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독재 타도 봉기를 계기로 결성된 무장단체… 최근 경찰의 검거 발표에 의혹만 증폭
지금 그리스에는 ‘11월17일단’이란 유령이 떠돌고 있다. 신문과 TV, 대학 강의실과 타베르나(그리스의 전통술집)는 지난 여름부터 단 하루도 쉴 새 없이 11월17일단의 체포로 들끓고 있다.
11월17일, 아테네산업대학 봉기 29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아테네 중심가에서 모여든 약 1만명의 젊은이들은 미 대사관쪽으로 행진하며 ‘반이라크 전쟁과 반미’, ‘11월17일단 석방’ 등을 외쳤다. 지난주에는 스키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60여명의 무정부주의자들이 11월17일단 혐의자들이 갇혀 있는 아테네의 보호감호소 바깥에 모였다. 이들은 일급감호상태로 격리돼 있는 11월17일단 조직관련 혐의자들을 격려하는 슬로건을 외친 뒤 해산했다.
11월17일, 야만적인 유혈진압
지난 9월5일, 11월17일단의 행동대장으로 알려진 일명 ‘독수’(毒手) 디미트리스 쿠포디나스가 자수하면서 그리스 경찰은 그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11월17일단 사건을 마무리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경찰의 발표와는 달리 지금도 체포와 재판이 계속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지금까지 경찰에서 발표한 구속자 수만도 18명이고, 이들은 대부분 코리달로스 감호소에 격리수용돼 있다. 더군다나 체포된 혐의자들이 진술을 번복하고 혐의를 부인하는 바람에 누가 조직의 지도자인지도 모를 정도로 수사는 혼선을 빚고 있다.
11월17일단의 이름은 1973년 11월17일, 아테네산업대학에서 벌어진 학생들의 대규모 시위를 당시 군부독재정부가 탱크를 동원해 유혈진압한 데서 유래됐다. 1967년 군사쿠테타로 집권한 군부독재정권은 7년 동안 그리스를 인권의 사각지대로 만들었다. 이는 남미에서 민중정권을 붕괴시키고 군부독재정권을 수립한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작품이었다. 미국은 그리스 군부 내 친미세력을 이용해 당시 정권의 대체세력으로까지 성장한 사회주의 세력을 근절하기 위해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다. 군부독재권력의 공포정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야만적이었다. 거리시위에서 자유를 외치다 체포된 많은 젊은이들은 고문에 시달렸고, 심지어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1973년 11월17일, 야만적인 군부통치 아래서 거의 7년 가까이 숨죽이고 있던 그리스 민중들은 아테네산업대학에 집결한 학생들과 하나로 결집했다. 이날 탱크와 완전무장한 군인들의 무차별 사격에 의해 수십명이 죽고 수백명이 중상을 입는 참상이 일어나면서 군부독재는 종말로 치달았다. 이 사건이 일어난 지 몇달 뒤 7년 간의 잔혹한 군사독재정권은 붕괴하게 된다.
11월17일단이 최초로 한 일은 미국 CIA 아테네 지국장인 리처드 웰치를 저격한 일이었다. 그리고 미국이 군사독재정권을 세워 7년간이나 그리스 국민의 인권을 유린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엘레프트로티피아 신문사에 보냈다. 이후에도 세명의 미군 요인과 두명의 터키 대사관 요인, 그리고 한명의 영국 대사관 군무관을 비롯해 그리스의 대기업가들과 정치인들이 이들의 주표적이 돼왔다. 마지막 23번째로 일어난 사건이 2000년 6월8일에 일어난 영국 대사관의 스티븐 손더스 암살이었다. 그가 유고폭격의 기획자라는 게 이유였다.
‘일망타진’ 발표 뒤에도 활동 계속
지금까지 11월17일단 사건과 연루돼 체포된 사람은 18명이다. 이들은 직업도 천차만별로 성화 화가, 양봉업자, 어부, 교수, 극작가 등이다. 삼형제가 나란히 조직원으로 체포된 경우도 있었다. 삼형제의 아버지는 은퇴한 그리스정교회 신부여서 더욱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최근에는 네 번째 아들마저 경찰에 구속됐다가 풀려났다. 특히 지도급 조직원으로 발표된 요토풀루 교수나 극작가인 스타코스 등이 모두 68년 파리의 학생봉기를 주도한 인물로 밝혀지면서 한동안 60~70년대 파리에서 유학한 그리스의 지식인들이 바짝 긴장하기도 했다. 요토풀루 교수의 아버지도 주목을 끈다. 그는 트로츠키와 가까운 친구로 트로츠키파 혁명운동에 가담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스 경찰은 요토풀루 교수가 어떻게 트로츠키주의 혁명가가 됐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요토풀루는 자신과 11월17일단의 관계나 모든 혐의사실을 부인하면서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
군부독재정권의 공포정치를 경험한 시민들 대부분은 이들의 활동을 한풀이, 즉 ‘대리복수’로 받아들여왔다. CIA 아테네 국장과 미국 요인들의 암살은 그리스의 군부독재를 지원한 미국에 대한 응징으로, 부도덕한 그리스 기업가들이나 경찰간부 암살은 민족배신에 대한 복수나 사회 정의 차원에서 당연시된 면이 없지 않았다. 사실상 이 조직에 대해서는 비판적 여론보다는 도리어 지지하는 여론이 더 높았다. 그리고 28년 동안 단 한명의 조직원도 검거된 사실이 없었기 때문에 이 조직의 활동은 우리나라의 홍길동이나 임꺽정 같은 일종의 ‘민중신화’로 자리잡아왔다.
그러나 지난 7월 말, 성화 화가인 사바스 히로스가 폭탄을 설치하다 폭탄이 터지는 바람에 부상당한 뒤 경찰에 체포되면서 그와 관계된 사람들이 11월17일단 조직원으로 줄줄이 체포됐다. 경찰은 언론을 통해 “11월17일단이 이념을 중심으로 결성된 그룹이 아니라 가족유대관계로 맺은 마피아 수준의 범죄집단”이라고 선전해왔다. 그러나 11월17일단의 조직원이 일망타진됐다는 경찰의 발표가 있은 뒤 곧 11월17일단의 인장이 찍힌 공식문건이 신문사에 배달됐다. 이 문건에서 11월17일단은 “체포된 혐의자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조직원이고 어떤 사람은 다른 무정부주의 그룹 일원인데 경찰은 무차별적으로 모두 11월17일단의 조직원이라는 혐의를 씌워 구속했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11월17일단의 정치적 테러활동을 마피아의 범죄활동으로 격하한 경찰을 비난하며 계속적인 테러공격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했다.
올림픽 개최를 위한 그리스 정부의 포석
지금까지 진행된 11월17일단의 검거를 살펴보면 경찰은 조직의 지도부를 제대로 체포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최초로 체포된 히로스(40)는 최근에 “내가 조직의 지도자이며 75년부터 한 조직의 테러활동에 대한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누구도 이 말을 믿는 사람은 없다. 최초의 총격이 일어난 75년 당시 그의 나이는 중학생인 13살이었다. 이들이 일을 저지른 뒤 언론에 보낸 선언문들이나 편지는 언제나 최고 수준의 문필가에 의해 작성됐다. 그래서 이들은 그리스 최고 지식인들의 소수조직으로 간주돼왔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지금도 이들이 11월17일단의 조직원들인지에 대한 의구심을 품고 있다. 체포된 사람들이 계속 진술을 번복하고 혐의사실을 부인하기에 의혹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한편, 11월17일단 검거는 미국과 영국의 2004 그리스올림픽 취소 압력에 시달려온 그리스 정부가 올림픽 개최를 위해 내린 정치적 결단이라는 해석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사회 정의와 민족 자존의 교두보를 잃어버렸다”는 반응에서부터 “뭔가 특별한 사람들이기를 기대했는데 평범한 얼굴이 대부분이어서 실망했다”는 시민의 반응까지 나오는 것을 보면, 11월17일단이 그동안 그리스인의 마음속에 얼마나 깊숙이 자리잡아왔는지 엿볼 수 있다.
아테네=하영식 전문위원 youngsig@otenet.gr

사진/ 11월17일단 체포에 항의해 벌어진 데살로니카의 시위. 그리스인들은 11월17일단이 일망타진됐다는 발표를 믿지 않는다.

사진/ 체포되는 요토풀루 교수. 경찰에 의해 11월17일단의 지도자로 지목돼왔다.

사진/ 11월17일단 검거 뒤 신문사로 보내온 11월17일단의 인장이 찍힌 공식문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