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파트 경제고문으로 모든 이권 좌지우지한 ‘카레드 이슬람’, 결국 시민들의 손가락질을 받다
팔레스타인 시민들은 정치 지도자들이 귀환하기 전부터 국제적인 기업과 사업가들이 마치 성지순례라도 하듯 튀니스에 본부를 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뻔질나게 드나드는 걸 봐왔다. 야세르 아라파트 의장은 그 중심에 있었고, 사업가들은 자신들이 들고 온 사업계획에 아라파트의 은총이 내리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들이 들고 간 사업계획서들은 늘 아라파트의 경제고문인 카레드 이슬람에게 건네졌다. 이런 과정에서 투자가들과 사업가들이 아라파트에게 ‘파워 포인트 프리젠테이션’을 선보여봤자 별 신통력이 없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베일에 싸인 ‘오아시스 카지노’
“카레드 이슬람에게 선을 대자!” 사업 승패가 카레드의 눈길을 끌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업자들은 사업지분을 떼주면서까지 그를 사로잡고자 혈안이 되었다. 지분 30%니 심지어 50%니 하는 조건이 나왔고, 한술 더 떠 아예 예상수익금을 비율로 나눠갖는 방식들이 등장했다. 이런 일을 투자사업가들은 새로 출범하는 팔레스타인 당국에 대한 ‘세금’이라 여겼는지 아니면 카레드 이슬람에 대한 뇌물로 여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카레드 이슬람은 사람들 사이에 ‘Mr. 10%’로 불리기 시작했다.
게릴라 투쟁을 하던 시절 많은 이들이 가명을 써서 누가 누군지 분명치 않았으나, 팔레스타인 당국이 가자와 서안으로 입성하면서부터 카레드 이슬람이 무함마드 라시드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때부터 카레드 이슬람 대신 얼굴을 드러낸 무함마드 라시드가 아라파트 측근으로 본격적인 힘을 발휘했다. 중요한 모든 사업계약에는 반드시 라시드의 사인이 필요하게 되었다. “라시드 사인이 없는 사업승인서나 계약서들은 갑자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내각의 관련 부서들이나 투자가들도 모두 라시드의 위력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라크 내 쿠르드계 가문에서 태어난 라시드는 수많은 아랍 지식인들처럼, 팔레스타인 항쟁이 자유와 해방을 위한 반제국주의 투쟁임을 선언하며 팔레스타인해방기구에 참여했다. 그리고 아라파트가 라시드를 경제고문으로 임명하자마자 그는 급격히 권력선상으로 떠올랐다. 그 결과 라시드는 광고·가솔린·통신·시멘트·전자에 이르기까지 영역 없고 제한 없는 사업확장을 꾀했고, 주변 인물들은 팔레스타인 당국으로부터 사업면허를 독식했다.
그런 가운데 ‘오아시스 카지노’는 문어발 같기도 하고 고양이 발톱 같기도 한 라시드를 가장 ‘라시드답게’ 드러내준 사업이었다. 오스트리아-팔레스타인 합작회사인 카지노는 팔레스타인 노동력으로 운영하면서 손님은 이스라엘 사람들만 받는 방식을 택했다. 유대단체들이 도박장 개설을 반대해온 이스라엘 사회고 보면, 예루살렘에서 자동차로 30분 떨어진 예리코에 자리잡은 오아시스 카지노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환상의 코스가 아닐 수 없었다.
이슬람단체들이 팔레스타인 보안군을 경비대로 동원한 이 사업을 철회하라고 소리쳐왔지만, 2000년 제2차 인티파다(항쟁)가 벌어지기 전까지는 호황을 누렸다. 그럼에도 팔레스타인 시민들 가운데 아무도 오아시스 카지노의 팔레스타인쪽 지분을 누가 가졌는지 정확히 아는 이가 없다. 그저 많은 사람들은 라시드와 손잡은 사업가일 것이라는 추측만 할 뿐이다. 물론 ‘질퍽한’ 투자자본은 팔레스타인 최고지도자가 조정해왔지만.
그러나 지속되고 있는 분쟁과 경제붕괴에 사회운동가들뿐 아니라 팔레스타인입법회의(PLC) 같은 공식적인 기구들 속에서도 라시드에 대한 거센 비판이 일면서 이 ‘전쟁 갑부’도 이제 사양길로 접어든 모양이다.
정치활동에서 직격탄을 맞다
사실은 라시드의 급작스러운 몰락은 사업관계보다는 정치활동에서 직격탄을 맞은 탓이다. 2002년 4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의 나티비티교회 기습사건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공식적인 중재자들이 협상에 실패하자, 라시드가 지닌 이스라엘쪽 여러 선들을 통한 막후접촉이 성사되었다. 그러나 그 협상은 라시드의 거부로 결렬되었고, 결국 팔레스타인무장단체 요원들은 유럽과 가자지구로 강제추방당했다. 그러자 수많은 팔레스타인 시민들은 국제사회가 그들을 전범으로 규정했음에도 합법적 추방을 받아들인 협상을 놓고 분노했다. 이어 이 협상을 라시드가 주도했다는 뉴스가 나오자마자 라시드의 집은 화난 시민들로부터 공격당했다. 이 공격으로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팔레스타인 시민들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이 추악한 장사꾼, 이제 진절머리가 난다.” 얼마 뒤 아라파트 의장과 그의 자문기구에 따르면 라시드는 팔레스타인 지도자가 부여한 임무를 수행하고자 이집트 카이로로 떠났다고 한다.
시민들의 권리를 훔쳐 배를 채운 이름, 카레드 이슬람도 무함마드 라시드도 모두 그렇게 사라지고 있다. 이제 팔레스타인에 남은 것은 굶주림과 폐허뿐이다.
다오우드 쿠탑(Daoud Kuttab)/ 전 <알쿠드스>신문 기자·칼럼니스트

게릴라 투쟁을 하던 시절 많은 이들이 가명을 써서 누가 누군지 분명치 않았으나, 팔레스타인 당국이 가자와 서안으로 입성하면서부터 카레드 이슬람이 무함마드 라시드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때부터 카레드 이슬람 대신 얼굴을 드러낸 무함마드 라시드가 아라파트 측근으로 본격적인 힘을 발휘했다. 중요한 모든 사업계약에는 반드시 라시드의 사인이 필요하게 되었다. “라시드 사인이 없는 사업승인서나 계약서들은 갑자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내각의 관련 부서들이나 투자가들도 모두 라시드의 위력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라크 내 쿠르드계 가문에서 태어난 라시드는 수많은 아랍 지식인들처럼, 팔레스타인 항쟁이 자유와 해방을 위한 반제국주의 투쟁임을 선언하며 팔레스타인해방기구에 참여했다. 그리고 아라파트가 라시드를 경제고문으로 임명하자마자 그는 급격히 권력선상으로 떠올랐다. 그 결과 라시드는 광고·가솔린·통신·시멘트·전자에 이르기까지 영역 없고 제한 없는 사업확장을 꾀했고, 주변 인물들은 팔레스타인 당국으로부터 사업면허를 독식했다.

사진/ 이스라엘군에 죽임을 당한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의 장례행렬. 카레드 이슬람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를 팔아먹었다. (AFP연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