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과 아시아/ 팔레스타인
‘완벽한 승리’만을 추구한 이스라엘 샤론… 야만적 공격 정당화에 적극 활용
2001년 9월11일 뉴욕의 세계무역센터가 공격당했다는 뉴스가 전해지자 팔레스타인의 나블루스와 예루살렘을 비롯한 일부 난민촌에서는 즉흥적인 잔치가 벌어졌던 기억이 난다.
당시 그런 분위기는 좌절감이나 ‘적의 적은 친구’라는 왜곡된 감상에서 비롯된 일이 아니었던가 싶다. 그럼에도 거의 모든 팔레스타인 시민들은 미국인들을 향한 그런 테러 공격에 대해서는 달갑잖게 여겼던 게 사실이었고, 결과적으로 그 ‘11일의 공격’은 팔레스타인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놓고 말았다.
그로부터 12달이 지난 현재,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시민들의 자유와 독립투쟁이 오사마 빈 라덴의 테러와 다를 바 없다는 그릇된 사실을 성공적으로 확산시켰고, 반면 팔레스타인은 몇 차례에 걸쳐 알카에다와 차별성을 강조했으나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해 궁지에 몰렸다.
팔레스타인과 알카에다가 헷갈린다?
얄궂게도 이스라엘의 이런 성공적인 공세는 팔레스타인 사안을 계속 팔고 다녔던 오사마 빈 라덴의 ‘도움’에 힘입은 바 컸고, 한편으로는 팔레스타인 전사들의 자살폭탄공격도 든든하게 이스라엘을 받쳐주었던 셈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알카에다’,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이스라엘은 이런 등식을 성공적으로 살포했고 국제사회는 팔레스타인과 오사마 빈 라덴의 조직 알카에다를 혼동하는 일이 벌어졌다. 여기에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면서 민간부문 희생자들을 무시해온 사실을 이스라엘이 즉각 수입해서 팔레스타인 시민에 대한 야만적인 공격을 정당화하는 데 활용함으로써 사태는 더욱 악화되고 말았다. 그러면서 시간이 흐르자 이제는 누가 누구에게 그 짓을 배웠는지조차 희미해져버렸고, 아프가니스탄이나 팔레스타인이나 모두 시민들만 죽어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과 이스라엘, 이 쌍둥이 공격수들은 아시아 시민들을 공격하면서 똑같은 전술과 같은 변명들을 늘어놓았다. 그게 아프가니스탄이든 팔레스타인이든 상관없이. 이런 과정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거대언론들은 아프가니스탄과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순결한 동정심 같은 것에는 관심도 없었으니,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의 작전을 멋들어지게 지원해준 무공훈장감이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자행한 미군의 잔학무도한 군사작전에 침묵해온 미국 언론들에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시민들에게 벌인 학살을 정직하게 보도해달라는 기대는 처음부터 우스갯거리였을 뿐이다. 세상의 눈과 귀로부터 철저하게 고립당한 팔레스타인은 스스로를 돕는 일마저 불가능해졌다. 이스라엘의 아리엘 샤론 정부는 팔레스타인 전사들을 완전히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고 ‘폭력에는 폭력’이라는 식으로 절묘하게 ‘주고받는’ 상황을 만들어버렸다.
‘11일의 공격’에 대한 미국의 보복전인 대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이스라엘을 고무시켰고, 이스라엘은 미국을 흉내내며 ‘완벽한 승리’ 이외에는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 이 이스라엘식 승리란, 말할 것도 없이 이스라엘이 정치적 양보를 하지 않는 어떤 사안도 팔레스타인이 부정해서는 안 되며, 당장 모든 투쟁을 멈추라는 뜻이다.
완벽한 승리를 추구한 결과 샤론이 이스라엘 시민들을 향해 약속한 평화와 안전이라는 두 가지 절대적인 명제는 사정없이 짓밟혔고, 샤론의 망상은 아랍 세계뿐만 아니라 이제 이스라엘 사회 내부에서마저 지탄받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이 완벽한 승리를 바탕에 깔고 외친 왜곡된 평화와 안전에 결국 팔레스타인은 자살폭탄공격으로 대답하며 폭력의 악순환을 더 세차게 돌리고 말았다.
양쪽 강경파의 ‘사악한 동맹’
팔레스타인 시민들은 불법적인 이스라엘군의 침략과 팔레스타인 땅에 건설한 유대인 정착촌을 놓고 항의해왔다. 유대인에게 팔레스타인 땅을 넘겨준 것은 팔레스타인 시민들의 자발적인 자비심에서 우러난 것이 아니라 부당한 국제 명령에 따라 이루어진 일이었으니, 팔레스타인 시민들은 미국이 쿠웨이트로부터 이라크의 전면 철수를 성사시켰던 것처럼 팔레스타인의 가자와 서안에서도 불법적인 이스라엘군을 똑같은 방식으로 처리해달라고 국제사회에 애끓는 청원을 해왔다. 50년이 넘도록 계속된 팔레스타인의 요청은 묵살당했고, 팔레스타인 시민사회는 과연 누가 분쟁을 중지시킬 수 있고 또 누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느냐를 놓고 깊은 회의에 빠져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들어 팔레스타인 극단주의자 그룹과 이스라엘 군·정계의 강경파들이 ‘사악한’ 동맹을 결성해서 상황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어버렸다. 팔레스타인 강경파 무장단체와 이스라엘 매파총리 그룹, 이 둘이 동맹이랍시고 나섰는데 사실은 양쪽 모두 그동안 분쟁을 통해 이익을 챙겨온 자들이라는 공통성을 지녔으니, 어이하리오!
그렇다고 샤론이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휴전 협정은 첫째 완전한 ‘고요’가 일정 기간 절대 우선되어야만 한다.” 물론 이 ‘고요’는 쌍무적인 개념이 아니고 일방적인 압박이었다. 이스라엘은 협상으로 되돌아가려면 반드시 팔레스타인이 모든 저항과 투쟁 그리고 자살공격을 멈추어야 한다는, 이른바 전제조건을 내걸었다. 그래서 결과는 어땠을까? 2001년 12월, 팔레스타인 당국이 일방적으로 준수했던 휴전협정 6일 뒤, 이스라엘은 아라파트의 파타운동을 이끌었던 지도자를 암살해버렸고, 결국 팔레스타인 당국은 보복을 감행하는 자신들의 군사조직을 멈추게 할 수도 없는 상태에 빠져들었다.
2002년 8월, 이슬람의 정신적 지도자 셰이크 아흐마드 야신이 아랍 텔레비전을 통해 일방적인 휴전을 선언하며 하마드 전사들에게 대이스라엘 공격을 멈추라는 명령을 내린 지 4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이스라엘의 가공할 공격수 F16 전투기가 가자 인근 주택가를 공습해, 하마스 지도자를 비롯해 10여명이 넘는 어린이와 여성을 살해함으로써 다시 폭력의 순환은 강화되고 말았다.
그것은 ‘신이 내린 선물’이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일방적인 고요를 강요하는 건 이스라엘이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모든 면에서 완벽하게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의지와 다를 바가 없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선택한 모든 팔레스타인 목표물과 인물을 마음껏 공격해왔으면서도, 팔레스타인이 대응이라도 하면 여지없이 폭력의 책임을 팔레스타인에 뒤집어씌웠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덮어씌우기와 비난을 통해 이스라엘은 정치적 대가를 지불하는 일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게 지금까지의 이스라엘 역사고 전통이었다. 만약 팔레스타인이 얻어터지고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 것일까? 이 답은 너무 간단하다. 이스라엘이 완전한 승리를 선언하게 된다는 뜻일 뿐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상황은 이처럼 근본적으로 크게 차이가 났고 크게 왜곡당해왔다.
11월의 공격과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적어도 이스라엘에는 ‘신이 내린 선물’이었다. 평화를 외쳐온 국제 시민사회의 간절한 열망을 짓밟아버리는 미국의 공격적인 세계 전략에 빌붙어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을 유린하는 데 무궁무진한 ‘소재거리’를 얻어왔으니.
미국이 ‘이라크 정권교체’라는 말을 흘리자 이스라엘은 때를 만난 듯 부패한 팔레스타인 지도부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팔레스타인 정권교체’를 들고 나왔던 일을 연상해보자.
“권리는 힘이다” 대신 “힘은 권리다”. 11일의 공격은 이렇게 강대국들에게, 미국과 이스라엘 같은 강대국들에게 새로운 권위를 부여하고 말았다. 테러리즘…. 아무도 정의 내리지 못한 이 단어가 ‘11일의 공격’ 이후 여러 가지 군사행동을 자유롭게 해주는 유익한 용어처럼 사용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 같은 강대국들에게는.

사진/ 다오우드 쿠탑(Daoud Kuttab) l 전 <알쿠드스 신문>기자·칼럼니스트
팔레스타인과 알카에다가 헷갈린다?

사진/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무너져내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한 빌딩. 부시의 대 테러전쟁은 이스라엘에 자신감을 심어주고 있다. (GAMMA)

사진/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 그가 있는 한 폭력의 순환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GAMMA)

사진/ 팔레스타인 전사들. 이스라엘은 이들에게 '완전한 항복'만을 요구하고 있다. (GAMM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