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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포시돈, 영원한 두려움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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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1-1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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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의 재발견(2)

변덕스러운 바다의 신 포시돈을 경배하는 그리스인… 세계선박박람회의 명칭도 ‘포시도니아’

사진/ 그리스 에게해에 떠 있는 선박.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고대에도 그리스인들에게는 포시돈이 지배하는 바다가 삶의 원천이었다.
여신 아티나와의 경쟁에서 패한 바다의 신 포시돈은 아테네에서는 물러났지만 여전히 그리스 사람들에게 두려운 존재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고대에도 그리스인들에게는 바다가 삶의 원천이었다. 외국을 왕래하던 고대 선원들에게 바다는 미지의 비밀을 간직한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지금처럼 과학적인 항해술이 발달하지 못한 시대에는 자연의 힘에 모든 것을 맡겨야 했다. 즉, 바다의 신인 포시돈의 뜻에 완전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포시돈이 경쟁에서 패배한 뒤 포시돈의 불같은 성질을 두려워한 아테네 시민들은 수니온에 신전을 건설하여 포시돈에게 제사하기 시작했다.


시인 바이런은 그리스의 영웅

수니온은 지리적으로 아테네의 관문이다. 아테네로 들어오는 모든 배들은 이곳을 지나야만 한다. 옛날 이곳을 지나던 선원들은 멀리서 수니온의 바위들이 보일 때 피레아스항구에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쨌든 지금까지도 선원들은 이 바위들을 ‘정박바위’라고 부른다. 수니온의 포시돈 신전은 기원전 444년과 440년 사이에 지어졌는데 현재에는 15개의 기둥만 남아 있다. 오랜 세월의 풍파로 많이 지워졌지만 신전의 돌벽에는 켄타브로스(半人半馬)들의 싸움 장면, 거인들과의 싸움과 티세아스의 활약상이 새겨져 있었다. 이곳을 방문한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돌기둥에 새겨놓았는데 그 중에서도 ‘Lord Byron’(바이런경)이라는 이름이 가장 눈에 띈다.

시인 바이런은 자신의 시에서 수니온을 노래했다. “…수니온의 대리석 절벽에 나를 데려가 달라. 나와 파도가 아무것도 구할 수 없는 곳, 우리끼리의 불평이 사라지는 소리를 듣기를 바라나니. 나를 백조처럼 거기서 노래하고 죽게 하라….” 바이런은 19세기 영국의 대표적인 낭만파 시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리스에서 그의 삶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그리스가 터키의 식민통치에 대항하여 싸울 무렵 직접 그리스의 독립전쟁에 참여하면서 사재를 털어 의약품을 공급했고, 당시 돈으로 4천파운드라는 독립자금을 그리스 임시정부에 기탁했다. 물론 직접 총을 들고 전투에 참가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37살의 나이에 그리스에서 비운의 최후를 맞으면서 그리스 민족의 영웅이 됐다. 지금도 그리스인들은 존경하는 영국인으로 바이런경을 꼽는다. 포시돈 신전 아래의 벼랑 끝 바위에 앉아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명상에 잠기곤 한 시인 바이런은 포시돈 신전의 일부로 영원히 남아 있다. 이곳은 다른 곳보다 훨씬 거칠고 유난히 풍파가 거세게 몰아치는 곳이기에 바다의 신 포시돈의 존재를 한층 가까이서 느낄 수 있다. 그리스의 전설적인 소경시인 오미로스(호머)는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땅을 뒤흔드는 이여, 말의 조련사이자 배들의 구원자로서의 두 가지 역할을 신들이 부여했네. 포시돈, 지구를 쥔 검은 머리칼의 주여, 경배받으라! 축복받은 자여, 따뜻한 마음으로 배로 여행하는 사람들을 도와주소서.”

사진/ 수니온의 포시돈 신전. 이곳에는 그리스 독립을 위해 싸운 영국시인 바이런의 자취도 남아 있다.
포시돈이 처음부터 바다의 신이 된 것은 아니다. 포시돈이 바다의 신이 된 내력은 제우스 신의 권력투쟁과 연관돼 있다. 그리스 신들의 권력투쟁은 인간세상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 부모자식 간에도 권력을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한다. 아버지 크로노스를 몰아낸 제우스는 신들의 왕이 되지만 이를 반대하는 티타나스(거인)들의 심한 저항에 부딪힌다. 이때 포시돈은 제우스를 도와 티타나스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한다. 제우스는 이에 대한 보답으로 포시돈에게 바다를 통치할 권리를 준다. 또한 제우스 자신은 신과 인간, 하늘을 통치하고, 아디스에게는 지하세계를 넘겨주고 땅과 올리포스산은 공동의 영역으로 남겨둔다.

인간 못지않은 신들의 권력투쟁

그 뒤 제우스의 형제인 포시돈과 아내인 이라, 그리고 심지어는 제우스가 가장 사랑하는 딸인 아티나까지 참가해 제우스를 왕좌에서 몰아낼 모의를 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의 반역모의는 들통이 나고 포시돈은 일년 동안 트로이에서 성벽 쌓는 일을 형벌로 받는다. 신들의 세계는 언제나 긴장의 연속이다. 잠시 마음을 놓는 사이에 언제 자신의 지배권을 잃어버릴지 모른다. 신들의 왕인 제우스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언제나 능력을 보여줘야 했고, 자신의 가족들이나 외부의 도전에 직면해야 했다. 반면 두 번째 실력자인 포시돈은 바다의 신으로 완전히 자신의 자리를 굳혔다. 바다 밑에 황금으로 지은 궁궐에서 암피트리티와 살면서 여러 말이 끄는 황금마차를 타고 바다를 헤치고 나타나는 모습이 포시돈에 대한 그림이다. 따라서 그에게는 돌핀과 말, 소나무가 상징이 돼버렸다.

사진/ 이탈리아 볼로냐에 서 있는 포시돈 동상. 삼지창을 들고 있는 용맹스러운 모습이다.
그리스 신화에 나타난 신들의 행동은 현대의 도덕적인 잣대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포시돈은 제우스에 버금가는 여성편력을 자랑한다. 포시돈은 바다의 왕 니리오스의 딸인 암피트리티와 결혼하기를 원한다. 포시돈을 두려워한 암피트리티는 아틀라스에게로 도망하지만 돌고래가 찾아가 암피트리티에게 포시돈과의 결혼을 권유한다. 결혼에 성공한 포시돈은 이를 성사시킨 보답으로 돌핀을 별자리(돌고래자리)가 되게 한다. 포시돈과 여성의 이야기 중에서 메두사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머리가 뱀투성이인 메두사는 사실은 굉장히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포시돈은 메두사를 본 순간부터 사모하게 되어, 메두사와 아티나에게 제사를 지내던 신전에서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안 아티나는 화가 난 나머지 메두사를 뱀투성이의 머리를 한 괴물로 만들고, 그를 바라보는 자는 무조건 돌이 되게 하는 저주를 내린다. 퍼세아스가 메두사를 죽일 때 이미 임신하고 있던 메두사의 머리에서 날개 달린 아름다운 말인 피가소스가 탄생한다. 피가소스의 탄생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저주를 받아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는 메두사의 최후를 피가소스라는 생명체의 탄생으로 승화시켰다.

사실 포시돈이 그리스 전체의 신으로 받아들여질 때까지는 많은 세월이 필요했다. 포시돈이 최초로 신앙의 대상이 된 것은 지금의 터키인 이오니아 해안지역이었다. 그 뒤 많은 이오니아 사람들이 펠로폰네소스로 이주하게 되면서 포시돈은 이곳 일대에서도 신앙의 대상이 되고, 나중에는 바다를 끼고 있는 그리스의 전 지역으로 퍼지게 되었다.

바다 앞에 인간은 언제나 나약한 존재

고대 그리스에서는 곳곳에서 포시돈을 기념하는 고대 올림픽대회와 같은 축제가 벌어졌다. 그 중 하나가 테살리아 지역에서 포시돈을 기념하기 위해 열린 타브리아인데, 검은 소들을 바다 속으로 던져넣어 포시돈에게 제물로 바쳤다고 한다. 그리고 코린토스의 이스트모스에서 코린토스 시민들 주최로 포시돈을 기념하기 위해 2년에 한번씩 열린 축제가 있는데, 이를 이스트미아라고 했다. 이 축제는 경마 등 스포츠 종목 위주였으나 나중에는 시와 음악경연대회도 함께 열렸다. 이스트미아는 올림픽, 피티안과 더불어 고대 그리스의 3대 축제에 속했다. 그러나 그리스가 타민족의 오랜 지배를 받으면서 서서히 사라졌다.

사라졌다고 믿었던 포시돈 축제는 현대 그리스에서 다시 살아났다. 그리스에서 열리는 세계선박박람회의 명칭은 포시돈에서 파생된 ‘포시도니아’다. 지난해 7월 초, 아테네의 항구지역인 피레아스에서는 세계선박박람회 ‘포시도니아2002’가 열렸다. 2년마다 그리스에서 열리는 이 행사는 전 세계에서 출품한 선박들이 전시되고 세계선박계의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1965년에 처음 시작된 포시도니아는 해마다 규모가 커지면서 지금은 순수한 선박박람회라기보다는 축제의 성격을 띤다. 주최쪽에서도 공식적으로 포시도니아는 고대 그리스에서 바다의 신인 포시돈을 기념해 열렸던 축제인 이스트미아를 계승한다고 밝혔다.

항해술과 장비가 월등한 현대에도 바다의 신을 숭배하는 의식을 거행한다는 사실은 바다라는 거대한 자연의 힘과 마주친 인간이 여전히 나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확인시켜준다.

아테네=하영식 전문위원 youngsig@otenet.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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