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의 폭발사건 속 미군 표적으로 재등장… 필자에게도 육성 담은 테이프 보내와
지난 9월5일 카불과 칸다하르에서는 치명적인 공격이 일어나 적어도 30여명이 죽었고 과도정부 대통령 카르자이는 거의 목숨을 잃을 뻔했다. 자동차 폭발이 일어난 카불쪽은 상황이 매우 심각했지만, 전쟁으로 폐허가 된 아프가니스탄을 거들떠보는 이가 없었고, 결국 정체불명 총잡이가 카르자이 대통령을 칸다하르에서 공격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 사건들은 ‘11일의 공격’ 이후 1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아프가니스탄이 얼마나 위험한 처지에 놓여 있는지를 압축해서 보여주었다.
바그람 공군기지서 대탱크 지뢰폭발
지난해 10월7일부터 미국이 주도하는 ‘감정적’이고 ‘값 비싼’ 공격이 시작되면서 탈레반이 권력에서 쫓겨났고,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알카에다가 치명타를 입은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아프가니스탄을 전쟁터로 삼은 미국이 대테러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말할 근거는 아직 어디에도 없다. 특히 미국과 유럽 중심으로 편성한 국제치안지원군(ISAF)이라는 존재는 고립당한 알카에다와 탈레반에서부터 미군 폭격으로 희생당한 비정치적인 민간인들에 이르기까지 아프가니스탄 전역에서 폭발적인 반감을 불러일으켰을 뿐이다. 이처럼 예사롭지 않은 사태가 꼬리를 물자, 미국과 동맹국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또 다른 전쟁을 부를 만한 새롭고 강력한 군사작전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지난번 자동차폭탄공격에 앞서 이미 카불의 도심 곳곳에서 여러 차례 크고 작은 폭발사건이 벌어졌다. 이번 주 들어서는 미군 8천여명이 본부를 차린 바그람 공군기지 주변에서 대탱크 지뢰폭발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바그람 공군기지가 어떤 곳인가? 미군과 북부동맹군의 주력인 타지크계 군인들이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는 ‘심장부’인데, 그곳에서 폭탄공격이 벌어질 수 있었다는 사실은 아프가니스탄에는 더 이상 안전지대가 없다는 뜻과 다를 바 없다. 여기다 카르자이도 공격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덧붙인다면 사실은 더 명확해진다. 바그람 공군기지 대탱크 지뢰폭발사건은 ‘11일의 공격’ 1주년 기념식 행사가 시작되기 몇 시간 전에 일어나 인명피해는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카불 주재 미국 대사관과 국제치안지원군 본부 그리고 유엔 숙소와 아프가니스탄 정부 시설 같은 곳들에 대한 ‘시리즈 공격’의 전조로 읽힌다. 미군과 국제치안지원군 대변인은 “위협적인 폭발사건이 아니었다”고 강조하면서도 지난 3주 동안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다섯번의 폭발사건에 매우 긴장한 상태다. 지난 9월5일 공보부와 내무부가 들어 있는 건물 옆 스핀잘호텔 부근에 주차해놓은 택시에서 일어난 카불 폭탄사건은 탈레반이 쫓겨난 이후 가장 강력한 ‘반응’이었던 경우로 사망자만도 30여명에 이르렀고, 150여명이 중상을 입었다. 폭탄공격은 국제치안지원군과 경찰이 카불 곳곳에 검문소를 설치해 검문·검색을 하던 상황을 마음껏 비웃은 사건이기도 했다. 지난 2월 민간항공장관 압둘 레흐만과 6월 부통령 겸 도시계획장관 하지 압둘 카디르가 벌건 대낮에 암살당할 정도였으니, 카불 치안부재가 그리 새삼스러운 일이라고 말할 수 없겠지만. 카르자이와 카심 파힘의 격투?
아무튼 카불 자동차폭탄사건이 일어난 지 몇 시간 뒤, 카르자이는 자신의 고향인 칸다하르에서 암살 시도를 모면했다. 매우 드물게 카불을 벗어나 여행을 한 카르자이는 암살자들이 오랫동안 기회를 노려온 것으로 보인다. 탈레반 요새인 헬만드주 출신 암살 미수범 압둘 라흐만은 카르자이를 쏘기 전에 20여명의 미군 수행 경호원들 총에 맞아 죽었지만, 칸다하르 주지사 굴 아가 셰르조이가 경상을 입었다. 이날 카르자이를 수행한 미군 경호원들은 지난 6월 하지 카디르 부통령이 암살당하자 카르자이가 요청한 50여명의 미군 특수경호요원들 가운데 일부였다. 미군 경호부대는 현재 아프가니스탄 정황을 읽는 데 아주 중요한 자료가 되는 존재들이다. 지난 6월 하지 카디르 부통령이 암살당한 뒤, 카르자이는 북부동맹군이 주축을 이룬 정부군을 불신하며 경호원을 미군으로 대체하겠다는 결정을 내렸고, 모하마드 카심 파힘 국방장관(북부동맹군출신)은 불쾌해하며 경호병력을 모두 철수해버렸다. 이 일로 과도정부 안에서 가장 큰 영향력이 있는 둘 사이는 크게 벌어졌고, 카르자이의 파슈툰과 파힘의 북부동맹군 계열이 혼재한 과도정부는 극심한 분열상을 드러냈다.
앞서 유럽언론들은 카르자이와 파힘의 격투를 보도할 정도였다. 전설적인 무자히딘 지도자 아흐마드 샤 마수드의 후임으로 타지크계 슈라-이-나자르 정파를 이끌며 카불을 장악한 파힘을 카르자이가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고 몰아붙인 뒤의 일이었다.
일부 아프가니스탄 정부 당국자들은 최근에 터진 폭발사건이나 카르자이 암살 기도사건을 알카에다나 탈레반 그리고 또 하나 근본주의 무자히딘 지도자 헤크마티아르의 소행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그러나 카르자이와 미군 대변인 로저 킹 대령은 헤크마티아르에 대해서는 완벽한 증거가 나올 때까지는 테러리스트로 거론하지 않겠다는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면서도 로저 킹 대령은 “아프가니스탄을 불안하게 하는 정파”라며 헤크마티아르를 제거하겠다는 뜻을 밝혀 주목을 끌고 있다. 이건 미군이 탈레반 이후 버거운 새 적을 만들지 않으면서도 적정선에서 잠재적인 적을 기선 제압하겠다는 뜻으로 풀이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헤크마디아르가 미군의 뜻대로 호락호락 잡힐지, 또는 강력한 항전에 돌입할지 현재로서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대소비에트 항쟁을 주도한 헤즈비 이슬라미의 지도자 헤크마티아르가 다시 탈레반과 알카에다 이후 아프가니스탄을 읽는 중요한 인물로 재등장했다는 사실만큼은 여러 상황 속에서 감지되고 있다.
지난 5월에도 죽이려다 실패
헤크마티아르는 카불 폭탄사건이 있기 며칠 전, 아프가니스탄에 주재하는 외국군에 대한 전 국민적 봉기를 주장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그 내용은 육성을 담은 오디오 테이프를 통해 국외로도 반출되었다. “미군과 그 동맹군에 대한 봉기는 성전이다. 1979∼89년에 러시아 침략군을 쫓아내기 위해 벌인 성전을 다시 부활시키자.” 내게도 전해져온 테이프에 담긴 내용 가운데 일부다. 이 성명은 헤크마티아르가 이란 은신지로 잠적한 뒤 5개월 만에 처음 나온 것이었다.
미군은 지난 5월6일 서부 쿠나르주에서 무인 스파이 비행기인 프레더터로 헬파이어 미사일을 발사해 헤크마티아르를 죽이려 했으나 실패했고, 헤크마티아르는 그 뒤부터 미군과 그 동맹군을 포함해 카르자이 정부를 모두 타도대상으로 여겨 성전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헤크마티아르는 지난 9월5일 카불 폭탄사건에 대한 개입은 강력하게 부인했다. 물론 부인하더라도 헤크마티아르가 의혹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뜻은 아니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 미군은 헤크마티아르를 오사마 빈 라덴이나 물라 오말과 똑같은 선상에 올려 체포든 사살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없애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미국은 지난 겨울부터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과 알카에다를 상대로 엄청난 물량을 투입해 전쟁을 했고, 이미 승리를 확인했다. 그러나 알카에다와 탈레반뿐 아니라 헤크마티아르를 비롯한 수많은 그룹들은 여전히 ‘보복전’을 다짐하며 새로운 전쟁을 준비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벌어진 카불과 칸다하르 폭탄사건을 비롯해 거의 날마다 서방동맹군을 공격하는 남부와 동부 파슈툰 지역 상황은 앞으로 미국의 갈 길이 결코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유력한 암시를 보낸다. 동시에 세상 모든 이들의 기대에 어긋나는 아프가니스탄의 킬링필드를 떠올리게 한다.

사진/ 라히물라 유수프자이(Rahimullah Yusufzai) l 파키스탄 <뉴스> 편집이사

사진/ 잇단 폭발사건의 주범으로 찍힌 헤크마티아르. 미군은 그를 오사마 빈 라덴이나 물라 오말과 똑같은 선상에 올려 어떤 방식으로든 없애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GAMMA)
지난번 자동차폭탄공격에 앞서 이미 카불의 도심 곳곳에서 여러 차례 크고 작은 폭발사건이 벌어졌다. 이번 주 들어서는 미군 8천여명이 본부를 차린 바그람 공군기지 주변에서 대탱크 지뢰폭발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바그람 공군기지가 어떤 곳인가? 미군과 북부동맹군의 주력인 타지크계 군인들이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는 ‘심장부’인데, 그곳에서 폭탄공격이 벌어질 수 있었다는 사실은 아프가니스탄에는 더 이상 안전지대가 없다는 뜻과 다를 바 없다. 여기다 카르자이도 공격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덧붙인다면 사실은 더 명확해진다. 바그람 공군기지 대탱크 지뢰폭발사건은 ‘11일의 공격’ 1주년 기념식 행사가 시작되기 몇 시간 전에 일어나 인명피해는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카불 주재 미국 대사관과 국제치안지원군 본부 그리고 유엔 숙소와 아프가니스탄 정부 시설 같은 곳들에 대한 ‘시리즈 공격’의 전조로 읽힌다. 미군과 국제치안지원군 대변인은 “위협적인 폭발사건이 아니었다”고 강조하면서도 지난 3주 동안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다섯번의 폭발사건에 매우 긴장한 상태다. 지난 9월5일 공보부와 내무부가 들어 있는 건물 옆 스핀잘호텔 부근에 주차해놓은 택시에서 일어난 카불 폭탄사건은 탈레반이 쫓겨난 이후 가장 강력한 ‘반응’이었던 경우로 사망자만도 30여명에 이르렀고, 150여명이 중상을 입었다. 폭탄공격은 국제치안지원군과 경찰이 카불 곳곳에 검문소를 설치해 검문·검색을 하던 상황을 마음껏 비웃은 사건이기도 했다. 지난 2월 민간항공장관 압둘 레흐만과 6월 부통령 겸 도시계획장관 하지 압둘 카디르가 벌건 대낮에 암살당할 정도였으니, 카불 치안부재가 그리 새삼스러운 일이라고 말할 수 없겠지만. 카르자이와 카심 파힘의 격투?

사진/ 9월5일 카불에서 일어난 자동차 폭발사고. (GAMMA)

사진/ 이 사건 직후 몇시간 뒤 카르자이 대통령은 암살당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군의 경계는 더욱 삼엄해지고 있다.(GAM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