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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열받으면 여객기도 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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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1-2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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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상인으로 소문난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 만성질환과 족벌 내분투쟁에 요즘은 시들

푸 키아(Puy Kea)/ <교토뉴스> 프놈펜 특파원
텡분마(Teng Boonma). 하나밖에 없는 캄보디아 재벌의 이름이다. 더러운 이름이고 또 놀라운 이름이기도 하다. 캄보디아 재벌을 상징하는 이 사나이는 마약상인으로 소문나 있고, 자신의 짐을 잃어버린 민간여객기에 권총을 발사할 수 있을 만큼 배포 큰 인물이기도 하다.

“타이어 다 못 쏴 후회”에 경악

1941년 캄퐁참에서 태어난 텡분마는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했지만 일찌감치 사업에 머리가 트였다. 1975년 크메르루즈가 정권을 잡자 난민으로 캄보디아를 빠져나와 타이와 홍콩쪽에서 사업기반을 다지기 시작했다.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점령하고 있는 시절인 1984년부터 보트를 타고 코콩주를 드나들며 사업기회를 엿본 텡분마는 1988년 홍콩과 타이쪽 재산을 정리해서 캄보디아에 정착했다. 그때부터 텡분마는 프놈펜 올림픽마켓을 비롯해 최고급 호텔인 인터콘티넨털을 잇달아 세우더니, 캄보디아 메콩은행으로 금융업에 진출한 뒤 다시 방콕과 홍콩을 잇는 무역업으로 사업을 넓혀나갔다. 사업뿐 아니라, 최대 일간신문 <라스메이 캄푸체아>를 발행하며 캄보디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로 떠올랐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그에게도 시련이 닥쳐왔다.

“텡분마는 마약장사로 이권을 챙겨왔다.” 1995년 미국 국무성 관리 말을 인용한 <파 이스턴 이코노믹 리뷰> 기사 하나로 텡분마는 졸지에 추악한 인물이 되고 말았다. “마약에 대해 전혀 아는 바 없다. 돈이 넘치는 내가 뭐가 아쉬워 마약장사를 하겠나” 텡분마는 홍콩법정에 잡지를 고발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홍콩법원이 그 사건을 어떻게 다뤘는지에 대한 소식은 없다. 텡분마는 ‘중상모략’을 야당 정치인 삼 라인시 짓이라 비난했다. 삼 라인시는 그동안 올림픽마켓 좌판상인들을 조직해서 ‘자릿세’를 올리려는 텡분마를 공격해온 인물이다.

“1970년대 말 한 업자로부터 타이에서 홍콩까지 마약을 운반해달라는 부탁을 들은 적은 있다. 물론 거절했지만….” 텡분마는 뒤늦게 이런 사실을 밝혀 석연찮은 구석을 남겼고, 많은 시민들은 그가 마약사업에 개입한 것으로 믿고 있다.

텡분마라는 사나이를 가장 잘 드러내준 일화로는, 1997년 홍콩발 프놈펜행 로열에어캄보쥬 737 여객기에 대한 총격사건이 아니었던가 싶다. 프놈펜 포첸통 공항에 도착한 텡분마는 자신의 짐이 분실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경호원에게 권총을 가져오도록 했다. 그리고 여객기 타이어를 향해 총을 발사했다. 그는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공항 취재기자들에게 “여객기 타이어에 총질한 게 잘못인 줄 안다. 그렇더라도 후회되는 건 나머지 타이어 3쪽을 마저 터트리지 못한 일이다”고 말해 모두를 경악하게 했다.

이처럼 불같은 성격으로 유명한 텡분마도 요즘은 좀 시들해진 모양이다. 한 측근에 따르면 현재 텡분마는 당뇨·고혈압·심장병 같은 여러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가운데 사업이권을 놓고 가족 내부의 싸움에 휩싸여 예전 같지가 않다. 게다가 텡분마의 즉흥적 기질을 두려워한 캄보디아 정부는 지난해 인터콘티넨털호텔에서 개최한 아세안정상회담 때 그를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못하도록 해서, 이제 텡분마도 한물간 게 아닌가라는 말들이 나돌고 있다.

아이들도 카지노와 슈퍼마켓 사업

사진/ 텡분마. 호텔·금융·무역업에 이어 캄보디아 최대 일간지까지 손에 넣은 그에게 요즘 시련이 닥치고 있다.
텡분마에게는 더러운 이름 못지않게 제법 그럴듯한 칭송도 함께 따라다닌다. 사람들이 그를 부를 때 ‘오카’라는 극존칭을 붙이는데, 이건 국가 개발을 위해 최소 10만달러 이상을 기부하거나 학교·병원 같은 사회시설을 지어준 이들에게 붙이는 칭호다. 물론 이런 고상한 별칭은 최고권력자 훈센 총리와 라나릿드 왕자에게 자동차와 헬리콥터를 선물하고 뒷돈을 대면서 관계를 다진 끝에 얻은 결실이었다.

“텡분마가 지고 나면 다음은 누구인가” 요즘 시민들 사이에는 이런 말들이 오간다. 물론 캄보디아에서 당분간 텡분마를 넘볼 세력은 없다. 누가 되던, 아들 넷과 딸 셋을 둔 텡분마가 이미 캄보디아 차기 최고 졸부를 점지해놓은 셈이다. 장성한 아이 다섯은 이미 차기 졸부를 엿보며 개인사업을 벌여나가기 시작했다. 그 아버지에 그 아이들이라고, 자식들도 카지노와 슈퍼마켓 사업쪽으로 열심히 세력을 뻗치고 있는 중이다.

졸부는 있되 부호는 없다. 캄보디아 시민들은 음흉하게 뭘 ‘팔아먹기만 하는’ 장사꾼이 아니라, 뭘 좀 ‘만들어내는’ 생산적인 대부호를 그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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