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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중국영화는 중국축구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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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3-01-1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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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식 상업영화의 깃발 올린 <영웅> 실패로 끝나… 중국영화계의 근본적인 반성 촉구

사진/ 중국영화 최대의 블록버스터 <영웅>의 한 장면. 개봉 초기의 성공을 이어가지 못하고 외면받고 있다.
거장 장이모 감독이 만든 <영웅>이 중국영화계 화두로 등장했다. 중국사회가 시장경쟁 논리를 받아들이면서 영화마저 지나치게 미국 할리우드식 상업화로 가는 데 대한 경계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영웅>은 지난해 12월20일 중국 6대 도시에서 일제히 개봉되었다. 개봉된 지 이틀 만에 430만위안의 흥행성적을 올리면서 전례 없는 기록을 세웠다. 중국에서 개봉된 영화 가운데 최고의 흥행성적을 기록한 <타이타닉>의 개봉 이틀 성적은 320만위안이었다. 그러나 연말에 <영웅>을 보려고 몰려든 영화팬들로 장사진을 이룬 극장가가 지금은 대륙의 찬 공기만큼이나 썰렁하다.

“장이모가 속물이 됐다”


영웅을 감상하고 나온 관객들은 한결같이 “화면은 볼 만했다. 그런데 왠지 씁쓸하고 허무했다”는 반응이다. 기대치가 너무 큰 탓이었까. 장이모라는 거장이 만든데다, 리롄제(李連杰)·장만위(張曼玉)·량자오웨이(梁朝偉)·두커펑(杜可風) 등 중국 최고 스타들이 등장했다는 점 때문에 개봉 전부터 커다란 관심을 모았다. 게다가 중국영화 사상 최고의 액수(3천만달러)를 들였다는 점도 영화팬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영웅>은 중국 내에서 가장 짧은 시간에 생명력을 잃은 영화가 되고 말았다. 단 10여일 만에 <영웅>을 찾는 사람의 발길이 끊어져버린 것이다.

각종 언론에서 터져나오는 영화평을 간추려보면, “장이모가 속물이 됐다. 허점투성이를 화려한 색채와 화면으로 대체하고 있다”는 평가다.

영웅의 줄거리는 매우 간단하다.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은 멸망한 나라들의 무사들이 자객으로 변신해 자신을 죽이려는 것을 두려워해, 무사를 고용해 이 자객들을 제거하려고 한다. 10년 동안 검술을 익혀 10걸음 앞에서 한 검에 살해할 수 있는 검술을 익힌 우밍은 세 사람의 무사들과 협의해 진시황을 살해할 음모를 꾸민다. 결국 진시황의 10걸음 앞까지 갔으나 포기하고 만다. 진시황을 죽이지 못한 까닭은 ‘천하’라는 두 글자 때문이다. 진시황이 죽고 나면 중국은 전국시대와 같은 혼란이 다시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세속적으로 변했다는 비난에 대해 장이모는 “중국인들이 자기 주머니를 털어 영화관으로 들어가게 만들겠다”는 말로 <영웅>이 상업영화임을 분명히 밝혔다. 실제 <영웅>은 영화 판권의 최대 주주인 미국 영화배급업체의 요구를 받아들여 원판에서 20분이 잘려나갔다. <영웅>은 중국영화가 상업영화로 나아가는 깃발을 올린 것임에 틀림없는 사실이다. 투자, 제작과 배급, 광고 모든 면에서 할리우드식 상업성을 따랐다.

투자는 늘어나는데 질은…

장이모는 나라 안팎의 시장에 상품으로 내놓기 위한 첫 작업으로 3천만달러라는 금융자금을 동원했다. 전통방식에 따르면 중국영화 투자에는 금융자금이 거의 없었다. 돈과 위험은 모두 국가가 부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웅>은 먼저 예산을 짜서 국제적으로 저명한 보험회사가 담보를 서고, 금융자금을 끌어들였다. 그 뒤 구미판권 2천만달러, 국내음향판권 1780만위안, 광고수입 2천만위안 등을 올렸다. 관객동원은 이미 1억위안을 넘어섰고, 영화상영 뒤 만화·소설·오락 등 총 수입은 거의 8천만위안에 도달했다. 그러나 장이모가 호언장담한 것처럼 <영웅>을 통해 흥행과 상을 동시에 얻겠다는 꿈은 이미 깨졌다. 오스카상이 이미 물건너갔고, 비평가들의 혹평을 받는 만큼 <영웅>의 작품성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영웅>은 3천만달러라는 최대 제작비를 들인 국산영화로 성공을 한 동시에 값비싼 교훈도 얻었다. 중국영화의 문제점이 무엇인가를 철저히 알게 된 것이다. 일부에선 중국영화를 중국축구에 비유한다. 되풀이되는 실수를 고치지 못하고 계속 주변을 배회한다면서 투자는 점점 늘어나는데, 질은 점점 떨어지는 게 어찌된 일이냐는 안타까움이 배어나오고 있다.

베이징=황훈영 전문위원 kkccjjh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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