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과 아시아/ 아프가니스탄
군 장악한 타지크계 전횡에 반발… “미군 작전 제한” 제안했다 묵살당하기도
치안 부재, 군벌주의, 복구 불능, 공습 지속….
아프가니스탄이 지닌 이런 전통적인 화제들은 20년전쯤 대 소비에트항쟁 기간 중에도, 10년 전쯤 무자히딘 사이의 내전 중에도, 그리고 300일이 넘도록 미군이 무차별 공격을 해서 탈레반을 몰아낸 이후에도 변함이 없다. 탈레반이 붕괴되면 안전과 평화를 향유할 수 있을 것이라던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고, 미국의 대 테러전쟁을 떠받치는 알카에다 박멸과 오사마 빈 라덴 제거- 살해든 체포든- 라는 두 가지 목표는 여전히 미완으로 남아 있다. 미군에게 경호받는 카르자이
게다가 과도적 성격을 지닌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의 말썽 많은 연립정부는 아프가니스탄 전역으로부터 사나운 저항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사면초가에 빠진 카르자이는 지난달 로야 지르가(전통적인 장로회의)로부터 ‘보증’을 받으면서 대통령으로서 좀더 강력한 권한을 쥘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오히려 현실 속에서 그의 힘은 더욱 취약해진 상태다.
굳이 따지자면 그 사이 일정한 성과를 거둔 부분도 전혀 없지는 않다. 기대 이상으로 많은 학생들이, 특히 여학생들이 학교에 등록했고 파키스탄과 이란을 비롯한 주변국으로 떠난 엄청난 수의 난민들이 되돌아왔다는 점은 중요한 진전이라 보아도 좋을 듯싶다. 그렇지만 수많은 난제들을 아프가니스탄 시민들 스스로가 극복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상존하는 위험. 이게 지금도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골칫거리다. 최근 입수한 한 정보에 따르면, 카르자이 대통령의 생명을 위협하며 아프가니스탄 전역을 무법천지로 몰아갈 심상찮은 징후가 드러났다. 미국이 즉각 특수경호요원 50명을 파견해 카르자이 보호에 나섰지만 앞날은 분명치 않다. 북부동맹군 지도자이며 국방장관인 모하마드 카심 파힘에 충성해온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은 카르자이 대통령 경호대를 철수해버렸다. 대통령 경호를 외국 군인에게 맡겨버린 이 현실은 국방부 직원들뿐 아니라 자존심이 매우 센 부족민들에게도 깊은 상처를 안겨주었다.
하지 압둘 카디르 부통령과 지난 2월 카불 공항에서 암살당한 민간항공장관 압둘 레흐만 박사를 살해한 범인이 누군지 아직 윤곽도 밝혀내지 못한 상태에서 시민들은 대낮에 정부 고위관리 두명이 암살당하는 데도 속수무책인 국제치안지원군(ISAF)과 타지크계 북부동맹군 파힘 국방장관이 이끄는 경찰과 보안요원들을 싸잡아 비난하고 나섰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시민들은 미국의 군사공격과 그 실효성에 대해서도 깊은 회의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미국은 처음 알카에다와 탈레반을 공습한 지난해 10월7일부터 민간인 희생자를 내면서 끊임없이 북부동맹군들로부터 비판을 받아왔고, 지금은 미국과 북부동맹군 사이의 ‘허니문’도 끝장난 상태다. 그동안 침묵한 국제사회도, 지난 6월1일 우로즈간주 결혼식 잔치판을 오폭한 미군이 현장에서 치명적인 증거를 제거했다는 유엔 보고가 나돌자 거센 비난을 퍼붓기 시작했다.
파슈툰-타지크 사이의 위험한 불신
미국이 은폐사실을 부정했음에도, 민간인 48명을 살해하고 118명에게 중상을 입힌 이 사건은 미국의 대 테러전쟁에 대한 방향성뿐만 아니라 정당성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실 미국의 우로즈간주 오폭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보다 앞서 남부 호스트주 결혼식장에 대한 오폭으로 이미 10여명이 넘는 희생자를 낸 사건도 있었다. 실수였든 의도였든, 미군은 결혼잔치뿐만 아니라 버스, 모스크, 마드라사(신학교), 성지, 적십자 보급시설 같은 민간부문에 대한 공격으로 수많은 주민들을 살해했다. 미군의 민간인 살해는 처음부터 예고된 일이었다. 미국은 알카에다와 탈레반을 과대평가했을 뿐, 사실은 20년이 넘는 전쟁으로 피폐한 아프가니스탄에 최신 전폭기를 띄워 공습할 만한 대상이 존재하지도 않았다. <뉴욕타임스>와 같은 미국계 언론은 민간인 사망자 수를 400∼1천명 정도로 보도한 바 있지만, 비미국계 단체들은 모두 이보다 많은 4천∼6천명에 이른다는 주장을 해왔다.
이런 저간의 사정으로 비록 삐걱거리는 소리는 내지만, 그렇다고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정부군 사이가 와해될 가능성이 있는 건 아니다. 미국에 전적으로 자신들의 생존을 매달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정부군의 현실을 놓고 본다면 말이다. 탈레반 축출을 내걸고 미국과 동맹국들로부터 군사·재정적 지원을 받아온 북부동맹군 입장에서 지금 미국과 틀어진다는 건 잔존 탈레반과 그 배후세력들에게 역공의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 되는 탓이다.
이렇듯 미국의 계속되는 공격과 법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 현실은 사회복구 기능을 현저하게 떨어뜨렸고, 결국 일거리와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열망한 시민들에게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여성 구호요원이 성폭행에 노출되는 일까지 벌어지면서 유엔과 비정부단체 여성 활동가들이 철수해버릴 만큼 치안부재는 심각한 상태고, 노동집약적 프로젝트 하나 없는 가운데 되돌아온 수많은 난민들과 국내 추방자들은 먹을거리를 찾아 도심을 헤매는 실정이다.
게다가 전쟁군주들은 여전히 미국의 대 알카에다-탈레반 공격에 유효한 역할을 한답시고 국가 전체를 흔들어놓고 있다. 카르자이의 한계는 그의 파슈툰족 동료이자 전쟁군주인 바차 칸 자드란이 파크티아와 호스트주를 포위해 수많은 이들을 살해할 때 이미 만천하에 드러났다. 자드란은 카르자이의 투항 최후통첩을 무시해버린 채 독자적 군사작전을 수행했고, 심지어 로야 지르가에 참석해 카르자이 해임을 요구하면서 자신을 파크티아주 지사로 임명하지 않으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엄포를 놓기까지 했다.
특히 하지 카디르 부통령 암살은 정부군에 대한 재편을 요구하는 각 지방 전쟁군주들의 항의로 중앙정부가 권위를 상실하는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타지크계가 군과 치안을 장악하고 있는 한 카불의 파슈툰 지도자들은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불만들이 터져나오면서 파슈툰족과 타지크족 사이에 불신감은 위험수위에 이르렀다. 카르자이 정부는 국제치안지원군에게 암살사건 수사를 요청하는 동시에 하지 카디르의 친형 하지 딘 모하마드를 낭가하르주 지사로 임명해 민심을 달래고자 애쓰지만, 사태가 수그러들 조짐은 별로 없다.
한쪽에서는 미군의 우로즈간 오폭에 따른 격한 소리가 터져나오면서, 특히 파슈툰 부족들 사이의 반미감정은 폭발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에 따라 칸다하르 지사 굴 아가 셰르조이는 “현지 당국의 관여 없는 미군의 군사작전을 제한하자”며 이웃 우로즈간을 비롯해 헤르만드·님루즈·파라·자불주에 연대를 제의했으나, 카르자이를 따르는 각 주지사들은 미국의 ‘무한군사작전’에 제동을 거는 모든 행위에 찬성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임으로써 묵살당하고 말았다.
미군철수 뒤의 시나리오는…
아프가니스탄의 반미감정은 미군이 최초로 카불에서 군사작전을 전개할 때 직면한 항의시위에서도 잘 드러났다. 특히 반미정서가 아프가니스탄 내 최대 인종군을 형성한 이른바 ‘파슈툰벨트’에서 가장 격렬하게 나타났다. 같은 파슈툰족인 탈레반이 이 지역을 은신처로 삼자 미군이 공격을 집중한 탓이다. 마수드의 추종자들인 북부동맹군 주력 타지크계가 지배하고 있는 과도정부를 로야 지르가 추인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파슈툰족은 불쾌감을 감출 수 없었던데다, 그 과도정부가 미국의 사주를 받고 있다는 의심을 품으면서 반미정서는 더욱 가파르게 상승했다.
아프가니스탄. 1년 전 뉴욕의 ‘쌍둥이빌딩’이 화염에 쌓이면서 거대한 불똥이 튄 아프가니스탄은 20년 전이나 또 10년 전과 견줘도 달라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다시 잔인한 과거로 되돌아가는 모습이고, 또 다른 형태의 내전이 움트는 기운이다. 시민들은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 같다. 아직 결정된 바는 없지만, 7천여명의 미군과 5천여명의 국제치안지원군이 철수한 뒤의 시나리오 때문이다. 20년 전쟁에 지친 시민들에게 인종분쟁과 권력투쟁으로 뒤덮일 음산한 아프가니스탄을 상상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금 미국과 동맹국들이 해야 할 일은 실효성 있는 내전 예방책을 세워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인 정당성 없는 전쟁의 과오를 씻는 일이다. 새로운 내전, 그 피바다 속에서 고통받을 시민들을 생각한다면 말이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궁리나 특수한 대책도 필요 없다. 이미 모든 것은 드러났고, 상식에만 충실하면 된다는 뜻이다. 완전한 치안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깨지기 쉬운 과도정부를 적극 지원하고, 사회·경제 복구를 신속하게 지원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면 젊은이들은 쉽사리 전쟁군주들의 유혹에 빠져 다시 총을 잡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니.
자, 이런 일들은 이미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기 전부터 미국과 동맹국들이 계획하고 자랑한 것들이었다. 실행만 하면 된다. 그리고 자신들의 뜻이라면, 알카에다-탈레반을 최대한 빨리 궤멸시키는 일이 남았다. 더 이상 밀고 당기는 정치적 재료로 그 이름들을 쓰지 말라는 뜻에서.

사진/ 라히물라 유수프자이(Rahimullah Yusufzai) l 파키스탄 <뉴스> 편집이사
아프가니스탄이 지닌 이런 전통적인 화제들은 20년전쯤 대 소비에트항쟁 기간 중에도, 10년 전쯤 무자히딘 사이의 내전 중에도, 그리고 300일이 넘도록 미군이 무차별 공격을 해서 탈레반을 몰아낸 이후에도 변함이 없다. 탈레반이 붕괴되면 안전과 평화를 향유할 수 있을 것이라던 기대는 물거품이 되었고, 미국의 대 테러전쟁을 떠받치는 알카에다 박멸과 오사마 빈 라덴 제거- 살해든 체포든- 라는 두 가지 목표는 여전히 미완으로 남아 있다. 미군에게 경호받는 카르자이

사진/ 카불 시내를 순찰하는 미군들. 잇단 민간인 지역 오폭으로 미군들은 심한 불신을 당하고 있다. (GAMMA)

사진/ 아프간 전역에서 사나운 저항을 받고 있는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 타지크계 북부동맹군 출신인 국방장관 모하마드 카심 파힘. 암살당한 압둘 카디르 부통령(왼쪽부터). (GAM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