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그 마지막 기회]
외국인들은 철수하고 이라크인들은 몰려들고… 요르단의 반전 활동가들을 바라보는 중동 민심
오늘도 거듭되는 질문을 받았다. “김, 이라크 전쟁이 터질 가능성이 있는가” 물어본 이들이 원하는 답은 하나였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채워줄 속시원한 답이 없다. 어느새 이라크 전쟁이 터질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하는 아랍인들은 70%를 넘어섰다. 30% 안팎의 사람들조차 자신들의 희망사항을 담아본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현실을 엿볼 수 있는 곳은 요르단이다. 친미정책을 펴지만 동시에 친이라크 국가기 때문이다. 최근 요르단 암만이 세계 언론에 자주 오르내린다. 반전운동과 인간방패들의 주요 집결지로 주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10만여명의 인간방패를 모집하는 운동이 전개됐다거나 1천여명의 인간방패 지원자들이 비자를 기다린다는 뉴스도 한자리하고 있다. 조금 과장된 뉴스들이지만 요르단 암만이 전환점에 서 있다는 것은 자명해보인다.
바그다드 탈출은 부유층의 전유물
그 단초를 볼 수 있는 곳이 반전시위 현장이다. 이라크 전쟁 반대시위임에도 이라크인들의 참여가 거의 없었다. 요르단에 있는 합법·불법 체류자들은 지난해까지 50만여명에 가깝지만, 이들이 반전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다. 불법 체류자 신세인 다수의 이라크인들이 이런 자리에 올 수 없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이라크 당국은 최근 해외여행 허가절차를 밟는데 드는 250달러 이상의 수수료를 없앴다. 그러나 이라크인들의 바그다드 탈출 러시도 부유층의 전유물처럼 느껴진다. 그동안 전쟁특수를 노리는 듯 지어올린 신축 아파트와 주택들은 이들들의 피난처가 되고 있다. 이라크에서는 풀렸지만 요르단 문은 굳게 닫힌 것이다. 이라크인이 제3국행 비자를 소지하지 않았다면 입국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최근에는 시리아로 빠져나가는 이라크인들이 늘었다. 돈 없고 배경 없는 사람들은 이래저래 갈 곳이 없어보인다. 이라크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이라크인들은 아예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이판사판인 셈이다.
다가온 전쟁의 불똥은 암만에 살고 있는 외국인 사회에도 튀었다. 미국 부시 행정부는 이곳 요르단의 자국민에 대해 철수권고를 내렸다. 외국인의 철수가 한창이다. 유럽계는 물론 아시아계 체류자들도 떠나려는 이들이 많다. 미국계 학교나 시설물들에 대한 경계는 이미 강화되었다. “본사의 지시로 암만을 떠나야 한다. 다시 돌아올지 어떨지 전혀 알 수 없다.” 암만에서 일하며 아랍인을 사랑하던 미국인 K씨 부부는 눈물 글썽이며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암만을 떠나야 했다. “학생들이 절반 이상으로 줄어들 것이다. 남아 있는 학생들과 교사들을 동원해서라도 학교교육은 정상적으로 이끌어갈 계획이다.” 아메리칸 커뮤니티 스쿨은 이렇게 밝혔다. 이미 미국과 유럽계 학생들의 자리는 비어 있다. 추가적으로 아시아계 학생들이 학교를 떠날 것으로 보인다. 요르단에 파견된 한국상사 주재원 가족들 다수도 주재원만을 남겨두고 떠나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귀국행 항공편 좌석은 예약했습니다. 남편만 남고 아이들과 저는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입니다.” A기업의 주재원 부인 P씨의 말이다. 이런 조처는 외국인에 대한 테러를 예방하려는 의도에서 나왔다. 무엇 때문에 이 같은 혼란과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곤혹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인간방패’에 마음 둘 여유 없어
그 와중에 이라크 전쟁을 온몸으로 막겠다며 바그다드로 향하는 이들이 있고, 암만으로 들어오는 이들이 있다. 반전평화운동가들과 난민지원 자원봉사자들이다. 이라크에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또다시 바그다드에 인간방패가 등장했다. 인간방패는 전쟁에서 비무장 민간인이나 노약자·어린이 등을 상대방의 공격지점에 내세워 방패로 삼는 것을 말한다. 1991년 걸프전 당시 이라크는 궁지에 몰릴 때마다 ‘인간방패’를 활용했다. 알려진 바로는 이라크 내 주요 군사시설에 쿠웨이트인들을 억류시키고, 대통령궁에 대한 폭격을 피하기 위해 수백 가구의 민간인을 대통령궁 근처로 이주시켰다. 이런 경우 인간방패는 말 그대로 ‘총알받이’다. 2월8일 새벽 암만에 낯선 세 사람이 찾아들었다. 한국 이라크 반전평화팀(아래 반전평화팀)이다. 한국에서 온 3인의 반전평화팀은 “방패라는 표현이 군이나 전쟁을 표현하는 것이기에 인간방패라는 표현보다는 반전평화팀으로 불러달라”고 말했다. 사실 총알받이가 강제적인 것이었다면 이들 반전평화팀은 전쟁을 막기 위해 스스로 나섰다는 점에서 확연히 다르다.
반전평화운동을 추진하는 이들은 강제된 이라크인이 아니라, 전직 걸프전 참전 미군 케네스 니콜스 오키퍼. 1991년 미 해병대 4연대 1대대원으로 쿠웨이트와 바그다드를 연결하는 이른바 ‘죽음의 고속도로’ 전투에 참가했다. 그곳에서 미군의 공격으로 2만여명의 이라크군이 대량학살당하는 것을 보고 반전의지를 가졌다. 미국인으로서 반미주의자가 된 그는 미국 시민권을 포기했다.
인간방패 운동의 중심에는 오랫동안 이라크 안팎에서 반전운동을 벌이는 미국의 ‘광야의 소리’(Voice in the Wildness)가 있다. 이들이 구성한 조직은 이라크평화팀(IPT)이다. 물론 IPT 외에도 반전평화운동을 펼치는 조직들이 있다.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인간방패프로그램(HSP)이 대표적이다. 현재 이라크에는 IPT 소속으로 반전운동을 벌이는 50여명 등 100여명의 반전평화운동가들이 전쟁 억제를 위한 노력을 다하고 있다. 이 운동가들은 사담 후세인의 정치적 이용물이 되지 않으려는 자구책으로 일환으로 자비로 이번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그러나 이들을 바라보는 이라크 민심이 크게 고무적인 것만은 아니다. 전쟁은 막을 수 없는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간방패운동에 전쟁을 막는 억제력이 있다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드러내놓고 말 못하지만 자신들 역시 필연적으로 발생할 시가전에서 총알받이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젖어 있다. 외국인 인간방패들의 헌신으로 전쟁 발발이 억제될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그런 것에 마음을 둘 여유가 없어보인다. 아랍의 언론들도 인간방패 움직임에 크게 주목하지 않고 있다.
난민지원,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자
“난민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은 할 수 있으나 요르단 땅에 유입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요르단 정부의 기본방침이다. 걸프전 당시 유입된 이라크 난민들로 사회 불안이 야기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난민유입은 허용하지 않겠다고 요르단 당국은 거듭 밝히고 있다. 지금 예상되는 난민캠프 위치는 현재 요르단과 이라크의 접경지역인 케라메 국경도시(이라크 영토)다. 이런 사실을 배경으로 이곳 암만에서는 전쟁 발발로 발생할 수 있는 최소 수백만의 난민을 지원하기 위한 대책모임이 이어지고 있다. 유엔 기구와 민간 비정부기구(NGO) 관계자들 사이에는 난민촌 운영과 관련한 구체적인 협력작전이 전개되고 있다. 물적·인적 자원 확보는 물론 난민촌 운영과 지원에 대한 세부적 방향도 잡혀간다. 그렇다고 이들 활동을 막 드러내놓고 펼칠 수 있는 형편도 아니다. 반전 움직임이 중요한 시점인데, 전쟁을 전제로 하는 NGO 활동이어서, 자칫하면 전쟁 지지자로 오해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것이 지혜다. 전쟁은 피할 수 없다고 말하기에는 아직은 이르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전쟁이 터지면 최소 50만명의 사망자와 340만명의 난민, 그리고 질병을 가진 이와 빈곤층을 확대재생산할 것이다. 기적이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말자. 어떤 명분으로도 수십만명의 목숨을 앗아갈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암만=김동문 전문위원 yahiya@hanmail.net

사진/ 2월15일 수천명의 바그다드 시민들이 반미구호를 외치고 있다. 일부 부유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이라크인들은 이라크를 탈출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사진/ 바그다드의 한 정유공장 앞에서 ‘이라크 평화팀’이 “이곳을 폭격하는 것은 전쟁범죄다”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