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선언 이후 일본인들의 규탄 대상이 된 총련계 재일동포들의 고통과 울분
9월17일 북-일 간의 평양선언이 있은 지 3개월여. 일본에 사는 재일동포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민족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재일동포들, 특히 조선적을 가진 이들의 삶은 회의와 공포 혹은 알 수 없는 분노에 휩싸인 3개월이었음에 틀림없다.
평양선언의 골자는 일본은 식민지배를 사과하고, 북한은 일본인 납치문제를 인정하고 유감을 표명함으로써 양국 간의 문제를 마무리짓고 본격적인 수교협상에 돌입한다는 것이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산하 현 단위 본부와 각 지역 재일동포 상공회는 평양선언이 있은 다음날 긴급회의를 열었다. 9월26일치 <아사히신문>에 의하면, 이 자리에서 특히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총련 집행부에 대한 비판이 연이어 터져나왔다고 한다. “본국에도 총련에도 배신당했다.” “총련의 현 집행부는 퇴진해야 하는 것 아닌가.”
“피해자였던 우리는 지금 가해자”
이들의 내부비판은 표면화돼 나타나기도 했다. 재일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는 오사카를 중심으로 변호사·회계사·인권활동가 등으로 구성된 ‘재일본조선인인권협회 긴키지방본부’는 지난 9월25일 성명을 냈다. “재일본 조선인에의 차별과 편견, 조선학교 학생들에 대한 박해”에 대한 비난에 이어, 납치문제를 “조-일의 이상한 국가관계하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규정지으면서도, “조선(북한)이 책임을 면할 순 없다”며 본국을 정면에서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일본인 납치행위에 대한 항의와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식민지 지배의 피해자 자손인 우리들이 지금 ‘가해자’의 입장이기도 하다는 것을 통감하면서 희생자와 그 가족들에게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하고 싶다”고도 했다. 하지만 총련은 공식적으로는 “나라를 대표해 의견을 말할 수 없다. 그럴 자격도 없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총련의 태도에 대해 최근 발간된 잡지 <논좌> 2003년 1월호에서 총련 산하 ‘재일본조선인도쿄도상공회’ 리수오 부회장은 인터뷰를 통해, 현 총련 집행부가 관료화되었다며 지금까지의 실책과 동포 이탈의 책임을 지고 현 집행부가 퇴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인사권을 동포에 이관하고 무기명 선거를 통해 대표를 선출해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일본인들에 의한 협박과 이지메도 잇따랐다. 조선학교 여학생의 치마를 찢는 사건이 일본 각지에서 일어난 데 이어, 11월9일 총련과 일본 사민당에는 ‘조선 정벌대’ 명의의 협박문과 총탄이 전달되었다. 11월16일에는 다시 “총을 쏴버리겠다. 조선학교 학생을 표적으로 삼겠다”는 협박전화도 걸려왔다. 일본 매스컴 역시 납치사건을 보도하면서 총련에 소속된 사람들은 모두 스파이라는 식의 인상을 주는 내용을 연일 내보냈다. 총련쪽이 북쪽 공작원 사건에 35건이나 관여했다는 지난 12월13일치 <산케이신문> 보도를 비롯해 텔레비전과 각종 주간지들은 총련계 재일동포들에 대한 인신공격에 가까운 기사를 수도 없이 방영 보도했다. 납치사건을 계기로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자성만 하기에는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은 평양선언이 있은 지 대략 3개월 만의 일이었다. 이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들이 제일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우리가 누구 때문에 끌려와 이 고생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일본인들의 이지메 극에 달해
‘평양선언을 말하고, 재일 조선인의 재생을 위해, 식민지 지배의 책임을 묻는다!’라는 집회가 열린 지난 12월14일 한국YMCA에는 600여명의 재일동포들이 참석했다. 그동안의 충격과 울분들을 털어놓고 얘기해보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자리였기 때문인지 복도와 창가 할 것 없이 바닥에 주저앉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취재는 엄격히 제한되었다. 이를 빌미로 또 다른 이지메가 쏟아질 것을 우려한 주최쪽은 취재사를 제한했음은 물론, 일반인을 향한 사진촬영도 금지했다. 인터넷에 당사자의 사진이 올라 문제시되는 것을 우려한 조치였다. 최근 얼마나 많은 유형무형의 피해를 입었는지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9·17 선언으로 식민지 지배 이래 조선적을 가진 재일동포들의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전혀 그 정반대였다.” “65년 남쪽의 한일조약 체결과 마찬가지로 ‘식민지 문제’가 제거된 채, 왜 경제협력 문제만이 제기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납치문제에 관한 일본 매스컴들의 악의적 보도로 재일동포들은 움츠러들고, 심지어 공포에 떨고 있다. 왜 그래야만 하는가. 우리는 일본의 피해자일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시점에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사회자의 집회 취지 설명이다.
제기된 문제는 대략 세 가지. 납치사건 이후 일본 매스컴의 태도와 일본 정부의 태도, 그리고 식민지 문제와 관동대지진 문제, 마지막으로 자기반성이다. 재일동포 원로작가인 김석범씨는 특히 “일본은 언제나 자신이 제2차 세계대전의 피해자라고만 생각하고 있다. 어떻게 조선에 대해서도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만 기억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식민지 지배문제와 납치문제가 동일선상에서 논의될 수 없다는 데는 그날 참석한 사람들 모두 같은 목소리였다. 오쓰마여자대학의 정영혜 교수는 특히 관동대지진 문제를 제기했다. 일본인들에 의해 무수히 많은 조선인들이 학살당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도 이후에도 일본 정부가 이들에 대해 언제 사과 한번 제대로 한 적이 있느냐는 것이다. 일본에 강제로 연행돼와 온갖 강제노역과 차별과 멸시를 받아온 자신들과 그 자손들에게 사과의 말은커녕 어떻게 그토록 손가락질만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를 작가 서경식씨는 3개의 시간성을 들어 설명했다. 식민지 시대의 시간성, 70년대의 시간성, 그리고 2000년대라는 글로벌 시대의 시간성. 재일동포들은 이 3개의 동시적 시간성 속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식민지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한 재일동포들은 영원히 식민지 시절의 고통스런 주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얘기다.
납치문제에 일본 책임은 없는가
자유발언들이 쏟아진 것은 2부 행사가 시작되면서부터였다. 나고야에서 올라온 한 중년 남성은 “한국에선 북파공작원들이 가스통에 불을 붙여 시내 한복판에서 데모를 한다고 들었다. 남북이 분단된 슬픈 상황하에서 서로 스파이를 보내고 각종 공작을 하곤 했는데, 납치문제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본다. 하지만 분단을 누가 만들어냈는가. 일본이 이 문제에서 과연 무죄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말했다. 도쿄에서 온 또 다른 중년남성은 “일본 매스컴이 일본의 국익에만 근거해 보도하고 있어 안타깝지만 납치문제는 국제범죄로 마땅히 규탄받아야 하며 철저히 규명돼야 한다. 북쪽 정권은 박정희 군사독재정권보다 더 심한 군사독재정권인데, 올바른 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지려면 북쪽 정권에 더 민주적 정권이 들어서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자성과 분노가 중첩된 최근 재일동포들의 목소리가 연이었다. 하루아침에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해버린 자신들의 모습에 대한 당혹스러움과 울분이 절절하게 묻어났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리쓰메이칸대학의 한 학생은 자신을 가리켜 ‘구 식민지 출신자’라고 소개했다. 수교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붙여진 ‘조선적’이란 이름에 딱 어울리는 표현이었다. 최근 일본 국적이나 한국 국적을 많이 취득하지만, 북쪽과 일본이 수교를 한다 해도 이들 가운데는 북쪽의 국적이 아닌 조선적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이들도 많다. 조선적을 지닌 재일동포들의 문제가 그대로 존재하는 한, 식민지 문제 청산을 이루겠다는 북-일 국교정상화 문제도 어쩌면 한갓 도로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도쿄=신명직 전문위원 mjshin59@hanmail.net

사진/ 2003년 재일선언위원회가 주최한 '9·17을 말하고 재일 조선인의 재생을 위해, 식민지 지배 책임을 묻는다!' 회의 전경. (신명직)
이들의 내부비판은 표면화돼 나타나기도 했다. 재일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는 오사카를 중심으로 변호사·회계사·인권활동가 등으로 구성된 ‘재일본조선인인권협회 긴키지방본부’는 지난 9월25일 성명을 냈다. “재일본 조선인에의 차별과 편견, 조선학교 학생들에 대한 박해”에 대한 비난에 이어, 납치문제를 “조-일의 이상한 국가관계하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규정지으면서도, “조선(북한)이 책임을 면할 순 없다”며 본국을 정면에서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일본인 납치행위에 대한 항의와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식민지 지배의 피해자 자손인 우리들이 지금 ‘가해자’의 입장이기도 하다는 것을 통감하면서 희생자와 그 가족들에게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하고 싶다”고도 했다. 하지만 총련은 공식적으로는 “나라를 대표해 의견을 말할 수 없다. 그럴 자격도 없다”는 입장이다. 이 같은 총련의 태도에 대해 최근 발간된 잡지 <논좌> 2003년 1월호에서 총련 산하 ‘재일본조선인도쿄도상공회’ 리수오 부회장은 인터뷰를 통해, 현 총련 집행부가 관료화되었다며 지금까지의 실책과 동포 이탈의 책임을 지고 현 집행부가 퇴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인사권을 동포에 이관하고 무기명 선거를 통해 대표를 선출해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일본인들에 의한 협박과 이지메도 잇따랐다. 조선학교 여학생의 치마를 찢는 사건이 일본 각지에서 일어난 데 이어, 11월9일 총련과 일본 사민당에는 ‘조선 정벌대’ 명의의 협박문과 총탄이 전달되었다. 11월16일에는 다시 “총을 쏴버리겠다. 조선학교 학생을 표적으로 삼겠다”는 협박전화도 걸려왔다. 일본 매스컴 역시 납치사건을 보도하면서 총련에 소속된 사람들은 모두 스파이라는 식의 인상을 주는 내용을 연일 내보냈다. 총련쪽이 북쪽 공작원 사건에 35건이나 관여했다는 지난 12월13일치 <산케이신문> 보도를 비롯해 텔레비전과 각종 주간지들은 총련계 재일동포들에 대한 인신공격에 가까운 기사를 수도 없이 방영 보도했다. 납치사건을 계기로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자성만 하기에는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은 평양선언이 있은 지 대략 3개월 만의 일이었다. 이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들이 제일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우리가 누구 때문에 끌려와 이 고생을 하느냐”는 것이었다. 일본인들의 이지메 극에 달해

사진/ "어떻게 일본은 조선에 대해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만 기억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재일동포 소설가 김석범씨의 연설 모습. (신명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