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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신은 유로화에 비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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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2-1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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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의 재발견(4)

신에 대한 모독 ‘이브리스’를 저지른 인간에게 잔인한 저주를 내린 그리스 신들

사진/ 고대 올림피아 유적지에 있는 에스플라나(사람들이 입장하는 길)의 모습. 올림피아 벌판이 고대 사람들에게는 가장 성스러운 장소였고, 올림픽은 단지 종교적 행사의 하나였다.

그리스 신화에는 신들이 인간들에게 복수하는 경우가 종종 나온다. 이유는 ‘이브리스’(hibris) 때문이다. 이브리스는 대부분 ‘신에 대한 모욕’으로 해석되지만 넓은 뜻으로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른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현대 그리스어에서 이브리스는 ‘신과 인간에 대한 모욕’으로 그 의미가 넓어진다. 그리스의 신들은 사랑을 위해 목숨을 거는 인간의 용기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는 낭만적인 성격을 가졌지만 자신들을 모욕하는 인간에게는 잔인할 정도의 저주와 보복을 내렸다.

벼락 맞은 의술의 신


구약성서에서도 이브리스의 예를 찾아볼 수 있는데 바로 바벨탑 사건이다. 신처럼 높아지기를 원한 인간들은 하늘 끝까지 바벨탑을 쌓았고, 이는 곧 신에 대한 도전이었다. 구약성서의 신과는 달리 그리스의 신들은 더욱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줬지만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과는 뚜렷한 선을 그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이브리스와 관련된 얘기들은 아폴론과 관련된 신화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제우스와의 사이에서 쌍둥이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를 낳은 리토는 자녀들을 데리고 끝없는 여행을 하고 있었다. 하루는 길에서 자식을 14명이나 둔 여인을 만났는데 이 여인은 자신이 신으로부터 더 많은 축복을 받아 14명이나 되는 자식들을 가졌고, 이들이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보다 낫다면서 리토에게 모욕을 주었다. 비록 어린이였지만 신인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를 모욕한 것이었다. 12명의 자식들은 즉시 아르테미스의 활에 죽고 2명만 남았다. 이를 본 여인은 슬픔에 못 이겨 끝내 돌기둥으로 변하고 만다.

사진/ 아폴론의 아들이자 의술의 신인 아스클리피오스. 그는 제우스의 벼락을 맞고 죽었다.
아폴론의 아기를 가진 공주 크로니스는 임신 중임에도 아폴론 몰래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된다. 우연히 둘의 결혼식장면을 보게 된 까마귀가 아폴론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었다.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아폴론은 아무 죄도 없는 까마귀의 색깔을 흰색에서 검은색으로 바꾸는 저주를 내린다. 크로니스 공주는 이브리스를 범했고 신들의 징벌은 화형이었다. 그러나 아폴론은 불 속에서 죽어가는 크로니스의 뱃속에서 자신의 아들인 아기를 구해낸다. 이 아기가 나중에 의술의 신이 되는 아스클리피오스다. 아폴론의 부탁을 받은 켄다브로스(반인반마)인 키리온이 아기를 보살핀다. 아스클리피오스는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진 키리온 밑에서 의학과 약학을 배워 나중에 의술의 신이 된다.

신화에 따르면 그에 의해 봉사가 눈을 뜨고 앉은뱅이가 걷고 문둥이의 피부가 말끔히 낫는 기적이 일어났으며 심지어는 죽은 사람이 살아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개발한 수혈방법으로 죽은 사람까지 다시 살려놓는 일을 한된다. 이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 사람들이 병을 고치기 위해 모여들었고 나중에는 그를 신으로까지 떠받들었다. 하지만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는 의료행위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일이었다. 이 때문에 그도 이브리스를 범해 죽은 어머니 크로니스 공주와 같은 전철을 밟게 된다.

아스클리피오스로 인해 저승으로 가는 사람들의 수가 계속 줄어들자 저승세계 신인 아디스가 올림포스산의 신들에게 심한 불평을 하게 된다. 심지어 아스클리피오스는 제우스가 징벌로 직접 벼락을 내리쳐서 죽은 사람까지 살려놓았다. 마침내 제우스의 화가 폭발하고 끝내는 제우스가 내린 벼락에 맞아 죽는다. 이때는 그의 아버지인 아폴론조차 눈앞에서 죽어가는 아들을 구하지 못하였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불에 타 죽어가던 아기를 구해낸 아폴론이었지만 아버지인 제우스를 배신하면서까지 자신의 자식을 구할 수는 없었다.

“날씨까지 유럽화돼버렸다”

지금은 시중에서 유통되지 않는 그리스 동전(드라크마)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리스 신화를 창조한 오미로스(호머)와 신화를 깊이 믿은 알렉산더 대왕의 초상이 각인돼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스의 드라크마화는 인류 역사상 존재해온 가장 오래된 화폐 가운데 하나였지만 그리스는 지난해부터 드라크마화를 포기하고 유로화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후로 지금까지 그리스는 이상기후에 시달려왔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신기하다.

사진/ 제우스를 묘사한 조각품. 천둥과 번개를 통해 자신의 존재와 힘을 과시한 제우스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이 올림피아라는 성지를 탄생시켰다.
신의 축복으로 여긴 지중해의 맑은 하늘은 사라지고 대신 어두운 북유럽의 하늘처럼 시커먼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는 날이 많아졌다. 하루 종일 비가 그칠 줄 모르고 내리고 다음 날까지 계속되는 일이 되풀이되기도 한다. 이에 많은 사람들은 “날씨까지 유럽화돼버렸다”고 농담처럼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말 속에는 그리스인들의 드라크마를 버린 죄의식과 더불어 어쩔 수 없이 유로화를 받아들인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하는 심정이 농축돼 있다. 그리스인들은 비를 싫어한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많은 상점들은 굳게 닫히고 거리의 사람들은 총총걸음으로 서둘러 집으로 돌아간다. 물론 도시에서는 크게 표가 나지 않지만 작은 섬에서는 보슬비 정도만 내려도 마치 휴일처럼 거리가 텅텅 빈다.

올림피아로 떠나는 날 아테네는 비가 끊임없이 내렸다. 비가 내리면 모두 집으로 향하는 그리스인들과는 반대로 나는 집을 나와 올림피아로 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예상대로 역사에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여신 디미트라의 신전이 있는 엘레프시스역을 지나고 다시 얼마 뒤 아득히 내려다보이는 거대한 코린토스 운하 위를 지나면서 기차는 그리스의 신화 속으로 더욱 깊이 달려가고 있었다.

그리스는 중부지역이 험한 산악지대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남서쪽으로 내려올수록 지형은 완만해지고 거대한 평야가 펼쳐진다. 열차는 올림픽 벌판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도시 피르고스에 도착했다. 이곳은 그리스인들이 터키의 식민지배에서 해방되자마자 근대올림픽의 부활을 꿈꾸면서 개최지로 결정했던 곳이다. 프랑스의 쿠베르탱이 고대올림픽의 부활을 최초로 제안했다고 역사교과서는 소개하고 있지만 사실 올림픽의 부활은 그리스인들에 의해서였다.

1833년 시인인 알렉산드로스 수초스가 최초로 <일리오스>의 지면을 빌려 고대올림픽의 부활을 주장하는 시를 실었다. 이후 그의 시에 감명을 받은 자파스가 그리스 정부에 이를 제안했고 1859년도에는 귀족과 평민을 망라한 모든 그리스인들이 함께하는 최초의 올림픽이 아테네에서 열렸다. 이를 기화로 부활된 그리스 올림픽은 국제올림픽대회로 바뀔 때까지 지속됐다. 물론 당시의 올림픽은 그리스인들만의 잔치라는 약점이 있었으나 서구열강들은 그리스인들의 근대올림픽 부활 노력을 완전히 무시하고 프랑스의 쿠베르탱을 ‘근대올림픽의 아버지’로 조작했다. 그리스의 유일무이한 권리라고 할 수 있는 올림픽 개최권마저 빼앗아갔다. 현재 전 세계의 도시들에서 개최되고 있는 올림픽대회는 고대올림픽 경기의 정신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로비와 돈이 판치는 정치적이고 상업적인 대회로 타락해버렸다.

올림픽의 아버지가 쿠베르탱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4년에 한번 열리는 올림픽 때문에 올림피아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은 올림피아 벌판이 고대인들에게는 가장 성스러운 장소였고 올림픽은 단지 종교적 행사의 하나였다. 그리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왜 하필이면 이 허허벌판인가”에 대한 의문을 계속 던지고 있다. 거대하고 신비스러운 올림포스산에서 신들이 판을 벌였다는 얘기는 예부터 명산을 숭배해온 사람들에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허허벌판을 성지로 삼는 경우는 아주 드문 예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의문은 올림피아 벌판에 발을 딛고 서면서 풀렸다. 하늘의 오묘한 움직임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그리스 지역과는 달리 이곳은 천둥과 번개가 유달리 강할 뿐 아니라 횟수도 빈번하다는 것이 올림피아에 사는 지역주민들의 얘기다. 천둥과 번개를 통해 자신의 존재와 힘을 과시한 제우스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이 올림피아라는 성지를 탄생시켰다.

아테네=글·사진 하영식 전문위원 yahiya@otenet.gr

♣다음호에 올림피아와 제우스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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