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나빠도 미국 문화는 ‘짱’
등록 : 2002-10-02 00:00 수정 :
미국이 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엄포 놓는 가운데서도, 이라크 곳곳에선 펩시콜라와 스프라이트, 미란다 등 미제 음료수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고 있다. 처음에는 모조품인가 싶었지만 모두 진짜였다. 아랍에미리트나 이집트 등에서 직수입해 들여온 것들이다. 이들 미제 음료시장은 바그다드에서도 더욱 넓어졌다. 여기에 양담배까지 한몫한다. 미제 차도 눈에 많이 띄고, 미국 브랜드를 흉내낸 피자홋(Pizza hut이 아닌 ‘Pizza hot’)이나 맥도널드 로고를 도용(?)한 햄버거 가게도 성업 중이다. 국내 생산한 일부 브랜드도 영락없는 미제 상표 도용이다. 브로마이드판 미국 연예인 사진은 물론이고, 서구풍 머리 모양새와 청바지 패션도 번져가고 있다. 미국과의 전쟁은 전쟁이고 젊은이들과 새로운 부유층의 미국 문화 따라잡기는 멈출 줄 모른다.
거리 어디를 둘러보아도 반미구호나 전의를 다지는 구호는 물론 플래카드 하나 볼 수 없다. 그 와중에 미제 GMC 등이 거리를 누빈다. 아프간 전쟁이 터지자 연일 길거리를 가득 채운 반미 관제시위도 볼 길이 없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미국 물러가라는 선무방송도 들리지 않는다. 가끔씩 신문과 뉴스를 통해 부시의 정책을 강경하게 반박하는 장면이 보일 뿐이다. 바그다드 국제공항에 도착했을 때 ‘다운 다운 아메리카’라고 유리창에 붙여놓거나 바닥에 써붙여놓은 것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이라크 곳곳에서 만난 이라크인들은 미국의 부시를 욕할지언정 미국인이나 미국 문화에 대해 적대감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제 펩시콜라를 마시고 말보로 담배를 피우며 미국이 제공한 낡은 미제 무기로 미국과의 전쟁을 맞이하는 것, 이것이 이라크판 반미현장이다.
바그다드=김동문 전문위원
yahiya@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