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그냥 돌아가게만 해다오”

445
등록 : 2003-01-29 00:00 수정 :

크게 작게

반국가단체 낙인찍혀 40여년간 고향에 가지 못한 한통련 의장 곽동의씨의 절절한 외침

사진/ “정작 해외에서 수십년간을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뛰어다닌 사람들은 고국땅도 밟지 말아라. 도대체 이게 말이나 됩니까.” 곽동의 의장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지난해 부산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미모의 북한 응원단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응원단도 모두 한국을 찾았지만, 유독 재일한국민주통일연합(한통련) 회원들만은 끝내 조국땅을 밟지 못했다. 재일 한국총영사관에 여행증명서 발급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본국(한국)에서 응답이 없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

“신나게 응원도 하고 싶었고, 고향땅도 보고 싶었고, 보듬어안고 뜨거운 동포애를 나눠보고 싶었다”는 곽동의 한통련 의장. “해외에 사는 자기 국민을 오지 못하게 막는 게 해야 할 일이냐”는 말로 그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의 피눈물로 이룬 민주화


한통련 사무실은 도쿄에서도 고서점이 많기로 유명한 간다(神田)에 위치해 있었다. 겨울비가 내렸지만 실내는 따뜻했다. 올해 일흔넷. 열아홉살에 일본에 온 곽 의장은 그러니까 올해로 일본 생활이 55년째가 되는 셈이다. 고향땅은 1961년 이래 지금까지 42년간 밟아보지 못했다.

현해탄만 넘으면 고향이지만 그가 고향땅을 밟지 못하는 이유는 한통련에 씌워진 이른바 반국가단체라는 천형 때문이다. 1978년 재일동포 유학생 김정사를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한민통·한통련의 전신)의 지령을 받은 간첩으로 조작하면서, 반국가단체가 된 한민통 관련 인사는 결코 고향땅을 밟을 수 없게 됐다.

“적장을 잡으려면 적장이 탄 말을 쏘라는 말이 있습니다. 박정희 독재정권이 당시 한민통 초대의장이던 김대중 선생을 육체적으로 말살하려다 안 되니까, 정치적으로 말살하기 위해 한민통을 반국가단체로 만들었다고 봅니다.” 1973년 한민통 결성식을 1주일 앞둔 상황에서 초대의장으로 내정된 김대중을 납치해 죽이려다 실패한 뒤, 유신 말기인 1978년 김대중을 언제든지 정치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한민통을 반국가단체로 만들었다는 얘기다.

“한통련이 그동안 한 일들을 한번 돌이켜보십시오. 유신헌법 선포와 함께 반유신 독재투쟁한 것, 김대중 납치사건을 널리 해외에 알리고 구명운동한 것, 광주항쟁 진실을 세계에 널리 알린 것. 그것밖에 더 있습니까. 그동안 민주화운동 한 사람들은 명예회복이다 뭐다 하며 야단을 떨면서 정작 해외에서 수십년간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뛰어다닌 사람들은 고국땅도 밟지 말아라. 도대체 이게 말이나 됩니까.” 반국가단체 얘기가 나오자 다소 언성이 높아졌는가 하는 순간 눈에 살짝 눈물이 잡혔다. 사실 그랬다. 1973년 8월 한민통이 결성되면서 해외에서 먼저 유신반대의 깃발을 올리자, 그해 10월2일 서울대에선 첫 유신반대 시위가 일어났다. 1978년 <전태일평전> 일본어판인 <불꽃이여 너를 감싸라> 출간과, 이를 영화화한 <어머니>는 일본 노동조합총평의회(총평)의 지원하에 일본 전역에서 700여 차례나 상영되었다.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 어느 하나 해외 민주화운동 단체의 음덕을 입지 않은 게 없을 정도다.

광주민주화운동만 해도 그렇다. 국내에선 숨도 못 쉬던 시절, 유럽의 민주인사들과 함께 광주항쟁 비디오를 만들고, 광주민중항쟁 1주년을 맞아서는 ‘한국민주화지원 긴급세계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오늘날 한국이 민주화되었다면 이는 분명 묵묵히 노력해온 해외 민주인사들의 피와 눈물의 결과임에 분명하다. 그들의 운동을 자양분으로 지금의 한국사회가 서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반국가단체라니. “만약 우리가 국내단체였다면 벌써 명예회복이 되었을 겁니다. 하지만 해외에 있다 보니 철저히 무시되고 있는 거죠. 하지만 언젠가는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했습니다. 그런데 한민통을 직접 만든 분이 대통령이 된 지도 벌써 5년이 지나 곧 임기가 끝난다는군요.” 할 말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물론 강한 보수세력이 끊임없이 발목을 잡으려 드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으리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누구 눈치볼 필요도 없는 때 아닌가요.” 다음 정권에 부담 주지 말고, 임기 중에 명예회복과 자유왕래의 매듭을 풀어주길 간절히 소망한다고 했다. 그것은 “대통령 김대중으로서가 아니라 인간 김대중으로서” 당연히 해야만 되는 것이라고도 했다.

하나둘씩 세상을 떠날 때마다…

사진/ “김대중을 죽이지 말라.” 1980년 12월4일 한민통 주최로 열린 김대중 사형저지 결사단식 투쟁.
곽동의 의장은 한통련의 전신인 한민통, 한민련 시절을 합쳐 3대째 의장이다. 결성식 일주일 전에 납치된 김대중 의장의 의장직을 대행한 김재화, 2대 의장 배동호에 이어 세 번째 의장직을 맡고 있다. 한국의 8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8차례나 민단 단장을 지낸 김재화는 그의 매형이다.

“3선개헌 반대투쟁 때였던 것 같습니다. 매형인 김재화 전 의장이 한국에서 구속되었는데, 저보고 3선개헌 반대투쟁을 그만두면 매형을 풀어주겠다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그는 투쟁을 그만둘 수 없었다. 한일회담 반대투쟁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1964년 2월4일 누님이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왔지요. 그래서 한국에 돌아가려고 여권을 신청했습니다. 4일 만에 연락이 왔는데, 당시 한창이던 한일회담 반대투쟁을 그만두면 입국을 허가하겠다더군요.”

고국땅을 밟기 위해 곽 의장은 동료들과의 신의를 저버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압력으로 고국땅을 밟지 못한 사람이 어디 재일 한통련 사람들뿐이겠는가. 그는 이른바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사형선고를 받아 끝내 고향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윤이상씨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77년 말 당시 한민련 유럽본부 의장을 맡고 계셨던 윤이상 선생과 한민련 공동의장 겸 한민통 고문이던 배동호 선생, 그리고 김재화 한민통 의장대행 등이 도쿄 프레스센터에서 함께 만나 독일의 사회민주당 당수였던 브란트씨에게 김대중 구출운동 등의 협력을 요구했던 기억이 새롭군요.” 1981년 5월 ‘한국 민주화지원 긴급세계대회’ 행사의 일환으로 열린 윤이상씨의 음악제 ‘광주여 영원하라’도 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김재화 전 의장도 배동호 전 의장도 윤이상 선생처럼 끝내 고향땅을 밟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리운 고향마을 한번 들러보지 못하고 이렇게 저렇게 하나둘 사라져가는 게 정말이지 너무 억울합니다”라며 말끝을 흐린다.

김재화 전 의장과 마찬가지로 곽 의장 역시 민단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다. 한국전쟁 당시엔 민단 도쿄중앙본부를 통해 재일동포 학도의용군에 참가하기까지 했다. 이야기는 다시 반국가단체 문제로 다시 돌아갔다. “우리보고 조선 총련에서 지원받았다고 했는데, 지원해줄 이유도 없고 준다고 하더라도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걸 받는 순간 우리 운동은 순식간에 무너져버리기 때문이지요. 그건 우리 사회에선 철칙입니다.”

그는 또 이렇게도 얘기했다. “옛날 한국의 초등학생들은 북쪽 사람들을 뿔 달린 도깨비로 알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30여년에 걸친 독재정권의 모략선전 탓이었겠지요. 한데 이젠 북쪽 사람들을 뿔 달린 빨간 도깨비가 아니라 같은 동포로 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아니죠.” 북쪽과는 왕래해도 우리를 만나는 건 여전히 금기시하는 게 현재 한국의 상황 아니냐고 했다.

과거에만 매달리지 않는다

한통련은 물론 과거의 역사에만 매달리고 있진 않았다. “내일모레 또 한 차례의 효선·미순양을 위한 촛불시위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북한동포를 돕는 일도 계속할 겁니다. 일제시대를 경험하면서, 일본에서 차별받고 살면서 조국이 잘돼야 해외동포들도 기를 펴고 산다는 걸 아주 뼈저리게 경험했습니다.” 더 늙어 힘이 없어지지 않는 한 조국의 자주와 민주통일을 위해 작으나마 힘을 보태겠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런 그가 바라는 꿈은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니다. 곽 의장의 고향인 경상남도 남해에 있는 선영들 묘소에 들러 술 한잔 올리는 것. “남해 읍내에 있던 심상소학교, 그러니까 당시엔 일본말로 진죠쇼각쿄라고 했던 곳을 꼭 한번 들러보고 싶군요. 소학교 때 친구들하고 소 몰고 가서 풀먹이던 곳이 늘 눈앞에 아른거려요.” 민주화의 큰 빚을 진 국내 사회가, 해외 민주화단체의 가슴에 억지로 새겨놓은 주홍글씨를 이젠 지워주어야 할 차례가 되진 않았는지.

도쿄=글·사진 신명직 전문위원mjshin59@hanmail.net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