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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정치판에 뛰어든 ‘플레이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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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1-2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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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용 비행기에 의원들 끌고다니며 ‘술과 여자’, ‘돈과 정치’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비자이 말랴

프라풀 비드와이(Praful Bidwai)/ 전 <타임 오브 인디아> 편집장·핵 전문 칼럼니스트
회기 중인 인도 의회에서는 매주 목요일이면 어김없이 일부 의원들이 비자이 말랴(Vijay Mallya·47)를 만나고자 줄지어 선다. 방가로어나 봄베이로 주말여행을 떠나는 호화로운 보잉 727을 공짜로 얻어 타겠다는 심산에서다. 의원들은 사업가와 패션모델들이 모이는 이 ‘분방한’ 주말휴가에 끼어들고픈 욕망으로 정부가 운영하는 인디안에어라인의 공무용 공짜티켓 같은 건 안중에도 없다. 말랴는 이렇게, 오랫동안 엄숙함을 자랑해온 인도 정치문화에 ‘야함’과 ‘천박함’이라는 새로운 유행을 소개했다.

주조사업과 병원사업, 병 주고 약주고…

사업 경험이 없는 말랴는 28살 때 유나이티드 주조 창업자인 아버지 비탈이 죽자 갑자기 거부로 등장했다. 말랴는 인도 맥주시장 35%를 장악한 채 세계 30여개국으로 팔려나가는 킹피셔(Kingfisher) 맥주를 ‘기함’으로 삼아 한동안 다국적기업들과 ‘주전’을 벌이기도 했다.


“빠른 것들은 모두 내게 이익을 안겨준다.” 모터 스포츠에서 정력적으로 이익을 챙기고, 또 최고 주가를 올리는 경주마를 보유한 말랴가 즐겨써온 말처럼, 그는 현재 정보·자동차·항공·레저 산업으로 숨가쁘게 사업을 넓혀나가고 있다. 자신이 판 술로 망친 국민건강을 염려한 듯 병원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이면서.

그러고는 15억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재산을 발판삼아 현란한 스타일, 야한 매력, 번지르르한 교재술을 완벽하게 조화시킨 사교계의 화신으로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뉴에이지’ 운동을 내건 이들을 장려하는 일로 그럴듯하게 자신을 포장하는 일도 빼먹지 않았다.

사실 말랴는 돈만 있었지, 큰 사업가는 아니다. 타타(Tata)나 비를라(Birla) 같은 거대한 인도 재벌들에 비하면 말랴의 유나이티드주조는 그저 작은 기업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말랴가 눈길을 끄는 까닭은 일반적으로 정치판을 기웃거리지 않은 인도 재벌들의 전통을 깨면서부터다. 그동안 일부 사업가들이 정당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재벌들은 정치인들이나 관료들에게 영향력을 끼쳐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입안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을 즐겨왔을 뿐이다.

최근 말랴를 비롯해 몇몇 사업가들이 정치판에 뛰어들면서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내는 셈인데, 문제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제한된 의제를 지녔고, 한편으로는 정치를 자신들의 신변안전 장치쯤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주로 세금 포탈이나 돈세탁 같은 범죄행위 고발을 면하기 위해서다.

사진/ 말랴는 오랫동안 엄숙함을 자랑해온 인도 정치문화에 ‘야함’과 ‘천박함’이라는 새로운 유행을 소개했다.
실제로 말랴의 사무실은 돈세탁 혐의를 받아 자주 급습당하곤 했다. 바지파이 총리 연립내각에 장관 1명을 입각시킨 ‘땅콩정당’ 자나타 달(United)의 의원으로 정치판에 입문한 말랴는 지난 10달 동안 정치적 제휴 말고는 의원으로서 아무런 실적을 기록하지 못했다. “의회는 바깥에서는 들을 수 없는 사안들을 또렷이 들을 수 있는 광장”이라는 겉치레 말만 늘어놓았을 뿐이다.

‘플레이보이’로 ‘술왕’이라고 하는 사업가 말랴 의원은 ‘술과 여자’, ‘돈과 정치’라는 남근주의자들 사이에 화제를 몰고다니며 빈곤에 허덕이는 인도 사회를 환상처럼 왜곡시켜왔다. 최근 호화판 보잉727기 구입건으로 유나이티드 자회사의 회계감사가 사퇴해 사회적 말썽을 빚은 일은 말랴라는 인물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준 본보기였다.

보잉727기 구입으로 회계감사 사퇴

말랴가 지닌 밉살스러움 가운데 또 다른 하나는, 야하게 장식하고 귀가 째질 듯한 노래를 틀어대는 술집 문화를 퍼뜨리는 일로 자신의 고향인 방갈로어에 공헌했다는 사실이다. 사치스러운 쇼핑센터를 드나드는 일로 신분을 확인하는 대도시 소비층들은 다시 이런 술집에서 한잔 기울이면서 인도에서 5% 안에 든다는 ‘품질보증서’를 스스로 발급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말랴라는 사업가와 말랴라는 정치가는 무제한으로 소비풍조를 퍼뜨리며 사업과 정치를 혼란스럽게 뒤섞고 있다.

빈곤과 불평등이 확산되고 있는 인도에서 말랴와 같은 사업가가 공공정책을 만들어내는 공직에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불길한 미래를 예감하게 한다. 선혈이 낭자한 시민사회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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