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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블랙 타이쿤, 블랙 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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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1-2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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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금과 특혜로 경쟁 없는 온실에서 자란 재벌의 대표선수 리암시오룡과 제임스 리아디

아흐마드 타우픽(Ahmad Taufik)/ 시사주간지 <템포> 기자
“인도네시아는 참 부자나라다!”

이렇게 말해놓고 비웃을 독자들을 연상해본다. 그러나 이건 ‘믿거나 말거나’가 아니다.

적어도 사업가들에게는 그렇다는 말이다. 사업한다는 자들이 나랏돈을 얼마든지 떼먹을 수 있을 만큼 돈이 지천에 깔린 나라가 인도네시아다. 시민들이야 굶어죽든 말든.

대통령이 바뀌어도 영원히 빛나는 이유


‘블랙 타이쿤’이라는 자들이 있으니, 리암시오룡과 그의 아들 안토니 사림을 비롯해 10여명에 이르는 재벌들이 그들이다. 말하자면, 사업한답시고 은행돈 빌려 떼먹고 달아난 자들이다. 경제위기 속에서 싱가포르를 비롯한 해외로 돈을 빼돌린 블랙타이쿤을 놓고 시민들 원성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

그런데도 메가와티 정부가 이들을 모두 용서하고 부채까지 탕감해주었으니 얼마나 풍족한 나라인가! 그렇게 날려버린 돈이 자그마치 정부예산 75%에 이르는 123조루피(약 137억달러)를 웃돈다. 물론 이 수치는 최소로 낮춰 잡은 액수다.

인도네시아 재벌들은 정부 보조금과 특혜로 경쟁 없는 온실에서 자랐다. 대표적인 인물이 블랙타이쿤 가운데 한명인 리암시오룡(수도노 사림) 같은 자다. 리암시오룡은 수하르토 32년 독재에 빌붙어 인도네시아 최고 갑부 자리에 올랐다. 또 하나, 제임스 리아디를 빼놓을 수 없다. 립포그룹(Lippo) 창업자인 목타르 리아디는 수하르토와 깊은 관계를 맺지 않았지만, 그 아들 제임스 리아디는 수하르토가 쫓겨나기 5년 전부터 수하르토의 딸 투툿(시티 아르티 루크마나)과 매우 가깝게 지냈다. 그러는 가운데 수하르토가 사임했다. 이때부터 말 그대로 ‘제임스의 별’은 빛나기 시작했다. 목타르와 제임스 리아디 부자는 다음날 바로 하비비 신임 대통령 집으로 찾아갔다. 그리고 안정적인 사업을 위해 지원을 요청했다.

물론 제임스 리아디는 하비비에게 8억3600만루피라는 돈을 풀었다. 권력과 금력의 공생관계 속에서 제임스와 하비비는 영리하게 서로 생존해법을 찾아낸 셈이었다. 정치적 기반이 취약해 돈줄로 사람을 끌어야 했던 하비비와 립포은행 재무구조개선에 3조7천억루피(약 4억달러)의 정부 지원금이 필요했던 제임스는 서로에게 위안을 주는 동지가 되었다.

하비비 측근에게 돈을 건넨 제임스는 중국 특별대사라는 직함까지 얻었다. 제임스는 그래도 뒤가 켕겼는지 차기 대권을 노리는 아미엔 라이스에게 4300만루피, 또 군 최고실권자 위란토 장군에게 5600만루피를 건네주며 이른바 ‘보험’을 들었다.

사진/ 제임스 리아디(왼쪽)와 수하르코의 딸 투툿(오른쪽). 리아디는 정치적 혼란기에도 늘 꿋꿋하게 살아남았다.
하비비가 물러나자, 제임스는 민첩하게 압둘라만 와히드(전 대통령)에게 1억200만루피 그리고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현 대통령)쪽에는 무려 1조루피를 지원하고 나섰다. 그 결과 제임스는 안전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많은 재벌들이 위기감을 느껴 돈을 해외로 빼돌리며 몸을 사린 것과는 달리, 제임스는 4년 동안 대통령이 4번씩이나 바뀌는 정치혼란 속에서도 계속 성장해왔다.

제임스와 클린턴의 밀착

사실 제임스 리아디와 그의 사업은 인도네시아 국내보다 중국·미국·오스트레일리아를 비롯한 대양주에서 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 제임스가 1996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에게 불법선거자금을 지원해 국제 뉴스판을 크게 달군 적이 있었는데, 그 사건은 나라 안팎을 통틀어 정치권과 밀착해 사업을 벌이고 잇속을 챙기는 제임스식 사업방식을 잘 드러내준 좋은 본보기였다. 불법선거자금 기부사건으로 드러났지만, 실제로 제임스와 클린턴은 1970년대 말 아칸소 시절부터 친분을 맺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1980년대 아칸소에 살고 있는 제임스가 오던뱅크(Worthen) 사장으로서 당시 주지사인 클린턴과 여러 가지 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우정을 쌓았고, 힐러리는 오던뱅크 법률자문으로 일했으니 그 관계가 얼마나 깊었는지 상상하고도 남을 만하다.

어쨌든 불법선거자금 기부로 고발당한 립포그룹은 계열사끼리 주고받은 과도한 자금대출이 미국 은행법을 위반했는지를 놓고 정부 기관들로부터 조사받아왔다. 클린턴에게 100만달러를 불법기부한 제임스는 미국 법원으로부터 벌금형과 사회봉사형을 선고받았다.

인도네시아 경제는 끝없이 추락해가지만, 정치권력에 빌붙은 제임스 리아디와 그가 이끄는 립포그룹은 건재하다. 인도네시아 경제의 몰락은 그렇게 권력과 금력이라는 두개 바퀴를 단 썩은 마차가 시궁창을 향해 달려가면서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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