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우파정당과도 과감한 합종연횡… 40% 압도적 지지율 속에 대선전 승승장구
흔히들 정치를 가리켜 가능한 것은 모두 시도해볼 수 있는 예술이라고 한다. 그런데 10월6일로 다가온 브라질 대통령 선거전을 보면 정치는 불가능하게 보이는 것도 가능하게 만드는 예술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급진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브라질 노동자당(PT)의 룰라 다 실바 후보, 당선 가능성 못지않게 지금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은 그의 눈부신 변신이다.
“과거 실수만 반복 않는다면…”
룰라는 자신의 변신에 놀라는 사람들에게 일화 한 토막을 전한다. “여보게! 룰라! 자네가 대통령이 되면 민영화한 기업들을 다시 국유화하고, 취임 첫날부터 최저임금을 올리고, 금융업의 국적을 되찾아오고, 국제통화기금(IMF)과 맞서 싸우겠다고 공약하게나!” 노동자당의 오랜 동지가 제안하자 룰라는 이렇게 대답했다. “동의하네. 하지만 자네가 그 공약을 내걸고 선거에 출마하게나. 1차 투표를 통과해 결선투표까지 가면 내가 자네를 찍겠네!”
브라질에서 가장 가난한 북동부 농촌지역에서 태어나 남부의 대도시 상파울루로 이주한 룰라. 그는 거리에서 구운 땅콩을 팔며 어려운 가계를 돕고, 조그만 마찌꼬바에서 선반기술을 익히던 평범한 빈민가의 소년이었다. 청년시절 독재정권과 맞서 싸우던 전투적인 금속노조 지도자로 명성을 쌓았고, 1980년 노동운동가들, 진보적인 가톨릭 인사들, 지식인들, 풀뿌리 사회운동가들의 협력 아래 브라질 노동자당 건설에 주역으로 참여했고, 이후 중남미에서 가장 진취적인 좌파정당의 정치 지도자로 부상했다. 1989년을 시작으로 세번에 걸쳐 노동자 후보로 대통령 선거전에 뛰어든 그는 그때마다 높은 인기를 얻었지만 번번이 낙선했다. 네 번째 도전에 나선 그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만 않으면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가 말하는 과거의 실수란 무엇일까? “계속되는 분열로 브라질의 중도좌파는 자신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데 실패해왔습니다. 저는 중도좌파의 단결을 바탕으로 우리와 견해가 다른 정치정당과도 과감히 연합할 것입니다”라는 말에 담겨 있다. 한발 더 나아가 그는 집권 사회민주당(PSDB)의 주제 세하 후보는 물론이고 민중사회당(PPS)의 시로 고메스 후보, 브라질 사회당(PSB)의 안토니 가로징요 후보 등 대선에 출마한 모든 후보와 연합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이와 같은 발언은 브라질 정가는 물론 룰라 후보를 제2의 우고 차베스라고 생각하고 있던 워싱턴 정가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러나 정작 이 발언에 가장 충격을 받은 곳은 브라질 노동자당 자신이었다. 룰라 후보는 “아무리 훌륭한 정책도 실천할 기회를 얻지 못하면 책상 서랍 속에서 한 세기 이상 썩게 된다”고 대선 승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내분을 수습했고 “노동자당의 색깔은 변함없다. 아무하고나 연합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뿐만 아니라 상대도 연합이 필요한 것이다. 그들은 우리들이 제시할 국정 프로젝트가 체계적이고 세련된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라며 연합의 원칙을 제시했다. 1차 투표에서 승부 갈릴까 첫 번째 정치연합 상대는 브라질 자유당(PL)의 우파 상원의원 주제 알렌카르였다. “우리들은 로미오와 줄리엣입니다. 서로의 깊은 사랑을 고백했죠. 이제 남은 것은 부모의 허락을 맡는 것이에요.” 양 당의 공식적인 승인을 부모의 허락이라고 빗대며 룰라 후보는 능청스럽게 말했다. 억만장자 주제 알렌카르는 브라질 최대 의류업체의 사장이며 라틴아메리카 최대의 재력을 자랑하는 개신교 단체의 명망가로 유명하다. 가톨릭교도가 대부분인 노동자와 농민, 도시빈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룰라 후보는 알렌카르에게 새 정부의 부통령직을 제안했다. ‘변화를 수용할 개방적인 기업가’와의 연합을 통해 재계의 발판을 마련하고, 한창 성장 일로에 있는 개신교 교회의 지지를 확보하려는 것이었다. 브라질의 정치평론가들은 이 연합으로 룰라 후보가 중도파의 지지를 얻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두 번째 연합의 파트너는 브라질의 전 대통령이며 우파 정치인인 주제 사르네이였다. 사르네이는 브라질 연방군의 주요 인사들과 친분이 두텁다고 알려졌으며 국제통으로 유명하다. 룰라 후보가 그에게 외무장관직을 제안했고, 사르네이는 군의 지지와 국제적인 지지를 끌어내는 데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는 룰라 후보의 합종연횡 전략이 효과를 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선거운동이 막바지에 접어드는 현 시점에서 룰라 후보는 40%를 뛰어넘는 압도적인 지지율을 보이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반면 지난 8년간 브라질을 통치하며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해온 카르도수 대통령의 후계자인 사회민주당의 주제 세하 후보의 지지율은 20%대에서 19%로 추락하는 양상을 보인다. 여론조사 결과 3위는 브라질 사회당의 포퓰리스트 정치인 안토니 가로징요 후보로 13%의 지지율을 얻고 있다. 현재 가로징요 후보는 당 안팎에서 룰라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사임하라는 압력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4위는 브라질 공산당의 계승자 사회주의 민중당(PPS)의 시로 고메스 후보로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사회민주주의자라고 주장하며 집권 사회민주당과의 진검승부를 벌이겠다고 벼르고 있다. 현재 그는 12%의 지지율을 얻고 있다.
[%%IMAGE3%%] 2005년을 목표로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미주자유무역협정(FTAA) 체결을 위해 좌파 후보를 용납하지 않으려는 워싱턴의 재무성과 국제통화기금의 계속되는 간섭 속에서도, “시민 케인의 가상 제국보다 더 튼튼한 제국”을 구축하고 있다는 브라질 언론의 총공격 속에서도, “브라질은 아르헨티나가 될지 모른다”는 현 대통령 카르도수의 계속되는 경고에도 룰라 후보의 상승세가 계속 이어지자 집권 사회민주당 세하 후보 선거운동본부엔 초비상이 걸렸다.
세하 선거본부를 초긴장 상태로 몰아넣고 있는 것은 답보상태에 머물고 있는 지지율뿐만이 아니다. 비록 낮은 지지율이지만 2위로 제1차 투표를 무사히 통과하면 결선투표에선 1대1로 다시 겨룰 수 있다. 세하 선거본부를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은 3위와 4위 후보 가운데 누군가가 룰라 후보 지지를 선언하고 사퇴하는 것으로, 이럴 경우 룰라 후보는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득표할 확률이 높아지며 승부가 갈리는 것이다. 그것이 노동자당 선거본부가 원하는 것이다.
당선되면 모라토리엄 선언?
좌파후보의 집권 가능성이 날로 높아지자 잠잠하던 환율시장이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7월의 절박했던 금융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의 300억달러의 구제금융지원 결정으로 안정을 되찾을 것으로 보였던 브라질 통화 레알화의 가치가 다시 급락했다.
‘국제금융계의 황제’ 조지 소로스의 분석에 따르면 시장이 요동치는 것은 룰라 후보가 당선된 뒤 채무 지불유예(모라토리엄)를 선언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룰라 후보가 아무리 현 정부가 국제금융기구와 맺은 약속들을 모두 이행하겠다고 약속해도 소용없다는 말이다. 즉 ‘집권당 후보냐’, ‘대혼란이냐’의 최후통첩이다.
시장의 동요에 대해 룰라는 “브라질의 자본을 대부분 장악하고 있는 몇몇 기업과 은행은 끝까지 노동자당 정부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을 것”이라며 “그들은 민중의 삶의 질을 개선하려는 어떤 의미 있는 노력도 거부할 세력으로 투기와 부패로 얼룩진 세력”이라고 단호하게 비판한다. 한편 이런 시장의 요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자 중남미 최대의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브라질 산업의 심장부, 상파울루의 노동자들과 실업자들은 룰라 후보에게 변함없는 애정을 보낸다. 룰라 후보는 자신의 과거와 브라질 민중의 현실을 떠올리며 “어떤 사람에게 유토피아는 평등 세상이다. 이 꿈은 잠시 미룰 수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유토피아는 생애 처음 먹어보는 강낭콩 한 그릇이고 생애 처음 가져보는 일자리다. 이것은 결코 미룰 수 없다”고 말한다.
트레이드마크인 구레나룻을 깔끔하게 다듬고 평상복 대신 말쑥한 정장차림으로 이미지 변신까지 시도하는 그에게 노동자들과 실업자들은 여전히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낸다. 오늘도 그들 앞에서 룰라 후보는 다짐한다. “브라질 엘리트들이 결코 이루지 못한 것을 한 선반공이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보여주고야 말겠다!” 걸걸한 목소리에 밴 굳은 의지. 그것은 정치적 현실주의와 이상주의의 갈림길에 놓인 룰라 후보가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뚝심이다.
박정훈 전문위원 jhpark2001@hotmail.com

사진/ 네 번째 도전에 나선 브라질 노동자당의 룰라 후보. 브라질 내에서 그의 당선 가능성을 의심하는 이들은 없다. (SYGMA)
브라질에서 가장 가난한 북동부 농촌지역에서 태어나 남부의 대도시 상파울루로 이주한 룰라. 그는 거리에서 구운 땅콩을 팔며 어려운 가계를 돕고, 조그만 마찌꼬바에서 선반기술을 익히던 평범한 빈민가의 소년이었다. 청년시절 독재정권과 맞서 싸우던 전투적인 금속노조 지도자로 명성을 쌓았고, 1980년 노동운동가들, 진보적인 가톨릭 인사들, 지식인들, 풀뿌리 사회운동가들의 협력 아래 브라질 노동자당 건설에 주역으로 참여했고, 이후 중남미에서 가장 진취적인 좌파정당의 정치 지도자로 부상했다. 1989년을 시작으로 세번에 걸쳐 노동자 후보로 대통령 선거전에 뛰어든 그는 그때마다 높은 인기를 얻었지만 번번이 낙선했다. 네 번째 도전에 나선 그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만 않으면 승리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가 말하는 과거의 실수란 무엇일까? “계속되는 분열로 브라질의 중도좌파는 자신의 잠재력을 극대화하는 데 실패해왔습니다. 저는 중도좌파의 단결을 바탕으로 우리와 견해가 다른 정치정당과도 과감히 연합할 것입니다”라는 말에 담겨 있다. 한발 더 나아가 그는 집권 사회민주당(PSDB)의 주제 세하 후보는 물론이고 민중사회당(PPS)의 시로 고메스 후보, 브라질 사회당(PSB)의 안토니 가로징요 후보 등 대선에 출마한 모든 후보와 연합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이와 같은 발언은 브라질 정가는 물론 룰라 후보를 제2의 우고 차베스라고 생각하고 있던 워싱턴 정가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러나 정작 이 발언에 가장 충격을 받은 곳은 브라질 노동자당 자신이었다. 룰라 후보는 “아무리 훌륭한 정책도 실천할 기회를 얻지 못하면 책상 서랍 속에서 한 세기 이상 썩게 된다”고 대선 승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내분을 수습했고 “노동자당의 색깔은 변함없다. 아무하고나 연합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뿐만 아니라 상대도 연합이 필요한 것이다. 그들은 우리들이 제시할 국정 프로젝트가 체계적이고 세련된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라며 연합의 원칙을 제시했다. 1차 투표에서 승부 갈릴까 첫 번째 정치연합 상대는 브라질 자유당(PL)의 우파 상원의원 주제 알렌카르였다. “우리들은 로미오와 줄리엣입니다. 서로의 깊은 사랑을 고백했죠. 이제 남은 것은 부모의 허락을 맡는 것이에요.” 양 당의 공식적인 승인을 부모의 허락이라고 빗대며 룰라 후보는 능청스럽게 말했다. 억만장자 주제 알렌카르는 브라질 최대 의류업체의 사장이며 라틴아메리카 최대의 재력을 자랑하는 개신교 단체의 명망가로 유명하다. 가톨릭교도가 대부분인 노동자와 농민, 도시빈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룰라 후보는 알렌카르에게 새 정부의 부통령직을 제안했다. ‘변화를 수용할 개방적인 기업가’와의 연합을 통해 재계의 발판을 마련하고, 한창 성장 일로에 있는 개신교 교회의 지지를 확보하려는 것이었다. 브라질의 정치평론가들은 이 연합으로 룰라 후보가 중도파의 지지를 얻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진/ 룰라의 급부상으로 위기에 놓은 집권 사회민주당의 주제 세하 후보. (AP연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