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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차베스가 중산층을 엿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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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2-2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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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영석유회사 파업과 반차베스 시위로 흔들리는 베네수엘라 사태의 진상을 찾아서

사진/ 12월11일 일어난 반차베스 시위. 10월 이후 이런 집회는 거의 매일 계속됐다. (GAMMA)
12월14일 수십만명의 베네수엘라 반정부 시민들은 수도 카라카스 거리를 점령했다. 이들은 대통령에게 즉각 사임과 조기 선거실시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고 요구하며 거리를 행진했다. 그들은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1912년 4월15일에 대서양에서 침몰한 타이타닉호의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다름없다고 조롱했다.

“대통령은 현실감각을 완전히 상실했다!” 반대파 연사 가운데 한명이 외쳤다. “일보 후퇴도 없다!” “사이코는 물러가라!” 군중이 화답했다. 이날 시위를 취재한 한 외신기자는 “12월2일 총파업이 시작된 이래 최대 시위며 라틴아메리카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 가운데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이날 시위는 베네수엘라 중산층의 단결을 과시한 시위였다”고 말했다.

석유회사 민영화를 원하는 미국


지난 4월11일 47시간의 군사 쿠데타로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석유의 나라 베네수엘라가 다시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군사 쿠데타 이후 잠잠했던 수도 카라카스 거리가 다시 시위대로 넘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0월 중순부터였다. 쿠데타 실패 이후 대통령이 평화적으로 사임할 것을 바란다고 발표한 반정부 세력들은 민주화추진위원회를 만들어 재결집했다.

차베스 대통령이 등장하기 전 40년간 베네수엘라를 교대로 통치하며 부정부패와 불평등으로 국민의 원성을 산 우파 기독민주당과 사회민주주의정당 ‘민주행동’을 비롯한 야당세력들이 다시 모여들었다. 민주행동은 대통령을 정신질환자로 취급한 정신과 의사의 진단서를 공개했다. 자본을 해외로 유출하면서 좌파 대통령에 맞서왔으며, 초헌법적 전횡을 휘두르다 쫓겨난 쿠데타 당시 임시 대통령 카르모나를 배출한 자본가 단체 페데카마라스도 결합했다.

40년간의 양당체제 당시 부패로 악명을 떨친 베네수엘라 노동자 총연맹(CTV)도 합류했다. 베네수엘라 노동자 총연맹의 주요 간부들은 대부분이 민주행동 당원들이다. 그리고 쿠데타 당시 국민을 선동했다고 비판받은 모든 주요 신문매체들과 네개의 민영방송채널이 반대파의 주장을 확성하기 시작했다. 한 외신기자는 반정부 세력에 대해 “양당체제의 잔당들, 양의 탈을 쓴 늑대들, 그리고 진정으로 민주주의를 바라는 사람들이 섞여 있다”고 논평했다.

반대세력의 중심에는 독점 공기업 베네수엘라 석유회사가 놓여 있다. 현재 베네수엘라 석유회사의 파업을 주도하는 세력은 상층 간부그룹들이다. 베네수엘라 석유회사는 규모로 보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석유회사며, 다섯 번째로 석유를 많이 수출하는 회사다. 올 초의 쿠데타도 이 석유회사의 파업에서 시작되었다. 석유수출 수익금을 전액 국고에 귀속하겠다는 차베스 대통령의 결정에 간부진들이 맞서자 그는 전격 해임으로 응수했다.

국영석유회사의 전 간부진들은 회사의 현대화를 위해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일부는 민간자본을 영입하는 계획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마 그 과정에서 라틴아메리카 어디서나 그렇듯 부패가 있었겠지요. 그런데 차베스 대통령은 공공재정의 확보를 목표로 석유가격의 상승을 주도하기 시작했어요. 이전 간부들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어요. 미국은 당연히 국영석유회사의 민영화를 원하겠지요.” 한 중남미 베테랑 기자의 지적이다.

그러나 이들은 차베스 대통령 집권 이래 늘 대통령에 맞서온 세력이었다. 이번 사태가 결정적으로 과거와 다른 것은 중산층의 폭넓은 결집이다. 헌법학자이자 변호사인 카를로스 에스카라는 “차베스의 가장 큰 실수는 중산층을 엿먹인 것”이라고 말했다.

“차베스는 너무 성급했다”

사진/ 4월에 일어난 군사쿠데타로 위기를 맞았으나 극적으로 권좌에 복귀한 차베스 대통령. 국영석유회사 노조의 파업으로 다시 벼랑 끝에 몰리고 있다. (SYGMA)
베네수엘라 부유층은 붉은 베레모를 쓰고 공격적으로 연설하는 대통령의 스타일만을 싫어한 것이 아니다. 거의 100%에 이르는 볼리바르화의 평가절하와 국내총생산의 7% 추락으로 큰 손해를 입었다. 미국 출신 사회학자 그레고리 윌펏은 “이런 경제 추세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반대로 빈민계층보단 중산층에 더 큰 영향을 주었다”고 지적했다.

볼리바르화 평가절하는 지난 20년 동안 점점 가난해진 중산층에 더욱 큰 영향을 미쳤다. 이들 중산층은 그동안 달러로 자동차·컴퓨터를 구입하고 미국에서 휴가를 보낸 계층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것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정부 관리들은 “그것은 이 정부가 베네수엘라 역사상 처음으로 덜 가진 사람들을 걱정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대통령은 2400만 베네수엘라 국민 가운데 자신을 반대하는 세력은 20%의 특권층에 지나지 않는다고 공격하고, 자신을 가난에 허덕이는 80%의 대통령이라고 힘주어 강조해왔다.

지금은 정치적 위기로 인해 가려졌지만 차베스는 교육과 의료 분야에서 예산을 두배로 늘린 베네수엘라 최초의 대통령이다. “차베스는 수십년간 계속된 소외에 맞선 반항, 즉 빈민계층의 사회참여 의식을 각성시켰지요.” 베네수엘라 중앙대학의 사회학 교수 앙헬 벨라스케스는 말한다. “그러나 이것을 추진하는 내내 정치적 대결로 시끄러웠고, 장관들의 잦은 교체와 무능력한 인사발령으로 시끄러웠어요.” 베네수엘라 주재 한 외교관의 발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사회를 두 동강 냈다는 것입니다. 조화롭게 근본적인 개혁 등을 이뤄낼 수 있었을 텐데. 성급하고 공격적으로 일을 처리했습니다.”

베네수엘라엔 정치범이 한명도 없고, 표현의 자유는 완전히 보장되어 있다. 차베스 대통령의 통치를 비민주적이라고 말할 근거는 없다. 그러나 현재 베네수엘라가 권위주의 체제로 기울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차베스 대통령이 국가의 모든 권력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두려움으로 민주적 균형을 강조하는 이들도 반차베스 시위대열에 합류했다.

“내 생각에 우고 차베스의 가장 큰 실수는 국가정치를 추진하는 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불필요하게 국민을 갈라서게 하고 있다. 그의 정책들이 급진적인 것은 아니다. 경제정책도 국제통화기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범죄와 빈곤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경제는 7%나 추락했다. 석유부문의 수입이 수백만달러가 되는데도.” 중남미 베테랑 기자는 이렇게 진단한다.

‘피의 크리스마스’ 올 것인가

미국은 베네수엘라가 조기선거를 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한발 물러서 사임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를 하는 것이 좋다고 충고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1999년 국민투표를 통해 통과된 헌법에 따라 내년 8월 국민투표를 개최할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그러나 반정부 세력은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으니 내년 1/4분기 안에 조기선거를 하자고 주장한다. 미주국가기구 사무총장 세사르 가비리아는 선거를 통해 베네수엘라가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중재노력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아무런 수확물이 없다. 베네수엘라 군은 현재까지 별 동요 없이 차베스 대통령의 명령을 따르고 있다.

국민의 50%가 총을 가지고 있다는 베네수엘라. 반대파는 지난 4월11일 19명 시민의 생명을 앗아간 유혈현장인 대통령궁 미라플로레스로의 행진을 피해왔지만 이제 곧 미라플로레스로 행진하겠다고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그곳엔 차베스 대통령 지지자들이 대통령을 지키겠다고 모여 있다. 또다시 대규모 유혈충돌이 발생할 것인가 그때 군은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최대의 명절인 크리스마스로 향한 길목에서 카라카스 시민들은 가슴을 졸이고 있다.

멕시코시티=박정훈 전문위원 jhpark200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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