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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뛰어라, 제우스가 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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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2-1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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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의 재발견(5)

올림피아 유적지에서 수천년 전 신과 그리스를 위해 용맹을 겨루던 고대인들을 떠올리다

사진/ 신들의 산이라 불린 올림포스산. 신들은 이 산에서 올림피아를 내려다보며 경기를 즐겼다.

천둥과 번개를 다스리는 제우스가 또 화가 났는지 올림피아 유적지의 푸르던 하늘이 갑자기 진동하기 시작했다. 복원된 고대 올림픽 스타디움은 깨끗하게 정리돼 있었는데 프랑스에서 고등학생들이 수학여행을 온 모양이었다. 인솔하는 교사가 큰 소리로 현대 올림픽을 부활했다는 쿠베르탱에 대해 한창 설명하고 있었다. 비가 퍼붓기 시작하면서 수학여행단과 관광객들은 모두 떠나고 고고학 연구소의 문화재 발굴팀과 고대 신전터에서 돌을 다듬는 일을 하는 독일 출신의 여자 석공만이 넓은 터를 지키고 있었다.

아, 그 돌들에 시멘트를!


사진/ 고대 올림픽 당시 성황봉송을 묘사한 그림. 고대 올림픽 경기에는 농부나 목동들뿐만 아니라 많은 왕들도 선수로 직접 나섰다.
천막 안에서 비를 피하며 작업하던 독일 석공은 자신을 크리스티나라고 소개했고 반년을 이곳에서 보내면서 필립피온에 남아 있는 돌들을 모양새 있게 복원해내는 작업을 해왔다고 말했다. 필립피온은 알렉산더 대왕이 아버지 필립왕을 기념해서 세운 기념관이었다. 석공의 일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시멘트를 돌에다 부어 돌을 덮은 뒤 이 시멘트를 해머와 정으로 긁어 원래의 돌처럼 모양을 내는 작업이었다.

석공이 하는 일은 분명히 수천년이나 된 유적지를 훼손하는 행위였고, 작업을 하는 석공조차 다른 방법으로 한다면 훨씬 가치 있는 복원작업이 될 것이라고 얘기했다. “그렇다면 왜 하는지”를 묻자, “독일과 그리스 문화부의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수천년 동안 신전의 한 모퉁이를 받쳐온 돌은 지금도 올림피아의 역사를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그런 돌들에 철근을 박고 시멘트를 덮는 일을 직접 목도하니 돌들이 마치 십자가 형벌에 처해지는 것 같은 고통이 밀려왔다.

나의 오랜 버릇 중 하나가 폐허가 된 고대건물의 돌에 드러누워 귀를 들이대고 돌이 속삭이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그러다 어떤 때는 잠이 들기도 하는데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수천년 동안 존재해온 건물의 한 부분인 돌은 나에게 아직도 살아 숨쉬는 생물체다. 어쨌든 내가 발을 딛고 서 있는 이 땅을 수천명의 선수들과 수만명의 관중들이 그것도 수천년 전에 밟고 지나갔다고 생각하니 나 자신도 이미 그날의 함성소리와 나팔소리가 생생하게 울려퍼지는 현장에 서 있는 듯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올림포스산의 신들이 남서쪽의 올림피아 들판을 내려다보면서 인간이 신을 위해 베푸는 잔치인 올림픽 경기를 즐기기를 기원했다. 당시 종교적 열정으로 가득 찼던 올림픽 경기는 지금처럼 4년에 한번씩 닷새 동안 열렸다. 올림픽 첫날, 모든 선수들은 정당한 경기를 할 것을 서약하고 제우스의 제단에서 100마리의 소를 제물로 삼아 제사를 지냈다. 당시 올림픽 경기의 규모도 엄청났는데, 고대 경기장에는 최소한 4만명의 관객이 경기를 관전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마지막 날에는 제우스 신전 옆에서 자란 성스러운 올리브나무에 소년이 올라가서 황금칼로 자른 올리브가지로 관을 만들어 우승자에게 수여하는 행사가 벌어졌다. 선수들의 부정행위는 신에 대한 모독으로 다스려졌다. 부정을 저지른 선수에게는 상당한 양의 벌금을 부과하고 이 벌금으로 그 선수의 상을 세워둠으로써 다른 선수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문화 올림픽의 원조도 그리스

사진/ 복원된 고대 올림피아의 모습. 한가운데 서 있는 거대한 신전이 제우스 신전이다.
현재 올림픽대회 기간에 곁가지로 열리는 ‘문화 올림픽’이라는 것도 사실은 고대올림픽에서 따온 것이다. 당시 올림픽에는 언제나 시인과 역사가, 철학자들이 대거 참석하여 대회 중 시를 낭송하거나 자신의 역사기록을 낭독하거나 대중들에게 철학강의를 하면서 올림픽의 내용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었다. 기원전 444년에 열린 올림픽 중에 있었던 일은 유명하다. 당시 유명한 역사가인 헤로도투스가 자신이 직접 쓴 역사책에서 발췌한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그리스가 승리한 대목을 읽어 내려가자 많은 관중들의 감정이 일시에 폭발하면서 울음바다를 이뤘다. 이때 관중들 중에는 어린 투키디데스도 있었는데 이날의 감명으로 인해 나중에 위대한 역사학자가 됐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고대 올림픽 경기에서 우승자들에게 주어진 것은 돈이나 금이 아니라 야생 올리브가지로 만든 관이었지만 고향에서의 대우는 만만찮았다. 올림픽 경기 우승자들에게는 평생 식사가 무료로 제공되었으며 공연이 열리는 극장에서는 언제나 최상석이 배정됐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석상을 올림피아의 성스러운 신전터인 알티스에 세울 수 있는 영광을 안았다. 이들 석상들에 새겨진 올림픽 영웅들의 얘기는 지금도 생생하게 전해진다. 고대 올림픽 경기에는 농부나 목동들뿐 아니라 많은 왕들도 선수로 직접 나섰다.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필립 왕도 전차경기에 출전하여 올림픽의 영웅이 되었으며 올림피아에 자신의 기념관을 남기기도 했다.

그리스가 로마의 식민지가 된 뒤에도 올림픽 경기는 계속됐으나 그 정신은 조금씩 변질되기 시작했다. 폭군으로 미움을 받은 네로 황제는 자신의 이름을 드높이기 위해 올림피아의 문화제에서 ‘돼지 멱따는 소리’로 노래해 사람들의 불평을 샀지만 어쩔 수 없이 최고의 가수상을 줘야만 했다. 이전에는 왕들도 정정당당하게 선수의 한 사람으로 출전하여 올림피아 신들의 제전임을 과시했으나 그리스와는 종교가 다르고 제국주의 정책으로 다른 나라를 끊임없이 침략했던 로마제국이 올림픽 경기를 좌지우지하면서부터 올림픽의 영광은 사라져갔다. 결국에는 394년에 비잔틴 황제인 테오도시오스에 의해 비기독교 행사라는 선고를 받고 폐지된다.

고대 올림픽 경기는 도시국가로 나뉜 그리스 전체를 제우스에 대한 종교적 열정으로 묶을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리스인들의 종교적 열정은 지금도 올림피아 곳곳에 널려 있는 돌덩이들 속에서 숨쉬고 있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거대한 제우스 신전을 짓고 그 안에 고대시대의 7대 불가사의의 하나라 일컬어지는 12m 높이의 거대한 제우스상을 조각하여 왕좌에 앉혔던 고대인의 신앙심을 지금의 사람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돌무덤과 신전기둥들만 남아 있는 폐허 같은 이곳 올림피아의 역사적 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그리스 신화가 나올 만큼 이곳의 역사는 오래다. 신들의 신인 제우스가 그리스의 신으로 이곳에 자리잡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흘렀다.

제우스가 신들의 신이 되기까지

아주 오랜 옛날, 사람들은 땅(기)과 하늘(우라노스)을 섬겼다. 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는 기와 우라노스의 막내아들인 크로노스를 섬기기 시작했다. 아버지 우라노스로부터 왕권을 찬탈한 크로노스는 기와 우라노스로부터 저주와 같은 계시를 듣는다. “태어날 아들 중 하나가 왕이 될 것”이라는 계시는 크로노스를 신경쇠약으로 몰아넣었고 나중에는 태어나는 아기마다 차례차례 삼켜버리게 된다. 화가 난 크로노스의 아내 레아는 임신한 몸으로 크리티섬으로 몰래 가서 아기를 낳고 이 아기를 딕티산의 동굴에 숨긴다. 요정들은 ‘아말티아’라는 염소의 우유를 아기에게 먹이고 아기가 울면 창과 방패를 두드려 크로노스가 아기의 울음소리를 듣지 못하게 만든다. 해산한 사실을 알고 있던 크로노스에게 레아는 보자기에 싼 돌을 주고 이것은 크로노스의 뱃속으로 들어간다.

완전히 자란 제우스는 그의 첫 번째 부인이 될 메티스에게 크로노스에 대항하기 위해 도움을 요청한다. 메티스는 크로노스에게 약을 주는데 이 약을 먹은 크로노스는 삼켰던 돌부터 아기들을 차례대로 토해낸다. 크로노스의 뱃속에서 나온 포시돈과 아디스는 제우스와 함께 크로노스를 몰아낸다. 물론 이 과정에서 크로노스를 지원하는 티타누스(거인)들의 저항도 만만찮았지만 포시돈의 도움이 큰 힘이 되었다. 제우스는 전후 포상으로 포시돈에게 바다의 통치권을 주고 아디스에게는 저승세계를 넘겨준다. 이 이야기는 비록 제우스가 신들의 신일지라도 호화롭고 안락한 삶을 누리기보다는 끊임없는 도전과 모험을 겪으면서 끝내는 승리한다는 고대인들의 간절한 삶의 의지를 반영한다.

아테네=글·사진 하영식 전문위원 youngsig@otenet.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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