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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소련 유령, 카페에서 춤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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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3-1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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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젊은이들의 문화 속에 되살아나고 있는 소련… 혁명에 대한 향수인가 애국주의 표출인가

사진/ ‘혁명’ 클럽 의 거리 간판. 상호가 소련국기의 바탕인 붉은색 바탕에 쓰여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다. 옛 소련 붕괴 뒤 10여년이 지난 지금 소련과는 인연이 먼 러시아 젊은이들 사이에 소련 복고풍이 번져나가고 있다. 이른바 “물 좋다”고 각광받는 카페·레스토랑·나이트클럽, 심지어 카지노까지 너나 할 것 없이 이름만 들어도 외국인 귀에는 섬뜩하게 들리는 소련식 이름을 붙이고 있다. 카페테리아 ‘소련’(CCCP), 레스토랑 ‘선전’(프로파간다), 레스토랑 겸 나이트클럽 ‘혁명’(레발류치야) 등이 대표적 예다.

모든 인테리어를 소련식으로

디자인이나 분위기 면에서 각각 조금씩의 차이를 보이지만 주요 공통점은 이름에서 보여주듯 내부가 소련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소품과 구조들로 꾸며져 있다는 점이다. 레닌·스탈린 흉상은 기본이고, 망치와 낫을 그린 소련 국기, 혁명과 소련 시절의 각종 기록사진들을 흑백으로 재생한 사진 등이 인테리어의 빼놓을 수 없는 소품들이다. 각 업소에 가장 보편화된 색채 또한 소련의 대표적 색깔로 인정돼온 붉은색, 그와 함께 어느 곳을 둘러봐도 철제가구는 찾아보기 힘들고 소련 시절에 유행한 목재가구가 배치되어 있다.


사진/ ‘레드 클럽’의 외부전경. 수용소를 연상케 하는 붉은색 벽돌 담 가운데 출입구가 있다.
러시아 카페문화에 선보이고 있는 소련 열풍이 현대 러시아 젊은이들의 소련 향수 또는 공산주의에 대한 열망을 대변하는지는 아직 명쾌하게 설명되고 있지 않다. 업주나 인테리어와 프로그램 기획을 전담하는 아트 디렉터들은 한결같이 업소 개업의 발상은 전혀 이념이나 정치와는 무관하다고 강조한다. 새로운 카페산업을 시도하면서 하나의 ‘눈길끌기’ 일환으로 애초 개업을 구상했다는 것이, 카페 ‘소련’의 사장 예브게니 자발린의 변이다. 혁명이라는 정치적 이름을 도용한 클럽 ‘혁명’ 아트 디렉터 고샤는 새 세대를 확 끌어잡기 위한 방안을 고민하던 중 “뭔가 혁명적인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결과적으로 이 단어가 그대로 클럽 이름으로 남게 되었다고 소개한다. 어쨌든 이렇게 탄생된 카페나 클럽은 자연히 소련과 연관된 소재로 꾸며야만 했다.

이와 같이 애초 톡 튀는 이들을 위한 휴식공간으로 카페나 클럽이 계획되다 보니 이곳을 출입하는 데 기존의 웬만한 고급 유흥업소 못지않게 만만찮은 비용이 든다. 여느 업소마다 신년행사와 같은 특별 프로그램 가격이 비싼 것은 당연한데, 올해 처음 신년메뉴를 선보인 카페 ‘소련’에서 새해를 보내는 비용이 180달러였다니 가히 깜짝 놀랄 만한 일이다. 카페 주인의 말에 의하면 영업 개시 이후 불과 반년 정도 지난 사이에 꽤나 단골들이 형성되었는데, 자신이 확신하건대 이곳을 찾는 이들의 월평균수입은 대략 2천달러 정도로 예상된다고 한다.

사진/ ‘혁명’ 클럽 내부 벽면에는 러시아 혁명 및 소련시절에 촬영된 기록사진들이 장식되어있다.
결국 한창 유행을 타고 있는 소련 복고풍의 카페·클럽은 주머니 사정이 빈약한 이들에게는 단지 부러움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하나의 엘리트 클럽인 셈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러잖아도 카페 ‘소련’이 상트페테르부르크 중심가 네프스키 대로 한가운데 모습을 드러내자 ‘과감한’() 상호에 어리둥절한 시민들은 카페 출입비용이 만만찮다는 것을 알고 나선 약간은 곱지 않은 눈길을 보냈다. “여기저기서 놀다 이젠 놀 곳이 없어 소련이라는 기형적인 주제로 몰려드는 녀석들”이란 반응이었다. 하지만 손님 수가 꾸준히 늘어나면서 ‘소련’ 카페 이후 다른 업종에서도 너도나도 개업하는 등 소련 복고풍의 유흥업소 확장 추세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소련’의 경우만 예를 들어도 이 카페는 올해 안에 모스크바에는 물론 탈린·헬싱키 등 해외까지 지부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

이념적인 연결 찾을 수 있다

손님들이 가격이 비싼데도 단골로 드나드는 이유를 소련에 대한 향수병으로 설명하기는 힘들다고 레스토랑 ‘선전’의 지배인 안나 미코바는 얘기하고 있다. 그는 “아마 손님들이 진부한 고전 스타일이나 추상적인 현대풍에 식상한 나머지 뭔가 새로운 것을 지향하는 심리가 소련 이미지와 결부되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는 특히 새 세대들의 최근 취향을 고려할 때 소련에 대한 각종 상징을 부각하는 데는 ‘유머’와의 결합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미국이나 일본에 대한 풍자는 어딘가 어설프지만 소련과 연관된 각종 이미지를 유머화했을 때 효과는 배가된다는 것이다.

문화학이나 철학 그리고 심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새로운 카페문화는 단연 주목의 대상이다. 업주쪽 주장과는 달리 심리학자들 사이에서는 소련 상징과 결부된 새로운 청년문화 현상의 근저에 약하나마 이념적 연결을 찾아볼 수 있다고 얘기 한다. 즉, 소련과는 직접적 인연이 없는 젊은이들도 어릴 적 기억이나 웃어른들로부터 전해들은 얘기 등에 영향을 받아 소련과 연관된 상징을 접하는 순간 무언가 모르는 견인력이 작용한다는 것이 지론이다. ‘혁명’이라는 단어도 이성보다는 감성에 더 호소력이 있다는 것이다.

사진/ 나이트 클럽 <극단주의>에서 만난 손님들. 대부분 중상류층의 젊은이들이다.
젊은이들 사이에 소련 시절 내막을 잘 알지 못하면서도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이른바 소련식 스카우트 대원이라 불릴 수 있는 ‘피아네르’에 속한 이들이 이 사실을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것이 전형적 사례로 꼽히고 있다. 반면 젊은이들의 유행이란 늘 변화무쌍한 것이어서 청바지가 이미 한때의 유행을 건너간 것과 마찬가지로 낫과 망치를 그린 티셔츠도 때가 되면 한물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 아나톨리 스벤치츠키 교수의 의견도 적절한 동감을 얻고 있다.

심리학자들의 견해보다 심층적으로 의식과의 연관성을 강조하면서 새 문화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대체로 문화학자나 철학자들의 입장이다. 대표적 예로 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 철학부 학장 유리 솔로닌 교수의 의견을 들 수 있다. 그는 “상징체계란 직간접적으로 한시대·한세대의 의식을 반영하게 마련이다. 현재 젊은이들 사이에서 소련 이미지로의 동화현상은 그들 사이에 적절한 이념의 부재를 적극 반영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즉, 완전한 정치의식 수준은 아니지만 의식의 근저에 조국에 대한 사랑이라는 심리의 싹이 놓여 있고, 이는 예전 세계 열강으로서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스탈린 시절의 소련과 같은 부강한 조국의 이미지로 표출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긍정적인 소련 이미지가 대안적 이념이 없는 현 상황에서 젊은이들의 의식 내면을 사로잡고 있다”고 결론짓는다.

극우주의와 소련 문화

사진/ 나이트 클럽 ‘혁명’의 내부 인테리어. 고전과 현대식의 절충주의가 특색이다.
최근 7일치 <이즈베스치야>에 발표된 스탈린 사망 50주년을 맞아 시행한 “러시아의 국가이념은 무엇인가”라는 국민의식 조사결과가 솔로닌 교수와 같은 견해의 타당성을 간접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로미르(ROMIR)라는 전국적으로 권위 있는 여론조사기관이 연방 내 전체 28개 행정주체에서 고루 선별된 1600명의 표본을 통해 집계된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러시아 국민의 70%가 러시아의 국가이념으로 ‘민주주의’와 ‘애국주의’를 꼽았고, 14%가 ‘열강 및 사회주의’를 꼽고 있다. 그와 함께 이념 지향과는 별개로 “애국주의가 국가이념이 되어야 한다”라는 별도의 설문에 69%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이 결과에 대해 여론조사를 총괄한 사회정치연구분과장 미하일 타루신은 “오늘날 러시아에서 애국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불건전한 사람으로 취급된다”는 말로 결론짓고 있다. 결국 소련식 이름의 카페문화에 긍정적 반응을 보이며 이를 향유하는 최근 러시아 젊은이들의 새 유행 속에서 종종 외신에서 보도되는 극우성 러시아 국가주의 젊은이들의 과격한 행태가 결코 우연이 아님을 짐작하게 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박현봉 전문위원 parkhb_spb@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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