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과 아시아/ 인도
미국의 ‘종군노예’ 자부하며 충성경쟁… 카슈미르 평화 원한다면 ‘이라크 협박’ 멈춰라
세계무역센터 공격에 대한 앙갚음으로 시작한 미국식 ‘대 테러전쟁’이 1년째 접어드는 마당에, 엉뚱하게도 남아시아 안보환경이 최악의 상태로 빠져들었다.
인도-파키스탄은 지난 8개월 동안 고단위 경계령을 발동한 가운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대치병력에 해당하는 100만 대군을 양쪽 국경에 깔아 오히려 1998년 핵실험 때보다 더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해왔다. 만약 이런 상태에서 미국이 중동지역으로 대 테러전쟁을 확산시킨다면 세계 전체가 소용돌이에 휘말림은 말할 것도 없고, 인도-파키스탄 분쟁은 미국이 세운 무대 위에서 소름끼치는 ‘핵광란’을 벌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실정이다.
극우 매파들 벌떼처럼 일어서다
“우리와 함께하든지 아니면 테러리스트와 함께하든지!” 테러문제를 해결하자며 국제사회의 다중외교 개념을 짓밟아버린 이른바 뉴부시독트린 한마디에 세상은 실로 심상찮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탈레반의 후원자인 파키스탄은 미국의 대 알카에다-탈레반 공격에 최초로 징집당한 국가가 되어버렸고, 전략적 경쟁자인 인도는 잽싸게 파키스탄식 대 테러전쟁의 정당성을 물고늘어졌다. 인도는 카슈미르 ‘월경테러’와 특히 ‘13일 공격’- 2001년 12월 델리 의사당 공격- 의 배후로 지목해온 파키스탄을 마구 비난하며 절묘한 ‘때’를 즐겼다.
파키스탄과 미국이 공모단계에 돌입했다는 논리를 앞세운 인도의 극우 매파들은 뉴부시독트린을 ‘적시타’로 삼아 군사주의 강화를 주장하며 벌떼처럼 들고일어났다. 매파들은 부시가 선언한 이 ‘독단주의’를 매우 열광적으로 포옹하며, 인도도 미국과 같은 방식으로 대 테러전쟁을 수행할 권리가 있다고 역설했다. 물론 대상은 파키스탄이었다.
이처럼 국제사회에서 뉴부시독트린은 총체적 비극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특히 대 테러전쟁을 무제한 강조해, 20여년이 넘도록 ‘상호주의’ 정신 아래 공들여 쌓아온 무장억제와 군비축소 협정들은 모조리 깨져나갔다.
부시는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과 대 탄도미사일조약을 포함한 핵무기 억제 조약들을 사정없이 찢어버렸다. 부시는 지뢰금지조약안과 생물무기금지조약안에 대한 서명을 거부했고, 같은 맥락으로 국제형사재판소 설치를 반대했다. 부시는 미국 정부 스스로가 ‘거대한 병기창’이 될 것이라며 실효성에 의문을 달고 유보시킨 스타워즈, 탄도미사일방위(BMD)계획을 앞뒤 가리지 않고 출범부터 시켰다. 탄도미사일방위계획이란 ‘제2핵시대’를 열며 국가 간에 더 치명적인 핵미사일 개발을 강박하는 논리로 작용할 것이 뻔한 참으로 반문명적인 놈인데도 말이다.
“보다 명중률(살상률)이 높은….” 그 누구의 도전도 용서치 않는 미국의 과학기술 패권주의와 군사맹신주의는 이 하나의 구호 아래 통일되었고, 그만큼 세상은 더 불투명한 안보환경에 사로잡혀 가고 있다.
탄도미사일방위계획은 연간 450억달러나 군비를 증대시키는 것말고도, 군사조직을 덩치만 앞세운 ‘협박논리’에서 ‘성능논리’로 변형시키며 신세대 재래식 무기 판도를 전면적으로 바꿔놓았다. 이건 “신무기 구입에 더 많은 돈을 들여라!”는 말의 복잡한 개념일 뿐이다.
한때 비동맹운동을 주도했던 인도가…
부시는 웨스트포인트 졸업식 연설에서 전통적인 ‘봉쇄’와 ‘억제’ 개념을 훌훌 털어버리고 ‘선제공격’이라는 교리를 강조하며 현실의 적이든 가상의 적이든 타격부터 하고 보자는 새로운 전략을 소개했다. 이런 부시에게 “적이 국경을 넘어 공격을 감행하기 전에 자위권을 발동해 선제공격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한 유엔헌장 같은 걸 들이댈 만한 용기가 있는 인물도 또 정부도 이 세상에는 없었다.
‘선제공격독트린’으로 이제 국제약탈행위는 정글법칙 속에서 ‘신의 손’이 되었고, 이 세상은 소름끼치는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넘쳐나고 있다. 미국은 이미 이 세상의 유일한 초강대국이지 않는가! 미국이라는 단일국가의 군비가 러시아와 중국을 비롯한 군사최강국들이 줄줄이 나열된 세계 2위부터 14위까지 국가들의 군사예산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사태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듯싶다.
그리고 비극적이게도, 한때 비동맹운동을 주도하며 패권주의와 군국주의를 거부한 인도도 결국 미국의 종군노예 같은 신분이 되고 말았다. 지난해 5월 부시의 스타워즈 선언에 환영나발을 불어준 인도는 다시 ‘11일의 공격’ 뒤 미국의 독단주의에 완벽한 종노릇을 자임했다. 본질적으로 인도의 이런 태도는 미국에게 ‘손아래’를 뜻하는 종속적인 동료가 되겠다는 정신나간 의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미국과 ‘전략적 동반자’가 되기를 바라는 인도의 꿈은, 미국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남아시아동맹의 중추가 되고자 하는 파키스탄과 사이에서 벌이는 대 미국 충성 경쟁일 뿐이다. 이런 판에 파키스탄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전에 없어서는 안 될 동맹임을 자임하며 한 가닥 하는 꼴을 바라보아야만 하는 인도는 가슴이 찢어질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게다가 아프가니스탄전에 이어 최근 미국이 카슈미르 사안을 ‘국제적 안건’이라 선언하며 중재인으로 또 감독관으로 적극적인 역할 수행을 다짐하고 나서자, 지금껏 어떤 외부의 개입도 거부해온 인도는 속이 틀어질 대로 틀어지고 말았다.
카슈미르건을 치고나온 미국을 놓고 사실은 델리뿐만 아니라 이슬라마바드도 모두 벙어리 냉가슴만 앓는 꼴이다. 이러다 보니 양쪽 모두 욕구불만이 심해진 모양새다. 델리쪽은 워싱턴의 ‘대응억제’ 권고에, 이슬라마바드쪽에서는 워싱턴의 ‘월경중지’ 강요에.
미국이 근본적 해결책 없이 ‘명령’만 내려놓은 꼴인데, 결국 인도-파키스탄의 욕구불만은 상호 적개심만 더욱 악화시켰고, 특히 미국의 음모적 조종 가능성이 짙은 상태에서 인도-파키스탄의 불신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전쟁의 가벼움’에 길들여진다
이런 가운데, 인도-파키스탄 양쪽이 핵무기를 들썩거리며 선제 핵공격 가능성을 떠벌리는 극단적인 상황은 미국의 대 테러전쟁이 남긴 또 하나의 더러운 유산인 셈이다.
가공할 공격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초토화하는 걸 바라보면서, 부시가 전례 없는 위험성을 수반한 이라크 공격을 다짐하는 걸 바라보면서, 남아시아의 두 군사모험주의 정권인 인도-파키스탄은 ‘전쟁의 가벼움’에 길들여지고 있다는 불안감이 양쪽 시민들 사이에 높아간다.
만약 미국쪽 극우 매파들인 딕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같은 이들의 도발적인 로비가 먹혀들고, 오일산업 이익에 지배당하는 부시의 신경질적인 대 이라크 공격이 현실로 드러나면, 미국은 그 다음 인도-파키스탄을 낀 카슈미르를 인기 만회용 ‘평화선전장’으로 활용하려들 것이 틀림없다. 이럴 경우, 문제는 인도-파키스탄 두 군사모험주의 정권 가운데 하나는 분명히 상실감을 맛볼 것이라는 데 있다. 카슈미르사안은 본질적으로 똑같이 균등하게 나눌 수 있는 ‘떡’이 아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미국이 카슈미르 문제를 평화적으로 풀어내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마찬가지로 당면한 대 이라크 공격협박도 마땅히 여기서 멈춰야 한다는 게 뜻있는 인도-파키스탄 시민들의 하나 같은 요구다.
자,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기도 전에 국제법과 자신들의 헌법을 어기면서까지 대 이라크 무력침공부터 감행하겠다는 미국, 그 미국이 들고나온 카슈미르사안을 시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사실 11년 전쟁과 경제봉쇄로 황폐해진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소유했다거나 단기간에 개발할 가능성은 극단적인 상상일 뿐 아니라,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로 국제사회를 위협할 만한 위험성 역시 모호한 소설 수준이지만.

사진/ 프라풀 비드와이(Praful Bidwai) l 전 <타임 오브 인디아>편집장·핵 전문 칼럼니스트
극우 매파들 벌떼처럼 일어서다

사진/ 여전히 전운이 감도는 카슈미르의 인도 군인들. 미국은 인도-파키스탄을 낀 카슈미르를 인기 만회용 ‘평화선전장’으로 활용하려 들 것이다. (GAMMA)

사진/ 98년 인도의 핵실험. 미국이 중동지역으로 대테러전쟁을 확산시킨다면 인도-파키스탄의 ‘핵광란’이 재기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GAM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