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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악당들이 가장 많이 사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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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2-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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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언론이 전하는 아르헨티나 빈곤의 참상… 사회 지도층은 손대기 불가능할 정도로 썩어

사진/ 아르헨티나 빈민가족들은 쓰레기 매립장 근처에서 살아간다. 아이들은 영양실조로 죽어가고 있다. (GAMMA)
지평선에 닿을 듯한 너른 목장에서 전체 인구 3600만보다 많은 암소들과 전체 인구 수만큼의 양들이 한가로이 뛰어노는 나라. “돌멩이 하나를 아무 곳에나 던져보라! 땅이 네게 맛난 열매를 되돌려줄 것이다”는 전설의 나라. 이 풍요로운 나라에서 4초당 한명의 시민이 빈민으로 추락하고 하루에 50명 이상의 아이들이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다는 소식에 지금 전 세계가 경악하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북서부에 자리잡은 투쿠만주는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작은 주로 130만명이 살고 있다. 제당공장으로 유명하며 세계 최고의 레몬 생산지로 이름 높은 이곳을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공화국의 정원’이라고 부른다. 이 지역의 비극은 최근 전 세계 언론의 초점이 되었다. 스페인어권의 저명한 일간지 <엘파이스>는 이 참상을 연재기사로 보도했다.

아이들이 쉴 새 없이 죽어나간다


반경 200km 내에 자리잡은 유일한 병원, 투쿠만시의 아기 예수병원에서 생후 9개월의 아기 로돌포 루이스가 심각한 영양결핍으로 죽었다. 의사들은 나무로 된 작은 관을 구해 싸늘히 식은 아이를 눕힌 뒤 역시 영양결핍에 시달리고 있는 부모들에게 건넸다. 그가 잠시 누웠던 병상은 금세 다른 아이 차지가 되었다. 주정부 청사에서부터 약 5km 떨어진 쓰레기 매립장 옆에 양철과 판자로 얼기설기 지은 집에서 살았던 로돌포는 돌도 채우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그는 투쿠만주에서 올해 죽은 359번째 아이가 되었다.

로돌포가 죽은 병원은 초만원이다. 릴리아나 마벨 게레로(15)는 병원 복도에서 첫딸 마르시아 루한의 진료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생후 2개월의 마르시아는 어린 어머니의 두 팔 사이에서 아주 힘겹게 숨을 쉬고 있다. “오늘은 하루에 한번씩 끼니를 때우는 공동식당에 가지 못했어요. 저녁엔 마테풀을 삶아 먹어요. 보다시피 사람들이 너무 많아 내 딸은 아직도 진찰을 받지 못했어요.”

소아과 전문의 델리시아 데디나는 하루 열두 시간 일을 하며 340명의 환자를 진찰했다. 이 병원 전체에선 매일 800건의 진찰이 이뤄지고 있는데 대부분 영양실조, 기생충, 예방접종을 하지 않아 생긴 전염병, 에이즈 등 ‘사회적 질병’에 해당하는 환자들이다. 2001년 영양실조로 입원한 환자는 8%에 불과했는데 올해는 벌써 18%를 넘어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207개의 병상으로도 환자를 수용하기가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한 병상에 두명의 환자를 눕히기도 하고, 견딜 만한 아이들은 어머니 품에서 밤을 지새운다. 죽어서든 살아서든 아이가 나가면 바로 그 자리는 다른 아이가 차지한다. 이렇게 일을 해 데디나 의사가 주정부의 보조 없이 한달에 버는 돈은 약 150달러 정도다.

영양결핍에 시달리는 빈민가족들은 쓰레기 매립장 근처에서 살아간다. 그곳엔 물도 전기도 없다. 이들의 일과는 쓰레기 매립장에서 버린 음식 찌꺼기를 찾거나 혹여 팔 것이 있나 하고 뒤지는 일이다. 10명의 아이를 키우는 수사나 파티마 파체코의 남편 후안은 1년 전 46살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녀는 생활보조금 약 40달러를 지원받는 실업가장지원정책의 수혜자가 되기 위해 서류를 접수했지만 거부당했다. 그녀가 서류심사에서 탈락한 것은 마을의 담당자들이 “오직 자기 사람들에게만 지원금을 나눠주기 때문”이다.

병원 부원장 이알 박사는 영양실조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전에 예방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의료혜택은 오직 중산층만의 것이지요. 게다가 경제위기로 노조 활동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사람들이 의약품 구입할 돈이 없게 되자 공공병원으로 밀려들고 있어요. 하지만 공공병원엔 예산도 이들을 진료할 자원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민영화로 인해 공공병원이 부족하고 공공재정이 악화된 것이 아이들이 죽어가는 사태의 핵심적인 이유라는 것이다.

바늘도둑은 처벌받아도 소도둑은…

사진/ 예금인출이 부분적으로 허용된 뒤 은행 뒤 앞에 줄을 선 시민들. 부유층은 이미 1600억달러를 해외로 빼돌렸다. (AP연합)
아이들이 이렇게 죽어가자 투쿠만의 사회단체들은 페론당 소속 주지사 훌리오 미란다를 살인방조 혐의로 고발하고 주의회가 ‘인간성에 반한 범죄’를 저지른 그에 맞서 정치적인 결단을 내릴 것을 촉구했다. 이에 주지사는 “충분한 지원책을 펼 수 없는 것은 인구 증가와 경제위기 후유증에 따른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국가경제가 산산조각난 올해 초 200만달러의 뇌물을 같은 당 소속의 의원들에게 제공했다는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연임을 금지한 주 헌법을 개정해 다시 한번 주지사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의원들의 표를 매수한 것이다.

투쿠만의 주지사는 페론당이 통제하는 아르헨티나 지방유지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그는 3년 전 투쿠만의 90만명 유권자 가운데 20만명의 지지를 얻어 당선되었다. 그때 40만명의 유권자들은 무효표를 던지거나 백지표를 던졌다. 현재 주의회도, 주 최고법원의 법관들도 그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 그러니 그가 처벌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시민이 하나도 없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반부패 검사’ 에스테반 헤레스는 페론당 소속 주의회 의원 2명을 1995년부터 99년까지 연방정부가 보낸 사회복지자금 500만달러를 착복한 혐의로 고발했다. 또 전 인간개발부 장관 후안 카를로스 레데스마 포세를 사회복지자금 80만달러를 횡령한 혐의로 기소했다. 그러나 시민들의 지지를 바탕으로 압력과 협박에 맞서 싸우고 있는 헤레스 검사조차도 이들이 처벌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 전체가 부패로 파괴되고 있어요. 그러나 바늘도둑은 구속되어 처벌받지만 소도둑들은 감옥에 가지 않습니다.”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은 주를 장악한 공무원·정치가들의 부패만이 아니다. 시사잡지 <베인티트레스>는 “아르헨티나의 주인들”인 1500명의 사업가들과 사회 저명인사들이 2001년 5월과 12월 사이에 30억달러의 자금을 해외로 유출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또한 은행 예금인출 중단결정이 내려진 뒤에도 200명은 계좌이체 기록도 정기적인 수입 기록도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들에게 자금유출과 탈세 의혹이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은행에서 예금을 인출할 수 없었던 이들의 93%는 5만달러 이하의 소액 저축시민이었고 그 액수는 57억9500만달러였다. 그러나 경제전문가들은 현재 소수의 아르헨티나인들이 무려 1600억달러를 해외 계좌에 넣어두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 액수는 아르헨티나의 공공부채 1350억달러와 국내총생산 약 1200억달러를 웃돈다.

재정파탄에는 국제통화기금도 한몫

국가의 공공재정을 파탄에 이르게 하고, 사회복지 시스템을 붕괴시킨 데는 국제통화기금도 한몫 단단히 했다. 그간 국제통화기금은 저당잡힌 채무를 해결하고 채무 체납자에게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 요구해왔는데 지난 11월18일 두알데 대통령과 22명의 주지사는 이를 수용하기로 했다. 이 조치가 이행될 경우 약 100여개 이상의 공장과 회사는 다시 문을 닫아야 할지 모른다. 이 회사들은 사주에 의해 버려지거나 폐쇄됐지만 일자리를 지키려는 노동자들의 각고의 노력으로 다시 문을 연 것들이다.

10년 전만 해도 7%에 불과했던 실업률은 신자유주의와 국제통화기금이란 말이 유행하던 지난 10년 사이에 무려 21.5%로 급상승했다. 물론 정부가 발표하는 이 공식적인 집계를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현재 아르헨티나 인구의 53%인 1850만명이 빈곤선 아래로 추락했고 이 가운데 1천만명은 극빈층이다. 이 상황 속에서 노동자들의 자율경영에 의해 회복된 회사들이 세상에 알려지자 몇몇 주정부가 경제위기로 문 닫은 회사들을 되살리기 위해 이 모델을 채용하기까지 했다.

아르헨티나의 작가 루이스 마기는 아르헨티나의 사회위기에 대해 이렇게 결론 내린다. “세계에서 1㎢당 ‘상놈의 새끼들’의 인구밀도가 가장 높기 때문이다.” 남한 면적의 28배나 되는 거대한 영토가 있지만 인구밀도가 1㎢당 13명에 불과한 나라 아르헨티나에는 못된 놈들이 가장 많이 산다는 신랄한 조롱이다.

멕시코시티=박정훈 전문위원 jhpark2001@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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