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판 유가협 ‘군인의 어머니들’이 직접 본 고문치사의 왕국 러시아 군대
필자가 어린 시절에 독서 삼매에 빠져 학교 공부를 등한시할 때마다 할머니로부터 들은 훈화가 있다. “네가 학교 공부를 제대로 안 하면 대학 시험에 낙방할 거야. 그러면 군대에 끌려가야 해. 너같이 성격이 내성적인 사람은 오래 못 버티고 죽고 말 거야. 시신으로 돌아온다고.”
러시아 군대에 ‘의문사’가 없는 이유
필자는 그 이야기를 (교과서에 없는 말이라 그런지) 별로 믿지 않았다. 아이들이야 교과서만을 진실로 생각했지만 대부분의 어른들에게 “군대 가면 죽을 위험이 많다”는 것은 상식이었다. 군대에서 고참이 신참을, 장교가 병졸을 폭행하여 죽여도 실질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었다. 한국에서는 이와 같은 일을 ‘의문사’라고 부르지만 러시아에서는 1970~80년대에도 민간인들끼리 그냥 ‘폭행사’ ‘고문사’라고 불렀다. ‘의문사’라고 하지 않은 이유는 시신으로 돌아온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별다른 ‘의문’이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현재의 공식 집계로는 1년에 약 1천건(시민단체의 추산으로는 약 5천건)이나 되는 ‘고문사’나 폭행에 따른 자살 등의 사건에 대해서, 1980년대 말의 소련 개혁 이전에는 유가족으로서 국가에 구체적인 진실 규명 요구를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사망통지서에서의 ‘사고사’가 맞아서 죽었거나 폭력과 인격 모독을 견디지 못해 자살한 사실을 가리킨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국가에서 주는 박한 배상금을 받고 억압적 체제의 비위를 건드리지 말아야 했다. 그러다 1980년대 후반의 자유화 바람이 불자, 귀한 아들을 잃고 와신상담의 나날을 보내온 어머니들이 침묵의 관례를 깼다. 1991년 가을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조직된 ‘군인의 어머니들’(Soldatskie Materi, http://www.soldiersmothers.spb.org/)이라는 시민단체가 효시가 되어, 전국의 대도시마다 군 폭력사 희생자들의 유가족으로 이루어지는 단체들이 속출했다. 성격상 2000년부터 활동을 벌여온 한국의 ‘군의문사 진상규명과 군폭력 근절을 위한 가족협의회’(군가협)와 유사한 그들의 목표는 5가지였다. 기존의 폭력사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 군 폭력의 실상에 대한 정확한 보도와 근절을 위한 노력, 면제 사유가 있음에도 강제 징집을 당하거나 폭력을 견디다 못해 탈영한 군대의 희생자에 대한 상담과 법적 지원, 대체복무제 도입, 모병제로의 전환,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대외 정책과 민족 말살 등의 국가 범죄에 대한 단죄와 근절 노력 등이 그것이었다. 이와 같은 노선을 택한 단체가 오래지 않아 군 당국의 ‘눈엣가시’가 되어 국가주의적 성격의 언론의 공격의 타깃이 되는 것은 불문가지다. 그들과 해외 인권·반전·반징병제 단체들의 관계를 들어 ‘외국 앞잡이’, ‘외국의 조정을 받는 해국(害國) 해군(害軍) 세력’으로 부르는 것은 우파 언론의 단골 메뉴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 덕분에 러시아 군대가 인간이 살 수 없는 생지옥이라는 사실이 국내외에 알려지고, 군인 인권 개선, 징병제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러시아에서도 날로 높아져간다. 2000년 8월 ‘군인의 어머니들’ 소속 3명의 활동가들은 체첸과 근접한 코카서스 지역의 한 지점에 있고 수시로 체첸 전쟁으로 군인들을 파견하는 제58군의 제19사단을 시찰했다. 그 사단의 군인들이 체첸 사람들에게 이유 없는 사살, 고문, 겁탈 등의 만행을 자주 저지른다는 제보가 잇따랐기 때문이었다. 거의 10년 동안 약 6만명의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과의 상담을 통해 러시아 군의 실상을 잘 알았던 그들마저도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몇 개월째 월급이 밀린 장교들은 휘하의 병졸들을 인접 지역 토호들에게 ‘일시적 노예’로 팔아 생계를 꾸렸다. ‘일시적 노예’는 일정 기한 돈을 받지 않고 부리는 일을 다 해주는 것을 의미했다. ‘증오심 교육’과 ‘맹종 훈련’
장교들의 설명대로 ‘일시적 노예’로 파는 데는 일석이조의 이득이 있다. 장교 가족의 생계도 보장되지만 코카서스 사람 밑에서 부림을 당한 사람이면 체첸을 위시한 일체 코카서스 민족들에 대한 증오심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적개심 훈련’을 시키는 셈이었다. 그렇게 해야 정훈 시간에 ‘일체 체첸족의 멸종은 러시아 국가 안보의 보장’이라는 장교의 이야기에 귀를 잘 기울인다는 것이다.
‘증오심 교육’ 이외에 ‘살인 기계’의 탄생을 도와주는 것은 고참의 폭력을 통한 ‘맹종 훈련’이었다. 고참들의 요구대로 당장 돈이나 담배를 갖다주지 않았다거나 “원주민의 집을 털자”는 고참의 제안을 거부한 신참이 당장 죽임을 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은 어떤 명령이든 체첸의 전장에서 항명할 확률이 없다. ‘반도’(체첸 독립군)에게 포위당한 전우들을 대포로 쏘아 죽이라는 명령(체첸 독립군에게 생포될 경우 사회적 파문이 예상되기에, 보통 러시아군 장교들은 생포될 위험에 처하는 아군의 병졸들에 대한 사살을 명령한다)이든, 체첸 주민 10명씩 묶어서 폭탄으로 죽이라는 명령이든, 항명자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이라면 거역할 수 없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 본능’을 극도로 자극하고 윤리 등의 후천적 의식들을 마비시키는 러시아 군대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인간을 ‘완벽한 살인 기계’로 만든다. 그렇다면 노예로 부림을 당하고 수시로 죽임을 당할 위험에 처해지는 제19사단의 병졸들은 왜 인권을 주장하지 않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대학 재학생이나 비공식적으로 약 8천달러(한화로 약 1천만원)의 뇌물을 줄 재력가(지방 도시는 2천~3천달러)의 자식이 아닌 그들은 보통 사회의 최하층에 속한다. 체첸 전쟁으로 보내진 병졸이면 더욱더 그렇다.
2000년 봄 19사단에 들어온 6531명의 신참 병사 중 1590명이 ‘저능아’ 판정을 받았으며, 1173명이 결손가정에서 자랐고, 480명이 상습적 마약 복용자이며, 930명이 ‘정신질환 환자’ 진단서를 갖고 있다. 그들 중에서는 초등학교 중퇴자로 대포 사용 설명서도 못 읽는 자들이 허다하다. 모두 충분히 병역면제 판정을 받을 만한 사람들인데도 뇌물을 바치지 못하는 빈민층에 속한다는 이유로 코카서스로 끌려간 것이다. 어디에도 호소할 곳 없는 그들을 폭력과 죽임의 위협으로 ‘체첸 야수들을 모조리 없앨 우리의 전사’로 키우는 것이다.
인권이 생기면 군대는 해체된다
1주일마다 수백명의 군 폭력 피해자와 가족들이 상담하러 몰려오는 ‘군인의 어머니들’은 러시아 군대가 체첸을 ‘평정’하기는커녕 폭력의 도가니로 만들고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제1차 체첸 침략이 개시된 1994년부터 ‘군인의 어머니들’은 반침략 운동에 앞장서고 체첸 주민들의 인권과 러시아 군인들의 인권 보장을 얻기 위해서 체첸 독립군과 협조해왔다. 고참의 고문을 참다 못해 부대를 탈영한 러시아 병졸들을 체첸 주민이나 체첸 독립군 부대(!)들이 숙식을 제공한 뒤 ‘군인의 어머니들’을 통해 부모에게 넘겨주곤 했다. 러시아 군당국보다 오히려 체첸 독립군들이 측은지심이 훨씬 더 많고 군인 인권의 문제들을 더 잘 이해해준다는 것이 ‘군인의 어머니들’의 평가다.
정훈 자료집에서 “죽이지 말라”는 기독교의 계명을 “국가의 적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적을 죽이는 것이 도덕이다”라고 하는 러시아 군대. 그 군대의 통솔자들에게는 인권에 대한 상식적인 이해마저 전무하다. 러시아 국회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명언’인 “군대 안에서 인권이라는 것이 생기면 군대가 해체되고 만다”는 말은 그들의 세계 인식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그들이 운영하는 엄청난 규모의 고문실인 러시아 군대에게, 러시아의 거의 모든 인구가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장교·병졸로서 군복무를 하지 않아도 고등학교에서 교련수업, 대학교에서 군사교육, 또는 군수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이 가족당 1~2명이 있는 것은 보통이다. 전 국민이 무법 천지에 어떤 방식으로든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이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인구 1만명당 살인사건의 건수로 러시아가 유럽에서 1위(10만명당 거의 30건. 노르웨이 같으면 0.97건에 불과하다)에 올랐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군대에서 ‘살인 기계’가 되어본 사람이, 제대한 뒤 갑자기 차분한 준법 시민이 될 리 만무하다. 초기 근대의 대표적 산물인 징병제 군대는 상당수 국민의 인간성·창조성·정신건강까지 파괴하면서 고급 인적 자원 위주의 탈산업적 사회로 발전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군인의 어머니들’의 주장대로 체첸 지역으로부터의 침략군 철수, 군인 인권의 보장을 위한 특수 국가 감시기관 설립, 진정한 의미의 대체복무제 도입, 점차적 모병제로의 전환 등의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러시아는 사회적 폭력성과 불안정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자료 링크>
러시아 인권운동의 종합 사이트 http://www.hro.org/
러시아 징병제 폐지운동의 총본부, 급진적 반전연합 http://www.ara.ru/
모스크바 반징병제 운동의 종합 사이트 http://copris.com/map/
러시아 고문 반대운동의 종합 사이트(러시아 고문 현황 보고서 등을 볼 수 있음) http://www.pytki.ru/
러시아 군대 현황에 관한 자료집 http://army.ehinaceya.ru/
체첸 전쟁 반대운동의 종합 사이트 http://www.hro.org/war/
러시아 사회 정보통신(사회문제 조명 종합) http://www.asi.org.ru/asinfo/asinfo

사진/ 체첸반군에 사로잡힌 러시아 병사. 러시아 군당국보다 체첸 독립군들이 군대 인권의 문제를 더 잘 이해해준다고 한다. (SYGMA)
현재의 공식 집계로는 1년에 약 1천건(시민단체의 추산으로는 약 5천건)이나 되는 ‘고문사’나 폭행에 따른 자살 등의 사건에 대해서, 1980년대 말의 소련 개혁 이전에는 유가족으로서 국가에 구체적인 진실 규명 요구를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사망통지서에서의 ‘사고사’가 맞아서 죽었거나 폭력과 인격 모독을 견디지 못해 자살한 사실을 가리킨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국가에서 주는 박한 배상금을 받고 억압적 체제의 비위를 건드리지 말아야 했다. 그러다 1980년대 후반의 자유화 바람이 불자, 귀한 아들을 잃고 와신상담의 나날을 보내온 어머니들이 침묵의 관례를 깼다. 1991년 가을에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조직된 ‘군인의 어머니들’(Soldatskie Materi, http://www.soldiersmothers.spb.org/)이라는 시민단체가 효시가 되어, 전국의 대도시마다 군 폭력사 희생자들의 유가족으로 이루어지는 단체들이 속출했다. 성격상 2000년부터 활동을 벌여온 한국의 ‘군의문사 진상규명과 군폭력 근절을 위한 가족협의회’(군가협)와 유사한 그들의 목표는 5가지였다. 기존의 폭력사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 군 폭력의 실상에 대한 정확한 보도와 근절을 위한 노력, 면제 사유가 있음에도 강제 징집을 당하거나 폭력을 견디다 못해 탈영한 군대의 희생자에 대한 상담과 법적 지원, 대체복무제 도입, 모병제로의 전환, 러시아의 제국주의적 대외 정책과 민족 말살 등의 국가 범죄에 대한 단죄와 근절 노력 등이 그것이었다. 이와 같은 노선을 택한 단체가 오래지 않아 군 당국의 ‘눈엣가시’가 되어 국가주의적 성격의 언론의 공격의 타깃이 되는 것은 불문가지다. 그들과 해외 인권·반전·반징병제 단체들의 관계를 들어 ‘외국 앞잡이’, ‘외국의 조정을 받는 해국(害國) 해군(害軍) 세력’으로 부르는 것은 우파 언론의 단골 메뉴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 덕분에 러시아 군대가 인간이 살 수 없는 생지옥이라는 사실이 국내외에 알려지고, 군인 인권 개선, 징병제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러시아에서도 날로 높아져간다. 2000년 8월 ‘군인의 어머니들’ 소속 3명의 활동가들은 체첸과 근접한 코카서스 지역의 한 지점에 있고 수시로 체첸 전쟁으로 군인들을 파견하는 제58군의 제19사단을 시찰했다. 그 사단의 군인들이 체첸 사람들에게 이유 없는 사살, 고문, 겁탈 등의 만행을 자주 저지른다는 제보가 잇따랐기 때문이었다. 거의 10년 동안 약 6만명의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과의 상담을 통해 러시아 군의 실상을 잘 알았던 그들마저도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몇 개월째 월급이 밀린 장교들은 휘하의 병졸들을 인접 지역 토호들에게 ‘일시적 노예’로 팔아 생계를 꾸렸다. ‘일시적 노예’는 일정 기한 돈을 받지 않고 부리는 일을 다 해주는 것을 의미했다. ‘증오심 교육’과 ‘맹종 훈련’

사진/ 체첸전쟁에 동원된 러시아 군인들. 최소한의 정규교육도 받지 못했거나 치명적인 질환을 가진 이들이 '전사'로 키워진다. (SYGMA)
러시아 징병제 폐지운동의 총본부, 급진적 반전연합 http://www.ara.ru/
모스크바 반징병제 운동의 종합 사이트 http://copris.com/map/
러시아 고문 반대운동의 종합 사이트(러시아 고문 현황 보고서 등을 볼 수 있음) http://www.pytki.ru/
러시아 군대 현황에 관한 자료집 http://army.ehinaceya.ru/
체첸 전쟁 반대운동의 종합 사이트 http://www.hro.org/war/
러시아 사회 정보통신(사회문제 조명 종합) http://www.asi.org.ru/asinfo/asinf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