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이고 어린이고 가리지 않고 납치하는 ‘민중의 게릴라’… 콜롬비아 혼돈의 현장을 가다
남쪽에서 북쪽을 향해 손가락처럼 뻗어오른 세 줄기의 안데스 산맥의 녹음과 산맥 사이 계곡을 따라 너른 강으로 향해가는 적갈색 물줄기들. 하늘에서 바라본 콜롬비아는 장관을 연출하는 처녀림 그 자체다. “게릴라를 만나거든 도대체 너희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꼭 물어봐줘요.” 풍경에 감탄하고 있던 나는 불쑥 호세가 던진 질문을 떠올린다.
무장경찰들이 지키는 거리
베네수엘라에서 나를 안내한 콜롬비아 출신 운전사 호세는 공항까지 바래다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1999년 당시 대통령 안드레스 파스트라나가 콜롬비아 남부 카케타주에 자리잡은 4만㎡가 넘는 땅을 자치영토로 줬는데도 평화협상에 진지하게 응하지 않았고, 정당이 될 기회도 내팽개쳤다는 지적이다. 20년 전 어머니와 함께 조국을 떠나 이웃 베네수엘라에 정착한 그의 의문을 안고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 내렸다.
여느 중남미 나라의 공항과 달리 세관직원이 아닌 정보국(DAS) 직원들이 외국인 입국심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태도가 위압적이진 않았으나 다소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머물 예정이죠” 정보국 여직원은 재빨리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물었다. “일주일 예정인데요.” “어디에 머물 예정이지요” “보고타 플라자 호텔에.” 그는 말을 마칠 새도 없이 여권을 돌려주었다.
보고타 거리 곳곳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국방색 제복을 입은 무장경찰들이었다. 택시 운전사는 지난해 8월에 우리베 대통령이 취임할 때 게릴라들이 국회의사당으로 두발의 로켓을 발사해서 대통령궁 주변 경비는 더욱 삼엄해졌고 길거리 경찰들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고 말했다. “안데스 산줄기 곳곳에 게릴라들이 자리잡고 있으며 보고타 밖 도로에선 ‘기적의 낚시’(게릴라들이 불법적으로 검문소를 세워 사람들을 납치하는 행위)가 자주 벌어지지요.” 묻지도 않았는데 그는 친절하게 보고타 밖으로 절대 나가지 말라는 충고까지 해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 동북부, 베네수엘라와 접한 아라우카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벌어진 일이다. 평범한 암탉 한 마리가 사흘 전부터 나무 위에서 내려오지 않고 버티기 시작했다. 닭 임자는 온갖 수를 써서 닭을 내려오게 하려고 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이 닭은 왜 다시는 땅에 두발을 딛지 않기로 한 것일까 그 마을엔 몇주 사이 다섯 차례에 걸친 게릴라들의 폭탄공격이 있었는데, 사흘 전에 마지막 폭탄이 떨어졌다. 해마다 2만7천명이 살해당하고 3천명이 납치되는 나라,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폭력의 반 이상이 벌어진다는 콜롬비아에선 가축들마저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풀어준다는 말에 눈물 흘려
“2000년 2월21일이었어요.” 마치 한순간도 그 날짜를 잊지 못했다는 듯 페르난도 트리빌콕 변호사가 말문을 연다. 아들이 납치된 사업가 친구 하나가 그를 찾아와 협상 중재자로 일해달라고 부탁했다. “절대로 가고 싶지 않았지만 피붙이 같은 친구가 울면서 부탁하는 데 어쩔 수 없었어요.” 그는 사업가 친구와 함께 보고타에서 약 1시간 15분 정도 걸리는 메타주의 주도 비야비센시오로 갔다. 다시 그곳에서 군과 경찰 몰래 산길을 더듬어 협상장소로 향했고, 콜롬비아혁명군(FARC)의 게릴라들과 만났다. 자신은 사업가의 친구라고 말하자 한 게릴라 병사가 페르난도 변호사의 머리에 총을 겨누며 당신은 납치되었다고 말했다. 협상 중재자를 납치한 게릴라들의 속셈은 사업가 친구로 하여금 두배의 돈을 지불하게 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비무장지대로 옮겨졌어요.” 1999년 당시 정부가 평화협상의 일환으로 철수한 지역이 납치인질들을 가두는 곳이 돼버렸다. 페르난도 변호사는 비무장지대엔 32명의 인질들이 갇혀 있었고 자신은 12명의 사람들과 함께 한 그룹이 되어 갇혀 있었다고 말했다. 인질들은 날마다 18시간에서 20시간씩 걸어야 했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정부군의 이동경로에 따라 게릴라들도 이동했기 때문이다. “제가 알기로 최소 2명은 살해당했어요.” 총소리가 순간 스쳐가는지 페르난도는 잠시 신산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협상이 실패로 돌아가자 게릴라들이 죽였다는 것이다. 납치된 사람들 가운데 10%는 그렇게 살해당했다.
페르난도 변호사를 비롯해 인질들을 몇 그룹으로 나누어 지키고 있던 이들은 15~16살의 어린 소년 게릴라들이 대다수였다. “어찌 보면 이 아이들도 납치당한 것입니다. 전선에서 이탈할 경우 총살당합니다.” 대학교수기도 한 그는 소년 게릴라들과 대화를 하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천문학을 강의했다고 말했다. “지구가 평평하지 않고 둥글다고 일러주었지요.” 처음으로 그는 활짝 웃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2시께 게릴라 한명이 페르난도를 찾아와 “당신은 곧 돌아갈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그 소리를 ‘당신은 내일 죽을 것이다’로 들었다. 무릎을 꿇은 채 뒷덜미에서 날아올 총알을 잠시 상상해보았다. 그는 이튿날 쉴 새 없이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보고타에서 차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한 게릴라가 “당신을 풀어준다”고 말하자 눈물이 났다. 그는 바로 가족에게 전화를 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자신과 함께 납치된 것과 다를 바 없는 가족에게 말이다.
페르난도 사무실엔 그를 포함해 세명의 변호사가 일하고 있다. 1990년에 한 동료가 납치당했다. 그때 그는 동료를 구하기 위해 협상을 중재하는 일을 맡았다. 1998년에 두 번째로 다른 동료가 납치되었다. 그는 다시 협상 중재역을 맡았다. 그리고 2000년에 그가 납치되었을 땐 동료들이 그를 구하는 협상 중재역을 맡았다. 그는 지금 납치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인권단체 ‘자유국가재단’의 법률상담을 지원하고 있다.
납치범죄의 양상 ‘산업화·일상화’
“그들은 비무장지대에 납치인질들이 없다고 말했어요. 아마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거짓말일 것입니다.” 콜롬비아혁명군에 대한 생각을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납치되는 아이들 가운데 많은 수가 5살, 6살 아이들입니다. 어떻게 ‘민중의 게릴라’라고 스스로 일컬으면서 부자든 가난한 자든 가리지 않고 납치할 수 있습니까 지금 그들은 콜롬비아 국민을 납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콜롬비아 국민이 납치되고 있다는 그의 지적은 옳았다. 납치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인권단체 자유국가재단의 언론담당 비비아나 에스게라는 현재 납치는 가난한 자와 부자를 가리지 않고 벌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콜롬비아 납치범죄의 양상을 ‘산업화·일상화’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에 따르면 콜롬비아에서 납치범죄는 1991년에 전환점을 맞았다. 좌파 게릴라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납치범죄를 벌이는 경우가 있었지만 납치범죄가 일상화한 것은 이때부터다. 당시 콜롬비아 정부가 마약 공급책을 처벌하려던 미국 정부의 요청에 따라 범인인도조약을 맺으려 하자 ‘코카인의 황제’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이끄는 마약조직은 국가를 상대로 전쟁을 벌인다.
에스코바르는 수십명의 판사들을 암살했고 1989년 대통령 선거 다섯 후보 가운데 세명을 살해했다. 그해 네 번째 후보를 죽이는 과정에서 비행기 한대를 떨어뜨려 110명의 승객을 죽였다. 1991년엔 대통령 딸이 포함된 10명의 기자들이 집단으로 이 조직에 납치되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납치일기>라는 실화소설에서 다룬 사건이 이 사건이다. 그때 납치된 사람 가운데 한명이 대통령 우리베와 함께 현 정부를 이끌고 있는 콜롬비아 부통령 프란시스코 산토스였다.
그때 이후로 좌파 게릴라 조직에 의해 납치범죄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현실사회주의 몰락 이후 이념적 지표를 완전히 상실한 것일까 이들은 ‘정치포로’라는 이름으로 사업가·지주뿐 아니라 일반시민, 청소년과 어린이들까지 납치하기 시작했다. 현재 정규군과 비정규군을 합해 6만에 이른다는 좌파반군 콜롬비아혁명군이 콜롬비아 납치범죄의 70%를 자행하고, 20%는 일반 범죄조직이, 10%는 극우파 준군사조직 콜롬비아단결자위대(AUC)가 벌인다. 현재 콜롬비아혁명군이 납치로 벌어들이는 돈은 연간 2억달러에 이른다.
자유국가재단의 이사장인 후안 프란시스코 메사는 납치범죄의 원인을 설명하면서 ‘풍토병’으로 불리는 콜롬비아 폭력의 역사 외에 문화적 이유를 들었다. 콜롬비아 국민이 정부의 공식기관을 통해, 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모든 것을 사적인 협상을 통해 해결한다는 것이다. 국가에 대한 신뢰의 추락이 납치범들이 계속 활개칠 수 있는 사회적 배경이라는 지적이다.
콜롬비아는 납치범죄를 막기 위해 1996년 검찰·경찰·군 합동으로 콜롬비아 주요 도시에 ‘가울라’(GAULA)라는 납치대책반을 조직했다. 1999년 12%, 2000년 18%, 2001년과 2002년 23%. 이 통계는 계속 증가하는 납치인질의 구조율을 말해준다. 보고타 가울라 국장 셀리스 대령은 납치조직을 소탕하는 데 아무런 장애물이 없다고 호언장담했다. “구조율도 갈수록 높아지고 범인 검거율도 높아졌어요. 우리는 지난해에 628명의 납치범을 잡아들였습니다.”
비극은 하나님의 장난
그러나 납치범죄도 3천명을 넘어 계속 증가일로에 있다. 여기에 10% 정도 신고하지 않은 범죄 수를 더하면 실제로는 더욱 많을 것이다. 납치범죄가 계속 증가하는 이유에 대해 부통령 프란시스코 산토스는 “납치를 묵인하는 공무원들의 부패도 한몫한다”고 솔직히 지적했다. 콜롬비아 정부는 부통령 지휘 아래 ‘납치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콜롬비아 현 정부의 각료들은 대부분 납치의 피해자들이다. 우리베 대통령은 아버지가 납치되어 살해당했고, 교육부 장관은 어머니가, 문화부 장관은 숙모가, 보건부 장관은 처남이 납치돼 살해당했다. 정부로서는 마약유통과 함께 무장조직의 자금줄 노릇을 하는 납치범죄를 방치할 수 없다.
신이 콜롬비아를 창조할 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강·산·과일·동물들을 빚었다. 풍요로운 땅에 누군가 침을 튀기기만 해도 무엇인가 자란다. 성 베드로가 불평했다. “하나님! 왜 콜롬비아에만 이렇게 베풉니까 이것은 너무 불공평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답했다 “기다리게나! 내가 거기다 어떤 사람들을 만드는지 보게나!” 콜롬비아에 유행하는 시니컬한 농담이다. 국가를 재건하려는 정부의 앞길에 놓인 가장 큰 난관은 시민들의 자조 섞인 절망이다.
보고타=글·사진 박정훈 전문위원 jhpark2001@hotmail.com
*이 기사는 한국방송의 <세계는 지금>의 콜롬비아 특별촬영팀과 공동으로 취재한 것입니다.
[인터뷰] 콜롬비아 부통령 프란시스코 산토스
“소극적 방법으론 안 된다”
-납치된 적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1991년 마약조직 메데진 카르텔에 의해 납치되어 8개월 동안 침대에 묶여 있다가 풀려났다. 납치된 이후 자유국가재단이라는 납치전문인권단체의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도로에서 납치가 빈번하다는데.
=우린 도로망의 통제권을 완전히 상실했다. 그러나 차츰 회복해가고 있다. 예컨대 지난 연말연시 휴가철에 전국적으로 약 400만대 차량이 도로로 나왔다.
-콜롬비아에서 납치 범죄율이 세계적으로 높은 이유는 무엇인가.
=그동안 사법제도가 아주 비효율적으로 운영돼 검거되었다가도 풀려난 경우가 많다. 여기에 비효율적인 예방 범죄활동, 납치를 묵인하는 공무원들의 부패가 있다.
-납치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절한 대책은 무엇인가.
=납치조직을 근본적으로 소탕하기 위해 그들의 정보망을 교란하고, 그들의 부동산을 압수하고, 은행계좌를 추적하는 등의 노력을 벌이고 있다.
-정부의 게릴라 소탕정책과 같은 강경책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다는 비판이 만만찮다.
=아니다. 치안을 회복하는 일은 콜롬비아의 제1과제다. 이들은 테러집단이다. 소극적인 방법으론 결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사진/ 안개와 공해 속에 잠긴 보고타 중심가. 콜롬비아의 미래처럼 희뿌옇기만 하다.
여느 중남미 나라의 공항과 달리 세관직원이 아닌 정보국(DAS) 직원들이 외국인 입국심사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태도가 위압적이진 않았으나 다소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머물 예정이죠” 정보국 여직원은 재빨리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물었다. “일주일 예정인데요.” “어디에 머물 예정이지요” “보고타 플라자 호텔에.” 그는 말을 마칠 새도 없이 여권을 돌려주었다.

사진/ 납치 당시의 경험을 떠올리는 페르난도 변호사. 그는 지금 납치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인권단체 ‘자유국가재단’의 법률상담을 지원하고 있다(좌). 보고타 시내의 한 은행 앞에 서 있는 무장군인. 시내 곳곳에서 이들을 만날 수 있다.(우)

사진/ 고색창연한 건물들에 둘러싸인 보고타 광장. 국방색 제복의 경찰의 모습은 자주 눈에 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