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의 재발견(6)
그리스인들이 묘사한 저승세계의 신비를 조사하다 대구 지하철 참사 소식을 듣고…
소크라테스의 친구가 델피로 가서 신에게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누구입니까”라고 묻자 델피의 제사장이 “소크라테스”라고 대답했을 정도로 소크라테스는 신들도 인정하던 당대 최고의 철학자였다. 결국에는 정치가들의 모함으로 죽임을 당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사약 사발 앞에서도 당당했다. 그러나 그도 인간인지라 미지의 세계로 가는 두려움을 “저승세계로 가는 나의 여행길을 신들이 보살펴주기를 꼭 기도하고 싶다”는 말로 아주 은근하게 표현했다.
천국과 지옥을 가르는 것은 자유
우리나라의 성삼문도 죽기 전 “황천길에는 쉬어갈 주막도 없다 하니 오늘 밤은 뉘 집에서 쉬리”라는 유명한 시를 남겼다. 동서양의 다른 세계와 다른 시대에 살았던 두 사람이 죽기 전에 한 말의 의미는 거의 동일하다. 죽음을 다른 세계로의 여행으로 생각한 점이나 그 여행길이 만만찮다고 여긴 점은 모두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리스 사람들은 지금도 사람이 죽은 뒤 사흘 동안은 사자의 영이 집안에 머물고, 9일 동안은 집 주위를 배회한 뒤 살았던 도시를 40일 동안 머물다 저승길로 떠난다고 믿고 있다. 장례식을 치를 때 사자의 입에 동전을 물려주고 관 속에 보리를 한 주먹씩 뿌려주기도 하는데, 그 뿌리는 신화시대로 거슬러올라간다. 대서사시인 오미로스(호머)는 장님이었지만 마치 모든 세계를 실제로 본 사람처럼 아주 사실적으로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저승세계는 그림자의 세계처럼 아무런 실체가 없는 영혼들이 존재하는 곳으로 그려지고 있다. 지옥은 마치 아우슈비츠와 같은 수용소처럼 지어져 있는데, 삼중의 철벽과 구리로 만들어진 수용소담으로 인해 도저히 탈출이 불가능하고, 그 옆으로는 불의 강이 흐른다. 그리스 신화의 지옥은 한번 가면 그것으로 끝나는 기독교의 지옥과는 달리 벗어날 기회가 주어진다. 천국은 해와 별들이 있는 행복한 곳으로, 사람들이 동산에 살며 강가에 침대를 펴놓고 지내고 마음대로 푸른 숲을 거닐 수 있는 곳으로 묘사돼 있다. 즉, 그리스 신화에서는 자유의 유무가 천국과 지옥를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
저승세계는 옛날부터 누구도 가기 싫어했던 곳이다. 그러나 그리스 신화에서 몇명의 영웅들은 산 채로 저승세계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오디시오스(오디세이)와 이라클리스(헤라클레스)를 비롯하여 유리디스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에 등장하는 오르피오스도 죽지 않고 저승세계를 방문했던 사람이다. 염라대왕인 아디스가 자연의 법을 거스르면서까지 오르피오스의 용기에 굴복하여 유리디스를 내놓는 대목은 신화의 최고봉이다.
오르피오스는 음악이 마술의 수준에 이르렀던 당대 최고의 음악가였다. 그가 연주할 때면 바위가 울고 수풀이 춤을 추었다. 오르피오스의 신기에 가까운 음악연주에 넋을 빼앗겨버린 아름다운 유리디스는 오르피오스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결혼식이 있던 날 유리디스는 독사에 물려 죽고, 신 에르미스가 그녀의 영혼을 저승세계로 보낸다. 오르피오스는 너무나 큰 슬픔에 젖은 나머지 목숨을 걸고 그녀를 다시 데려오기로 결심한다. 그는 땅 속 깊숙이 있는 저승세계로 혼자 내려갔다. 일설에는 쇳덩어리를 땅에서 떨어뜨리면 아홉 밤낮이 지난 뒤에야 도달할 정도로 먼 거리에 있다고 한다.
죽음의 세계에 뛰어들었던 오르피오스
호수에 다다른 그는 이승세계와 저승세계를 나누는 호수에서 돈벌이로 죽은 영혼을 저승세계로 실어주는 뱃사공인 하론에게 자신을 건네달라고 사정한다. 그리스에서 장례식 때 사자의 입에 동전을 넣는 이유는 하론에게 뱃삯을 지불하기 위해서다. 뱃삯 대신 그는 처절한 곡조의 음악을 연주하는데, 이에 감탄한 하론은 그를 호수 건너편까지 태워주고 머리가 셋 달린 저승세계를 지키는 개인 케브로스도 그를 통과시킨다. 이런 모험을 감수하면서 오르피오스는 저승세계의 염라대왕인 아디스와 그의 왕비인 퍼세포니 앞에 서게 된다. 그는 자신의 아내를 위해 100만번 이상 악기를 연주해야 했고 연주가 앞의 연주보다 항상 더 나아야 한다는 조건을 따랐다.
연주가 계속되면서 싸늘한 심장의 아디스까지 심장이 녹으면서 눈물을 흘렸고 그의 왕비는 거의 통곡하다시피 했다. 왕비는 아디스에게 유리디스를 이승으로 되돌려보낼 것을 간청한다. 그러나 아디스는 이승세계로 되돌아갈 때까지 절대로 유리디스를 보면 안 된다는 조건을 걸고 이를 수락한다. 오르피오스는 결국 저승세계를 거의 다 벗어날 무렵 유리디스를 돌아보게 된다. 이에 유리디스는 즉시 다시 저승세계로 보내지고 오르피오스 혼자 이승세계로 돌아온다. 더 이상 슬픔을 견디지 못한 오르피오스는 죽음의 길을 택한다.
이렇게 비극적으로 끝난 오르피오스의 신화는 지금도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즉, 저승세계의 신 아디스가 “유리디스를 쳐다보지 말라”는 조건을 내걸어 오르피오스를 시험한 것은 애초에 유리디스를 이승으로 돌려보내지 않으려는 숨은 의도였다며 아디스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오르피오스를 탓하는 사람들도 있다. 호기심과 의심 때문에 순간을 참지 못하고 돌아봄으로써 모든 것을 수포로 돌아가게 한 그의 부족한 믿음을 비판한다.
아테네 중심가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양지바른 한 모퉁이에는 ‘케라미코스’라 불리는 고대시대의 공동묘지가 3천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한 채 외로이 자리잡고 있다. 공동묘지의 묘비에 새겨진 글씨는 수천년의 풍우에 씻겨 모두 닳아버렸지만 비석에 새겨진 조각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전투장면이 새겨져 있는 묘비는 전장에서 죽은 병사의 무덤일 것이고, 악기를 든 청년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 옆 묘비의 주인은 아마 음악가였던 것 같다.
“고대에는 죽은 사람들을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인 양 아주 정성스럽게 대접했다”는 얘기를 묘비들을 보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 공동묘지를 양쪽으로 나누는 큰 길은 ‘거룩한 길’이라 하여 옛날에 제사가 있을 때 이 길로 제사장을 비롯한 행렬들이 지나갔다. 마침 이곳에는 칠순을 바라보는 한 노신사가 거룩한 길가의 돌 위에 앉아 깊은 명상에 잠겨 있었다. 스웨덴 출신인 그는 언론인으로 평생을 일하다 현재는 책을 집필 중이라고 했다. 무덤가여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는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회상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병원에서 사망진단을 받은 뒤 사후세계를 방문하고 돌아온 적이 있다. 당시 어머니는 대부분의 사후세계 경험자들이 공통적으로 증언하는 ‘터널을 지난 뒤 밝은 빛의 세상’에 갔다왔다고 했다. 이 일이 있은 뒤 삼년이 지나 어머니는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아주 평화스럽게 임종을 맞았다.”
신화, 영원한 세계에 대한 동경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류가 땅에 발붙이고 살기 시작한 이래로 삶과 죽음의 문제는 언제나 인간사고의 중심이 돼왔다. 죽음을 두려워하고 싫어하던 인간에게 영원한 삶은 이상이 됐고, 신화는 이런 인간의 영원한 세계에 대한 동경을 표현하고 있다. 인간은 영원히 사는 신의 세계를 만들었고, 이들 신들과 관계가 있는 인간들도 등장시켰다. 신화에서 신들이 인간을 다스리는 이유는 인간생명의 유한성 때문이다. 죽음의 신비가 풀리지 않는 한 신화의 신비나 신들의 활동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저승세계의 신 아디스에 관한 원고를 준비하던 중 공교롭게도 대구에서 일어난 지하철 방화사건을 접하게 되었다. 대구 출신인 필자도 지난해 11월 방화가 일어난 중앙로역에서 내린 적 있다. 그때는 전동차 내부가 깨끗하고 조용했으며 승객들은 대부분 노인들이나 중·고등학생들이었다. 그곳에서 수백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처참한 고통 속에서 죽어갔다는 사실에 전율하면서 허탈감과 슬픔이 지금도 계속 밀려오고 있다. 가족과 친지를 잃은 유족들에게 멀리서나마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마음을 전하며 부상자들의 쾌유를 빈다.
아테네=글·사진 하영식 전문위원 youngsig@teledomenet.gr

사진/ 3천년이 넘은 고대의 공동묘지. ‘케라미코스’가운데 난 길은 ‘거룩한 길’이라 불린다.
우리나라의 성삼문도 죽기 전 “황천길에는 쉬어갈 주막도 없다 하니 오늘 밤은 뉘 집에서 쉬리”라는 유명한 시를 남겼다. 동서양의 다른 세계와 다른 시대에 살았던 두 사람이 죽기 전에 한 말의 의미는 거의 동일하다. 죽음을 다른 세계로의 여행으로 생각한 점이나 그 여행길이 만만찮다고 여긴 점은 모두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리스 사람들은 지금도 사람이 죽은 뒤 사흘 동안은 사자의 영이 집안에 머물고, 9일 동안은 집 주위를 배회한 뒤 살았던 도시를 40일 동안 머물다 저승길로 떠난다고 믿고 있다. 장례식을 치를 때 사자의 입에 동전을 물려주고 관 속에 보리를 한 주먹씩 뿌려주기도 하는데, 그 뿌리는 신화시대로 거슬러올라간다. 대서사시인 오미로스(호머)는 장님이었지만 마치 모든 세계를 실제로 본 사람처럼 아주 사실적으로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저승세계는 그림자의 세계처럼 아무런 실체가 없는 영혼들이 존재하는 곳으로 그려지고 있다. 지옥은 마치 아우슈비츠와 같은 수용소처럼 지어져 있는데, 삼중의 철벽과 구리로 만들어진 수용소담으로 인해 도저히 탈출이 불가능하고, 그 옆으로는 불의 강이 흐른다. 그리스 신화의 지옥은 한번 가면 그것으로 끝나는 기독교의 지옥과는 달리 벗어날 기회가 주어진다. 천국은 해와 별들이 있는 행복한 곳으로, 사람들이 동산에 살며 강가에 침대를 펴놓고 지내고 마음대로 푸른 숲을 거닐 수 있는 곳으로 묘사돼 있다. 즉, 그리스 신화에서는 자유의 유무가 천국과 지옥를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

사진/ 저승세계로 가는 배를 젓는 사공인 하론(왼쪽)과 죽은 사람의 영혼을 저승세계로 데려다주는 사명을 맡은 신 에르미스(오른쪽)의 모습.

사진/ 고대 그리스 토기에 새겨진 저승세계의 신 아디스의 모습. 그도 오르피오스의 연주에 눈물을 흘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