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떨던 미국 언론이 정작 연쇄 저격의 동기에는 침묵… 무엇이 진정 국익을 위한 일일까
연쇄 저격사건은 테러 정국으로 뒤숭숭한 미국인의 가슴을 할퀴고 간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다. 한낮에 수도 일원에서 저격살인이 자행됐고 보안당국은 속수무책으로 일관해 3주 동안 무정부 상태를 방불케 했다. 현지에서는 “갑자기 일어난 9·11보다 시간을 두고 조여오는 저격공포가 차라리 더 두렵다”, “이젠 이곳이 이스라엘인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분위기였다.
절차상의 문제에만 초점 맞춰
전선에 서 있지도 않은 일반 국민을 연쇄 테러의 악몽으로 몰아넣었다는 점에서 미국에게 이 사건의 의미는 처음부터 심상치 않았다. “알카에다 테러조직의 공격이다”, “단순한 정신이상자의 자기과시일 뿐이다”, “돈을 노린 엽기적 살인광의 신종 범죄다” 등 용의자들이 체포되기 전까지 이 사건의 동기를 놓고 현지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구구한 억측이 난무했다. 의문의 초점은 역시 “이것이 테러인가, 아닌가” 하는 것.
연쇄 저격사건 용의자인 흑인 부자의 체포로 대다수 미국민은 안도와 함께 그간 ‘세기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던 사건의 본질이 세상에 알려지겠구나 하는 기대감을 가졌다. 그러나 두 용의자가 체포된 지 몇주나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이대로 가면 이번 사건의 본질은 미국민과 세계인들의 뇌리에서 점점 사라지는 상황이 될 분위기다. 애초 미국 언론들은 이 사건으로 연일 지면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수주 동안 거의 날다마 현지 주요 언론들의 1면 헤드라인을 장식할 정도였고, 용의자들이 체포된 뒤 상당 기간 이 같은 현상은 지속됐다. 이제까지 알려진 용의자들에 대한 개인 정보는 넘치다 못해 지나치다고 할 정도다. 그러나 수사 당국자들이나 현지 언론들이 전하는 것만 보면 도무지 무엇이 사건의 본질인지 알 수가 없다. 테러인지 아니면 개인적 원한인지 감을 잡을 수 없다. 잔 알렌 무하메드 또는 잔 알렌 윌리엄스, 올해 41살의 전직 군인, 80년대 워싱턴주 포트 루이스 병영 근무, 걸프전 참전 용사, 94년 상사로 명예제대, 두 차례 이혼, 17년 전 이슬람교로 개종, 미 육군 명사수 자격증 소지, 걸프전 당시 화학가스에 노출됐을 가능성…. 잔 리 말보, 17살, 자메이카 국적으로 무하메드의 양아들, 미국에 어머니를 따라 불법월경, 워싱턴주 타코마와 무숙자 수용시설에서 무하메드와 거주…. 언론들에는 두 사람의 신상명세에서 시작해 이들의 사생활·성격·주거지·생활상 같은 잡다한 정보들이 홍수를 이뤘다. 무하메드가 두번의 이혼을 했다는 것과 성격이 어떻다는 것, 가정문제가 어떻다는 것 따위가 대부분이다. 이들 부자의 체포 이후 보도의 초점은 대부분 누가 총을 몇발 쐈느냐 죄목이 어떻게 되느냐 형량이 어떻게 되느냐 어느 주 법원에서 재판하느냐는 등 거의 절차상 문제에만 맞춰졌다. 이런 와중에도 이들이 알카에다 같은 국제테러조직과 관련이 없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테러가 아닌 쪽으로 흘러가는 분위기다. 누가 용의자들의 입을 막나
그러나 이들의 ‘저격축제’는 철저하게 계획된, 미국을 상대로 한 테러일 수도 있다는 의문이 고개를 들고 있다. 범행동기와 관련된 부분은 추론을 통해 얻어질 수밖에 없다. 언론도 적극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수사기관이 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이 여행을 떠나기 전 살던 타코마 지역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사건 발생 약 3달 전에 두 용의자의 계획을 들은 인물이 있었다(이웃 또는 절친한 사인데 신변보호 문제로 제보자 신분은 정확하게 밝히지 않음). 제보자는 이후 경찰당국에 신고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제보자는 이들 부자가 전국 여행을 떠나기 전 “경찰들을 저격해 살해하겠다”는 말을 했고 이를 통해 “미국의 몰락(downfall of America)을 가져오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 같은 사실은 대다수 미국민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물론 보안기관쪽은 이보다 정보가 많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또 9·11 테러의 심정적 동조자기도 했다. 시애틀 지역 언론들의 조사결과 이들은 자신들로서는 “9월11일 비행기를 납치해 돌진한 이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을 주변 사람들에게 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무하메드는 또한 미국의 유력한 반체제 성향 단체인 이슬람국가(Nation of Islam)의 회원으로 1995년에 일어난 워싱턴의 시위에도 참가한 경력이 있다. 이들은 최소한 미국의 체제에 대한 심각한 염증이나 증오심이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산발적으로만 이 같은 사실이 보도될 뿐 전체적인 그림이 전혀 잡히지 않는 상황이다.
이들이 그런 가공할 사건을 벌인 이면에는 할말이 있었을 것이다. 이들의 방식이 정당했는지는 두 번째 문제다. 그러나 이들은 지금까지 단 한마디도 말이 없다.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못하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고 볼 수 있다. 미 연방수사국(FBI)이 의도적으로 용의자들의 증언을 방해하고 있다는 의혹이 이를 뒷받침한다.
용의자들이 체포된 뒤 메릴랜드주 당국은 “볼티모어 소재 미 연방검찰이 스나이퍼 용의자인 잔 알렌 무하메드에 대한 심문을 못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체포 당일 이들에 대한 접근도 방해받고 이들의 고백을 들을 수 없었다”고 연방법무성에 강력히 항의했다. 메릴랜드주는 사건 다발지역인 몽고메리 카운티가 소속된 주다. 이 과정에는 백악관이 직접 개입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언론들은 이 같은 문제에는 묵묵부답이다. 다른 사건 같으면 보여줘야 할 언론의 집요한 추궁이 없다. 흔한 변호인의 발언도 없어서, 용의자들이 변호인의 조력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인 것처럼 보인다. 이는 알카에다 대원들이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손발이 묶인 채 짐승 같은 대우를 받았다는 의혹이 국제인권단체에서 제기했을 때도 미국 언론들이 침묵으로 일관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미국의 국가체제를 위협하는 사인일 때는 헌법에 나타난 기본권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듯한 언론의 태도가 그것이다. ‘자유와 인권의 나라’로 포장된 미국에서도 인권의 보장이란 상대적이고 차별적이라는 느낌이 든다.
오클라호마 폭파사건과도 비슷
미국 언론은 다른 면에서는 특유의 민첩성을 보여줬다. 연쇄 저격이 진행되는 동안 백인·흑인·멕시칸 가릴 것 없이 모두가 언론의 인터뷰 대상이었다. 그러나 연쇄 저격 용의자들이 체포된 이후 안도하는 인터뷰 대상자들은 대다수가 흑인들이다. 인종 간 갈등을 배려한 기자들의 의도가 눈에 보인다. 이런 면에서는 보도지침 같은 것이 없어도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
어쨌든 사건이 이런 식으로 진행되면 연쇄 저격사건의 진실은 영원히 잊히거나 법정에 오른 뒤 식은 감잣덩어리 같은 형태로 미국인에게 던져질 가능성이 크다. 마치 사형 직전에 가서야 자신이 미국에 저항한 이유를 알릴 수 있었던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폭파사건의 주인공인 티모시 맥베이 사건 때처럼.
연쇄 저격사건이 과연 테러냐 아니냐는 의문도 중요하지만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이 더 섬뜩하다. 11월9일 법정에 선 용의자들에게 부과된 혐의 가운데는 ‘테러’ 라는 단어가 분명히 들어가 있다. 그들이 테러를 저질렀으면 무슨 이유로 증오심을 갖고 테러를 기획했는지에 대해 국민은 알 권리가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식의 언론 태도가 과연 미국의 진정한 국익을 위해서 바람직한 것일까. 이 상태로 나아가면 미국의 역사책에는 “21세기 초반 미국 정부와 언론이 진실보다는 국익을 앞세워 부자연스런 동거를 했다”는 기록을 피할 수 없을지 모른다.
LA=박귀용 전문위원 rinaldy@empal.com

사진/ 용의자 재판에 대해 언론에 설명하고 있는 몽고메리카운티 검찰. 메릴랜드 주당국은 심문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연쇄 저격사건 용의자인 흑인 부자의 체포로 대다수 미국민은 안도와 함께 그간 ‘세기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던 사건의 본질이 세상에 알려지겠구나 하는 기대감을 가졌다. 그러나 두 용의자가 체포된 지 몇주나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이대로 가면 이번 사건의 본질은 미국민과 세계인들의 뇌리에서 점점 사라지는 상황이 될 분위기다. 애초 미국 언론들은 이 사건으로 연일 지면을 도배하다시피 했다. 수주 동안 거의 날다마 현지 주요 언론들의 1면 헤드라인을 장식할 정도였고, 용의자들이 체포된 뒤 상당 기간 이 같은 현상은 지속됐다. 이제까지 알려진 용의자들에 대한 개인 정보는 넘치다 못해 지나치다고 할 정도다. 그러나 수사 당국자들이나 현지 언론들이 전하는 것만 보면 도무지 무엇이 사건의 본질인지 알 수가 없다. 테러인지 아니면 개인적 원한인지 감을 잡을 수 없다. 잔 알렌 무하메드 또는 잔 알렌 윌리엄스, 올해 41살의 전직 군인, 80년대 워싱턴주 포트 루이스 병영 근무, 걸프전 참전 용사, 94년 상사로 명예제대, 두 차례 이혼, 17년 전 이슬람교로 개종, 미 육군 명사수 자격증 소지, 걸프전 당시 화학가스에 노출됐을 가능성…. 잔 리 말보, 17살, 자메이카 국적으로 무하메드의 양아들, 미국에 어머니를 따라 불법월경, 워싱턴주 타코마와 무숙자 수용시설에서 무하메드와 거주…. 언론들에는 두 사람의 신상명세에서 시작해 이들의 사생활·성격·주거지·생활상 같은 잡다한 정보들이 홍수를 이뤘다. 무하메드가 두번의 이혼을 했다는 것과 성격이 어떻다는 것, 가정문제가 어떻다는 것 따위가 대부분이다. 이들 부자의 체포 이후 보도의 초점은 대부분 누가 총을 몇발 쐈느냐 죄목이 어떻게 되느냐 형량이 어떻게 되느냐 어느 주 법원에서 재판하느냐는 등 거의 절차상 문제에만 맞춰졌다. 이런 와중에도 이들이 알카에다 같은 국제테러조직과 관련이 없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테러가 아닌 쪽으로 흘러가는 분위기다. 누가 용의자들의 입을 막나

사진/ 연쇄 저격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된 무하마드. 그는 왜 미국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을까. (GAMMA)

사진/ 용의자들이 타고 있던 차량과 트레일러. 용의자들이 미국 체제에 증오심을 갖고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