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의 재발견(3)
아폴론의 고향 델피에서 듣는 예언의 목소리… 태양신도 사랑 앞에선 어쩔 수 없었다
신들의 신 제우스가 하루는 두 마리 독수리에게 세계의 중심을 찾으라는 명령을 내린 뒤 각자 다른 방향으로 날려보냈다. 각각 동과 서로 날아가서 마침내 세계의 중심을 찾은 두 독수리는 정확하게 같은 지점에서 만난다. 바로 이곳이 델피다. ‘델피, 세계의 배꼽’이라는 유네스코의 표지판이 고대도시 델피의 입구에 서서 방문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예언을 오해한 크리소스왕
델피는 첩첩산중의 산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맞은편 산허리에는 화창한 날씨에도 구름이 둘러처져 있어 마치 한폭의 신선도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천길 낭떠러지 밑에는 산꼭대기에서 흘러내려온 시냇물이 강이 되어 바다로 유유히 흘러가고, 뒤를 돌아보면 회색빛의 높은 바위산이 눈이 아찔할 정도의 위용을 드러낸다. 이 산의 허리에 아폴론의 도시인 델피가 자리잡고 있다. 지금은 넓은 도로가 닦여 있지만 수천년 전에는 단 몇 마디의 예언을 듣기 위해 몇만리의 험한 산길을 따라 이곳까지 왔을 것이다. 25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아폴론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신전터와 신전의 기둥들, 원형극장, 곳곳에 흩어진 건물의 돌들은 옛날의 화려한 영화를 증언하고 있다. 처음에는 땅의 신이 계시를 내리고 나중에는 아폴론신이 계시를 내리던 신성한 곳, 델피는 기원전 16세기부터 약 2천년 동안 그 명성을 떨쳤다. 당시 정확한 예언으로 명성을 날렸던 델피에는 그리스 일대의 왕들이나 재상, 종교인들이 몰려들었고, 심지어는 유럽과 중동 일대의 왕들과 사신들까지 찾아왔다. 이들은 국가의 흥망이 걸린 전쟁이나 도시의 건설 문제 등 중대한 사안이 있을 때면 먼저 이곳에 찾아와 예언을 들은 다음 계획을 실행했다. 세계 정복에 나선 알렉산더 대왕이 델피에서 계시를 받았다는 얘기도 있다. 델피에 도착한 방문객들은 예언을 듣기 전 먼저 아폴론 신전에 제사를 드리고 카스탈리아샘에 가서 자신이 지은 죄만큼 몸을 씻는다. 가벼운 죄를 지은 사람은 손만 씻고,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몸 전체를 다 씻어야 한다. 준비가 된 방문객은 차례가 돌아오면 자신이 원하는 질문을 적어 제사장에게 전달하고 답을 기다린다. 예언을 전달하던 아폴론의 여제사장 ‘피티아’는 삼발이 청동제단에 앉아서 한 손에 성수가 담긴 그릇을 들고 다른 한 손에 계수나무잎을 들고서 계수나무잎을 계속 씹으며 예언을 했다고 전해진다. 청동제단은 땅이 갈라지면서 연기가 올라오던 곳에 세워졌는데, 전설에 의하면 아폴론이 죽인 용의 시체가 부패하면서 나오는 연기라고 한다. 연기를 마시고 계수나무잎을 씹던 여제사장은 비몽사몽의 상태에서 시적인 표현으로 예언을 하고 이를 제사장이 번역해서 전달했다. 리디아의 크리소스왕과 델피에 얽힌 얘기는 지금도 많이 언급된다. 국력이 강성해진 리디아의 크리소스왕은 페르시아를 침공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예언을 듣기 위해 델피로 찾아간다. 그는 300여 마리의 소와 117개의 황금벽돌을 제물로 바치며 자신의 계획을 전달한다. 이에 피티아는 “크리소스는 큰 제국을 멸망시킬 것이다”는 예언을 한다. 이 말에 힘을 얻은 크리소스는 페르시아를 침공하지만 도리어 패배해 큰 고통을 당한다. 나중에는 페르시아의 침공을 당해 붙잡힌다. 예언만 믿고 침공을 실행한 크리소스왕은 분을 삭이지 못해 델피에 “왜 거짓말했느냐”고 묻는다. 델피에서 돌아온 대답은 “크리소스는 큰 제국을 멸망시킬 것인데, 큰 제국은 바로 리디아”였다. 계수나무 끌어안고 통곡하다
아테네가 여신 아티나의 고향인 것처럼 델피는 아폴론의 고향이다. 아폴론은 태어나기 전부터 델피와 인연을 맺었다. 리토가 제우스의 아이를 갖자, 제우스의 아내인 이라는 용 ‘피톤’에게 그녀를 없애라는 명령을 내린다. 피톤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리토는 세계 방방곡곡을 숨어다니다 마침내 바위섬인 딜로스까지 오게 된다. 리토를 보호하기로 작정한 포시돈은 높은 파도를 보내어 공중을 순찰 중이던 피톤의 눈에서 딜로스섬을 가린다. 거기서 리토는 쌍둥이를 낳는데, 첫째가 아르테미스, 둘째가 아폴론이었다. 아르테미스는 사냥의 여신, 달의 여신으로, 아폴론은 태양의 신, 음악과 계시의 신, 치료의 신으로 알려져 있다. 아폴론은 태어난 지 나흘째 되는 날 돌고래를 타고 피톤이 사는 델피로 건너가서 활을 쏴 피톤을 죽인다. 당시 용은 개울물과 강물을 흐리고 산림을 훼손하고 많은 사람들을 해쳐서 원성이 자자했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델피는 예언으로 유명했는데, 그 예언의 근원은 땅(기)이었으며 델피의 보호자는 피톤이었다. 피톤이 죽은 뒤 델피의 주인은 아폴론으로 바뀌었다. 아폴론이 예언의 신으로 불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피톤을 활로 쏴 죽인 아폴론은 자신의 활솜씨에 의기양양한 상태였다. 그러나 전지전능하다는 신들도 에로스의 화살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의술의 신인 아폴론조차 사랑의 병은 자신의 힘으로 고칠 수 없었다. 사랑의 신 에로스는 두 가지 화살을 갖고 있다. 한 가지는 날카로운 금화살로 이에 맞으면 사랑에 완전히 눈이 멀고, 다른 하나는 가죽에 싸인 아주 무딘 화살로 사랑을 혐오하게 만든다. 유사 이래로 사랑의 신 에로스는 이 두 가지 화살로 신들이나 인간들을 어떤 때는 행복의 순간으로, 어떤 때는 절망적인 순간으로 몰아넣었다.
우주선 이름이 왜 아폴로였을까
활을 든 에로스를 본 아폴론이 별로 달갑지 않게 대하자 에로스는 “당신은 그 활로 무엇이든 쏠 수 있지만 난 당신을 쏠 수 있다”고 말하며 아폴론에게 금화살을, 델피의 피티아(여제사장)인 다프니에게 무딘 화살을 쏜다. 다프니를 본 아폴론은 금방 사랑에 빠지지만 사랑혐오증에 걸린 다프니는 두려움에 떨면서 도망다닌다. 아폴론의 손에 거의 잡힐 순간까지 가게 되자 다프니는 자신의 아버지인 강의 신에게 도움을 호소하고, 그의 도움으로 땅이 열리면서 계수나무로 변한다. 다리는 뿌리로 몸은 나무줄기로 팔과 머리는 나뭇가지와 잎으로 변하자, 쫓아가던 아폴론은 나무가 된 다프니를 끌어안고 통곡한다. 이때부터 계수나무는 아폴론의 성스러운 나무가 되었다.
흥미롭게도 그리스의 다른 지역에서는 계수나무를 찾아보기 힘든 반면 델피 일대에는 곳곳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사랑의 화살을 맞은 아폴론은 많은 여인을 사랑하지만 몇 차례 실연의 아픔도 맛본다. 아폴론이 사랑에 빠진 또 다른 여인 마르피싸도 아폴론을 거부했다. 마르피싸는 인간으로 언젠가는 죽을 운명인데, 육체가 늙고 아름다움이 소멸할 때가 오면 영생불사의 젊은 신인 아폴론이 떠나갈 것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아폴론 앞에서 이다스를 택하는 용기를 보였다. 아폴론의 구애에 퇴짜를 놓은 또 다른 여인은 카산드라였는데, 그는 트로이의 공주이자 당대의 예언가였다. 아폴론과의 사랑을 조건으로 예언의 능력을 받은 카산드라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에 아폴론은 예언의 능력은 남겨두고 설득의 능력을 빼앗아버렸다. 트로이전쟁 중 카산드라가 트로이 사람들에게 트로이 목마를 조심할 것을 강력하게 경고했지만 누구도 귀기울이지 않았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델피의 예언이 살아 있을 당시 아폴론은 그리스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신이었다. 그의 신전은 그리스 곳곳에 세워졌으며 그리스 사람들과 가장 거리감이 없었다. 기독교가 유럽을 지배하기 전 아폴론은 태양신으로 그리스뿐만 아니라 로마제국 일대에서도 가장 많은 추종자를 확보하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아폴론을 믿는 종교가 비밀스럽게 존재해오고 있을 정도다. 달나라를 여행한 우주선의 이름도 ‘아폴로’였다. 아마 달의 여신인 아르테미스와 가장 사이가 좋았던 쌍둥이 남동생인 아폴론(영어식 표기는 아폴로)을 우주선의 이름으로 지어 무사한 달 여행을 기원하기 위한 듯하다. 과학의 최첨단에 서 있다는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까지 그리스 신화의 신들과 조화를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델피=글·사진 하영식 전문위원 youngsig@otenet.gr

사진/ 델피가 있는 산에 구름 사이로 나타난 햇살이 비치고 있다.
델피는 첩첩산중의 산중턱에 위치하고 있다. 맞은편 산허리에는 화창한 날씨에도 구름이 둘러처져 있어 마치 한폭의 신선도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천길 낭떠러지 밑에는 산꼭대기에서 흘러내려온 시냇물이 강이 되어 바다로 유유히 흘러가고, 뒤를 돌아보면 회색빛의 높은 바위산이 눈이 아찔할 정도의 위용을 드러낸다. 이 산의 허리에 아폴론의 도시인 델피가 자리잡고 있다. 지금은 넓은 도로가 닦여 있지만 수천년 전에는 단 몇 마디의 예언을 듣기 위해 몇만리의 험한 산길을 따라 이곳까지 왔을 것이다. 25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아폴론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신전터와 신전의 기둥들, 원형극장, 곳곳에 흩어진 건물의 돌들은 옛날의 화려한 영화를 증언하고 있다. 처음에는 땅의 신이 계시를 내리고 나중에는 아폴론신이 계시를 내리던 신성한 곳, 델피는 기원전 16세기부터 약 2천년 동안 그 명성을 떨쳤다. 당시 정확한 예언으로 명성을 날렸던 델피에는 그리스 일대의 왕들이나 재상, 종교인들이 몰려들었고, 심지어는 유럽과 중동 일대의 왕들과 사신들까지 찾아왔다. 이들은 국가의 흥망이 걸린 전쟁이나 도시의 건설 문제 등 중대한 사안이 있을 때면 먼저 이곳에 찾아와 예언을 들은 다음 계획을 실행했다. 세계 정복에 나선 알렉산더 대왕이 델피에서 계시를 받았다는 얘기도 있다. 델피에 도착한 방문객들은 예언을 듣기 전 먼저 아폴론 신전에 제사를 드리고 카스탈리아샘에 가서 자신이 지은 죄만큼 몸을 씻는다. 가벼운 죄를 지은 사람은 손만 씻고, 살인을 저지른 사람은 몸 전체를 다 씻어야 한다. 준비가 된 방문객은 차례가 돌아오면 자신이 원하는 질문을 적어 제사장에게 전달하고 답을 기다린다. 예언을 전달하던 아폴론의 여제사장 ‘피티아’는 삼발이 청동제단에 앉아서 한 손에 성수가 담긴 그릇을 들고 다른 한 손에 계수나무잎을 들고서 계수나무잎을 계속 씹으며 예언을 했다고 전해진다. 청동제단은 땅이 갈라지면서 연기가 올라오던 곳에 세워졌는데, 전설에 의하면 아폴론이 죽인 용의 시체가 부패하면서 나오는 연기라고 한다. 연기를 마시고 계수나무잎을 씹던 여제사장은 비몽사몽의 상태에서 시적인 표현으로 예언을 하고 이를 제사장이 번역해서 전달했다. 리디아의 크리소스왕과 델피에 얽힌 얘기는 지금도 많이 언급된다. 국력이 강성해진 리디아의 크리소스왕은 페르시아를 침공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예언을 듣기 위해 델피로 찾아간다. 그는 300여 마리의 소와 117개의 황금벽돌을 제물로 바치며 자신의 계획을 전달한다. 이에 피티아는 “크리소스는 큰 제국을 멸망시킬 것이다”는 예언을 한다. 이 말에 힘을 얻은 크리소스는 페르시아를 침공하지만 도리어 패배해 큰 고통을 당한다. 나중에는 페르시아의 침공을 당해 붙잡힌다. 예언만 믿고 침공을 실행한 크리소스왕은 분을 삭이지 못해 델피에 “왜 거짓말했느냐”고 묻는다. 델피에서 돌아온 대답은 “크리소스는 큰 제국을 멸망시킬 것인데, 큰 제국은 바로 리디아”였다. 계수나무 끌어안고 통곡하다

사진/ 아폴론과 요정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 아폴론은 그리스인들과 가장 가까운 신이었다.

사진/ 아폴론 신전터에 남은 기둥들. 옛날의 화려한 영화를 증언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