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어지는 이라크전의 그림자…유엔 보고서가 미리 보여주는 참상 “부상·기아·난민 수백만”
전쟁은 피할 수 없는가 페르시아만을 드리운 전쟁의 그림자가 하루가 다르게 짙어만 간다. 이제까지 미국은 주로 보급·병참과 지휘·통제 병력을 배치해왔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1월 첫주가 지나면서 쿠웨이트·카타르·오만·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스텔스 폭격기 등 첨단무기와 해병 등 공격력을 크게 보강하고 있다.
걸프전과 전혀 다른 상황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1월12일치 기사에서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1월10일 상륙작전 병력을 포함한 해병 1만7500명에게 동원명령을 내렸다. …2월 중순까지 약 15만명 이상의 미군이 이라크 인근에 배치돼 부시 대통령의 최종명령을 기다릴 것”이라고 보도했다. 1991년 걸프전 이후 처음으로 17만5천여명에 이르는 미 해병대 병사의 전역을 금지하는 행정명령도 내려졌다. 걸프전이 끝난 지 11년 만에, 2800만 이라크 민중의 삶이 다시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임박한 파국에 대한 경고는 끊이지 않는다. 특히 1월7일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한 단체 인터넷사이트(www.cam.ac.uk/societies/casi)에 공개된 유엔의 비밀보고서는 전쟁이 가져올 인도적 재난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대학 학생과 교수들이 1998년 설립한 ‘이라크 경제제재 반대를 위한 캠페인’이라는 이름의 단체에서 내놓은 보고서에는 전쟁이 불러올 참화에 대한 잿빛 전망으로 가득 차 있다. 1991년 벌어진 걸프전과 달리 다가올 전쟁은 오랫동안 전면전 양상으로 치달으며 전 국토의 황폐화를 가져올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유엔은 보고서에서 약 50만명의 이라크인이 전쟁의 직간접적 영향으로 부상을 입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약 10만명이 직접적 타격을 입을 것이고, 40만명이 간접적 영향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간접적 영향으로 치료가 필요할 것으로 보는 인구가 40만명에 이른 것은 전쟁발발과 함께 콜레라·이질 등 전염병이 창궐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약 300만명에 이르는 인구는 영양상태가 극도로 나빠져 치료적 차원의 구호가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유엔아동기금(UNICEF)은 영양실조에 허덕이는 5살 미만의 어린이가 약 200만명에 이를 것이며, 임신이나 수유 중인 여성 100만명도 긴급구호가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 전력공급망의 파괴와 함께 상·하수도 시설이 훼손될 것이고, 단기적으로 전 인구의 약 39%에게 음료수 공급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했다. 일부에서는 미국이 전쟁을 시작하더라도, 1991년과 마찬가지로 이라크인들이 어떻게든 견뎌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근거 없는 억측이라는 것이 유엔의 판단이다. 이라크 국민의 현 상황이 1991년과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1차 걸프전 발발 당시 이라크인은 완전고용 상태에서 전쟁으로 인한 생계 위기를 극복할 만큼 충분한 현금과 물적 기반이 있었다. 그러나 걸프전 뒤 계속돼온 경제제재 조치에 따라 많은 이라크인이 상당 기간 실업상태에 놓여 있었다. 유엔은 보고서에서 “극소수 특권층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이라크인들의 현금이 거의 바닥났다. 팔아치울 만한 물적 자산도 거의 없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현재 이라크 인구의 약 60%에 이르는 1600만여명이 생필품을 정부의 구호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이라크인은 모든 생필품을 정부의 배급에 의존하고 있으며, 전쟁 발발로 인해 정부의 생필품 배급이 끊길 경우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개전 초기에만 난민 200만명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을 견주는 것도 무의미하다. 인구규모가 비슷하다는 점(아프가니스탄 2600만명, 이라크 2800만명)을 제외하고는 비슷한 점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전 인구에서 도시 거주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오랫동안 내전이 지속되면서 국민 대부분이 중앙정부의 도움 없이 자력으로 생활하는 능력을 갖췄다. 하지만 이라크는 상대적으로 도시인구 비율이 높은데다, 11년간 지속된 경제제재 조치에 따라 빈곤층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생필품에 대한 대정부 의존도가 매우 높은 상태다.
게다가 경제제재 조치를 당했음에도 이라크인들의 생활수준은 일정수준을 유지해왔다. 거의 정부에 의존했지만, 합리적 수준의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받아온 것이었다. 전쟁이 터져 사회기반이 붕괴하면 이런 사회적 서비스 제공은 불가능해질 것이다. 폭격으로 발전설비가 손상되면 전력공급력이 심각히 훼손될 것이고, 이는 상·하수도 등 공중위생체계 악화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보고서는 “전쟁 발발과 함께 항만이 폐쇄되거나 파괴될 것이며, 이에 따라 인도적 구호활동 능력이 떨어질 것이다. …철도 역시 다리와 선로, 신호체계 등의 파괴로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것이다. 도로망도 심각한 파괴를 피할 수 없을 것이며, 이에 따라 가뜩이나 부족한 이라크 도로망 역시 나름의 역할을 수행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무차별 공중폭격은 이라크 남북을 가로질러 국토를 3등분하고 있는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유역의 다리를 끊어놓을 것이다. 이럴 경우 나라 안에서 동·서로의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어려워질 것임에 틀림없다. 강의 수심이 깊어 쉽게 건너기 어렵기 때문에 어려움은 가중될 것이다. 또, 정부가 보유한 생필품도 상당수 파괴될 수 있다. 국내소비를 위해 사용돼온 원유생산 역시 중단될 것이며, 이미 생산된 원유 저장량도 엄청나게 훼손될 것이다.
난민 발생 역시 심각한 문제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은 “현재 보호하고 있는 13만명에 이르는 난민 외에 개전 초기에만 약 200만명의 난민이 추가로 발생할 것이다. 개전 초기 이들에 대한 적절한 구호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유엔은 약 90만명이 이란 국경을, 약 5만명이 사우디아라비아 국경을 넘을 것으로 추정했다.
증거가 없다는 것이 증거
이런 암울한 전망도 워싱턴 정가의 강경기류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1월7일 정례 브리핑에서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냐”는 기자의 물음에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가장 좋은 것이야 사담 후세인이 오늘 밤에라도 짐을 싸서 이라크를 떠나는 것 아니겠느냐”며 여유를 부렸다. 그러는 사이 해병을 위시한 미 전투병력은 페르시아만과 인도양을 싸고 돌며 이라크에 대한 군사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1월6일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사찰단을 이끌고 있는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과 한스 블릭스 유엔 감시·검증·사찰위원회(UNMOVIC) 위원장은 “지금까지 이라크에서 핵무기와 관련해 의심스러운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유엔안보리 1441호 결의안에 따라 오는 1월27일로 예정된 이라크 무기사찰단의 1차 보고서에는 대량살상무기 개발·보유를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가 포함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문제는 사찰단이 제출할 보고서 내용과 관계없이 미국이 전쟁을 벌일 것이라는 데 있다. “유엔의 1차 보고서 제출시한은 전쟁으로 가는 마지막 단계의 시작”이라는 것이 미 행정부의 인식인 탓이다.
유엔 무기사찰단이 활동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 11월27일. 100명에 이르는 사찰요원이 지금까지 150여차례에 걸쳐 127개 장소를 방문했지만 미국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찾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부시 행정부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은 것이야말로 이라크 정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독창적인’ 해석을 내놓았다. 미국의 진보적 시사주간지 <더 네이션>의 칼럼니스트 로버트 슈어는 “과반수의 미국인이 전쟁을 벌이기 전에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가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는 구체적 증거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애국심을 호소하는 진군의 북소리가 우리의 상식을 마비시킬 것”이라고 탄식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사진/ 쿠웨이트에 주둔하고 있는 미 해병대. 미국은 1월 첫주가 지나면서 쿠웨이트·카타르·오만·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첨단무기와 해병 등 공격력을 크게 보강하고 있다. (AFP연합)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1월12일치 기사에서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1월10일 상륙작전 병력을 포함한 해병 1만7500명에게 동원명령을 내렸다. …2월 중순까지 약 15만명 이상의 미군이 이라크 인근에 배치돼 부시 대통령의 최종명령을 기다릴 것”이라고 보도했다. 1991년 걸프전 이후 처음으로 17만5천여명에 이르는 미 해병대 병사의 전역을 금지하는 행정명령도 내려졌다. 걸프전이 끝난 지 11년 만에, 2800만 이라크 민중의 삶이 다시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임박한 파국에 대한 경고는 끊이지 않는다. 특히 1월7일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의 한 단체 인터넷사이트(www.cam.ac.uk/societies/casi)에 공개된 유엔의 비밀보고서는 전쟁이 가져올 인도적 재난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대학 학생과 교수들이 1998년 설립한 ‘이라크 경제제재 반대를 위한 캠페인’이라는 이름의 단체에서 내놓은 보고서에는 전쟁이 불러올 참화에 대한 잿빛 전망으로 가득 차 있다. 1991년 벌어진 걸프전과 달리 다가올 전쟁은 오랫동안 전면전 양상으로 치달으며 전 국토의 황폐화를 가져올 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유엔은 보고서에서 약 50만명의 이라크인이 전쟁의 직간접적 영향으로 부상을 입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약 10만명이 직접적 타격을 입을 것이고, 40만명이 간접적 영향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간접적 영향으로 치료가 필요할 것으로 보는 인구가 40만명에 이른 것은 전쟁발발과 함께 콜레라·이질 등 전염병이 창궐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약 300만명에 이르는 인구는 영양상태가 극도로 나빠져 치료적 차원의 구호가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유엔아동기금(UNICEF)은 영양실조에 허덕이는 5살 미만의 어린이가 약 200만명에 이를 것이며, 임신이나 수유 중인 여성 100만명도 긴급구호가 필요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 전력공급망의 파괴와 함께 상·하수도 시설이 훼손될 것이고, 단기적으로 전 인구의 약 39%에게 음료수 공급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했다. 일부에서는 미국이 전쟁을 시작하더라도, 1991년과 마찬가지로 이라크인들이 어떻게든 견뎌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근거 없는 억측이라는 것이 유엔의 판단이다. 이라크 국민의 현 상황이 1991년과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1차 걸프전 발발 당시 이라크인은 완전고용 상태에서 전쟁으로 인한 생계 위기를 극복할 만큼 충분한 현금과 물적 기반이 있었다. 그러나 걸프전 뒤 계속돼온 경제제재 조치에 따라 많은 이라크인이 상당 기간 실업상태에 놓여 있었다. 유엔은 보고서에서 “극소수 특권층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이라크인들의 현금이 거의 바닥났다. 팔아치울 만한 물적 자산도 거의 없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현재 이라크 인구의 약 60%에 이르는 1600만여명이 생필품을 정부의 구호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이라크인은 모든 생필품을 정부의 배급에 의존하고 있으며, 전쟁 발발로 인해 정부의 생필품 배급이 끊길 경우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개전 초기에만 난민 200만명

사진/ “가장 좋은 것이야 사담 후세인이 오늘 밤에라도 짐을 싸서 이라크를 떠나는 것 아니겠느냐.” 1월7일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이 이렇게 ‘여유’를 부리는 사이에도 미 전투병력은 군사적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었다. (GAM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