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의 재발견(1)
아테네의 탄생부터 파르테논의 고난까지, 언덕에 새겨진 수천년 역사의 흔적들
이번호부터 10회에 걸쳐 아테네에 살고 있는 하영식 전문위원이 쓰는 ‘그리스 신화의 재발견’을 연재합니다. 그리스 전 지역을 발로 누비며 그리스인의 삶 속에 스며 있는 신화의 흔적을 찾아내고 새롭게 조명하고자 합니다. 신들의 이름, 인명이나 지명은 한국에 널리 쓰이는 제우스·아테네·파르테논 등을 제외하고는 모두 표준 그리스어 발음에 가장 가까운 우리말 표기를 사용합니다. 편집자
처음 아크로폴리스를 방문한 10년 전. 테살로니키에서 야간열차로 밤새도록 여행해 무거운 배낭을 풀기도 전에 도깨비에 홀리기라도 한 듯 아크로폴리스로 가는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갔다. “여기까지 왔으니 빨리 아크로폴리스를 정복해야겠다”는 욕심보다는 “그곳에 가면 뭔가 있겠지” 하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여름날의 이글거리는 해는 이미 솟아올랐고 웅장한 파르테논의 대리석 기둥과 땅바닥에 널린 기둥 파편들은 햇빛에 반사되어 하얀 빛을 토해냈다. 도시의 가장 높은 지점이라는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다보는 아테네와 유난히 푸른 에게해는 지금도 뇌리에 뚜렷이 남아 있다.
대포알에 맞아 부서진 기둥들 지금은 단지 관광수입을 올리는 서글픈 장소로 전락해버린 아크로폴리스는 한때 아테네에서 가장 신성한 지역이었다. 원래 아크로폴리스는 고대시대 적들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가장 높은 곳에 지은 피난처 같은 도시였다. 기원전 15세기께 그리스 전체를 통틀어 48개의 아크로폴리스가 존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을 신성시해 제단을 쌓고 동물들을 태워 제물로 바쳤다. 제물로 사용한 동물은 주로 돼지나 소, 염소였고, 고대 마케도니아에서는 개를 제물로 사용했다. 현재 아크로폴리스에 남아 있는 파르테논 신전을 비롯한 주변의 작은 신전들은 당시 민주주의를 주창한 정치가 페리클리스(기원전 5세기)가 주도해서 지었다. 웅변가로도 유명한 페리클리스는 “…죽은 사람들 모두 영웅은 아니었으나 죽음으로써 영웅이 되었다. 나는 이들이 아테네를 향한 사랑 때문에 기꺼이 죽음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죽어가는 눈에는 공포가 아닌 영광이 가득했다…”는 유명한 ‘추도사’를 남기기도 했다. ‘페리클리스의 추도사’는 군부독재정권이 지배한 1967~74년에 반군부독재시위를 벌인 아테네 시민들에 의해 거리에서 낭송되기도 했다.
고대 그리스가 남긴 최고 걸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 파르테논 신전은 2400년이 넘은 지금까지 온갖 수난을 겪어오며 묵묵히 아테네를 내려다보고 있다. 기독교가 국교가 된 뒤 파르테논 신전은 교회가 되기도 했다가 오스만투르크 지배 아래서는 모스크로 바뀌기도 했다. 그 뒤 파르테논 신전은 터키 군대의 화약창고로 변했는데, 1687년에 베니스군과의 전쟁에서 베니스군이 날린 대포알이 쌓아놓은 화약더미에 맞는 바람에 지붕과 많은 기둥들이 부서졌다.
2천년 동안 잘 보존돼온 신전은 전쟁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폐허로 변했다. 영국의 엘진은 이스탄불 대사로 있다가 파르테논 신전의 석상들에 눈독을 들여 일부러 아테네 대사로 자원해왔다. 그는 아크로폴리스 바닥에 널린 석상조각들을 수집하는 체하다가 나중에는 신전벽에 붙어 있는 조각품들까지 떼내어 대영박물관에 팔아넘겼다. 이것 때문에 지금까지도 그리스와 영국 사이에 외교적 마찰이 지속되고 있다. 2차대전이 끝나고 그리스가 독일로부터 해방된 날, 그리스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아크로폴리스에 올라가 그리스 국기를 게양하는 것이었다.
‘포시도니아’가 될 뻔한 아테네
신화에 의하면 아크로폴리스는 여신 아티나가 거대한 바위를 팔리니 지역에서 옮겨놓으면서 만들어졌다. 여기에는 허리 위로는 인간, 허리 아래로는 뱀의 형상을 한 ‘케크롭스’라는 자가 살았었는데 그가 최초의 아테네 왕이었다. 그는 바위언덕의 꼭대기를 아크로폴리스라고 했고, 아테네시는 자신의 이름을 따서 ‘케크로피아’라고 했다. 케크로피아가 아테네로 바뀐 내력도 흥미롭다. 하루는 포시돈(바다의 신·포세이돈)과 아티나가 아크로폴리스에 서서 도시 이름을 두고 다퉜다. 결판이 나지 않자, 결국 케크롭스와 시민들을 모은 뒤 내기를 하는 묘안을 짜냈다. 왕과 시민들이 좋아하는 선물을 제공한 신이 이기는 것이다. 즉, 포시돈이 이기면 도시 이름은 ‘포시도니아’가 되고, 아티나가 이기면 ‘아티나’(아테네)가 되는 것으로 결정했다.
포시돈이 자신의 삼지창으로 바위를 치자 물이 솟아나왔다. 그러나 그 물은 소금물이었다. 다음은 아티나가 방패로 포시돈의 샘의 가까운 곳을 치자 땅이 생긴 이래 최초의 나무가 자라기 시작했다. 이 나무가 올리브나무(엘랴)인데 평화를 나타낸다. 올리브나무는 시민들에게 올리브기름과 올리브열매를 음식으로 제공했다. 투표에서 모든 남자들은 포시돈에게 모든 여자들은 아티나에게 표를 던졌다. 당시 여자들의 수가 남자들보다 많았기 때문에 아티나가 승리했다. 이에 화가 난 포시돈은 아테네시의 물을 저주해 아테네에 물부족을 안겨주었다. 지금까지도 물문제는 아테네시가 당면한 가장 골치아픈 문제로 남아 있다. 이와 동시에 화가 난 남자들은 여자들의 모임과 투표를 원천적으로 금지해버렸다. 이 이야기는 왜 오랫동안 여성들의 참정권이 박탈당했는지를 흥미롭게 설명해준다.
이와 더불어 여신 아티나 탄생에 얽힌 얘기는 무척 흥미롭다. 미인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은 제우스는 새와 물고기, 뱀으로 변해 달아나던 마티스를 같은 모양으로 변신해 추격하는 데 성공한다. 마티스가 임신하자 땅인 ‘기’는 제우스에게 태어날 아기가 아들이면 제우스가 아버지 크로노스에게 한 것처럼 제우스를 권좌에서 몰아낼 것이라고 예언한다. 이에 두려움을 느낀 제우스는 자신의 아내인 마티스를 파리로 만들어 삼켜버린다. 마티스는 제우스의 몸 속에서 아티나의 옷과 투구를 만든다. 마티스의 출산준비는 제우스에게 치명적인 두통을 불러일으킨다. 이에 대장장이신인 이페스토스는 도끼로 자기 아버지인 제우스의 머리를 쳐서 두쪽으로 열어젖힌다. 갈라진 제우스의 머리 에서 투구와 갑옷과 방패로 완전무장한 성숙하고 아름다운 아티나가 함성을 지르면서 나온다.
그녀가 지른 함성은 올림포스산 전체를 흔들고 땅 끝에서도 들릴 정도였다.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난 아티나는 지혜의 여신으로, 그리고 완전무장한 차림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전쟁의 여신으로 숭배됐다. 지혜의 여신인 아티나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올리브나무를 통해 음식과 기름을 선물했고, 선박 제조, 직조, 농사 재배 등을 가르쳐줘서 풍요의 신으로 숭배되었다. 여신 아티나는 남자들에게는 호의적인 반면 여자들에게는 질투로 인해 해를 안겨줬다. 이라클리스(헤라클레스) 옆에서 언제나 그를 승리하게 도와주었으나 자신보다 베를 더 완벽하고 아름답게 짠 아라흐니 공주를 거미로 만든 얘기 등은 아티나 여신의 인간적인 면을 잘 드러내준다.
세탁소 간판도 제우스
그리스는 신화의 나라답게 신들의 이름이 거리 곳곳을 차지하고 있고, 사람들의 이름이나 일상대화에서도 신들의 이름을 쓴다. 아테네라는 도시 이름이 여신 아티나에서 유래된 것은 물론이고 아테네 중심가인 옴모니아 광장에서 아크로폴리스 방향으로 나 있는 거리이름도 아티나다. 아테네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 이름이 제우스의 사자 에르미스를 딴 에르무이다. 세탁소 간판도 제우스의 다른 이름인 ‘디아스’다. 이렇게 신들의 이름과 관계된 거리이름, 간판, 인명들만 열거해도 해가 질 정도로 끝이 없다. 그리스 국민의 99%는 유일신을 섬기는 그리스 정교에 소속돼 있지만 여전히 신화문화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점이 흥미롭다. 비록 그리스가 기독교국가라지만 그리스 민족을 다른 민족과 구별하고, 민족에 고유성을 부여하는 것은 그리스 신화일 수밖에 없다.
아테네=글·사진 하영식 전문위원 youngsig@otenet.gr

고대 그리스가 남긴 최고 걸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 파르테논 신전. 터키와 베니스 간의 전쟁으로 많은 기둥이 파괴됐다.
대포알에 맞아 부서진 기둥들 지금은 단지 관광수입을 올리는 서글픈 장소로 전락해버린 아크로폴리스는 한때 아테네에서 가장 신성한 지역이었다. 원래 아크로폴리스는 고대시대 적들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가장 높은 곳에 지은 피난처 같은 도시였다. 기원전 15세기께 그리스 전체를 통틀어 48개의 아크로폴리스가 존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을 신성시해 제단을 쌓고 동물들을 태워 제물로 바쳤다. 제물로 사용한 동물은 주로 돼지나 소, 염소였고, 고대 마케도니아에서는 개를 제물로 사용했다. 현재 아크로폴리스에 남아 있는 파르테논 신전을 비롯한 주변의 작은 신전들은 당시 민주주의를 주창한 정치가 페리클리스(기원전 5세기)가 주도해서 지었다. 웅변가로도 유명한 페리클리스는 “…죽은 사람들 모두 영웅은 아니었으나 죽음으로써 영웅이 되었다. 나는 이들이 아테네를 향한 사랑 때문에 기꺼이 죽음도 마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죽어가는 눈에는 공포가 아닌 영광이 가득했다…”는 유명한 ‘추도사’를 남기기도 했다. ‘페리클리스의 추도사’는 군부독재정권이 지배한 1967~74년에 반군부독재시위를 벌인 아테네 시민들에 의해 거리에서 낭송되기도 했다.

아크로폴리스는 고대시대 적들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가장 높은 곳에 지은 피난처 같은 도시였다.

제우스의 머리를 열고 태어난 아티나의 모습. 당시 아티나의 고함소리가 땅 끝까지 들릴 정도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