의 득표율을 얻은 것으로 알려진다. 밀로셰비치 정권의 영향력 아래 있는 선거관리위는 “코스투니차 후보가 당선권인 50%에서 1.1% 못 미쳤다”며 10월8일 2차투표를 공식화했다. 그러자 코스투니차 후보는 이를 “표 도둑질”로 규정해 세르비아 전체를 파업과 항의시위로 몰아갔다.

‘보이콧 선언’의 승리

(사진/지난 10월6일 연방의회 건물 앞에서 열린 축하 집회. 수만명의 군중이 새 대통령 코스투니차의 공식적인 취임을 기다리고 있다)
코스투니차쪽이 보이콧을 선언한 배경에는 궁지에 몰린 밀로셰비치가 2차투표에서 대규모 투표부정을 저지를 게 뻔하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그러나 코스투니차의 보이콧 선언을 두고 일각에서 우려와 비판이 따랐던 게 사실이다. “2차투표에서 이길 수 있는데도 선거혁명을 포기한 것은 잘못이다”, “밀로셰비치가 설마하니 50%의 민의를 무시해가며 투표 조작을 하겠느냐”는 비판이다. 90년대 중반 이래 거듭된 반정부 시위가 밀로셰비치에 충성하는 경찰과 군대의 물리력 앞에 시간이 지나면서 허물어진 사례들이 이번에 다시 되풀이되는 게 아니냐는 걱정의 목소리들이었다. 10월4일 유고 국영 <탄유그통신>이 “대법원이 대선에서의 부정행위 때문에 1차투표 결과를 무효화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하자, 다시 한번 코스투니차 후보의 보이콧 선언이 잘못된 게 아니냐는 걱정들이 나왔다. 밀로셰비치의 고도의 정치책략과 강경진압 앞에 이번 선거혁명도 물건너간 게 아니냐는 비관론이 나왔다. 그러나 코스투니차 후보는 “선거와 관련해 협상을 고려하기엔 너무 늦었다”며 반정부 열기 확산에 치중했고, 결과론으로 보면 그의 전략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이번 유고 10월혁명의 분기점은 10월4일 콜루바라 광산 파업이다. 세르비아 에너지 공급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콜루바라 광산 노동자들은 코스투니차 지지를 선언하면서 파업에 들어갔고, 여기에 그 지역 2만 시민들이 가세, 이를 경찰이 제대로 막지 않고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과정에서 전국적인 반정부데모에 불을 지른 것으로 풀이된다. 10월5일 데모대들이 연방의회와 여당인 사회당 당사와 국영언론사들을 점령하자, 대세는 이미 밀로셰비치 몰락으로 판가름났다.

미국과 유럽국가들은 일찍부터 전범으로 기소된 밀로셰비치가 권좌에서 물러나길 바라왔다. 9·24 대선 무렵엔 “밀로셰비치가 물러나면 유고에 대한 경제제재도 풀릴 것”이라며 코스투니차 후보를 드러내 지원했다. 실제로 미국은 아직 밀로셰비치와 세르비아 군부의 향방이 불투명하던 지난 10월5일 국무부 대변인 성명에서 “세르비아에 대한 경제제재를 풀고 유럽사회의 일원으로 통합될 수 있도록 새 정권을 도울 것”이라고 서둘러 밝혔다. 클린턴 행정부는 밀로셰비치를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과 더불어 집권기간 내내 ‘국제사회의 이단자’로 낙인찍어왔다.

이번 세르비아의 정치적 격동은 세계의 화약고 발칸 정세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밀로셰비치는 세르비아 사람들에게 영토의 축소와 국제사회의 경제재제를 불러일으킨 ‘실패한 인물’로 평가된다. 유고연방은 밀로셰비치가 권력을 쥔 13년 동안 끊임없는 분쟁을 겪어야 했다. 소비에트연방의 해체와 더불어 시작된 동유럽 공산권의 붕괴과정에서 유고연방은 90년대 초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가 차례차례 떨어져 나갔고, 이 과정에서 특히 보스니아에서는 피가 피를 부르는 전쟁을 치렀다. 코소보해방군(KLA)으로 대표되는 코소보 분리주의자들과 98년부터 1년 넘게 끈 전쟁도 78일 동안의 나토 공습을 받고 물러나야 했다. 유고연방의 마지막 파트너인 몬테네그로마저 연방 탈퇴를 바라는 상황이다. 말이 유고연방이지 실은 밀로셰비치가 대통령으로 있는 세르비아공화국 하나로 줄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유고연방 각지에서 피난민들이 몰려들었고 세르비아 사람들은 정신적 박탈감, 경제침체에 따른 높은 실업률, 국제적 고립 속에 살아야 했다. 그런 쌓이고 쌓인 불만의 화살이 밀로셰비치에게 돌아갔고, 이번 세르비아의 10월 민중혁명은 이런 분위기 아래 나온 일종의 탈출구 모색으로 풀이된다.

코스투니차는 믿을 수 있는가

(사진/지난 6월 유고를 방문한 러시아 외무장관 이바노프(왼쪽)와 악수하고 있는 코스투니차)
그런 까닭에 세르비아 주변국가들은 이번 사태를 그리 낙관적으로만 보지는 않는 분위기다. 92년부터 3년 동안 밀로셰비치의 무력지원을 받은 세르비아계와 내전을 치렀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외무차관 후세인 지발류는 10월6일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세르비아의 새권력자로 나선 코스투니차의 성향이 밀로셰비치가 내건 문제의 자기중심적 세르비아민족주의에서 몇 발자국 벗어나 있지 않다는 점에 주목한다”고 말한다. 코스투니차도 세르비아민족주의자이기는 마찬가지란 분석이다. 지발류 외무차관은 “밀로셰비치보다야 낫겠지만, 코스투니차의 향후 행보를 지켜봐야 한다”며 경계론을 편다. 코소보가 독립할 경우 초대 대통령으로 꼽히는 이브라힘 루고바가 지난 6월 코소보 현지 인터뷰에서 “불행하게도 세르비아의 민주화세력이라는 야당사람들도 코소보에 관한 한 밀로셰비치와 시각이 조금도 다를 게 없다”고 한탄하던 일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보스니아 사라예보=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kimsphoto@yahoo.com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