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독재 체제강화 속 경제는 뒷걸음질… 민주혁명·소수민족해방세력과 머리 맞대야
틴 조(Tint Zaw)
1938년 버마에서 태어난 틴 조는 랑군대학 물리학과 재학 시절 반정부 학생운동단체이던 학생통일전선(USF)과 랑군대학학생연합(RUSU)을 이끌며 반정부 시위를 주도했던 대표적인 학생운동가였다. 그뒤 랑군대학 물리학과 강사로 일했던 그는 1963년 군부에 체포당해 안다만해의 악명높은 코코섬 감옥에서 1979년까지 복역했다. 1988년 랑군의 대학생들이 민주화 시위를 시작하자 그는 다시 학생들을 지원한 뒤 이들과 함께 1989년 타이 국경을 넘었다. 현재 영국 의 버마 특파원(방콕주재)과 미국의 라디오프리아시아(RFA) 기자를 겸임하고 있는 그는 버마 역사와 정치분석 전문기자로 활약하고 있다.
버마는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다. 10여년이 넘도록 민주세력들이 악전고투하는 가운데 현재 버마의 실질적인 최고권력기구인 국가평화개발회의(SPDC)가 독재 지배체제를 더욱 강화시켜가고 있을 뿐이다. 경제는 아무런 진전도 보이지 못한 채 오히려 몇해 전부터 타이 사업가들을 비롯해 수많은 외국인 투자 자본들이 버마를 떠나고 있는 실정이다. 군부가 지배하는 버마사회는 부정과 부패가 만연해 있고, 모든 가능한 방법을 동원해 가외수익을 얻으려고 혈안이 된 공무원들 탓에 뇌물은 일상화돼버렸다.
오로지 탄압뿐인 나라 폭등하는 생필품값에다 일자리를 찾지 못해 헤매던 시민들은 생존을 찾아 불법노동자, 불법체류자, 불법입국자란 딱지를 달고 이웃 국경을 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교육정책 실패로 미래를 짊어질 아이들에게 교육기회마저 제공하지 못하는 현실에 시민들의 좌절감은 깊어만 가고, 그나마 운좋게 교육받은 신세대들마저도 일자리를 찾지 못해 거리를 헤매며 전망없는 미래를 통곡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쪽에서 군부와 고위 공무원들이 자식들을 유학시키기 위해 열을 올리는 현실은 시민들의 박탈감만 더욱 증폭시켜왔다. 버마와 인접한 타이의 대학들에 해마다 버마 유학생들의 숫자가 증가하는 현상은 붕괴된 버마의 교육현실을 발가벗겨놓은 좋은 본보기일 뿐이다. 군부는 오늘날 당면한 버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방법도 제시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체제 유지는 오직 가혹한 탄압만으로 이루어져왔다. 경제개발을 위해 어떤 능력과 가능성도 보여주지 못했던 군부는 오직 학생들과 민주화세력들을 침묵시키는 일에만 정열을 바쳤다. 이런 현실 속에서 대안을 찾는 버마 시민들 사이에, 특히 젊은이들에게 아웅산 수지는 여전히 버마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자 동력으로 여겨지고 있다. 버마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지가 최근 가택연금상태에서 뛰쳐나와 8월24일과 9월20일 두 차례에 걸쳐 여행을 시도한 일은 저항세력들이 민의를 보여주기 위해 국가평화개발회의를 밀어붙인 직접적인 정치행위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중부 만달레이를 향했던 두 번째 여행 시도 과정에서 아웅산 수지는 국가평화개발회의의 명령에 따라 기차표를 팔지 않는 역에서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렸고, 결국 그 역에는 일대 혼란이 일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아웅산 수지가 좀더 오랫동안 역에서 기다리며 항의를 계속했다면 좀더 많은 시민들이 몰려들어 대규모 정치운동을 이끌 수 있었을 것으로 여기고 있다. 이 사건으로 아웅산 수지의 여전한 영향력과 함께 아직도 시민들이 기회만 온다면 자발적으로 그를 따를 것이라는 중요한 사실이 입증된 셈이다. 한편 최근 랑군에서는, 일부 온건파 군인들이 경제 실패를 빌미로 군 지도부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감지되면서 군부 내 갈등설이 증폭되고 있다. 얼마 전 공개적으로 경제 실정을 폭로하려다 현재 정직 상태에 처해 있는 예산기획부 차관 조 툰 준장 같은 이들의 사례를 통해 군 내부의 갈등설은 점차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는 추세다. 이 사건은 군부 내 대다수 장교들의 침묵이 결코 국가평화개발회의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적시하는 중요한 대목으로 꼽힌다. 군부세력을 어떻게 불러낼 것인가
현재 국가평화개발회의는 군부 내에서 대안을 생각하는 이들이나 온건파 조직을 제압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한편 국제적인 평화 기류와 달리 중국으로부터 막대한 무기를 구입해 더욱 강력한 무장성을 쌓고 있는 중이다. 국토방위의 개념과 필요성이 담기지 않은 국내정치용 무장확대는 버마사회 내부에서뿐만 아니라, 인도와 타이를 비롯한 인접국들로부터도 강력한 비난을 받고 있다.
버마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하나다. 평화협상뿐이다. 민주혁명세력들과 소수민족해방세력들이 줄기차게 요구해온 대로 국가평화개발회의는 협상의 테이블로 나와야 한다. 시민들의 바람도 여기에 있다.
동시에 쉽사리 제발로 걸어나오지 않을 군부를 어떻게 불러낼 것인가에 대해 민주·민족세력들도 지혜를 짜내야 한다. 군부 내의 많은 지휘관들이 자신들의 장래를 보장해 준다면 협상에 임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관측이고 보면, 민주·민족세력들은 오직 근사한 직위와 막대한 수익이 생길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할까 두려워하고 있는 군부의 태도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는 시점이기도 하다.


오로지 탄압뿐인 나라 폭등하는 생필품값에다 일자리를 찾지 못해 헤매던 시민들은 생존을 찾아 불법노동자, 불법체류자, 불법입국자란 딱지를 달고 이웃 국경을 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교육정책 실패로 미래를 짊어질 아이들에게 교육기회마저 제공하지 못하는 현실에 시민들의 좌절감은 깊어만 가고, 그나마 운좋게 교육받은 신세대들마저도 일자리를 찾지 못해 거리를 헤매며 전망없는 미래를 통곡하고 있다. 그럼에도 한쪽에서 군부와 고위 공무원들이 자식들을 유학시키기 위해 열을 올리는 현실은 시민들의 박탈감만 더욱 증폭시켜왔다. 버마와 인접한 타이의 대학들에 해마다 버마 유학생들의 숫자가 증가하는 현상은 붕괴된 버마의 교육현실을 발가벗겨놓은 좋은 본보기일 뿐이다. 군부는 오늘날 당면한 버마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방법도 제시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체제 유지는 오직 가혹한 탄압만으로 이루어져왔다. 경제개발을 위해 어떤 능력과 가능성도 보여주지 못했던 군부는 오직 학생들과 민주화세력들을 침묵시키는 일에만 정열을 바쳤다. 이런 현실 속에서 대안을 찾는 버마 시민들 사이에, 특히 젊은이들에게 아웅산 수지는 여전히 버마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자 동력으로 여겨지고 있다. 버마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지가 최근 가택연금상태에서 뛰쳐나와 8월24일과 9월20일 두 차례에 걸쳐 여행을 시도한 일은 저항세력들이 민의를 보여주기 위해 국가평화개발회의를 밀어붙인 직접적인 정치행위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중부 만달레이를 향했던 두 번째 여행 시도 과정에서 아웅산 수지는 국가평화개발회의의 명령에 따라 기차표를 팔지 않는 역에서 다음날 아침까지 기다렸고, 결국 그 역에는 일대 혼란이 일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아웅산 수지가 좀더 오랫동안 역에서 기다리며 항의를 계속했다면 좀더 많은 시민들이 몰려들어 대규모 정치운동을 이끌 수 있었을 것으로 여기고 있다. 이 사건으로 아웅산 수지의 여전한 영향력과 함께 아직도 시민들이 기회만 온다면 자발적으로 그를 따를 것이라는 중요한 사실이 입증된 셈이다. 한편 최근 랑군에서는, 일부 온건파 군인들이 경제 실패를 빌미로 군 지도부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감지되면서 군부 내 갈등설이 증폭되고 있다. 얼마 전 공개적으로 경제 실정을 폭로하려다 현재 정직 상태에 처해 있는 예산기획부 차관 조 툰 준장 같은 이들의 사례를 통해 군 내부의 갈등설은 점차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는 추세다. 이 사건은 군부 내 대다수 장교들의 침묵이 결코 국가평화개발회의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기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적시하는 중요한 대목으로 꼽힌다. 군부세력을 어떻게 불러낼 것인가

(사진/최근 가택연금상태에서 뛰쳐나와 여행을 시도한 아웅산수지.강력한 저항세력으로서 민의를 과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