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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폐허 위에 우뚝 선 맥도널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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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9-11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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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기행(3)

세르비아에는 마피아만 활개친다… 베오그라드 시민들의 상처입은 자존심은 반미감정으로

사진/ 유고연방정부청사 맞은편에 들어선 맥도널드점. 베오그라드 시민들은 이곳을 지날 때면 가슴이 미어진다.
“무기를 들 수 있는 세르비아 남자들은 모두 나오라. 그렇지 않으면 자손과 곡식과 포도주가 끊어지리라.” 코소보의 저주라고도 불리는 이 말은 1389년 ‘코소보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라자르 황제가 남긴 말이다. 세르비아인들의 가장 중요한 국경일인 6월28일. 이날은 코소보 전투에서 당시 세계 최강이던 오스만제국에 패하여 500년간의 기나긴 노예생활을 시작하던 날이다.

1989년 6월28일, 200만명의 세르비아인들이 코소보 전투 6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코소보 벌판을 가득 메웠다. 이날 밀로셰비치 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숨져간 라자르 황제의 뒤를 이을 뜻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이 지난 1999년, 세계 최강인 미국에 맞섰던 세르비아 민족은 폭격을 당한 뒤 재기할 수 없을 정도의 타격을 받고 무너졌다. 지난해 6월28일 코소보 전투기념일 새벽, 미국의 원조를 받는 조건으로 진지치 정부는 밀로셰비치를 헬기에 태워 보스니아의 미군기지를 거쳐 헤이그의 감옥으로 보냈다. 한때 클린턴·시라크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세계적인 지도자로 부각되던 그가 이제는 반인류적인 범죄를 저지른 전범으로 기소되어 헤이그의 특별감옥에 갇혀 있다.

석·박사 받고 신문팔이


사진/ 보스니아의 소수 세르비아민족 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와 믈라디츠 장군의 얼굴이 인쇄된 티셔츠. 거리에서 불티나게 팔린다.
10년 동안 유고슬라비아에 취해졌던 금수조치와 전쟁은 경제를 거의 파탄에 빠뜨렸다. 직업을 구하기 위해 정부의 직업소개소에 줄을 잇는 젊은이들은 구직신청을 한 뒤에도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모른다. 한 여름의 따가운 햇살을 피하기 위해 폴리티카라는 거대한 신문사 건물 모퉁이에서 신문과 잡지를 팔고 있는 발리오 미트츠(25)는 베오그라드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수재다. 그러나 벌써 거리의 신문팔이로 생활한 지 1년째다. 물론 그는 텔레콤 회사에서 자신이 전공한 분야인 컴퓨터 관련 일을 하는 것이 꿈이다. 그러나 이미 구직에 대한 기대를 버렸다. “석·박사 학위를 받은 많은 젊은이들이 직장을 구하지 못해 신문 가판일을 한다”고 귀띔해주었다. 물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달 월급이 기껏해야 100∼200유로인 서민으로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2천 내지 3천유로를 뇌물로 쓰면 직장은 금방 구할 수 있다. 그와 얘기하는 도중 그의 대학 동기 친구들 두명이 합류했다. 그들도 마땅한 직장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실업률이 30∼40%를 웃도는 상황에서 일자리를 갖지 못하는 현실의 벽에 부딪힌 많은 젊은이들이 찾는 것은 록콘서트나 알코올, 마약 등이다. 미트츠와 친구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잊기 위해 밤에 록콘서트장에 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2년 전 밀로셰비치를 축출한 거리시위의 주역이었던 이들은 이제 현 정부에 대한 배신감을 표출하고 있다. 상황이 더 악화됐다는 것이 젊은이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사진/ 코소보와 유고슬라비아 국경에서 벌어지고 있는 밀수담배판매현장. 마피아들은 민족분쟁을 이용해 각종 밀수사업을 하고 있다.
전후 세르비아가 겪고 있는 사회적 문제는 단지 실업만이 아니다. 모든 동유럽 국가가 겪고 있는 문제인 마피아의 전횡이 도를 넘었다. 필자는 코소보와 세르비아의 국경지대에서 담배밀수 장면을 목격했다. 아예 거대한 대형트럭으로 밀수한 수만갑의 담배를 도로변에 쌓아놓고서 시중가격의 3분의 1로 판매하고 있었다. 중무장한 코소보의 나토군과 유고군이 국경을 철통같이 경비하는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밀수품 판매는 대낮에 버젓이 행해지고 있었다. 이곳에서 수천갑의 담배를 산 뒤 버스에 오른 사십대의 한 세르비아 여인은 담배박스를 버스 좌석 밑과 짐 뒤에 감추느라 정신이 없었고 유고슬라비아 국경검문소의 경찰들이 여권검사를 하기 위해 버스에 오르자 불안감을 삭이기 위해 연거푸 담배를 피워댔다. 어쨌든 그 여인은 버스가 무사히 검문소를 통과하자마자 버스 차장에게 고맙다는 표시로 얼마의 돈을 쥐어줬다.

%%990004% 담배와 마약·무기 밀수, 인신매매가 발칸지역 마피아들의 단골메뉴다. 마피아들에게 민족분쟁은 양질의 토양이다. 마피아들은 오직 돈이라는 하나의 목표로 뭉쳐 민족분쟁을 이용한다. 발칸분쟁 기간에 가장 빨리 성장한 부분은 조직범죄다. 이미 마피아 조직들의 영향력은 정치권을 압도하고 있다. 세르비아 총리 진지치가 마피아 조직과 가깝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유명인 납치사건도 빼놓을 수 없는 전후 세르비아 사회의 병이다. 지난해와 지지난해에 걸쳐 벌써 5∼6명의 기업인들이 마피아 조직에 납치되어 엄청난 돈을 주고 풀려났다. 프랑스 자동차회사인 퓨조사 세르비아 현지법인 대표인 밀리아 발로보치가 납치된 사건은 세르비아 사회를 한동안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한달 동안 사라졌던 그는 1천만달러를 지급하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이런 무법천지에 대해 베오그라드의 주요 일간지인 <블리츠>의 범죄전문 기자 차슬라프 토마는 “사회의 시스템이 변할 때 갑자기 구멍이 생기는데 그것을 메우는 게 바로 마피아”라고 설명한다.

밖에선 전범, 안에선 영웅

베오그라드 중심가의 행상들이 판매하는 것 중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것이 있다. 이것은 바로 헤이그 국제재판소에서 특별수배 중인 보스니아의 소수 세르비아 민족지도자 라도반 카라지치와 믈라디츠 장군의 얼굴이 찍힌 티셔츠들이다. 7년 전부터 이미 두 사람들은 미국과 유럽에서 히틀러 이후 최대의 학살자로 수배된 상태다. 그러나 이들은 “헤이그에서 벌어지는 전범재판은 세르비아 민족 전체를 단죄하는 정치재판”이라고 비판하면서 헤이그 재판소의 권위를 부정하고 있다. 어쨌든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티셔츠를 통해서 이들이 세르비아의 영웅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과 유럽이 전범으로 낙인찍은 두 사람에 대한 엄청난 지지는 세르비아 시민들의 반미·반유럽 정서를 보여준다.

3년 전 나토의 폭격 뒤 거세게 밀려드는 미국화의 물결은 베오그라드 거리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특히 유고연방정부청사 맞은편에 들어선 맥도널드점은 세르비아인들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무너뜨린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다. 자존심 강한 대부분의 세르비아인들은 이곳을 지나칠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는 듯 고개를 다른 방향으로 돌린다. 이곳에서도 미국은 똑같은 사업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먼저 폭격하여 잿더미를 만든 뒤 탱크와 전차를 앞세운 미군들을 보내고 그 다음 맥도널드·코카콜라 등과 선교사들이 뒤를 따른다. 우리나라도 일찌감치 경험했던 방식이다.

베오그라드=글·사진 하영식 전문위원 youngsig@otenet.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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