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전선동과 축제의 장…후세인에 100% 찬성표를 던진 이라크 대선현장을 누비다
“위대한 지도자 사담 후세인에게 예스(YES), 예스를!” 이라크의 주요 관공서와 호텔, 시장 등 공공장소는 물론 일반 주택가 벽에는 아직도 수많은 벽보와 현수막이 어지럽게 나붙어 있다. 후세인 대통령에게 찬성표를 호소하고, 미국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정책을 비난하는 내용이다. “이라크인들이 후세인 대통령을 지지한 용기와 헌신에 찬사를 보냅니다. 이라크인들은 어둠보다 빛과 신의를, 야만보다 문명을, 패배보다 승리를 선택했습니다.” 에이자트 이브라힘 국가평의회 부의장은 10월15일, 전국 15개 주 1905개 투표소에서 진행된 국민투표 결과를 발표했다. “총 투표자 1144만5638명 전원의 100% 찬성표로 사담 후세인 대통령이 그의 임기를 7년 연장하게 됐다. 이 같은 결과는 2500만 이라크인 모두 미군과 싸울 준비가 돼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라크 공식 총 유권자 1175만8900명 가운데 총 투표자 1144만5638명 전원이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95년의 특표율은 99.96%였다.
피로 투표하는 열혈 유권자
“위대한 지도자 사담 후세인에게 찬성표를!”은 이라크 체류기간 내내 귓전을 맴돈 구호였다. 지난 달 말부터 어지럽게 나붙기 시작한 벽보와 현수막이 모두 이 같은 내용이었다. 투표 전에는 “우리의 친애하는 지도자 사담 후세인 대통령에 대한 전폭적 지지만이 대미항전의 의지를 굳게 천명하는 것이다”라는 투표 독려 방송이 넘쳐났다. 정부는 투표 당일을 국민대행진의 날 국민대축전의 날로 일컫고 임시 공휴일로 지정했다. 투표 열기를 강화하려는 듯 투표일 전날 오후부터 관광지 등을 폐쇄하기도 했다. 이라크의 ‘선거 특수’는 엄청났다. 사담 배지, 사담 스티커는 물론이고, 사담 기(旗)와 사담 티셔츠가 엄청나게 만들어졌다. 바그다드 인근 사담시에서 만난 알리 하산(43)은 자신이 그린 사담 후세인 초상화 모두를 행사장에서 팔았다며 뿌듯해했다.
10월15일 국민투표일은 국민축제일이었다. 쿠르드 3개 자치주를 제외한 전국 15개 주 1905개 투표소에서 투표가 진행되었다. 거리는 한산했다. 대부분의 상점들은 문을 닫았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심지어 시외버스 터미널도 이동 인구가 거의 없을 지경이었다. 투표장에서는 이라크 전통 가락이 연주되는 가운데 양을 잡아 그 피를 땅에 뿌리는 것으로 투표를 시작했다. 이른 아침부터 동원한 초·중·고생들은 꽃과 후세인 초상이 담긴 피켓 등을 들고 춤을 추며 연신 외쳐댔다. “사담 후세인 대통령에게 찬성표를!” 남학생들 가운데 다수는 사담 후세인의 초상을 새긴 티셔츠로 유니폼을 맞춰 입었다. 18살 이상의 유권자들은 하나의 이벤트에 참가하는 듯했다. 열혈 유권자들은 피로 투표했다. “나의 피로 사담 후세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팔레스타인과 아랍에 대한 지지를 보냈다.” 면도칼로 자신의 손가락을 그어 피로 찬성표를 한 알리 하산은 사담 후세인을 연호했다. 투표소 곳곳에서는 “비르루히 비담미…” 즉, 내 혼과 내 피로 사담 후세인을 지지한다는 외침이 가득했다. 위성 채널을 비롯한 이라크 국영 TV는 하루 종일 투표 현장의 열기를 화면에 담았다. 국영방송 캐스터는 자신이 미리 준비한 엄청난 분량의 원고를 읽어대느라 연신 땀을 닦아내고 있었다. 에이자트 이브라힘 부의장을 비롯한 정부 수뇌부와 각료들은 투표장 곳곳을 방문하고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이라크식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투표가 끝났다. 국민 대승리를 자축하는 시청자 참여 방송이 이틀이나 이어졌다. 골자는 ‘위대한 대통령을 가진 위대한 국민의 위대한 승리’였다. 신문 논조도 예외는 아니었다. 투표가 끝난 직후부터 바그다드 곳곳의 번화가는 인파들로 넘쳐났다. 알만수르가와 아르 라시드가, 공화국로, 축제 광장 등에서는 국민 행진이 이어졌다. 다양한 포즈의 후세인 사진과 이라크 국기, 조화 등으로 요란하게 장식한 차량들이 경적을 울리며 거리를 누볐다. 행진에 참여한 시민들은 노래를 부르고 몸을 흔들어댔다. 시내 곳곳에서는 총성이 끊이지 않았다. 시민과 군 당국이 쏘아대는 총성과 축포 소리였다. 마치 월드컵 4강 진출을 자축하는 한국의 거리 분위기를 떠오르게 했다. 투표가 끝나자 신문과 방송은 사담 후세인 기사로 넘쳐났다. 국영 TV와 아샤바브 TV, 라디오에서는 이브라힘 부의장의 개표 발표가 반복되고 시청자들의 후세인 찬양이 이어졌다.
이번 국민투표는 ‘이라크식 민주주의’의 결정판이었다. 투표 현장이나 축제 현장에서 만난 이라크인들은 자신들의 사담 후세인 지지 열기는 자발적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서구의 잣대로 이라크 국민투표 현장의 비민주적 요소들을 꼬집기에 그 열기는 뜨거웠고 분위기는 진지하기만 했다. “100% 찬성! 서방세계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로 이라크식 민주주의에 놀랄 따름입니다. 이라크 국민의 국민투표는 저들의 민주주주입니다. 우리는 다만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독일에서 온 루 볼로프 기자는 선거 결과를 이렇게 평가했다.
전산화도 제대로 돼 있지 않은 이라크에서 투표가 끝난 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결과가 집계된 과정은 의아하다. 이브라힘 부의장도 이 부분에 대해 구체적 언급을 피했다. 투표 현장을 누비며 투표 절차상의 문제점을 발견할 수도 있었다. 가족을 대표하는 듯 한명의 유권자가 여러 장의 투표지를 투표함에 넣는 광경도 쉽게 눈에 띄었다. 그렇다고 이 같은 장면을 취재진들에게 감추려고 하지도 않았다.
일부 언론에서 제기하듯 군과 경찰을 동원한 강압적 분위기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교통경찰들은 질서를 유지하는 선이었고, 취재진에게 공개한 주요 투표소는 정부 요인들이 방문할 장소이기에 기본적인 경계 업무를 펼친 것이다. 어차피 투표장에 나온 이들은 찬성표를 던지기 위해 나온 이들이었기에 찬성을 강요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투표 현장에서 만난 유권자들은 공개적으로 자신이 후세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을 자랑삼아 말했다. 취재진에게 공개하지 않은 일부 투표소를 갔을 때도 나름대로 자유로운 투표 분위기를 엿볼 수 있었다. 투표 종사자들은 본인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애를 썼다. 라이드 하산(32) 등 바그다드에서 만난 시민들은 투표를 하지 않아도 별다른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고 했다.
후세인의 인기는 거품이 아니다
쿠르드 3개 자치지역의 상대적으로 강한 반사담 정서가 투표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과 국민투표에서 드러난 민심이 그 자체로 친사담 민심은 아니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번 국민투표는 전쟁 가능성이 현실화하는 위기상황에서 미국의 군사위협에 맞서려는 이라크인들의 단결과 저항의 메시지로 해석된다. 아울러 23년 이상 권력을 유지해온 사담 후세인의 인기가 결코 거품이 아니라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이 우리의 내정에 개입할 아무런 권리가 없지 않은가. 우리의 지도자는 우리가 결정한다.” 한 이라크 시민은 반문한다. 바그다드를 떠난 10월16일 저녁, 갑작스럽게 돌풍이 몰아쳤다. 가로수가 뽑히고, 먼지로 인해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전쟁의 돌풍은 어느 날 문득 이라크인들의 현실이 될지 모른다. “전쟁은 이라크인들의 손에 달려 있지 않다. 미국의 부시 행정부만이 그것을 결정한다.” 다가온 전쟁이 걸프전과 비교되지 않을 만큼 민간인에게 큰 피해를 입힐 것으로 우려하는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바그다드=글·사진 김동문 전문위원 yahiya@hanmail.net

사진/ 바그다드 투표 현장의 열기. 이라크인들에게 국민투표는 하나의 이벤트였다. 아빠가 친사담이면 아들도 친사담. "우리는 대대로 사담팬입니다"(아래 오른쪽).

사진/ 국민투표에 참여한 현역 군인들. 전쟁에 대한 위기의식은 후세인 지지를 더욱 공고히 한다.
10월15일 국민투표일은 국민축제일이었다. 쿠르드 3개 자치주를 제외한 전국 15개 주 1905개 투표소에서 투표가 진행되었다. 거리는 한산했다. 대부분의 상점들은 문을 닫았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은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심지어 시외버스 터미널도 이동 인구가 거의 없을 지경이었다. 투표장에서는 이라크 전통 가락이 연주되는 가운데 양을 잡아 그 피를 땅에 뿌리는 것으로 투표를 시작했다. 이른 아침부터 동원한 초·중·고생들은 꽃과 후세인 초상이 담긴 피켓 등을 들고 춤을 추며 연신 외쳐댔다. “사담 후세인 대통령에게 찬성표를!” 남학생들 가운데 다수는 사담 후세인의 초상을 새긴 티셔츠로 유니폼을 맞춰 입었다. 18살 이상의 유권자들은 하나의 이벤트에 참가하는 듯했다. 열혈 유권자들은 피로 투표했다. “나의 피로 사담 후세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팔레스타인과 아랍에 대한 지지를 보냈다.” 면도칼로 자신의 손가락을 그어 피로 찬성표를 한 알리 하산은 사담 후세인을 연호했다. 투표소 곳곳에서는 “비르루히 비담미…” 즉, 내 혼과 내 피로 사담 후세인을 지지한다는 외침이 가득했다. 위성 채널을 비롯한 이라크 국영 TV는 하루 종일 투표 현장의 열기를 화면에 담았다. 국영방송 캐스터는 자신이 미리 준비한 엄청난 분량의 원고를 읽어대느라 연신 땀을 닦아내고 있었다. 에이자트 이브라힘 부의장을 비롯한 정부 수뇌부와 각료들은 투표장 곳곳을 방문하고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이라크식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사진/ 다양한 모델의 시계에 등장하는 사담 후세인. 후세인의 존재는 이라크인의 생활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사진/ "2500만 이라크인은 사담을 선택했다." 투표 결과를 발표하는 에이자트 이브라힘 국가평의회 부의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