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여 쏠 테면 쏘라”… 침공 위협에도 활기차고 자신만만한 이라크 현장르포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우려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한겨레21> 김동문 전문위원이 이라크 바그다드 현장을 취재했다. 전운의 긴장감 대신 활기차고 여유로운 이라크 시민들의 표정을 확인한 김 전문위원은 이 나라가 왜 미국의 침공을 받아야하는지 끝내 이유를 찾지 못했다. 편집자
예상은 빗나갔다. 전쟁의 위기감에 대한 이상징후를 찾으려는 노력은 허사였다. 암만의 국경택시 정류장 무잠마 바그다드에서도 그랬고, 요르단 국경에서도 그랬다. 요르단 국경을 오가는 이라크인들에겐 전혀 동요의 빛이 없었다. 9월11일 당일 이라크 국경을 넘어오는 사람들 수가 급증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철수 권고 조치가 내린 필리핀 등 일부 국가 국민들이 빠져나오면서 일어난 일시적 현상이었다. 이라크 국경에 접어들자 '전쟁 분위기 찾기'는 더욱 혼란에 빠졌다. 오히려 이라크를 찾는 이들이 많아 보일 정도였다. 여행자들도 눈에 띄었다. 전쟁이 임박한 이라크의 분위기를 담으려는 이라크 르포는 처음부터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속속 들어서는 새로운 건물들
9월14일 오후 암만을 출발한 필자가 바그다드에 도착한 것은 15일 먼동이 틀 무렵이었다. 날이 밝자 바그다드의 일상이 열리고 있었다. 지난해 5월과 다가온 전쟁을 앞둔 9월 중순 이라크의 모습은 너무나 많은 면에서 변했다. 생동감 있고 풍요로워 보였다. 물자는 풍성해지고 거리는 더욱 활기차 보였다. 곳곳에서 건축이 진행 중이고, 사람들도 한결 여유롭게 다가왔다. 여전히 상대적인 빈곤감이나 박탈감이 있지만 그래도 경제제재 초기에 비하면 살 만한 모습이었다. 바그다드의 경제는 지난해 5월 방문했을 당시와 비교하면 질과 양에서 눈에 띄게 급성장했다. 이 모두가 1996년 유엔이 인도적 차원에서 이라크 금수조치를 일부 완화한 오일 식량 교환 프로그램 덕분이다. 이라크 정부는 곡물 수입이 가능해지자 식량 배급량을 많이 늘렸다. 밀가루의 경우 지난해보다 100%나 증가해 매달 9kg이 공급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시리아를 비롯한 인근 9개 국가와 자유무역협정을 맺기도 했다. 지속되는 석유 밀거래 덕분에 2000년 이라크 경제는 15%나 성장했다. 일인당 국민총생산(GNP)도 2천달러에 이른다. 아직도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미국과 영국의 공습이 이어지고, 걸프전이 끝난 지 11년이 되었지만 이라크 어디에서도 걸프전의 참혹상을 엿보기 힘들어졌다. 걸프전 당시 가장 피해가 컸던 남부 항구도시 바스라도 예외가 아니다. 항구 일부 지역에서 걸프전 당시 침몰한 것으로 추정되는 일부 선박의 잔해를 엿보는 것 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심지어 최근 미국·영국 공군기의 공습으로 파괴된 것들도 다 복구된 상태였다. 공습이 일상화된 까닭인지 아니면 피해가 미미했던 때문일까? 바스라에서 최근에 공습받은 지역을 찾는 것은 숨은 그림 찾기보다 더 힘들었다. 이제는 걸프전 피해복구 공사도 대부분 마무리되었다. 바그다드 곳곳의 밤은 분주한 건설현장의 소리가 넘쳐난다. 새로이 도로를 포장하고 길을 넓히고 상수도 시설을 보수하고 있다. 새로운 건물들이 곳곳에 속속 들어서고 신흥상권이 형성되고 있다. 신축은 물론이고 개축이나 증축 중인 건물들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바그다드 밤거리는 전쟁의 소문과 아랑곳없이 더욱 빛나고 있었다. 바그다드 곳곳의 중심 상권들은 해가 지면서부터 넘쳐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우리의 남산 전망대에 비견할 사담 타워에서 돌아본 바그다드는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세련된 디자인의 의상들과 신제품들로 가득한 대리점들이 이어진다. 미군 주인공 ‘컴퓨터 전쟁게임’인기
길한 날이라 하여 월요일과 목요일 밤이면 평소보다 더 많은 결혼잔치가 곳곳에서 펼쳐진다. 호텔들도 결혼식 하객들로 가득하다. 아르라시드 거리 등을 오가면서도 짧은 시간에 여러 쌍의 신랑·신부 행렬을 대할 수 있었다. 모든 상품은 공화국 거리에 넘쳐난다고 할 정도로 모든 집산물로 가득한 공화국 거리 좌우편의 시장 골목은 양과 질, 가격에서도 지난해와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 중국산 저가제품을 넘어서서 고급화되어가는 경향도 엿보인다. 물건을 사고 파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시장 골목은 활기가 차 있었다. 일주일에 4차례 암만과 바그다드를 오가는 요르단 항공편은 늘 만원이고, 바그다드 거리 곳곳에서는 신형 닛산으로 무장한 택시들과 고급 승용차들이 쉽게 눈에 띈다.
이런 분위기를 따라 신세대 문화도 번져가고 있다. 이라크 곳곳에서 신세대의 움직임은 쉽게 감지된다. 신세대는 의외로 미국문화 마니아처럼 보인다. 스킨헤드 머리 모양새를 한 젊은이들은 물론이고 노랗고 붉은 물감으로 머리를 단장한 이들, 귀를 뚫은 청년들도 낯설지 않다. 이동통신의 신세계를 기다리는 부유층 젊은이들은 무전기만큼이나 큰 무선전화기- 사용거리가 20∼30km나 된다- 를 들고 다닌다. 아라사틀 힌디야 등 카페거리와 ‘시티센터’를 비롯한 곳곳의 신세대 공간들은 저녁이면 발 디딜 틈이 없다. 시내 곳곳에서 인터넷 카페(PC방)는 물론이고 인터넷 게임방(넷카페)도 성업 중이다. 경제제재하의 이라크도 젊은 세대의 유행으로 컴퓨터 전쟁게임이 자리잡은 것이다.
전쟁을 앞둔 이라크 신세대가 즐기는 전쟁 게임의 주인공은 미군이다. 미군이 2차대전 중 독일군을 물리치는 내용의 ‘영광의 메달’은 단연 ‘인기 짱’이다. 미국문화를 누리는 면에서는 이전보다 급격한 흐름이 느껴진다. CD 판매점을 통해 미국 할리우드 영화 CD는 물론이고 팝송 CD도 쉽게 구입할 수 있다. 물론 대개가 중국 등지에서 불법 복제된 것들이다. 미국 대중문화 공간을 본뜬 곳들은 신문화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바그다드의 반미 감정은 걸프전 직후보다 오히려 더 낮아진 듯하다. 최소한 생활 속의 친미는 거부감 없이 번져가고 있다. 물론 미국 부시 행정부에 대한 반감은 극대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어, 이게 아닌데…
카르발라·카디미예·나자프 등 시아파 무슬림 성지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매일 이란 등지에서 온 수천의 성지순례객들이 넘쳐난다. 연례 행사인 관광주간 행사가 ‘문명과 문화’라는 모토로 9월20일부터 열렸고, 대통령컵 국제 체스대회와 이라크 최대의 축제인 바벨론 페스티벌이 10일 일정으로 이어졌다. 9월18, 19일에는 국제적십자사와 이라크 적신월사가 이라크 지역 위생과 보건 향상을 위해 함께 모였다. 그냥 일상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 이게 아닌데 싶었다. “이라크의 정예 공화국수비대 6만명이 바그다드 외곽 30km 지점에 참호를 파고 미국과의 전쟁에 대비하고 있다.” 이라크 군당국이 이미 실전 대비 태세로 전환하고 있다는 보도들을 접한 터라 그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상징후를 쉽게 감지할 수 없었다. 거리 어디에도 병력이 추가 배치되었다거나 비상 대비에 들어갔다는 징후는 없었다. 전차나 대공포도 노출되는 바 없었다. 거리 곳곳은 평소와 다름없이 교통경찰들이 일상적인 업무를 수행하고 있을 뿐이었다.
바그다드 주변지역 경계 상황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바스라로 들어가는 주변지역 경계 상태가 더 삼엄하게 다가올 정도였다. 이라크 남부지역은 시아파 밀집지역으로 간간이 반정부 무력충돌이 벌어지기도 했다. 거리와 골목이 경찰과 군으로 넘쳐나는 이집트 카이로에 비하면 아무런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여기에 사재기를 한다거나 귀중품이나 상품들을 공장에서 다른 안전지대로 옮긴다거나 하는 것도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 국영방송에서 간간이 사담 스카우트단 등의 집체 훈련 장면이나 짧은 간이 선무 방송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건설한다. 우리는 투쟁한다. 우리는 승리한다… 알라의 도우심으로….” 그러나 방송 대부분은 안정환을 비롯한 유럽 진출 한국 축구선수들의 활약을 보도하기까지 하는 등 일상이 유지되고 있었다.
“전쟁은 발발하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 되리라고 믿을 수 없네요….” 무스타파 압둘 카림(30)은 자신의 바람을 전망으로 내놓는다. “러시아, 중국이 반대하고 아랍국가들도 전쟁에 반대하고 심지어 미국 내에서도 논란이 있지 않나요?” 거리 곳곳에서 만난 이라크인들은 다가온 전쟁이 현실이지만 그 이유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미국이 걸프전 이후 지금까지 12년을 억눌렀으면 됐지 왜 또 전쟁이란 말인가요?”(상자기사 참조) 라이드 압둘 아미르(32)를 비롯한 바그다드에서 만난 이라크인들은 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너나 할 것 없이 “전쟁이 일어나면 당연히 총을 잡을 것이다. 총이 없으면 칼로, 칼이 없으면 돌로 미국의 공격에 맞설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그들은 미국에 비해 월등히 떨어지는 이라크의 군사력을 부인하지 않는다. “우리는 미국의 군사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군사적으로나 물자 면에서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고 이라크 정부 관계자들은 말하지만 액면 그대로 믿는 이들이 많지 않다.
‘바그다드 괴담’을 아시나요
걸프전 당시 이라크군은 120만명이었지만 지금은 훨씬 줄어들어 육군 37만5천명, 공군 3만명, 방공부대 1만7천명 등 42만여명이다. 이들 중 다수는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며 사기 또한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사담 후세인 대통령 친위대로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와 후세인 대통령 주변을 지키는 특수군 공화국수비대는 2만명 정도에 불과하다. 미국의 공습은 막을 길 없지만 지상전이 벌어지면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식이다. 11년 전 걸프전의 경험과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거슬러올라가면 거의 20여년간 지속돼온 전쟁을 통해 노하우가 축적되었다는 것이다. “전쟁은 우리가 일으키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미국이 공격하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쩌겠습니까?” 바그다드 시민들은 결국 전쟁이 벌어지면 끝까지 싸울 것이라는 결의를 공개적으로 내비쳤다. 이른바 바그다드 괴담이라는 것이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 가지 않는다. 방공호 등은 절대로 피한다. 군사시설물이나 다리, 방송사 등 중요 시설물 근처에는 가지 않는다. 더욱이 대통령궁 주변에 얼쩡대지 않는다. 그러면 목숨을 잃지 않을 것이다.” 결국 미국의 공습이 전면적인 것이 아니라 사령부, 활주로, 통신시설 등으로 전환한 것은 이라크군의 지상 활동 기반이 되는 주요 기간망을 파괴하는 식으로 이어질 것을 전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독교인으로서 사담 후세인 대통령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아무리 미국이 이 땅을 공격한다고 해도 선지자들의 땅이고 성지인 이 땅은 우리의 하나님이 보호하실 것을 믿습니다.” 아시리안 기독교인인 무사 아부 유수프는 힘주어 말한다. 이들 모두는 대통령선거에서 이라크 국민의 일치된 민심이 드러날 것이라고 말한다.
10월15일이 대통령선거일이다. 이쯤 되면 선거 벽보도 붙고 지지 플래카드도 떠야 하는 법인데, 아무리 당선이야 떼놓은 당상이고 단독 후보라고 하지만 정치적으로 대통령선거를 이용하고 반미 선전의 기회를 삼아야 할 법한데 그런 분위기가 읽히지 않는다. 오기 직전 TV에서 우리 모두 우리 지도자 사담 후세인을 전폭적으로 지지하자는 식의 짧은 투표 독려 방송을 보았을 뿐이다. “우리의 지도자 후세인 대통령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냅시다.”
남북한 뉴스 보면 눈물짓는 사람들
미국의 이번 바그다드 공격이 후세인 체제를 무너뜨리려 한다는 것을 아는 이라크인들도 많다. 그렇지만 그 누구도 인터뷰 과정에 후세인 체제를 비판할 수 있는 이들은 없었다.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사람들도 후세인이 미국에 의해 축출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표현의 제약도 제약이지만 자국의 대통령이 남에 의해 무너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최근 경제제재 아래서도 조금씩 회복돼가는 살림살이가 후세인 대통령의 입지를 강화시킨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왜 미국이 우리나라 대통령을 두고 왈가왈부합니까? 우리에게도 우리의 체제가 있고 선거도 있지 않습니까? 미국식의 민주주의는 남의 주권을 이렇게 침해해도 되는 것입니까?” 이라크 사람들이 보여준 남다른 진풍경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전쟁만이 능사입니까? 왜 또 전쟁이란 말입니까?”
이라크를 떠나기 전날, 저녁 뉴스에 남북한 관련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다. 남쪽 소년과 북한 소녀가 꽃을 교환하고 포옹하는 장면을 보면서 한주 내내 동행한 이라크 아주머니는 연신 눈물을 닦아내고 있었다. 자신들의 코가 석자인데 남의 나라 뉴스를 보면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그들이 이라크인들이다. 이들이 또다시 전화에 휩싸일 처지에 있다. 무엇 때문에?
바그다드=김동문 전문위원 yahiya@hanmail.net

사진/ 티그리스 강변에 아이들이 모여 있다. 이들에게 다가온 전쟁 소식은 지난 12년의 경제제재의 참혹감 그 이상으로 다가갈 것이다.
9월14일 오후 암만을 출발한 필자가 바그다드에 도착한 것은 15일 먼동이 틀 무렵이었다. 날이 밝자 바그다드의 일상이 열리고 있었다. 지난해 5월과 다가온 전쟁을 앞둔 9월 중순 이라크의 모습은 너무나 많은 면에서 변했다. 생동감 있고 풍요로워 보였다. 물자는 풍성해지고 거리는 더욱 활기차 보였다. 곳곳에서 건축이 진행 중이고, 사람들도 한결 여유롭게 다가왔다. 여전히 상대적인 빈곤감이나 박탈감이 있지만 그래도 경제제재 초기에 비하면 살 만한 모습이었다. 바그다드의 경제는 지난해 5월 방문했을 당시와 비교하면 질과 양에서 눈에 띄게 급성장했다. 이 모두가 1996년 유엔이 인도적 차원에서 이라크 금수조치를 일부 완화한 오일 식량 교환 프로그램 덕분이다. 이라크 정부는 곡물 수입이 가능해지자 식량 배급량을 많이 늘렸다. 밀가루의 경우 지난해보다 100%나 증가해 매달 9kg이 공급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시리아를 비롯한 인근 9개 국가와 자유무역협정을 맺기도 했다. 지속되는 석유 밀거래 덕분에 2000년 이라크 경제는 15%나 성장했다. 일인당 국민총생산(GNP)도 2천달러에 이른다. 아직도 남부지역을 중심으로 미국과 영국의 공습이 이어지고, 걸프전이 끝난 지 11년이 되었지만 이라크 어디에서도 걸프전의 참혹상을 엿보기 힘들어졌다. 걸프전 당시 가장 피해가 컸던 남부 항구도시 바스라도 예외가 아니다. 항구 일부 지역에서 걸프전 당시 침몰한 것으로 추정되는 일부 선박의 잔해를 엿보는 것 외에는 별다른 것이 없었다. 심지어 최근 미국·영국 공군기의 공습으로 파괴된 것들도 다 복구된 상태였다. 공습이 일상화된 까닭인지 아니면 피해가 미미했던 때문일까? 바스라에서 최근에 공습받은 지역을 찾는 것은 숨은 그림 찾기보다 더 힘들었다. 이제는 걸프전 피해복구 공사도 대부분 마무리되었다. 바그다드 곳곳의 밤은 분주한 건설현장의 소리가 넘쳐난다. 새로이 도로를 포장하고 길을 넓히고 상수도 시설을 보수하고 있다. 새로운 건물들이 곳곳에 속속 들어서고 신흥상권이 형성되고 있다. 신축은 물론이고 개축이나 증축 중인 건물들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와 더불어 바그다드 밤거리는 전쟁의 소문과 아랑곳없이 더욱 빛나고 있었다. 바그다드 곳곳의 중심 상권들은 해가 지면서부터 넘쳐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우리의 남산 전망대에 비견할 사담 타워에서 돌아본 바그다드는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세련된 디자인의 의상들과 신제품들로 가득한 대리점들이 이어진다. 미군 주인공 ‘컴퓨터 전쟁게임’인기

사진/ 유전의 불기둥은 밤낮 없이 타오른다. 이라크산 원유 확보를 위해 미국은 이라크 공격을 준비 중이라고 이라크인들은 믿고 있다.

사진/ “싸우면서 건설한다.” 미국 영국의 공습이 빈번한 바스라에는 공습과 다가온 전쟁의 위협에 아랑곳없이 건물 신출 증축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 지난 9월17, 18일 전 세계 정치인과 지식인, 노조 지도자 등 1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열린 '바그다드 회의' 8차 모임. 영국노동당 의원, 러시아 하원 부의장 등도 참석해 미국을 성토했다.

사진/ 두둑한 이라크 돈뭉치. 뭉칫돈이지만 250디나르 100장 1다발이 겨우 12.5달러밖에 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