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ㅣ 아르만도 말라이
말라이는 코리 재임기간에 정치적 구금자들의 인권 지원단체(Kapatid) 의장을 지냈다. 그의 딸인 캐롤리나와 사위 사투르 오캄포는 코리 대통령 임기 동안 정치범으로 구금당해 있었다. 마르코스 시절 최장기 정치범으로 갇혀 있었던 오캄포는 1986년 석방되었으나, 좌익활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1989년 코리 정부에 의해 다시 구금되었다.
코리 정부에 대한 기억은.
1993년 국제인권회의에 연설자로 등장하는 코리에게 보여주고자 비엔나홀 밖에서 아내와 동료들과 함께 ‘모든 정치범 석방’이라 적은 피켓시위를 했다. 우린 코리가 피켓쪽을 지나리라 여겼지만, 코리는 뒷문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큰 소리로 욕했다.
왜.
크게 실망했던 탓이다. 코리가 대통령 후보 시절 내게 개인적으로 말했던 게 있었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모든 정치범을 석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그런데 결과는 어땠나. 코리는 필리핀공산당(CPP)과 민족민주전선(NDF) 지도자들을 포함해 458명의 정치범을 석방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300여명은 반란, 폭동, 불법무기 소지죄로 여전히 감금하고 있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살인죄를 적용해서 일반범들처럼 대우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진짜 반란죄를 일으키고 권력 탈취를 시도했던 엔린레 국방장관 같은 이는 처벌조차 받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 뒤 대통령궁에서 다시 코리를 만났을 때 “다른 정치범들은 어떻게 할 작정이냐”고 물었더니 “그 사안은 라파엘 이레토 장군에게 넘겼다”며 코리가 확실하게 장담했다. 코리 정부 아래서 인권상황이 악화되었다는 뜻인가. 처음부터 우린 코리 정부가 민족민주전선과 정치적 문제를 원만하게 풀어나갈 거라는 환상을 지닌 적도 없었고, 당시 민주적 공간은 이미 남세스러운 상태로 보였다. 1986년 11월 탁월한 노동운동 지도자 오라리아가 군인들에게 고문당해 죽은 일이 그런 상황을 잘 증명해주었는데다, 1988년 내가 동료들과 함께 불법시위 혐의로 구속당하면서 모든 게 명백해졌다. 결론으로 뭐가 남았는가. 민주주의와 인권의 상징이라던 코리가 대통령직에 있던 동안 2만명이 넘는 이들이 체포되고 감방에 처박혔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마리테스 시손(Marites Sison) 전 <마닐라타임스> 기자·칼럼니스트

크게 실망했던 탓이다. 코리가 대통령 후보 시절 내게 개인적으로 말했던 게 있었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모든 정치범을 석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그런데 결과는 어땠나. 코리는 필리핀공산당(CPP)과 민족민주전선(NDF) 지도자들을 포함해 458명의 정치범을 석방했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300여명은 반란, 폭동, 불법무기 소지죄로 여전히 감금하고 있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살인죄를 적용해서 일반범들처럼 대우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진짜 반란죄를 일으키고 권력 탈취를 시도했던 엔린레 국방장관 같은 이는 처벌조차 받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 뒤 대통령궁에서 다시 코리를 만났을 때 “다른 정치범들은 어떻게 할 작정이냐”고 물었더니 “그 사안은 라파엘 이레토 장군에게 넘겼다”며 코리가 확실하게 장담했다. 코리 정부 아래서 인권상황이 악화되었다는 뜻인가. 처음부터 우린 코리 정부가 민족민주전선과 정치적 문제를 원만하게 풀어나갈 거라는 환상을 지닌 적도 없었고, 당시 민주적 공간은 이미 남세스러운 상태로 보였다. 1986년 11월 탁월한 노동운동 지도자 오라리아가 군인들에게 고문당해 죽은 일이 그런 상황을 잘 증명해주었는데다, 1988년 내가 동료들과 함께 불법시위 혐의로 구속당하면서 모든 게 명백해졌다. 결론으로 뭐가 남았는가. 민주주의와 인권의 상징이라던 코리가 대통령직에 있던 동안 2만명이 넘는 이들이 체포되고 감방에 처박혔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마리테스 시손(Marites Sison) 전 <마닐라타임스> 기자·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