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신병동의 역사와 인권
등록 : 2000-10-04 00:00 수정 :
(사진/외출한 정신병원 환자들.30년동안 한번도 병동바깥에 나갈수 없었던 사람들이다)
부둣가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낯익은 사람들과 다정스럽게 인사를 나누는 루카스. 그가 이곳에 온 지도 벌써 30년이 지났다. 이 작은 섬이 그에게는 고향이 되어버렸다. 자신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다가 이곳으로 왔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몇년 전만 해도 이곳을 산책한다든지 주민들과 대화를 나눈다는 것은 거의 상상하지도 못할 일이었다. 지금은 섬주민들의 거주지에 있는 집이 그의 숙소지만 5년 전에는 정신병원이 집이었다. 최근 그는 정신병원의 동료들과 함께 갖가지 세라믹제품을 생산하는 일을 하면서 더욱 자존심을 세우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스의 작은 섬들 중 하나인 레로섬이 유명해진 것은 관광지로서가 아니라 정신병원의 비참한 상태가 유럽에 알려지면서부터였다. 이 섬에 정신병원이 들어선 것은 1958년의 일이다. 아테네의 정신병원 수용능력이 한계를 넘어서자 그리스 정부는 가능하면 아테네에서 멀리 떨어진 섬으로 정신질환자들을 보내려 했다. 이 섬의 심각한 실업문제와 그리스 정부의 ‘정신병자집단수용’에 대한 대책이 맞물리면서 이 작은 섬에 대규모 정신병자수용소가 들어서게 된다. 2차대전 뒤 이탈리아군에서 쓰던 군사건물이 개조되면서 그리스 전역에서 보내진 약 2500명의 정신병환자들이 수용됐다. 의료진이라고는 단 한명의 정신과 전문의만 파견되었고 환자관리는 모두 농부와 어부인 섬주민들에게 맡겨졌다. 30년 이상 이곳은 세상에서 잊혀진 인권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었다. 20∼30명의 환자들이 한방에 수용됐고 화장실도 샤워실도 기능이 정지된 상태로 내버려져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이 아니라 ‘돼지우리’와 같은 상태였다.
1991년, 아테네와 데살로니카에서 정신의학과 심리학을 전공하던 자원봉사대 학생들이 환자들의 비참한 처지를 보다못해 유엔과 유럽공동체(EC)에 진정서를 보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언론들에 의해 이 병원이 집중적으로 전 유럽에 여론화되면서 사태는 그리스 정부의 차원을 넘어 유럽의 문제가 되었다. 캐롤라인도 이때 유럽공동체에서 파견한 의료진의 일원으로 이곳에 왔다. “처음 이곳에 와서 가장 놀란 것은 이들이 처참하게 지낸다는 사실보다는 완전히 개별화된 상태로 지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들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심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고 그 다음이 제대로 먹이고 입히고 씻기는 일이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개선작업이 시작됐다. 먼저 환자수용소 건물이 폐쇄되고 새 병동들이 지어졌다. 새 병동은 가정집처럼 꾸며져 약 10명의 환자들이 한 가정을 이루도록 했고, 한방에 두개의 침대만 놓았다. 인간으로서의 생활을 보장해주려는 노력 속에서 진행된 또다른 프로그램은 이들을 사회로 복귀시키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사회봉사단원들이 이들 몇명을 그룹으로 만들어 섬의 중심가로 데리고 나가서 물건도 스스로 사게 하고 카페에서 차도 함께 마시도록 하면서 사회적응훈련을 해나갔다. 지금은 아주 자연스러워져서 병원의 환자들이 스스로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0년 전에 터져나온 스캔들로 수치감을 느꼈던 섬주민들도 이제는 외부세계에 어떤 것도 공개할 자신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인권의 사각지대는 지난 10년 동안 따스한 정이 흐르는 삶의 터로 바뀌었고 환자들은 인간으로서 자존심을 가진 주체로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다.
아테네=하영식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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