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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밤 쇼핑’을 허할까 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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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1-1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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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점 영업시간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독일… 최근 유통업체와 노조 간 시간연장 논쟁 불붙어

사진/ 베를린 중심가의 한 상점. 시민들이 일년에 단 두번밖에 없는 토요일 저녁 쇼핑을 즐기고 있다.
베를린은 오후 5시가 채 되기도 전에 어둠에 잠겨버린다. 단조로운 밤거리 사이사이 환히 불을 밝히고 영업 중인 상점들은 예외 없이 손님들로 북적거린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물건을 집어드는 이들의 손놀림도 점점 빨라져간다. 독일의 상점은 빠르면 저녁 7시, 늦어도 8시면 모두 문을 닫는다. 이런 상황에서 “손님이 왕이지” 하며 종업원들을 붙잡고 도움을 청하면, 범법자를 보는 듯한 싸늘한 시선을 감수해야만 한다. 주말도 예외는 아니다. 토요일은 오후 4시까지로 영업시간이 제한되어 있고, 일요일에는 기차역과 공항을 제외하고는 아예 상점 문을 열 수 없다.

노동자 보호 위해 처음 제안돼

1956년 처음 발효된 ‘상점 영업시간 제한법’의 뿌리는 자본주의가 막 태동하던 1881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영국과 프랑스에 비해 한발 늦게 시작하여 빠른 속도로 성장하던 독일의 자본주의는 거대한 인력을 공장으로 빨아들였다. 성인 남자들은 물론이고, 여성과 청소년들도 대거 이 노동자의 대열에 합류했다. 가톨릭과 개신교로 대변되는 종교계가 이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1881년 ‘노동 보호법’이 제정되면서 여성 및 청소년의 노동이 금지되었고, 일요일에는 노동하지 못하도록 했다. 급속한 가족제도 붕괴와 휴식 없는 노동에 맞선 당시 보수세력의 노력이, 이후 태어난 노동조합들의 지지를 받으며 현재의 상점 영업시간 제한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최근 베를린을 중심으로 100년 전통의 영업시간 제한에 대한 도전이 거세게 일고 있다. 베를린의 한 중심 상점가에서는 2000년부터 일년에 두번씩 ‘쇼핑의 밤’이라는 행사를 열어왔다. 마을 축제를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영업시간 제한법의 조항을 절묘하게 이용한 행사다. 폭풍 경보가 발효된 10월 마지막 토요일 밤, 400m가 채 넘지 않는 상점가는 몰아치는 비바람에도 소비자들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일년에 두번밖에 없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몰려든 베를린 시민들은 무려 50만명에 달했다. 베를린 전체 주민 수가 360만명을 조금 넘는 것을 감안할 때, 이는 가히 열풍이라 할 만하다.

이러한 사회적 관심을 배경으로 최근 독일의 경제계에서는 영업시간 제한 폐지와 관련된 논쟁이 또다시 불붙기 시작했다. 살인적인 실업률과 경기침체가 계속되자 영업 제한 폐지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소비 촉진과 고용 창출이라는 효과를 근거로 제시하며, 평일과 토요일은 밤 10시까지 상점 문을 열 수 있도록 하는 법률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주로 대형 유통업체와 중대형 상점의 연합단체들이 중심이 되어 이러한 목소리를 낸다. 한편 노동조합과 종교계를 중심으로 이에 대한 저항도 만만치 않다. 영업시간의 연장은 기업이나 소매상들에게 비용의 증가를 의미하고, 유럽 여타 국가보다 소비자 가격이 낮은 독일에서 비용의 증가는 인건비 감축으로 이어질 것이며, 따라서 고용 창출 효과는 근거가 약하다는 것이 노동계의 반론이다. 소규모 상점의 정규직 고용은 연평균 4만명씩 감소하고, 비정규직과 파트타임이 꾸준히 증가하는 최근의 추세도 이를 뒷받침해준다. 또한 상점 등에서 판매직에 종사하는 전체 노동자 230만명 중 여성 비율이 80%가 넘는 것도 반론의 한 축을 이룬다. 육아 및 자녀교육 문제 등 여성의 노동시간 연장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오히려 더 크다는 것이다.

화물차 운전사들은 쉴 수 있을까

거미줄처럼 뻗어 있는 속도 무제한의 독일 고속도로는 언제나 화물차로 가득 메워져 있다. 유럽이 단일시장을 형성하고 화물 유통이 더욱 중요해지면서 빠르고 신속하게 유통하려는 경쟁은 더욱 심해졌다. 하지만 화물차 운전자들도 일주일에 하루, 일요일만큼은 쉴 수 있다. 고속도로에서 화물차 운전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조만간 상점들의 영업시간 연장과 함께 이들도 휴식 없는 무한 경쟁으로 내몰리는 것은 아닐까.

베를린=글·사진 강정수 전문위원 jskang@web.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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