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미감정의 세계화 보여주는 퓨연구센터 여론조사…미국민은 자국 정부에 대부분 긍정적
“지난해 9·11 테러사건 뒤 세계인은 한목소리로 미국의 불행을 애통해했다. 그러나 2년이 채 지나지 않아 미국에 대한 세계인의 불만이 팽배해졌다. 오랜 동맹국인 나토 회원국은 물론, 개발도상국과 동유럽, 특히 이슬람 국가에서 미국의 이미지가 급속도로 퇴색하고 있다.”
친미국가에서도 부정적 견해 늘어나
냉전이 끝난 뒤에도 냉전적 사고는 남아 있다. ‘우리 편이 아니면 모두 적’이라는 흑백논리가 여전히 국제사회를 옥죄고 있다. 세계 유일 초강대국의 주도 아래 벌어지는 ‘성전’에 참여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여겨진다. 전 세계가 테러와의 무한전쟁에 내몰린 지금, 세계인에게 미국은 어떤 존재일까 미국의 저명한 여론조사기관인 퓨연구센터(http://people-press.org)가 지난 12월4일 ‘2002년 세계인의 인식’이라는 제목으로 내놓은 여론조사 결과는 이에 대한 해답의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연구센터가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과 공동으로 지난 7월부터 10월까지 넉달 동안 전 세계 44개국 3만8263명을 대상을 실시한 설문에서 조사 대상국 가운데 35개국에서 과반수의 국민이 미국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이를 미 국무부가 지난 2000년 부시 행정부 출범 전에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와 비교해보면 상황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이번 설문 대상국과 겹치는 27개국 가운데 20개국에서 미국에 대한 호감도가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독일과 슬로바키아·아르헨티나·인도네시아 등 7개국에서는 ‘반미감정’이 10% 이상 급등했다. ‘테러와의 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동국가를 중심으로 반미감정이 급속히 확산된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전통적 ‘반미국가’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최대 해외 원조국 가운데 하나인 요르단과 전통적으로 ‘친미국가’로 분류돼온 이집트에서도 극명히 드러났다. 요르단 국민의 75%, 이집트 국민의 69%가 미국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표시했다. 유럽에서도 영국을 제외하고는 반미감정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일방주의적 외교정책에 대해 독일인의 45%가 반감을 나타냈으며,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는 각각 58%와 76%에 달하는 국민이 미국 주도의 세계정세에 불만을 표시했다. 이번 조사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터키와 파키스탄이다. 나토 회원국이자 미국의 전통적 우방국가인 터키는 이라크전을 준비하는 미국이 전진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온갖 외교적 노력을 집중하는 곳이다. 그런데도 지난 2000년 조사 때보다 미국에 대한 호감도가 22%나 떨어져, 전체 국민의 30%만이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테러와의 전쟁’을 통해 미국의 혈맹으로 자리잡은 파키스탄에서도 미국에 호감을 표시한 국민은 단 10%에 그쳤다. 젊은층 중심으로 반미 확산
미국이 세계적 차원에서 빈부격차를 늘리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절대 다수의 세계인이 공감하고 있다. 프랑스(69%)·독일(70%)·이탈리아(58%)·영국(53%) 등 유럽 국가는 물론 레바논(73%)·요르단(70%) 등 중동국가와 볼리비아(74%)·아르헨티나(67%)·브라질(60%) 등 남미국가에서도 이 같은 인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또, 일본(69%)·한국(63%)·베트남(63%) 등 아시아 국가와 앙골라(56%)·아이보리코스트(51%)·말리(49%)·세네갈(49%) 등에서도 미국이 부의 편중 구조를 고착화시키고 있음을 질타했다.
전 세계적으로 반미열풍이 젊은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것도 확인됐다. 동유럽과 남아메리카에서는 아직도 주로 노년층에서 미국에 대한 반감이 높게 나타난 반면, 미국의 이웃나라인 캐나다에서는 30살 이하 젊은층에서 노년층에 비해 반미감정이 20% 이상 높게 나타났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체코와 방글라데시, 우리나라에서도 젊은층의 반미감정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특히 우리나라는 방글라데시와 함께 아시아에서 가장 반미감정이 거센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 국민 73%는 미국의 외교정책에 반대하며, 미국 주도의 테러와의 전쟁에 대해서도 전 국민의 24%만이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앤드루 코헛 연구센터 소장은 “비이슬람 국가로는 한국과 아르헨티나만이 테러와의 전쟁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가 높게 나타났다. …한국 정부와 부시 행정부 사이에 대북정책의 차이가 이런 결과를 낳은 주요 원인이 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퓨연구센터가 지난 11월 초 영국·프랑스·독일·러시아 등 6개국에서 이라크 문제만을 놓고 벌인 후속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대다수가 미국의 ‘불순한 의도’를 비판한 것도 주목된다. 독일인의 54%와 프랑스인의 75%, 러시아인의 76%가 “미국이 이라크의 원유를 통제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려 한다”고 응답했다. 특히 이라크 문제와 관련해 거의 유일하게 미국과 공동보조를 위하고 있는 영국에서도 과반수에 가까운 44%의 국민이 전쟁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또, 터키 국민의 83%는 이라크 침공을 위해 미국이 자국 내 군사기지를 이용하는 데 반대한다고 응답했다.
“여론조사 결과 따위는…”
그렇다면 미국인들은 자국의 행태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대다수 미국인들은 국제사회와는 사뭇 다른 인식을 드러냈다. 세계인들의 입에서 “미국이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오히려 문제를 키우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는 반면, 미국인들은 자국 정부의 역할에 대해 대부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75%의 미국인이 자국 외교정책에 대해 호의적으로 평가했으며, 89%가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했다. 미국인 10명 가운데 8명은 미국이 국제적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나가고 있다고 믿고 있으며, 미국이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믿는 미국인은 39%에 그쳤다. 또, 약 70%가 미국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세계적으로 촉진시키고 있다고 답했으며, 미국식 제도를 세계화하는 것이 좋다는 응답도 79%에 달했다.
부시 미 대통령 역시 이런 인식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이번 여론조사를 총괄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은 “다른 나라들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지만, 부시 대통령은 “여론조사 결과 따위를 기초로 국정을 운영하지 않는다”고 이를 일축했다. 그는 또 “미국을 음해하려는 선동기제가 전 세계적으로 횡행하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미국은 정복자가 아니라 해방자라는 사실을 알리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살인자들과 달리 미국은 자유를 숭상하며,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한다. 이슬람 국가들도 결국 이를 깨닫게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부시 행정부가 의정부 여중생 치사사건에 대해 무죄평결이 내려진 뒤 들끓고 있는 우리 사회의 반미열풍도 ‘미국을 음해하려는 선동기제’ 탓으로 여길지 궁금하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사진/ 소 귀에 경 읽기 부시 대통령은 이번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미국을 음해하려는 선동기제가 전 세계적으로 횡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GAMMA)
연구센터가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과 공동으로 지난 7월부터 10월까지 넉달 동안 전 세계 44개국 3만8263명을 대상을 실시한 설문에서 조사 대상국 가운데 35개국에서 과반수의 국민이 미국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이를 미 국무부가 지난 2000년 부시 행정부 출범 전에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와 비교해보면 상황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이번 설문 대상국과 겹치는 27개국 가운데 20개국에서 미국에 대한 호감도가 급격히 떨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독일과 슬로바키아·아르헨티나·인도네시아 등 7개국에서는 ‘반미감정’이 10% 이상 급등했다. ‘테러와의 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동국가를 중심으로 반미감정이 급속히 확산된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전통적 ‘반미국가’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최대 해외 원조국 가운데 하나인 요르단과 전통적으로 ‘친미국가’로 분류돼온 이집트에서도 극명히 드러났다. 요르단 국민의 75%, 이집트 국민의 69%가 미국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표시했다. 유럽에서도 영국을 제외하고는 반미감정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일방주의적 외교정책에 대해 독일인의 45%가 반감을 나타냈으며,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는 각각 58%와 76%에 달하는 국민이 미국 주도의 세계정세에 불만을 표시했다. 이번 조사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터키와 파키스탄이다. 나토 회원국이자 미국의 전통적 우방국가인 터키는 이라크전을 준비하는 미국이 전진기지로 활용하기 위해 온갖 외교적 노력을 집중하는 곳이다. 그런데도 지난 2000년 조사 때보다 미국에 대한 호감도가 22%나 떨어져, 전체 국민의 30%만이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테러와의 전쟁’을 통해 미국의 혈맹으로 자리잡은 파키스탄에서도 미국에 호감을 표시한 국민은 단 10%에 그쳤다. 젊은층 중심으로 반미 확산

사진/ 런던에서 벌어진 이라크전 반대 시위. 유럽 응답자의 대다수가 이라크전의 ‘불순한 의도’를 비판했다. (GAMMA)

사진/ 이란의 반미시위 현장. ‘테러와의 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중동국가의 반미감정을 잘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