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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소련 붕괴 뒤 안전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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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2-2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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튼튼함을 자랑으로 하던 철도왕국 러시아의 지하철… 개방과 테러로 사고 잦아지자 대책에 고심

철도왕국 러시아는 이름에 걸맞게 지하철 규모도 단연 세계 제일이다. 총연장 길이 264km, 11개 노선에 165개 역사, 하루 평균 900만명의 이용객이라는 외관상의 통계만으로도 가히 지하철 대국 러시아의 위용을 짐작할 수 있다. 러시아 지하철 건설의 역사는 20세기 초반에 시작됐다. 1901년 당시 랴잔-우랄 철도회사 소속의 탁월한 기술자였던 A. I. 안토노비치는 오늘날 모스크바 지하철 중심노선인 순환선의 원형이 되는 시내 지상철도망 설립안을 내놓았다. 이듬해부터 많은 기술자들이 이 구상을 발전시켜 지하에 철도를 건설하는 안을 내놓았다. 그 결과 드디어 1935년 모스크바에서 최초의 지하철이 개통되었고, 20년 뒤인 1955년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도 순차적으로 지하철이 개통되었다.

졸속 교통계획이 무리한 운행 부추겨

사진/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으로 유명한 지하철역 노보스라보드스카야. 내부장식은 잘 되었으나 승강장과 열차간격이 넓어 안전사고가 잦다.
장구한 역사에도 러시아 지하철은 오늘날까지 커다란 기술결함 없이 잘 운행돼왔다. 건설 초기의 ‘튼튼주의’와 더불어 운행 개시 이후 엄격한 안전운행수칙을 준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90년 소련이 붕괴된 뒤 중·소형차를 원활히 유통시킨다는 명목하에 진행된 졸속 도로교통계획의 여파로 지상 대중교통수단의 수가 급격히 감소되자 지하철 승객이 급증하였고, 이에 따라 무리한 운행 등으로 크고 작은 사건들이 발생했다.


대표적 사례가 지난 1995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의 레스나야-무줴스트보 구간의 터널 붕괴사건이다. 사실 이 구간은 건설 초기부터 지하에 수분을 많이 함유한 지질이 있어서 터널 건설은 물론 유지가 곤란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문제 해소를 위해 시 당국은 영하 150도로 지반을 인공적으로 냉각시켜 그 위에 터널을 만들었다. 1976년 레닌그라드 공산당 지부는 평균시속보다 훨씬 느린 적정 운행속도를 규정하고 이 구간을 위한 특별 감독위원회를 마련해 준수 여부를 감독해왔다. 그러나 개방 이후 교통인구가 2~3배로 급증하자 운행횟수가 증가하고 열차 속도도 점점 빨라지면서 주변 지질이 녹아 터널이 붕괴됐다.

이 밖에 자잘한 문제들은 대개 시설 낙후나 이용상의 안전문제 때문이다. 이를테면 승강장과 객차 사이의 간격이 상식 외로 커서 실족하기가 쉽고 평균 지하 100여m까지 깊이 파여 있는 승강장과 지상을 연결하기 위해 고속으로 움직이는 에스컬레이터도 문제를 일으켜왔다. 공식 통계에 의하면 주당 평균 3~5건 정도 승강장 혹은 에스컬레이터에서 실족사고가 발생한다고 한다.

대테러 안전대책 수립

안전사고만이 문제되던 러시아 지하철에 1994년 아제르바이잔, 1996년 모스크바 툴스카야역에서 폭탄사고가 발생하면서 대중을 겨냥한 대규모 테러가 새로운 위험요소로 등장했다. 1996년 사고의 경우 10여명 사망, 수십명 부상 등 여느 테러보다는 가벼운 피해를 기록하고 있지만 “폭탄장치는 원래 열차가 승강장에 도착하고 문이 열리면서 승객들이 마구 열차에서 쏟아져나오는 시점에 맞춰 터지게끔 고안되었다”고 사건조사팀이 발표하면서 주민을 경악하게 했다. 다행히 폭탄이 예상 폭발시점보다 일찍 오발하여 소수의 인명피해로 그쳤다는 후문이다.

이 사건 이후 모스크바시는 부랴부랴 지하철 안전확보를 위한 방안을 세우기 시작했다. 검문검색이 대폭 강화되고 안전요원 확보를 위해 특별히 500여명으로 구성된 지하철기동연대를 내무경찰 산하에 보강했다. 이듬해인 1997년부터는 모스크바 전 역사에 비디오 카메라를 장치하고 비디오 감시팀을 24시간 운영하며 특수수색견 부대를 별도로 운영하는 등 대테러 안전조치를 강화해왔다. 최근 들어 러시아 시민들은 한편으론 테러방지를 위한 당국의 노력에 찬사를 보내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좀더 근본적이라 할 수 있는 지하철 안전사고 방지 대책과 편의시설 확충 등에 소홀한 모습에 비판적인 눈길을 보내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글·사진 박현봉 전문위원 parkhb_spb@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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