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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10년 전의 ‘사형집행’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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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10-1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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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l < NMG > 대표· 전 버마학생민주전선 북부지역 의장

옹나잉이라고 하면 ‘집행자’라는 별명부터 따라붙는 유명한 이름인데, 들을 때마다 기분이 괜찮은가. 이걸 숨기고는 옹나잉을 말하기 곤란하니 이 기회에 털어내버리는 게 어떤가.

벼락 맞아 죽든 뱀에 물려 죽든 심판은 하늘이 내리겠지. 숨길 것도 없고….

1992년 그 ‘사형선고’를 지금도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믿고 있나.

똑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고 같은 위치에 있다면, 지금도 나는 똑같은 결정을 내린다. 전쟁 중에 정부군과 내통해 동지들을 살해한 스파이는 처형할 수밖에 없다. 내 아버지라도. 당시 각 학생군 부대단위 지휘관들은 체포한 50명을 모두 처형하라며 폭발 직전이었다. 나는 의장으로서 각 지휘관들에게 오히려 빌다시피 하며 한때 동지인 이들 50명 모두를 처형할 수는 없다고 두달 동안 승강이를 벌였다. 결국 15명에게 사형을 확정했다.

정부군이나 반대쪽에선 이 일을 선전에 이용했고, 버마학생민주전선은 도덕적으로 큰 타격을 입은 게 사실이다. 당시 나를 포함해 최초로 사건을 잡은 너덧명의 외신기자들이 ‘엠바고’를 쳤지만 한 기자가 풀어내버리는 바람에 일이 커졌다. 그런데 왜 순진하게 모든 사실을 기자들에게 털어놓았나. 고립된 카친주에서 벌어진 사건이라 얼마든지 감출 수 있었는데.


내가 늘 그렇게 웃기는 놈이었다. 언론을 모두 도덕적이고 수정같이 맑은 정신을 지닌 ‘우리 편’인 줄로만 알았으니. 전선에서 적과 내통해 동지를 살해하면 세상 어느 군대서든 사형하는 게 불문율이라 믿은 탓에 우리 행위가 정당했다고 여겨 샅샅이 현장까지 보여주며 친절을 베풀었는데…. 그날 이후 흉악한 자본주의 언론의 실체를 깨닫기 시작했다.

당시 반대쪽에서는 그 사건을 놓고 학생군 내부 권력투쟁이라고 비난한 기억이 나는가.

못된 놈들 같으니라고. 내가 아직도 번개 맞아 죽지 않은 걸 보면 모르나! 전선으로 간 동지들이 하나둘씩 살해당하기 시작했고, 출발 직전에 루트를 바꿔도 사건은 계속되었다. 동지들 소지품까지 모조리 뒤지는 총체적 수사를 벌였더니 정부군과 내통한 각종 암호문에다 난수표까지 튀어나왔다. 그런데도 잡아뗐다. 그래서 한놈씩 버마 내부에서 활동한 출신조직을 조사했더니, 하나같이 내가 조직한 맨달레이 비선운동단체 이름을 댔다. 놈들이 잘못 짚었지. 말 그대로 비선조직이니 그 조직을 내가 만들었다는 사실을 몰랐던 거고. 결국 내가 그 조직을 만든 당사자라고 밝히자 모두 혐의를 인정했다. 35명은 정상을 참작해 무기도 돌려주었는데, 한달 안에 모조리 정부군으로 도망쳐버렸다. 그들이 나중에 정부 텔레비전에 등장해 그런 말을 만들었다.

말이 난 김에 이제는 97년 ‘사기사건’도 풀어낼 때가 되지 않았나 싶은데.

사기는 무슨 사기, 다 살자고 한 짓인데. 94년 3월에 우리 학생군이 빌붙어 산 카친독립기구(KIO)가 정부군과 휴전협정을 맺었고, 96년 말로 접어들자 카친쪽에서 학생군 무장해제와 철수를 요구해 할 수 없이 짜낸 아이디어가 정부군과 직접 협상하겠다는 거였지. 학생군본부가 있는 살윈강까지 가는 데만도 석달이나 걸리는 먼 길인데다 총 놓으면 당장 공격해올 게 뻔한 상황이었다. 주력을 안전하게 살윈본부로 옮길 때까지는 시간을 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협상을 시작했고, 모두 이동한 뒤에는 “협상 같은 소리 하고 있네”라며 도망쳐왔는데, 그걸 사기라고 해야 하나 정부군쪽에서는 사기쳤다고 할 수 있겠네.

이야기를 돌리자. 오늘 주제가 이게 아니었는데. 그런데 왜 하필 언론인가. 출신 성분처럼 의사도 좋고, 또 나물장사도 좋고, 아니면 사회운동도 모두 혁명의 연장선으로 할 수 있을 텐데.

이를 갈았다. 10년 전 그 사건 때부터 언론에 보복하겠다고 생각했다(농담을 하듯 또 실실 웃었다). 총을 놓고 세상으로 돌아나와 보니 신문이나 방송이 전선지역 소식에 관심도 없었지만 어쩌다 내놓는 보도들도 순 엉터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정확한 뉴스가 혁명에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지점에 눈을 떴다.

총과 펜. 어째 전혀 생소한 것 같기도 하고,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한데.

바로 찌르면 둘 다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긴데, 돌려서 뒤쪽으로 사용하면 다른 용도가 나오지 않겠나 싶은…. 근데 아직 뒤로 쓰는 법을 정확히 몰라 답답한 상태다. 분명한 건 우린 배반 같은 건 모른다. 총 들고 싸울 때도 그랬고 펜 들고 싸우더라도…. ‘실탄’이 부족하니 많이들 도와주면 참 좋겠다.

매홍손 북부=글·사진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아시아네트워크 팀장 asianetwork@ne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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