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핵 전문가가 본 북한 핵문제… ‘불량국가’로만 몰아세울 수 없는 상당한 합리성도 깔려 있어
북한은 핵무기뿐 아니라 ‘더 강력한 것들’을 획득하겠다는 의지로 오래전부터 온 세상에 이름을 떨쳐왔다. 그러나 왜 이 시점에서 미국 정부 관리들을 통해 북한 핵 문제가 폭로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석연찮은 구석이 많고 매우 이례적이라는 생각을 접을 수가 없다.
떠오르는 세 가지 의문
세 가지를 짚어보자. 하나는 미 국무부가 핵 정보를 움켜쥐고 있다가 평양-워싱턴이 잘 익어가는 마당에 왜 꺼내들었느냐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이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왜 미 국무차관 제임스 켈리가 정보국 자료를 디밀자 인정했느냐는 점이다. 평양은 처음에 역정을 부리며 부정했다가 바로 다음날 고백하는 과정을 거쳤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대량살상용 무기에 대한 충분한 증거도 없이 미국이 이라크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놓고 볼 때, 북한은 심지어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자백했는데도 왜 미국이 매우 온건하게 다루느냐는 대목이다. 이쯤 되면 미국이 이라크를 치겠다는 계획은 여러 가지를 헷갈리게 한다.
워싱턴은 이른바 ‘악의 축’에 북한을 포함시켰다. 그러나 오늘까지 워싱턴 당국자들은 “평화적 해결을 모색하고 있다”는 게 다다. 미국은 공군이나 해병대를 동원해 북한을 공격하겠다는 의지를 전혀 나타내지 않았고, 오직 대화하겠다며 외교관을 파견했을 뿐이다. 심지어 흔해빠진 포괄외교(gunboat diplomacy) 같은 정도도 상정하지 않았다.
이처럼 이례적으로 북한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는 북한 미사일 사정거리에 들어 있는 주한미군에 대한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라 추측해본다면, 그리고 이라크라는 ‘악마’에게는 난폭하고 날카로운 수사법을 동원해 미친 듯이 전쟁동원체제를 구축해가고 있다는 사실과 대비해본다면 자연스레 세 번째 의문은 일정하게 풀어낼 수 있을 듯하다.
그러나 두 번째 의문에는 쉽사리 접근할 수 없다. 왜 북한이 1994년 미국과 협의한 핵확산금지조약이나 한반도 비핵화를 다룬 남-북 공동협정을 위반한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의 존재를 인정했느냐는 점이다. 다시, 왜 평양은 지금 스스로 위반하는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94년 협정의 골격을 ‘무효화’하는 이상한 전술을 택했느냐는 점이다.
하나 추론해볼 수 있는 건 북한이 다시 핵 사안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는 극단적인 정책쪽으로 결정을 내린 게 아닌가 하는 짐작이다.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인정하고 한술 더 떠 핵무기 제조 의향을 선언하는 것이 더 큰 흥정거리가 될 수 있다는 차원에서 볼 때.
“북한은 핵무기 폭로를 지렛대로 삼아 미국으로부터 뭔가를 얻고자 한다.” 런던 LSE(London School Economics) 마이클 야후다 국제관계학 교수의 말처럼. 흥정은 재정지원이나 식량 또는 중유 같은 것들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유 지원, 제대로 받은 적이 없다
지난 94년 협정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은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는 대가로 1000메가와트급 경수로를 2003년까지 건설·제공하기로 했으나, 계획은 꼬일 대로 꼬여 연기되면서 올 여름 들어서야 겨우 시작되었다. 또 50만t 중유 지원계획은 경수로가 기능을 발휘할 때까지 북한의 열악한 에너지난을 돕기 위해 해마다 지급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으나, 북한은 제대로 지원받은 적이 없었다. 미국쪽 중유 지원금은 이미 의회 승인을 받았으나 부시 행정부는 북한이 94년 협정을 준수하지 않았다며 지원을 거부했다.
이런 배경들을 짚어보면 최근 북한이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의 존재를 고백한 까닭은 이처럼 중단되었거나 진행되지 않는 94년 협정 조건들을 더 빨리 진척시켜 중유와 경수로를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풀이해볼 수 있다. 이건 과거에도 북한이 즐겨쓴 압박전술에 해당한다. 북한은 93년과 94년 핵 사안을 내걸고 성공적인 흥정을 벌인 적이 있다. 93년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과 국제원자력기구 사찰을 모두 거부하는 위협적인 전술을 구사했다. 그것은 미국과 유엔을 외교 협상 테이블로 끌고 나오는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고 결국 94년 협정을 이끌어냈다.
북한이 흥정거리로 내밀 만한 것은 60년대 태천과 영변에 건설한 200메가와트급 원자로와 핵연료재처리공장 같은 시설물들인데, 초점이 되는 북한 핵무장 능력에 대해서는 국제사회가 아직 명백한 정보를 확보하지 못한 실정이다. 최근 <뉴욕타임스> 기사를 빌려보면 미 당국자들마저 “북한이 핵무장을 했는지 어떤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고 할 정도다.
올 3월 미 중앙정보국(CIA) 판단자료에 따르면 94년 이전 북한은 적어도 핵무기 1~2기를 만들 수 있는 충분한 플루토늄을 비축했다고 하고, 미국과학자연합(FAS)은 북한이 핵탄두 3기를 만들기에 충분한 플루토늄을 확보하고 있다는 식으로 정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이런 기준에서 볼 때 가장 최근의 폭로는 또 다른 재미난 억지를 포함한다. 그동안 북한이 선택한 핵무기 제조술은 원자로에서 나온 잔여물을 재처리해서 얻은 플루토늄을 이용하는 것이라 믿어왔는데, 지금 북한은 더 어려운 기술로 알려진 우라늄 농축 기법으로 핵무기 제조 프로그램을 가동해왔다고 발표해버렸으니 말이다. 이 대목은 말할 것도 없이 북한의 핵 흥정 가치를 또 한 단계 상승시켜놓을 것으로 보인다. 또 농축기술 출처를 놓고 심각한 억측들이 난무할 게 뻔한 가운데.
파키스탄 내세우는 발빠른 인도
핵 야망이 큰 인도는 발빠르게도, 물론 증거도 없이 그 출처를 파키스탄이라 주장했다. 파키스탄이 북한으로부터 구입한 로동미사일을 가우리미사일로 개명해서 사용하는 나라라는 걸 주목한 인도 셈법이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북한의 극단적인 핵 정책이나 흥정이 결코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는 비이성적인 버릇을 지닌 ‘불량국가’와는 좀 다른 성격이라고 보아왔다. 북한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열심히 밀어붙이지만 조건들을 뜯어보면 상당한 합리성을 바탕에 깔고 있다는 걸 많은 전문가들이 인정해왔듯이.
이런 까닭에 김대중 대통령도 핵 폭로가 나오자마자 즉각 평양이 문제해결을 위해 남-북 간 대화를 원한다는 신호로 해석했던 셈이다. “정부는 심각하게 북한 핵 사안을 주시하고 있으며 또 북한이 대화로 문제해결을 원한다는 걸 주목하고 있다”고 서울 당국자도 밝혔듯이.
같은 시각, 무장억제 정책이 결코 기능할 수 없다고 믿는 미국 우익 매파들은 최근 북한 핵 폭로를 ‘불량국가’나 ‘악의 축’이 지닌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결국 군사공격밖에 없다는 선전장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에 따라 모든 약속을 지키고 또 입증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제거해나가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온건파들 주장이 상당한 설득력을 얻어가는 추세다. 이런 과정에서, 예기치 않았던 긍정적인 부산물로 미국이 대이라크 공격계획을 수정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신중한 분석들이 나돌기 시작했다.
그래서 세계 시민사회는 비록 북한이 극단적인 위험성을 동반한 기괴한 전술을 구사하는 걸 탓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눈을 밝게 뜨고 이번 핵 폭로 사안으로부터도 “또 배워야 한다”는 결론을 얻고 있다.
국제사회는 이번 북한 핵 폭로를 놓고, 혹시 우파 주전론자들로부터 공격을 받고 논쟁에 휩싸이면서 벌어질지도 모를 한국 내 ‘햇볕정책 포기론’ 같은 저질스런 분위기를 매우 심각한 눈길로 지켜보고 있다.

사진/ 프라풀 비드와이(Praful Bidwai), 전 <타임 오브 인디아> 편집장·핵 전문 칼럼니스트

사진/ 지난 10월21일 평양만수대 의사당에서 김영남(오른쪽)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만나 악수하는 정세현 통일부 장관. (사진공동취재단)

사진/ 한반도 비무장지대의 지뢰제거작업. 북한의 핵 폭로가 남한 내 햇볕정책의 포기로 이어질까 우려하는 분위기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사진/ 파키스탄에서 가우리미사일로 개명해 사용하고 있는 북한의 로동미사일. 북한의 우라늄 농축기술 출처가 파키스탄이라는 인도의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