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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타밀족에 자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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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10-0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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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보’ 스리랑카경제를 회복시킬 열쇠는 민족분쟁 종식과 일괄적 종합평화안

훼이잘 사마스(Feizal Samath)

1952년 스리랑카에서 태어나 1977년부터 스리랑카 국내외 언론사의 기자와 편집장을 거쳐 <로이터통신>의 콜롬보 특파원과 봄베이 지국장으로 13년간 일했다. 현재는 로마에 본부를 둔 제3세계 전문 뉴스통신사인 <인터프레스서비스>(IPS)와 미국의 파이낸셜 뉴스 에이전시(FNA), 카타르통신사 그리고 말레이시아통신사의 콜롬보 겸임 특파원으로 왕성한 취재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정치·경제영역의 취재를 넘어 여성과 어린이를 비롯한 사회문제로도 눈길을 돌리고 있다.


“빈민이나 노인들을 위한 교육·의료체계가 말레이시아나 한국, 싱가포르보다 훨씬 높았다.” 반세기 전, 아시아에서 가장 높았던 스리랑카의 사회지표를 말한다면 그렇다.

그러나 아시아의 ‘호랑이들’이 경제·사회개발의 큰 걸음을 내디디는 동안 스리랑카경제는 느림보 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무엇이 문제였던가? 대개의 시민들은 정치가 이 나라를 파멸시켰고 민족분쟁이 그 개발의 시기를 망쳤다고 여긴다. “다른 나라들이 급속히 발전하는 동안 우린 정치가들이 이 나라를 파괴시켰고 썩어문드러지게 만들었다.” 타밀족 출신의 한 노교수는 한때 아시아의 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스리랑카의 폐허를 적시하며 한탄한다.

1주일 만에 400명을 산채로 불태워 죽여

(사진/민족분쟁은 스리랑카 국가발전을 지체시키는 가장 큰 장애물이다.수도 콜롬보의 금융센터가 타밀반군의 폭탄테러를 맞은뒤 부상자들이 후송되고 있다)
민족분쟁은 결정적으로 해외투자가들이나 관광객들을 쫓아버렸고 국가발전을 지체시키는 가장 큰 장애물이 되었다. “1983년의 인종폭동만 없었다면 스리랑카는 싱가포르나 아시아의 정상급 국가들과 경쟁하며 번영을 누렸을 것이다.” 외국인들의 투자가 가장 활발했던 1980년대 초, 분방한 스리랑카 자유경제정책의 설계자이자 재무장관이었던 론니 데 멜의 안타까움이다. 1983년 7월 매이헴에서 날뛰던 싱할리족 폭도들은 1주일 만에 400여명이 넘는 타밀족 시민들을 산채로 불태워 죽였다. 이 폭동의 불꽃은 결국 민족분쟁으로 옮겨붙어 7만5천여명이 웃도는 시민과 정부군 그리고 타밀반군의 목숨을 앗아갔고 오늘날 스리랑카를 황폐하게 만들고 말았다.

스리랑카의 인구 분포는 싱할리족 74%, 타밀족 18% 그리고 회교도 7%로 이루어져 있고, 싱할리족이 주류를 이루는 불교도에 이어 기독교, 힌두교, 회교가 뒤를 잇고 있다. 이런 가운데 스리랑카의 원주민으로 여기는 소수민족 타밀은 다수민족 싱할리에 맞서 교육, 공무원임용, 토지, 가옥정책의 평등한 권리를 요구해왔다. 이들의 억압된 통곡은 스리랑카 북부와 동부를 터전삼아 정부군과 교전하며 ‘타밀국’의 분리독립을 요구해온 타밀해방타이거(LTTE)와 같은 전투적인 무장단체들의 뒷심으로 변해갔다.

1983년 인종폭동으로 결국 스리랑카의 사회적 통합은 깨져버렸고 이제 싱할리족 대 타밀족, 회교 대 타밀족, 싱할리족 대 회교라는 분열과 대립구도만 남아 있다. 현재 스리랑카에서는 타밀족이 외쳤던 권리요구와 희망들이 과거와 비교해서 더욱 강경해지는 가운데, 많은 싱할리족 시민들도 타밀족이 다수민족인 자신들로부터 정당한 권리를 억압당해왔고, 강경파가 주도하는 군부와 정부의 강한 싱할리민족주의 색채 탓으로 반군들의 공세가 확대되고 분쟁이 격화되었다는 합리적인 믿음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싱할라 울루마야(싱할리족의 문화계승을 표방한 단체)와 같은 극단적인 기류도 형성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든 과거 정부든 타밀족에 너무 많은 것을 내주었다. 스리랑카는 싱할리족 불교도의 나라인데 우리 권리를 타밀족에 너무 침식당했다.” 싱할라 울루마야의 발기인 참파카 라나와카는 선거전에서 이렇게 말하고 다닌다. “타밀족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겠다는 현 정부의 의지를 단념시켜 민족문제로 국가가 쪼개지는 것을 막겠다”는 구호를 내걸고 1년 전 싱할리 중산층을 배경삼아 결성된 이 정당이 225석을 선출하는 이번 10월10일 의회선거에 처음으로 참여하여 몇석 정도는 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당의 결성이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1980년대 예닐곱개 타밀정당들이 주로 자신들의 권리수호를 내걸고 창당되었던 것처럼, 또 회교도 정당들도 같은 기치 아래 창당되었듯이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현재의 정치구도와 정치인들의 삐뚤어진 야심에 있다. 역설적이게도 현재 두개의 주요 정당이 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타밀을 비롯한 소수 정당들의 투표에 의지했지만, 싱할리 강경파들에 의해 결국 소수당들은 평등하게 대우받지 못한 채 고립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10월10일 선거와 평화회담의 향방

(사진/훈련중인 타밀족 여전사들)
여당인 국민동맹당(PA)과 야당의 주축인 국민연합당(UNP)이 1200만명의 유권자 가운데 각각 약 40%씩 차지했고 나머지 군소정당들이 20%의 표를 얻었다. 1994년 8월 국민동맹당이 정부를 구성할 당시, 그들은 타밀과 회교 소수당의 지지표에 의지했고 다가올 10월10일 선거에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여겨진다. 만약 야당인 국민연합당이 승리할 경우에도 정부 구성을 위해 이들은 소수 정당들을 꾀어 취약한 기반을 강화하면서 연립정부를 구성하게 될 것이다.

어쨌든 근본적으로 차이점이 없는 이 두 정당 사이에서 국민동맹당의 현 쿠마라퉁가 대통령이 국민연합당의 당수 라닐 위크레마싱헤보다는 시민들 사이에 좀더 지지를 얻고 있는 분위기다. 둘 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 타밀타이거와 평화협상을 하고 경제개혁의 지속을 원하지만, 정치·경제적 사안을 다루는 의지에서는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쿠마라퉁가는 위크레마싱헤보다 결심이 더 굳은 인물이다. 적어도 타밀족과 평화적으로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협상에서는….” 정치해설가이자 국민평화위원회 언론담당 책임자인 제한 펠레라는 말한다. “쿠마라퉁가는 타밀족이 평화의 장으로 되돌아오게 하기 위해 원대한 정치개혁을 준비해온 유일한 인물이다.”

국민연합당과 국민동맹당은 과거에 모두 타밀족과 평화회담을 벌여왔지만 실행적인 해법을 찾는 일에는 실패했다. 분쟁의 핵심 관련자인 인도와 맺은 평화조약도 역시 실패로 돌아갔다. 1987년 인도군을 타밀지역에 중립군으로 파견하는 데 초점을 맞췄던 이 조약도 결국 몇년 뒤 별다른 결실을 거두지 못한 채 실패로 끝났다.

그렇다면 분쟁 종식을 바라는 상식적인 시민들의 마음속에는 어떤 해법이 담겨 있을까? 높아만 가는 범죄율, 치솟는 유가와 생필품 가격 속에 고통받는 시민들, 사회전체가 전시체제로 편입되면서 전쟁물자 조달을 위해 특별세가 부과되어 초죽음 상태에 빠진 시민들, 미래가 달린 교육개혁의 목표가 뒷전으로 밀려나버려 희망을 잃은 시민들, 바로 이 시민들의 마음이다.

그 핵심은 중앙정부 책임 아래 타밀족의 지역자치와 자결을 인정하는 일괄적인 종합평화안의 제의다. 이 제안은 이미 과거에도 협상테이블에 오른 적이 있지만 싱할리족과 타밀족 사이의 불신감 때문에 결렬되었다. 타밀족은 이 협상안이 실행에 옮겨지지 않을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정부가 뭔가를 우리 타밀한테 제의할 때마다 즉각 싱할리 광신적 애국주의 세력이 나타나 방해를 한다.” 타밀당의 총선 후보자 달마링암 싯달탄은 주장한다. 또 한편 시민들은 강조하고 있다. 정부는 타밀과 싱할리 모두의 열망에 맞는 종합적인 대책을 궁리하고 어떤 결과든 모두가 함께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동시에 정치가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장래를 걱정하는 대신 분쟁해결에 몸을 던지는 진정한 정치가다운 태도를 보이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거국내각 구성을 바라는 시민들

(사진/타밀족들은 스리랑카 북부와 동부를 터전삼아 분리독립을 요구하며 정부군과 교전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볼 때, 맞은편의 타밀반군쪽도 전쟁종식을 향한 협상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장애물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 스리랑카 외부 세계의 재외 타밀족 단체들로부터 전쟁물자를 지원받고 전쟁비용을 기부받고 있는 현실을 제거해 아직 준비되지 못한 평화회담의 재개조건들을 상호성숙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국제사회는 타밀반군들에 정부와의 협상재개를 설득하고 재원을 보급하는 유럽 자본단체들의 사무실을 폐쇄시키며 압력을 가해야 할 시점이다. 이건 물론 유럽이 스리랑카 정부로부터 스리랑카의 일부 사람들이 아닌 모든 시민들이 평화종합대책안을 지지하고 있다는 확고한 신호를 받을 때 가능한 일이겠지만.

이 모든 평화적 타결의 조건을 확보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자 최대의 희망으로 국민동맹당과 국민연합당 그리고 모든 군소정당들이 함께 참여하는 거국내각의 구성을 바라는 시민들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스리랑카에서 분쟁을 영원히 종식시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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