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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신의주는 다시 일어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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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1-1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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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빈 체포뒤 괴담만 나돌아…새로운 행정장관 찾으려 고심, 중국은 신도를 먼저 개발하라 조언

사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신의주 특구 구상은 원대했지만, 양빈 초대장관의 몰락으로 특구의 앞날이 불투명해졌다. (연합)
신의주 특구는 이대로 주저앉고 마는가.

한때 마치 새로 발견한 신천지처럼 나라 안팎의 주목을 받은 신의주 특구의 운명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다. 양빈 초대 행정장관이 탈세 등의 혐의로 중국 공안당국에 연행된 이후 신의주에는 썰렁한 찬바람만 불고 있다. 확인되지 않은 괴담들만 잔뜩 쏟아져나온다. 초대 행정장관으로 임명된 양빈이 이미 사형당했거나, 몰래 국외로 추방돼 다시는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그럴듯한 소문이 떠돌고 있다. 또 이번 사건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위신이 큰 타격을 입게 돼 그의 지도력에 의구심을 품는 주민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민심도 더 흉흉해졌다는 소문까지 들린다. 최근 신의주를 다녀온 한 기업인은 “특구로 지정된 도시치고는 너무 음산했다. 생활난에다가 전력난·용수난 등이 겹쳐 어떤 활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전했다. 희망을 상징하는 도시로 비쳐야 할 신의주가 점차 회색빛 도시로 바뀌어가는 셈이다. 양빈 구속의 후유증이 만만치 않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남쪽 기업인을 신임 장관으로


“신의주 특별행정구 장관은 군대의 최고사령관과 같다. 지휘자가 없는 상황에서 무슨 일이 진행될 수 있겠느냐. 더구나 그 지휘자가 깃발을 만들고 군대를 채 정비하기도 전에 목이 달아난 꼴이니 더욱 참담해보이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느냐.” 정부 관계자의 시큰둥한 관찰 평이다. 더구나 북한 핵문제가 불거져 국제사회가 압박을 가하는 터에 북한 당국이 신의주 특구에 눈을 돌릴 겨를이라도 있겠느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북한은 별 말이 없다. 지난 9월12일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신의주 특별행정구 기본법’을 채택하고, 9월21일 <조선중앙통신>이 이를 공식발표한 뒤 두달이 훌쩍 흘렀다. 외신을 통해서만 간간이 이런저런 소식이 들려온다. 대개는 이런 내용이다. “새로운 장관을 임명해 계획대로 신의주 특구 개발을 추진하겠다.” 이는 얼마 전 서울을 떠난 북한 경제시찰단 관계자의 짤막한 언급을 통해서도 확인된 내용이다.

그렇다면 신의주 특구 재시동과 관련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얼까. 이는 물론 양빈을 대체할 신임 행정장관을 물색해 적임자를 뽑는 일이다. 전문가들은 어떤 인물을 행정장관으로 세우느냐가 특구 성패의 결정적 관건이 되리라고 한목소리를 낸다. 그런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닌 모양이다. 지나치게 신중을 기하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인사 실패의 반복은 그야말로 북한 지도부에는 치명상이 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자천타천으로 물망에 오른 후보들은 많다는 게 정보 소식통의 귀띔이다. 하지만 문제는 정작 모든 자격 요건을 갖춘 인물은 고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 당국은 남쪽의 성공한 기업인들 가운데 한 사람을 행정장관에 앉히기 위해 이리저리 머리를 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사에게는 실제로 공식 제의도 건넨 것으로 보인다. 초기에 몇몇은 생각해보겠다고 답변을 보냈다가 남쪽 공안당국과 협의를 벌인 뒤 다들 기겁하고 뒷걸음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신의주 특구 행정장관으로 임명되기 위해서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전원회의에 나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과 신의주 특별행정구에 충실할 것”을 선서해야 하기 때문이다(신의주특별행정구 기본법 제2절 78조). 일종의 ‘충성맹세’로 비칠 수 있는 선서다. 따라서 지금의 남북관계 상황에서는 남쪽 인사가 행정장관 자리를 꿰찰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된다.

이광요 전 싱가포르 총리 설득 중

사진/ 신의주 특구 대신 북한은 개성공단에 힘을 쏟으면서 이광요 전 싱가포르 총리(오른쪽)를 신의주 행정장관으로 영입하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왼쪽은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이 개성공단 사업을 설명하는 모습. (연합·한겨레)
북한 지도부는 어쩔 수 없이 외국인에 눈을 돌리고 있다. 최근 가장 공을 들이는 인물은 이광요 전 싱가포르 총리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그와 가까운 몇 안 되는 인맥을 다 동원해 설득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게 정보 소식통의 귀띔이다. 이 소식통은 “김 위원장은 신의주 특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자질이 검증된 인물, 세계적으로 저명한 인사를 행정장관으로 앉혀야 한다는 생각을 굳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북한이 이 전 총리에 주목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먼저 북한 지도부는 이 전 총리가 개발독재 방식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박정희 전 대통령과 닮은꼴이 많다는 데 주목했다는 후문이다. 두 사람은 유교적 가치관을 함께 나눠 가졌으며 그 장점을 살려 활용하려 했다는 점, 서구 열강에 굴복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 경쟁을 벌였다는 점, 경제건설에 힘을 쏟아 근대화를 이룩했다는 점 등이 공통점으로 지적된다. 하지만 이 전 총리가 실제 제안을 받았는지, 그 뒤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그는 사회주의에 대해 상당한 반감을 품어온 것으로 전해져서 결과는 불투명하다.

북한은 그렇다고 무작정 행정장관 자리를 비워놓은 채 신의주를 내버려둘 수도 없는 처지다. 먼저 신의주 특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러시아 등의 발전상을 견학한 뒤 고심 끝에 내놓은 첫 결과물이다. 일종의 경제 재건의 비전을 제시한 셈이다. 따라서 여기서 어떻게든 성과를 내야지, 그렇지 못하면 지배 엘리트층은 물론 일반 민심의 이반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또 물러설 수 없는 까닭은 이미 신의주 특구 관련 법령들을 안팎에 공포한데다, 사전 준비를 위해 적지 않은 비용을 쏟아부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신의주 특구는 이미 애물단지가 돼 북한 지도부가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평가는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북한은 끝내 행정장관 적임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차선책으로 북쪽 사람을 행정장관으로 임명하고, 경제고문이나 자문 자리를 새로 만들어 외국인 명망가를 영입한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 이 경우 자문이나 고문에게 외자유치나 투자환경 조성과 관련된 상당한 권한을 줄 요량이다.

중국과의 갈등 해소에 주력

북한은 지금 양빈 임명에 따른 중국과의 갈등을 해소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중국 당국과의 협조가 생각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북한은 신의주 특구문제와 관련해 어느 때보다 중국 당국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중국은 신의주 특구에 앞서 압록강 하구에 있는 작은 섬 신도(일명 비단섬)를 먼저 개발할 것을 북한 당국에 권유하고 있다는 게 정부 관계자의 판단이다. 중국이 왜 이곳을 추천했는지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이 섬은 지난 97년에도 이미 유력한 특구 후보지로 꼽힌 곳이다. 북한은 70㎢ 넓이의 이 섬을 홍콩이나 상하이처럼 국제적인 무역·금융·관광·오락·경공업 위주의 제조업과 첨단기술산업 도시로 만들 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 북한은 신도 특구 개발을 위해 신의주와는 달리 국제 컨소시엄을 만들어 이 조직에 일정기간 신도와 그 주변 수역에 대한 완전한 주권을 위임해 개발하는 방식도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북한의 특구가 정상궤도에 오르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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