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 약 광고 허용 논란을 계기로 따져본 유럽사회 광고의 기능과 해악
“어느 에이즈 환자의 슬픈 모습이 클로즈업된다… **약을 복용한 그의 얼굴에 좀전의 애수는 사라지고 희망의 웃음이 감돈다.”
이것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광고다. 왜냐하면 유럽연합은 법적으로 처방약에 대해서 대중매체를 통한 광고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유의 광고가 유럽에서 TV로 전파될 수도 있는 계기가 최근에 있었다. 제약회사들을 중심으로 처방약에 대해서도 광고를 하자는 로비가 오래전부터 있어왔는데, 이런 의견을 수렴하여 최근 유럽이사회는 수많은 이들이 앓고 있는 대중병인 당뇨·천식·에이즈에 한하여 광고를 내보낼 수 있도록 하자는 안건을 내놓았다. 그리고 10월 말 이 안건은 유럽의회에서 표결에 부쳐졌다.
광고가 시민건강을 증진시킨다
미국에선 1997년부터, 그리고 뉴질랜드에선 2000년부터 이미 허용된 약 광고지만 유럽연합은 1989년부터 처방약에 대해 TV광고를 법으로 금지해왔다. 그리고 1992년부터는 이 법을 좀더 강화하여 TV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대중매체에 걸쳐 처방약 광고를 금하고 있다. 이런 중에도 제약회사들을 중심으로 약 광고 허용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이에 맞서 환자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반대를 주장해왔다. 약 광고를 둘러싼 찬반의 논지가 흥미롭다.
제약회사를 중심으로 한 약 광고 허용을 주장하는 쪽은 광고에 의한 교육적 기능을 강조한다. 환자가 처방받는 약에 대해 미리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 의사의 처방에 신뢰감을 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제약회사들이 경쟁효과로 자극을 받아 약 개발에 열성적으로 뛰어들 수 있으며, 약 개발은 곧 의학·약품계의 진보일 뿐 아니라, 시민건강의 진보라는 논지다.
이에 대해 환자와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반대쪽의 입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정보의 신뢰성에 대한 문제. 둘째, 병을 지나치게 떠들어서 병을 무시하거나 혹은 지나치게 극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세 번째로 경쟁으로 인한 기술혁신이 얼마만큼 인간의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느냐는 점이다. 인체에 흡수되어 시간을 두고 효과를 지켜봐야 하는 것이 약인 만큼, 광고의 효과로 약의 혁신이나 진보를 섣불리 가늠할 수 없으며, 그런 태도는 오히려 남용의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건강은 광고에 의해 측정될 수 있는 게 아니므로 약 복용은 약 광고라는 절차를 통해서가 아니라, 환자와 의사 간의 긴밀한 접촉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논지다.
이번 제안은 유럽의회에서 찬성 42표, 반대 494표로 부결되었다. 처방약 광고가 유럽 TV에서 전파될 일은 당분간은 없을 것이며, 대신 처방이 필요 없는 한정된 비타민류의 광고만이 계속될 것이다. 인간의 건강과 직접적 연관이 있는 것이 약이라, 약과 광고의 관계가 까다롭게 해석된 경우지만, 약 광고 불허를 외친 쪽의 논지에서도 드러나듯 오늘날 대중매체를 통한 광고의 기능은 교육적 기능보다는 마케팅에 있음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즉, 광고는 상품과 인간을 소비라는 끈으로 연결시키며, 소비를 최대화하기 위한 논리로 줄달음질치고 있다.
오늘날 인간의 기능을 최대한 소비화하여 끊임없는 생산과 소비를 만들어냄으로써 사회의 경제발전에 막강한 일익을 담당하는 것이 광고다. 광고는 현 사회의 소비·상업 문화에서 빼놓으려야 빼놓을 수 없는 주역할을 담당하며, ‘결코 끝나지 않고 무한하게 이어지는 소비를 만드는 일’에 주력한다. 이런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광고는 창조와 변화를 갈구한다.
정보에서 이미지로
프랑스의 광고인인 장마리 드뤼는 그의 저서 <차단>(1996)에서 “광고란 해체다. 마리고(적도 부근의 죽은 강)를 흔들고, 규정들을 변형시키고, 소비자들을 깨우고 그리고 변화를 창조하라”라고 적고 있다. 무엇보다 광고의 혁신과 창조성을 강조한 구절이다.
광고가 소비의 중요한 동력이 된 사회에서는 소비의 고전적이고 수동적인 역할에만 의존하지 않고, 대신 역동적이고도 적극적인 ‘소비의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게 되었다. 특정 물건을 사는 일이 그 상품이 가지는 기능에만 기반하는 소비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소비시장에 노출되는 상품은 그 물건이 가지는 의미에 더하여, 가질 수 있는 의미까지를 최대한도로 부여받고자 한다. 이러한 측면을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인 세르주 티스롱은 ‘오브제의 문화적 성격’이라고 분류했다.
상품이라는 물건에 문화적 성격을 부여하여 소비를 자극시키는 일을 광고가 담당하는 셈이다. 광고는 물건에 문화적 성격을 최대한으로 부여하여 소비 및 상업문화로 이끌어가기 위해 주력한다. 이런 과정에서 광고는 정보제공이라는 기능을 벗어나 물건의 무한한 의미창출에 앞장선다.
광고는 정보인가, 거짓인가, 환상인가.
“두 남녀가 섹스신을 벌인다. (신음소리) 일을 마친 남녀가 반신은 나체로 반신은 이불 속에 감춰져 숨을 돌리는데, 여자의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다 만삭이 된다. 둘은 깜짝 놀라며 부풀어오르는 배를 쳐다본다. 그리고 내레이터의 설명. ‘기대치 않은 일로 깜짝 놀라지 마세요’….”
요즘 프랑스 TV에서 흔히 보게 되는 광고 장면이다. 도대체 무슨 광고일까 콘돔 광고일까 피임을 외치는 공익광고일까 둘 다 아니다. 이 광고는 한 인터넷 서버의 광고다. 굳이 해석을 하자면, 섹스가 인터넷 서핑에, 그리고 임신은 그 즐거움이 파생시키는 결과인, 인터넷 사용료를 의미하는 셈이다. 이 광고는 서버에 대한 고유정보보다는 광고의 기발함과 서버의 이미지 전달에 주력하고 있다. 이처럼 광고가 정보전달의 수단 대신 특정 상표의 이미지 전달에 주력하게 된 지도 꽤 된다. 더 자극적이고, 더 기발하고, 더 아름답고… 기타등등.
매연을 만들어내는 대표적 상품인 자동차 선전에 환경보호 슬로건이 붙는가 하면, 맥도널드가 버젓이 영양가를 외치고, 특정 상품선전에 상품의 내용보다는 그 회사가 지향하는 세계관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광고도 흔하다. 요즘의 광고들은 정확한 정보보다는 상품과는 무관할 수도 있는, 더욱이 실제로 증명될 수도 없는, 이미지 판매에 주력한다. 이러한 최근의 광고 경향에 정곡을 찌르는 구절이 있다.
“당신들을 침흘리게 만드는 것”
“나는 당신이 결코 가질 수 없는 것들을 꿈꾸게 만드는 사람이야. 하늘은 늘 푸르고, 여자들은 늘 아름답고, 완벽한 행복이 존재하는 세상… 경기가 좋으면 어쩌면 당신이 갈망하는 꿈속의 자동차를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 흥 그땐 벌써 유행이 지나지… 하지만 난 늘 당신들을 약탈할 방법이 있지… 늘 새로운 걸로 당신들을 중독시키는 거야. 언제나 기존의 것들을 한물가게 만드는 새로운 것들로… 당신들을 침흘리게 만드는 것 그게 바로 나의 직무야. 우리 직종에서 당신들의 행복을 바라는 자는 아무도 없어. 왜냐하면 행복한 사람들은 소비를 하지 않으니까….”
이 구절은 2년 전 프랑스에서 출간된 소설 <99프랑>(그라세출판사)에 있는 구절이다. “회사에서 잘리기 위해 이 책을 썼다”라고 저자 프레데릭 벡베데는 밝힌다. 이 책은 실제로 광고회사에서 10년간 일한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써낸 소설이라 리얼리티 소설이라고도 불린다. 오래전에 교육적인 정보전달 기능을 저버리고 최대한의 마케팅 효과를 위해 전진하고 있는 광고회사들의 자본주의적 폐단을 적나라하게 지적했다. 벡베데의 표현처럼 광고는 실제와는 무관한 환상의 세계로 우리를 이끄는 지름길인지 모른다.
12월이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있는 12월은 다른 달과 달리 서구사회에서 대량의 소비가 이루어지는 달이다. 그래서 최대의 소비를 위해 광고들이 도처에서 우리를 현란하게 유혹한다. 크리스마스 장식 속의 수많은 물건들이 때론 어린 시절의 추억 속으로, 때론 그리운 고향으로, 때론 달콤한 사랑의 색채로 손짓하며 환상의 소비궁전 속으로 우리를 부른다.
파리=이선주 전문위원 oseyo@libertysurf.fr

사진/ 프랑스의 레인지 선전. "100% 순수한 레인지. 이상적인 부엌은 50%의 전통과 50%의 공상과학"이라는 카피가 인상적이다.

사진/ 안티광고단체들이 정한 쇼핑 안 하는 날 포스터. 이들은 소비와 상업문화를 조장하는 광고에 일침을 놓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