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그 마지막 기회]
미국은 남미가 흘린 피를 기억하는가… 멕시코 시민들은 친미 대통령의 반전 표명 믿지 않는다
미국-영국-오스트레일리아가 파견한 25만8천명의 죽음의 군대가 페르시아만을 향해 행군하고 있을 때, 전 세계 수천만명의 시민들이 인류를 대표해 그들의 행진을 향해 “멈춰!”라고 외쳤다. 멕시코 시민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5만의 시민들이 멕시코시티 중심을 가로지르는 레 포르마 대로를 점령하고 “우리 이름으로 절대로 전쟁을 벌이지 못하게 할 것!”이라고 외쳤다. 멕시코 동남부 치아파스에선 원주민 시인이 “총과 화약 연기 속에서 인간은 사라지고 새들의 세레나데도숲의 신선한 공기도 다시는 느낄 수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멕시코 북부 미국과의 국경 리오브라보 강가에선 수많은 시민들이 몰려가 “세계는 부시도, 사담 후세인도 원하지 않는다. 세계가 원하는 것은 평화”라고 외치며 미국으로 향하는 다리를 봉쇄해버렸다.
멕시코도 인간방패를 보낸다
국제 반전행동의 날인 2월15일 오후 3시 “국가 간 존중이 곧 평화”라고 주장한 원주민 출신 대통령 베니토 후아레스 기념탑 앞으로 멕시코시티 시민들이 속속 모여들었했다. “치아파스에서 이라크까지 우리가 바라는 것은 평화”라는 플래카드를 앞세운 시민들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으로 치아파스에서 전쟁이 일어난 해, 멕시코연방군에게 공격을 즉각 중지하라고 외치며 대광장 소칼로를 점령한 그때 그들이었다.
“우리는 전쟁 없는 세상을 원한다.” 울긋불긋 다채로운 빛깔의 글자를 새긴 플래카드를 내걸고 대행진의 선두에 선 것은 다름 아닌 멕시코시티 국·공립초등학교 어린이들이었다. 그들의 볼에는 베트남전에 맞서 저항한 할아버지·할머니 세대의 상징인 부러진 전폭기 날개가 그려져 있었다. 전국노동조합총연맹(CUT)의 노동자들도 합류했다. 전쟁반대를 외치며 행진하던 멕시코 전력공사 노조원 세르히오 산체스는 “민영화가 미국 자본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얽혀 있다면 전쟁은 미국 정부의 세계지배 야욕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라크에서 온몸으로 전쟁을 막는 인간방패가 되겠다고 자원한 멕시코 시민들도 행진에 동참했다. “이제 갓 세상을 만난 내 손녀아이에게 이런 현실을 절대로 물려주고 싶지 않다.” 심리학자 할머니 메르세데스 페레요는 모금함을 높이 들고 행진대열을 누비며 “당신들을 대신해 내가 이라크로 가겠다!”고 외치고 있었다. 현재 26명의 자원활동가들이 인간방패가 되겠다고 나섰고 2월21일 1진이 출발할 예정이다.
행진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런던에서 보낸 편지에서 멕시코 간판배우 가엘 가르시아는 최근 아카데미 영화제에 자신이 직접 주연한 두편의 영화 <이 투 마마> <아마로 신부의 범죄>가 수상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에 대해 “아카데미영화제 위원회에 전혀 감사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영화를 본 수백만명에게 감사를 전한다. 덧붙여 전쟁을 일으키려는 이들을 비난한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멕시코시티에 거주하는 외국인들도 평화행진 대열에 동참했다. “중남미 민중들은 니카라과와 칠레를 비롯한 중남미 전역에서 미국이 벌인 일을 잘 알고 있다.” 1973년 칠레의 대통령궁에 미 공군기의 폭탄이 떨어질 때 그곳에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과 함께 있던 아옌데 대통령의 운전수 치코 랄로가 말한다. “미국은 당시 칠레의 구리광산을 탐냈다. 오늘은 이라크의 석유를 탐낸다. 그렇다면 내일은”라고 묻는 그는 더 이상 약관 스무살의 청년 망명객이 아니었다. 그의 머리카락은 어느새 하얗게 세어 있었다.
칠레는 멕시코와 함께 중남미를 대표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가운데 하나다. 처음에는 칠레도 사찰강화라는 입장을 표명해왔지만 최근 들어 부쩍 이라크가 규칙을 준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총을 들고 싸우던 대통령의 옛 운전사는 “칠레의 좌파정부가 전쟁반대를 명확히 밝히지 못하는 것은 미국과의 경제관계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진정한 평등을 가로막는 세계경제 지배질서를 환기시킨다.
“시민들은 비센테 폭스 대통령을 신뢰하지 않는다.” 1천명이 모일 것이라고 예상한 행진대열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고 기뻐하며 멕시코시티 반전행진 코디네이터 아돌포 유베레가 말문을 연다. 멕시코 대표단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사찰단에게 더 시간을 주라고 요구하는 것은 멕시코 시민 85%가 전쟁을 반대하기 때문이라고 배경을 설명한다. 지금 ‘부시의 친구’로 알려진 비센테 폭스 대통령이 노리는 것은 성장을 멈춘 경제와 지지부진한 사회개혁으로 인해 추락한 인기를 만회하려는 것일 뿐이니 멕시코 대표단의 입장이 바뀔 수 있다고 덧붙인다.
한반도 긴장도 평화운동으로
좌파야당 민주혁명당(PRD)의 대표 로사리오 로블레스의 정책 자문역을 맡고 있는 그는, 미국 의회가 전쟁반대 입장을 표명하는 프랑스와 독일의 수입품에 대해 제재를 가하겠다고 협박한 것처럼 미국에 수출의 80% 이상을 의지한 멕시코도 경제보복을 당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그것이 미국의 치사한 수법이다. 멕시코 정부는 절대로 이것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현재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멕시코 대표단은 무기사찰단에 시간을 더 줘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그러나 자신들의 입장이 프랑스나 독일과 같은 것은 아니라고 부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따뜻한 멕시코 시티의 봄날, 세 시간을 걸어 하늘로 솟아오르는 흰 풍선들의 환영 속에 독립기념탑 앞에 도착했다. 금빛 날개를 단 천사가 하늘을 향해 막 날아오려는 순간을 빚은 조각상이 우뚝 솟은 앞에 역설적이게도 미국 대사관이 자리잡고 있다.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스키마스크를 쓴 일단의 청년들이 나치의 철십자를 새긴 성조기를 불태웠다. 옆에선 행진의 선봉에 선 어린이들이 평화를 소망하며 꽃 제단을 수놓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 대사관은 높은 철조망을 치고 사람들의 접근을 봉쇄한 채 저만치 뒤로 물러앉은 채 굳게 문을 닫아걸고 있었다.
그 앞에서 “누가 저들에게 다른 나라를 침략할 권리를 주었는가 이것이 미국 국민의 국민투표로 결정되었는가”라고 멕시코의 작가 카를로스 몬테마요르가 묻고 “주의! 치아파스에도 석유가 있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과테말라의 원주민 사회운동가 리고베르타 멘추 여사는, 한반도에 고조되는 긴장에 대해 “어떤 이유도 전쟁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한국인들은 평화운동으로 이에 맞서야 한다”고 답하면서 미국의 무기도 사찰하라고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멕시코시티=글·사진 박정훈 전문위원 jhpark2001@hotmail.com

사진/ “전쟁반대”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의 선두에 선 멕시코시티 초등학생들.

사진/ 멕시코 국립자치대학 학생들의 퍼포먼스. 히틀러의 철십자가 새겨진 성조기를 붙인 탱크에 조지 부시 대통령이 앉아 있다.

사진/ “우리들을 고려하지 않은 어떤 시스템도 붕괴될 것”이라고 쓰인 옷을 입은 해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