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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한국문학, 부흐메세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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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0-23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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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책박람회 ‘부흐메세’에서 주제국가 전시관을 열기 위한 문인·출판인들의 노력

사진/ 부흐메세 집행부와 러시아 정부 관계자들이 2003년 부흐메세 주제국가가 러시아임을 발표하고 있다. 가운데가 폴커 뉴만 부흐메세 조직위원장, 맨 왼쪽이 홀거 에링 부위원장.
세계 최대 규모의 책 전시회 ‘프랑크푸르트 부흐메세’(Frankfurt Buchmesse)는 해마다 세계적인 금융도시 프랑크푸르트 전체가 가을로 물들어가는 10월에 열린다. 한해가 다 가는 시점에 찾아오는 그 어떤 목마름 같은 것을 달래기 위해 ‘책의 바다’에 기꺼이 자신의 정신을 젖게 하고 싶은가.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출판업자들이 스타가 될 책을 스카우트하며 차갑게 계산기를 두드리는 동안 인간의 정신을 풍요롭게 할 책과 작가를 찾아서 부흐메세에 오는 방문객은 26만여명에 이른다. 40만여권이 모인 거대한 규모의 책세상에서 열심히 다리품을 팔며 다니는 이들. 그러다가 문득 발길을 멈추는 곳이 있다.

국제포럼에 한국 작가들 참여

사진/ 지난 10월12일 열린 '한국:분단국가, 분단문학'이라는 주제의 토론회 장면. 왼쪽부터 작가 황석영, 이호철, 독일 방송 의 방송인 토마스 호크, 여성학자 김영옥.
그곳은 주제국가 전시관(Guest of Honor), 부흐메세의 꽃이다. 주제국가관 프로그램은 매년 한 나라를 주제국가로 정해 그 나라에서 생산된 작품의 번역출판물을 중심으로 작가와의 만남, 사진전, 음악회 등의 다양한 이벤트를 통해 한 국가의 문화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행사다. 1989년에 처음 도입된 이 행사는 이를테면 특정국가의 문학·예술·역사의 세계로 안내하는 ‘문화의 창문’인 셈이다. 그래서 부흐메세 주최쪽은 주제국가 후보 선정에서부터 심혈을 기울인다.


최근에는 2003년 이후 주제국가관 유치를 놓고 부흐메세쪽과 한국의 조심스러운 교감이 이뤄지고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출판협) 관계자들이 부흐메세의 조직위원장인 폴커 뉴만을 만나 한국의 주제국가관 유치에 관한 상호 관심을 표명했고, 주독일 대사관의 문화 홍보원이 부흐메세 부조직위원장인 홀거 에링을 만나 내년에 더 넓어지는 한국관에서 치를 기획행사에 관한 의견을 교환했다.

출판협의 송영만 상무이사(효형출판사 대표)는 “조직위원장은 한국 문화에 관한 출판물의 번역이 많이 나오는 등 여러 가지 조건이 충족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국의 주제국가관 유치 가능성을 비쳤다”며 이에 관한 “서로간의 긍정적인 입장을 확인했음”을 시사했다. 주독 대사관 문화홍보원 이현표 원장도 “내년에는, 예를 들면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보다 200여년이나 앞선 금속활자 역사가 한국에 있음을 알리는 ‘한국의 고인쇄문화전’ 같은 것을 구상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확정적인 것은 아니며 앞으로 이에 대한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해 주제국가관 유치 가능성에 대해 한국이 좀더 적극적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부인하지는 않았다.

올해는 또한 ‘분열된 세계를 잇는 다리’(Bridges for a world divided)라는 주제로 열린 국제포럼의 한 프로그램에 한국 작가 황석영, 이호철, 여성학자 김영옥(이화여대 여성학연구소 연구원)씨가 초대되어 ‘한국: 분단국가, 분단문학’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독일의 헬가 피흐트 교수 등과 함께 토론을 벌였다. 1564년에 시작된 부흐메세에 1961년부터 한국이 참가하기 시작했는데 이 행사의 중심 기획 프로그램에 초대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한국문학 번역원과 부흐메세쪽의 공동 작업으로 결실을 맺은 이 토론회는 부흐메세의 모든 것을 잘 활용한다면 한국문학을 중심으로 한 문화홍보가 국제사회에서 충분히 가능한 일임을 말해준다. 이 날 토론자의 한 사람으로 참석한 김영옥씨는 “부흐메세에서 작가와 함께 한국문학의 한 모습을 보일 수 있게 된 것이 기쁘다. 앞으로 주제국가관 유치 등으로 계속적인 성과를 이뤄나간다면 한국작가의 노벨상 수상도 기대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며 이날 행사에 의미를 부여했다.

한국의 문화적 힘을 알려라

사진/ 주제국가관을 국제포럼장 밖에서 바라본 모습. 올해 처음 기획된 국제포럼은 주제국가관과 같은 장소에 배치됐다(왼쪽). 부흐메세 일반 매장에서 독일작가 귄터 그라스가 독자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책 한권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그들만의 최고의 책으로 남거나 출판시장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거나 또는 어느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는 사실은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날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우연이 아니다. 어느 한 나라의 작품들과 작가들, 그리고 그들을 키워낸 고향의 문학적 토양까지도 세계적인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그들을 뒷받침하는 다양한 물밑작업과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그런 점에서 “부흐메세의 주제국가관 유치에 앞서 ‘외국에서 세계를 다루는 책들에는 왜 한국이 없는가’라는 점이 정면으로 부각되어야 한다”고 말한 출판사 사계절의 강응천씨(<한국생활사박물관> 시리즈 주간)의 지적은 한번쯤 생각해볼 만하다.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 최근에는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른 나라로는 알려져 있으나 이런 배경을 이룬 한국의 문화적 힘을 알리는 일에 소홀히 해왔다. 주제국가관 유치는 정부의 결단과 작가, 출판인 그리고 문화 관계자들의 자신감이 만나는 지점에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프랑크푸르트=글·사진 전소현/ 자유기고가 rainjsh@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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