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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기부금, 걷는 사람이 더 당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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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2-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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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1년에 몇십번씩 가난한 나라 위해 기부하는 스칸디나비아… ‘구호 제국주의’ 위험성도 잘 알아

필자가 노르웨이로 처음 이주했을 때는 현지의 지인이 많지 않아 집으로 전화가 걸려올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저녁마다 전화가 몇통씩 걸려왔다. 한국에서도 텔레마케팅의 경우가 몇번 있었지만, 그것은 주로 영리단체가 아닌 비영리 시민단체에서 오는 전화였다. 전화번호부를 보고 전화를 건 듯한 그들은, 대부분 필자의 이름을 대며 해당 단체의 존재의 의미를 설명하고, 주로 ‘돕는’ 특정 프로젝트를 위해 기부할 것을 당부했다. 사실 ‘당부’라고 쓰기에는 단체 대표자의 목소리가 너무 자신 있고 위세 당당했다. 오히려 시민의 의무를 다할 것을 ‘요청’하는 듯했다.

전 인구의 1%가 앰네스티 회원

사진/ 아프가니스탄에 도착한 국제사면기구(앰네스티)의 구호품. 스칸디나비아에서는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국제사면기구의 핵심 활동가들이다. (GAMMA)
지금도 일주일에 서너번씩 걸려오는 이 같은 ‘요청 전화’를 통해 필자가 알게 된 시민단체의 프로젝트들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옛 동구권의 부모 없는 길거리 아이들에게 구호품 전달, 아동 심장병환자 위로금 조성, 세계 기아민 구제기금 조성…. 전화를 거는 단체들이 천차만별이었다. 노르웨이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꽤나 알아주는 전국적인 루터교회 구호단체부터 잘 알려지지 않은 군소단체까지, 노르웨이 시민운동의 거의 모든 스펙트럼을 알게 된 셈이다. 그러나 아무리 군소단체라고 해도 ‘신신당부’하는 어투를 들어본 일이 없었다. 그들은 전화를 받는 쪽에서 당연히(!) 의연금을 낼 것이라는 예상을 하는 것이다. 그만큼 노르웨이에서는 늘 기부를 하며 살아가는 것이 관습화돼 있다.


스칸디나비아의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로 노르웨이 기부문화의 원천은 농촌의 교회다. 중국이나 한국의 향약·계(契) 문화와도 비슷한 측면이지만, 교구(敎區)마다 기아민·빈민 구제, 고아 양육 등의 지역복지를 위해 각 교인이 소득의 일정부분을 자진해서 기부하는 것이 오래된 전통이었다. 가톨릭 나라에서 수도원 등의 대형 교회단체들이 담당한 복지문제를, 17~19세기의 노르웨이 농촌에서 교구별 기부모집을 통해 지역민들이 주체적으로 해결하곤 했다.

기부의 용도가 달라졌지만, 지금도 교회마다 열심히 모금활동을 한다. 예를 들어 스웨덴 같으면 사순절(四旬節: 단식과 참회의 날) 때만 해도 제3세계의 구제기금으로서 전국적으로 약 5천만 크로네(약 550만 달러)라는 상당한 금액이 교회를 통해 모아진다. 그러나 산업화와 도시화가 시작된 19세기부터 기부문화의 주축이 교회에서 노동·금주(禁酒)·여성 등의 여러 사회운동쪽으로 옮겨졌다. 1950~60년대까지는 기부금의 주된 용도는 의료·성인 교육 등 국내의 사회·복지 문제의 해결이었지만, 복지국가의 기본틀이 갖춰지고, 그 분야에 대한 책임을 나라가 짊어지자 해외(특히 이른바 제3세계)의 구호작업이 각종 모금운동의 주된 목적이 돼버렸다. 노르웨이 주민이면 거의 누구나 일년에 적어도 몇십번씩 옛 동구권이나 아프리카 등지를 위해 기부를 한다.

전화로 기부를 요청할 때도 많지만, 정기적으로 기부하는 회원층은 꽤나 두껍다. 예를 들면 ‘국제사면기구’(Amnesty International) 노르웨이 지부의 회원 수는 전 인구의 1%에 이르렀다. 전 세계적으로 인구의 1%가 인권단체에 가입한 나라는 찾기 힘들다. 국제사면기구의 본고장인 영국 회원 수는 전체 인구의 약 0.25%일 뿐이다.

특히 스칸디나비아에서는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국제사면기구의 핵심 활동가들이다. 하루 종일 길에서 안내 책자를 나눠주고 대학교 캠퍼스 곳곳에서 창살 뒤 양심수의 그림과 러시아 대통령 푸틴 등 세계 대량살인의 주범들이 오슬로를 찾아올 때 부지런히 데모에 나서는 그들이야말로 노르웨이의 젊은 세대에 아직은 이상주의가 남아 있음을 방증한다. 이 같은 대중적 참여가 있기에 대부분 나라의 사정과 달리 노르웨이의 주요 대기업들은 해외 대규모 투자에 대한 결정을 하기 전에 ‘국제사면기구’에 해당 나라의 인권상황에 대한 자문을 구하는 형식이라도 취한다. 그들이 진정으로 인권에 관심이 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대중적 인권의식이 고조돼가는 상황에서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이미지 유지가 곤란하기 때문이다.

‘노르웨이국민구호’의 흥미로운 프로그램들

노르웨이의 가장 대표적 해외 봉사단체라면, ‘노르웨이국민구호’(Norsk Folkehjelp: http://www.folkehjelp.no/)라는 60여년 역사를 가진 노동운동 계통의 사회주의적 색채가 짙은 단체다. 그 단체가 진행하는 프로젝트 가운데는 그야말로 없어서는 안 될 작업들이 많다. 예컨대 잘 알려졌다시피 미국의 베트남 침략과정에서 베트남 저항운동의 기지이자 교통루트로 인식된 인접국 라오스의 영토에 200만t 이상의 폭탄을 투척했다. 그 가운데 약 70%가 폭발했지만 (물론 희생자의 절대 대다수는 베트남 투사들이 아니라 전쟁과 상관없는 라오스 농민이었다) 나머지 30%가 폭발이 안 된 채 남아 있어서 일년에 수백명의 라오스 사람들이 살육당한다.

‘노르웨이국민구호’는 5년에 걸친 노력 끝에 상당수 폭탄들을 제거하기도 하고, 현지 전문가들을 훈련시켜 주체적인 제거작업을 가능케 하기도 했다. 수많은 다른 지역에서도 폭발물 제거, 환경보호, 학교 건설 등의 봉사작업을 진행하는 ‘노르웨이국민구호’ 예산의 90%는 정부와 노조에서 조달하지만, 나머지는 1만6천명의 자원활동가들이 국민적 ‘갹출’(醵出)을 통해서 보탠다. 단순한 일회성 기부가 아닌 장기적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르웨이국민구호’는 각양각색의 흥미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해냈다. 예컨대 어떤 기부자는 폭탄 제거에 특수한 훈련을 받은 개를 지속적으로 후원하면서 진행사항에 대해 계속 정보를 얻어볼 수 있다.

1년 동안 각종 시민단체에 약 7천만 달러 상당의 온갖 기부금이 쇄도하는 노르웨이…. 그러나 노르웨이 시민단체들이 베푸는 ‘국제봉사’에 상당한 문제점들이 있다는 사실을 노르웨이 활동가들은 알고 있다. 하나는, 조달되는 물자들이 외제품에 대한 현지인의 선호도를 높이는 등 장기적으로 현지 산업의 발달을 막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는, 현지인들을 ‘수혜자’로 만들어 그들로 하여금 서구에 대한 사대주의적 감정을 갖게 하는 점 역시 현지 사회의 주체적 발전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불충분한 현지 지식을 기반으로 벌인 봉사작업이 오히려 의도하지 않은 폐단을 낳을 수 있다. 이 문제들을 의식하는 노르웨이 활동가들은, 가급적이면 현지 생산이 가능하도록 기술이전과 교육시설의 건설 등을 강조한다.

그러나, 자원봉사자들을 중심으로 한 중소 규모의 단체들은 해외 구호작업이 잘못하면 ‘구호제국주의’로 오도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지만, 거대 관변단체의 경우는 그러한 의식이 아직 빈약하다. 거기에다 관리자의 무지와 실적주의가 가미돼, 해외 봉사작업이 제3세계에 대한 착취와 환경파괴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2년 전에 신설된 ‘환경진흥기금’(miljieofondet)의 애초 목적이 노르웨이 투자를 통한 세계의 환경친화적 기업들의 육성이었는데, 결국 일련의 담배 생산업체와 엑슨(Exxon) 같은 제3세계의 환경파괴로 누명을 쓴 석유업체, 맥도널드·코카콜라 등 굴지의 유해 기호품·식품 업체에 대한 투자를 함으로써 장안의 화제가 되고 말았다. 대형단체의 경우 이 같은 일이 종종 벌어지기에 의식 있는 기부자들은 개별단체들의 활동·투자 내역을 유심히 확인한다.

기부가 세상을 바꾸진 못한다

물론, 약 1천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흉년이 든 에티오피아나 라오스, 아프가니스탄의 지뢰밭 등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스칸디나비아 시민단체들의 ‘구호·봉사’가 절실히 필요할 수 있다. 그리고 국제사면기구의 해외 양심수 인권수호 등의 노력은 크게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원조와 인권 문제제기 등 ‘바깥’의 노력만으로 빈곤과 인권침해를 극복할 수는 없다. 제3세계의 빈곤을 영구화하는 세계의 제국주의적 체제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이상, 베네수엘라 등지의 제3세계의 민중지향적인 정권들도 고투를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한 변화가 이뤄지기 전에는 제3세계 굶은 아이들의 신음소리는 끊이지 않을 것이고, 스칸디나비아 시민들의 기부금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자료링크

>> ‘국제사면기구’ 노르웨이 지부 www.amnesty.no, >>노르웨이의 아프간 지원위원회 http://solidaritetshuset.org/ain/, >>군소 구호단체를 위한 각종 자료 제공 http://www.bistandstorget.no/, >>노르웨이 인권단체들의 종합 사이트(옛 동구권 인권정보는 매우 풍부함) http://www.humanrightshouse.org/, >>

기술이전과 현지인 교육 등 ‘주체성 육성’이 중심인 국제봉사를 펼치는 ‘핸드 투 핸드’라는 단체의 사이트 http://www.h2h.no/, >>

팔레스타인의 국제적 지원에 큰 역할을 하는 노르웨이의 팔레스타인위원회 http://www.palestinakomiteen.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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