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체첸, 복수는 확대재생산된다

328
등록 : 2000-10-04 00:00 수정 :

크게 작게

더욱 잔인하게 이어지는 싸움, 러시아 전역엔 테러의 파편이…

블라티미르 가린(Vladimir Galin)

1954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가린은 1975년 벨로루시아에서 종군기자로 처음 언론과 인연을 맺었고, 1980년 모스크바대학 언론학과를 졸업한 뒤 <프라우다>와 <뉴타임스> 등의 기자를 거쳐 현재 정치·사회분야 전문 칼럼니스터로 활약하고 있다. 일본의 <아에라>, 모스크바특파원을 겸하면서 많은 국제 언론매체들에도 정기적으로 기사를 제공하고 있다.

“원하는 대로 독립하라.”


세상사가 모두 말에서 비롯된다고 했던가. 1990년대 초 옐친의 이 감상적인 말 한마디로부터 체첸은 러시아연합으로부터 탈퇴하고 독립을 선언했다. 체첸의 독립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러시아는 벌써 몇해 동안 쩔쩔매며 대가를 치르고 있다. 체첸의 이탈을 내버려두면 연합의 구성체들이 줄줄이 뒤를 이을 것이라 여긴 러시아는 국운의 위기감을 느낀 모양이다.

세계 전역에서 피어오른 회교도들의 동정심

이츠케리아공화국. 체첸은 스스로를 이렇게 부르며 러시아에 대한 복종을 거부했다. 타락한 모스크바는 3년 동안이나 체첸의 일방적인 독립선언을 그저 흘겨넘겼다. 체첸에서 유전이 발견 되었을 때부터 오일달러가 정체불명의 목적지를 향해 빠져나갔고, 수십조루블에 이르는 막대한 이권이 걸린 체첸개발계획은 대여섯명의 호주머니로 급격히 사라져버리는, 말하자면 처음부터 범죄성을 띤 사업에 기반을 두었던 체첸의 정치상황 속에서 별안간 러시아 지도자와 체첸 지도자 사이의 관계는 틀어지기 시작했다.

크렘린은 거들먹거리는 반군을 징벌하겠노라 선언했다. “1개 대대병력이면 체첸쯤이야 끝장낼 수 있다.” 1994년 12월 국방장관 파벨 그라체프가 호언장담한 뒤 즉각 제1차 체첸전쟁은 불을 뿜었다. 이렇게 시작된 전쟁은 오늘도 멈추지 않고 중앙아시아를 불바다로 만들고 있다.

모스크바는 그들의 군인들에게 “코카서스를 걷자”고 선동할 때 무엇을 원했던가. 이 불운을 사랑했던 러시아, 그러나 동정심은 그들의 몫이 아니었다. 당시 명망을 잃어가던 체첸의 두다예프 대통령은 아들이 반군에 참여해서 사망한 뒤 갑자기 순교자의 후광을 업고 민족의 영웅으로 부활했고, 코란에 손을 얹은 체첸 시민들은 자유수호를 위해 피의 맹세를 했다.

그리고 러시아와 세계 전역으로부터 피어오른 회교도들의 동정심은 체첸에 승리를 안겨다 주었다. ‘대제국’을 반대하는 러시아와 세계 시민들의 동정심은 이 작은 공화국의 손을 들어주었다. 비록 그것이 부적절하고 반문명적인 논리에 뿌리를 둔 것이었더라도.

“저항하는 나라는 쳐부술 수 없다.”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체첸에서 러시아는 다시 배우고 있는 것일까? 포탄이 난무하고 시민들은 죽어갔다. 체첸반군보다 숫적으로 훨씬 우세했던 러시아군은 힘을 잃어갔다.

2년 뒤 그들은 불명예스럽게 철수했고, 체첸은 체첸대로 열망했던 독립을 얻지 못했다. 4년 전 러시아군이 체첸으로부터 철수하던 날, 한 러시아 군인은 감격했다. “너무도 끝나기를 열망했던 악명높고 불가사의했던 체첸전쟁이 마침내 끝났다.”

그러나 러시아군이 평화와 화합을 위해 철수했다던 체첸, 가엾게도 그건 자기기만이었다. 전쟁은 계속되었다. 다시 국경은 불타올랐다. 이어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기관총소리가 퍼져나갔고, 폭음이 진동했다. 체첸의 마약조직들은 세력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인신매매, 거대한 재정음모와 위조달러에 걸려 있던 체첸반군의 수익원은 모스크바의 아파트에서 또 변경지역에서 시민을 인질로 잡아가는 납치사업으로 넓혀졌다.

1999년 8월, 체첸반군들은 자진해서 러시아 땅으로 들어왔다. 5천여명의 바사에프와 캇탑반군들이 러시아연합의 일부인 인접 다게스탄의 정통회교를 방파제 삼아. 또 수천명의 체첸난민들도 러시아로 몰려들었고, 수천명의 체첸 시민들은 러시아의 보복탄과 자신들의 동료 와하비스의 공격을 피해 달아났다.

공포심에 떠는 러시아와 체첸의 시민들

(사진/“누가 체첸전쟁을 끝났다고 말하는가.” 참수된 체첸전사의 머리)
러시아는 반군들의 냉소적이고 잔혹한 미증유의 공격에 더이상 관용을 배풀 수 없었고, 결국 젊고 야망있는 스파이 출신의 블라디미르 푸틴을 옐친의 후임자로 뽑았다. 푸틴은 테러리스터들의 고유언어인 ‘무기의 언어’ ‘폭탄의 언어’로 체첸과 회담했고, 그 공격성은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가장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1994∼96년의 제1차 체첸전쟁과 비교해서 제2차 체첸전쟁은 모든 것이 달라졌다. 공격자는 러시아 정부군이고, 현재 그들은 반군들의 다게스탄공격을 저지하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군의 군사작전에 따른 시민들의 희생은 두다예프의 무법천지 1차전쟁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1차체첸전쟁 때와는 달리, 현재 모스크바에서는 시민들의 희생에 대한 책임을 반군들에 묻는 여론이 높아가고 있다. 이건 체첸반군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여론은 체첸의 시민 희생보다는 러시아 시민들의 가정에서 증폭되는 공포심에 주목했고 마침내 체첸전쟁의 위상은 급격히 변해갔다. 러시아는 테러를 예방할 수 없었다. 집을 폭파하면 다음은 버스와 도심의 역으로 이어졌고, 결국 잔인했던 ‘9월의 폭탄’으로 시민들은 체첸을 향한 동정심을 거두어들이고 말았다. 모스크바에서는 평화롭게 잠자던 420여명의 늙은이와 아이들이 두번의 폭탄테러로 숨졌다. 볼고돈스크에서는 42개 빌딩 또는 4601개의 아파트가 한밤중에 폭파당했다. 그럼에도 또다른 폭탄테러가 준비되고 있었다. 모스크바 폭탄테러가 있었던 며칠 동안 곳곳에 설치된 13t이 넘은 폭탄들을 발견했다. 테러의 파편들은 현재 러시아 전역으로 흩날리고 있다. 머지않아 또다른 폭탄테러와 광적인 흥분은 시작될 것이다.

체첸반군들은 무엇을 원하고 있는 것일까? 체첸마을에 대한 폭격과 무고한 시민들의 죽음에 대한 그들의 보복인가? 아니면, 체첸전쟁과 전혀 상관없는 러시아 시민들을 위협해 정부가 군인들을 체첸으로부터 철수하도록 압력을 넣겠다는 뜻인가.

4년 전 러시아의 대다수 시민들은 체첸에 대한 모스크바의 군사작전에 격분하면서 반군들과 평화협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오늘날, 절망한 시민들은 자신들이 새 대통령을 지지한 가장 중요한 까닭인 “테러로부터 희생당하지 않겠다”는 점을 강조하며, 체첸반군들과 협상하지 말고 그들을 궤멸시키기를 요구하고 있다. “역사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역사가 아무것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러시아와 체첸에서는. 올 봄, 러시아 군부는 제2차 체첸전쟁이 끝났다고 선언했지만 전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새로운 지역으로 전장만 옮겨갔을 뿐 더욱 잔인하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전쟁은 오늘날의 체첸 시민들을 두개의 진영으로 쪼개버렸다. 하나는 산악의 빨치산이고 다른 하나는 노인들과 여성 그리고 아이들의 생존투쟁으로. 무고한 체첸 시민들은 고통과 죽임에 시달리며 6년을 버텨왔다. 시민들은 자포자기 상태로 반군 지원을 거부했고 동시에 러시아군의 보복 가능성을 두려워하고 있다. 임금 체불과 열악한 전쟁 환경에 찌든 러시아군이 반군들에 대한 지원을 빌미로 보복해 올 것이라는 두려움에 체첸 시민들은 몸서리를 치고 있다. 과거 와하비스의 체첸반군이 러시아군 포로들의 혀를 짜르고 목을 쳤던 것과 같은 복수의 확대재생산 같은 악몽 속에서.

남은 것은 협상? 그렇다면 제1차 체첸전쟁의 종전을 규정한 카사비율트 협정의 정신은 어디로 갔는가? 양쪽이 함께 서명했던 협정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체첸반군들이 다게스탄을 공격해 휴지가 되어버린 그 협정의 정신들은.

현재 명목상의 체첸 대통령인 모쉬카도프는 테러리스터들의 인도를 요구한 모스크바와 협상에 나설 수 없고 모스크바는 이 요구를 수행할 수 없는 그를 협상의 책임자로 인정하지 않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체첸을 완전히 봉쇄하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기술적으로도 재정적으로도 실현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체첸전쟁은 최근 회교와 정교회 사이에 갈등을 일으키는 가운데 오사마 빈 라덴을 비롯한 아랍의 극단주의자들이 체첸을 국제적인 테러베이스로 활용하겠다는 야심을 갖고 공개적인 지원을 하고 있는 형편이다.

제2의 아프가니스탄전이 될 것인가

(사진/지난99년 7월 체첸시가지에서 반군을 향해 공격을 퍼붓는 러시아군(위쪽)과 가족들의 주검을 살피는 그로즈니 시민들.무고한 시민들은 고통과 죽음에 시달리며 6년을 버텨왔다)

크렘린의 정치가에 따르면 해법은 오직 하나다. “테러리스터들을 그들의 산악기지에서 궤멸시켜버리는 방법뿐이다. 아니면 그들은 늘 새로운 길을 찾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지역에 출몰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성이 없는 말이다.

체첸전사가 모두 죽을 때까지? 모든 빨치산 참여자들을 모조리 죽여버린다면 승리할 수도 있겠지만, 이 경우는 체첸 시민들을 전멸시켜야 한다는 말과 같다. 이른바 ‘피의 복수’에 따르면 형이 죽으면 동생이 즉각 산악으로 들어가 형의 뒤를 잇고, 아이들은 러시아의 모든 것들을 증오하도록 교육받으며 자라나고 있는데….

결론을 말한다면, 러시아군은 불운하다. 오랜 전시체제로 많은 희생을 당했고 막대한 전비를 지출했지만, 체첸으로부터 필연적인 철수로 결국 이 상황을 끝내게 될 것이다. 미군이 베트남에서 철수했던 것처럼, 소비에트군이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철수했던 것처럼.

그러나 아직 평화적인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협상의 조건들이 성숙되지 않았다. 러시아군의 피로 얼룩지지 않은 체첸반군을 찾아내야 하고, 체첸 시민을 피로 물들이지 않은 러시아군을 동시에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체첸의 복구를 위해 새로운 지도자로 선정된 체첸지사 아크마드 카디로프와 부지사 비스란 간타미로프가 내전의 가장자리에서 자신들의 세력 다툼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 속에서, 러시아는 체첸 시민들한테 줄 독립과 자유를 이제 준비해야 할 시간이 왔다. 협상을 즐거워하지 않는 극단주의자들과 테러리스터들을 아내는 방도를 찾는 것과 동시에.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