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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내 땅에서 강낭콩을 키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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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9-04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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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센 중년의 멕시코 사파티스타 농부 고메스가 말하는 치아파스의 비극과 희망

사진/ “지주들에게 빼앗긴 농토를 되찾겠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다 풀려나온 사파티스타 농부 고메스.
까무잡잡한 중년의 농부 구스타보 에스트라다 고메스(45)가 체포되던 날을 회상하며 말문을 연다. “1996년 6월27일이었지요. 페르난도 농장에 일하러 가던 길이었어요. 갑자기 경찰들이 제가 타고 있던 소형버스를 세우고 에워싸더군요. 아뿔싸! 4일 전인가 치아파스 북쪽에서 한 콤파녜로(동지)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이미 들은 터였죠.”

그날 연방경찰에 의해 연행된 그는 치아파스 제1감옥에 수감된다. 죄목은 향정신성 의약품 소지. 판사는 그에게 10년형을 선고했다. “나참 어이가 없어서! 제가 갖고 있던 가방엔 작업복, 작업도구, 공부하던 책뿐이었거든요.” 그러나 그는 자신이 왜 체포되었는지 알고 있었다. 한번도 구경한 적이 없는 아편을 운반했다고 거짓 밀고한 사람이 누구인지도 충분히 짐작이 갔다. “주지사들은 모두 카시케(부와 권력을 장악한 농촌의 지역유지들)들이에요. 이자들은 모두 땅부자들이고 사업가들이며 목장주들이죠. 이들은 지주·경찰·검사·판사와 한패가 되어 원주민 농민들을 엿먹이던 놈들이지요. 그러니 저를 체포해 가두는 것이야 식은 죽 먹기죠. 지주나 정부의 끄나풀 중 하나가 절 밀고했겠죠.”

주지사·지주·경찰들의 커넥션


사진/ “사파티스타 여성들이 원주민 마을에서 군사기지화에 맞서 싸우는 모습을 담은 벽화 <저항>. (Eric pedersen)
그가 태어난 치아파스주는 멕시코 최남단에 자리잡고 과테말라와 국경을 연해 있다. 이곳은 석유와 천연가스를 비롯한 다양한 지하자원의 매장지로, 다양한 종류의 동식물의 보고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또한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인해 전 세계 배낭여행족들이 가장 자주 찾는 곳이다. 그러나 94년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이 무장봉기를 하기 이전 유엔사회개발보고서는 이곳을 “멕시코에서 가장 가난한 주”라고 지적했고, 세계은행은 “사회갈등이 폭발할 위험이 가장 높은 지역”이라고 보고했다.

“전 손바닥만한 밀파(옥수수와 강낭콩을 심는 밭)를 갖고 있는 농부예요. 주정부의 토지분배 기구와 지주들이 한통속이 되어 농민들에게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땅을 나눠주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어요. 당연히 이에 맞서 싸웠지요.” 지난 세기초에 발발한 멕시코 혁명의 결과로 탄생한 혁명 헌법은 토지의 국가소유를 천명해 농민들과 원주민들에게 토지분배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러나 이 헌법 조항도 기름진 땅이 대지주에게 집중되고, 거친 땅들이 농민들에게 분배되는 일을 막지는 못했다. 지난 92년 살리나스 신자유주의 정부는 명목상으로나마 남아 있던 그 조항마저 개정해버렸다. 절대빈곤 속에서 원주민 농민들은 그나마 가지고 있던 유일한 생존의 근거인 토지를 국내외 농업자본에 팔 수밖에 없게 된다. 그 결과 94년 무장봉기가 발발하던 그해 치아파스에서 쓸 만한 토지의 반을 6천명의 대농장주가 소유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강원도를 뺀 면적의 넓이가 치아파스인 것을 감안하면 토지 집중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에스트라다 고메스처럼 토지분배의 부조리에 항의했던 농민들은 이젠 토지의 가공할 만한 집중에 맞서 싸워야 했다. 그들은 토지 상품화가 자유무역협정의 결과라고 주장하며 무장봉기한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을 지지했다. 물론 연방과 주의 경찰기구는 이들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1994년 이래 많은 동지들이 강간, 풍기문란, 살인, 범죄조직 결성과 테러, 납치, 마약 소지 등의 죄목으로 체포되었지요.” 사파티스타 가운데서 사파티스타라는 이유로 체포된 사람은 없다는 얘기다. 멕시코엔 국가보안법과 같은 사상통제법이 없고, 정부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과 평화협상을 벌인 터라 이들을 탄압할 명분도 없었다.

“감옥에 들어간 그해 겨울부터 우린 단식투쟁을 벌이며 싸우기 시작했지요.” 그가 갇힌 치아파스 제1감옥엔 100여명의 동료 양심수들이 있었다. 이들은 감옥 안에서 ‘감옥으로부터의 소리’라는 양심수 단체를 결성했고, 외부의 인권단체를 통해 다른 주 감옥에 갇힌 동료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공동으로 저항하기 시작했다. 사법당국은 이들이 농성을 시작하면 음식을 제공하지 않거나 특별감방에 가두거나 면회를 금지하겠다고 협박했다. 때론 연방검찰에서 나와 석방탄원서를 작성하라고 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혹시나 하는 기대로 제출하고 나면 역시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그렇게 5년11개월이 속절없이 흐른 지난 5월23일, 드디어 그는 동료 멘데스 디아스, 로페스 산티스와 함께 석방되었다.

의원나리들의 들러리는 싫다

그날 오전 10시, 치아파스주의 주도 툭스틀라 구티에레스의 최고급 호텔엔 연방정부의 치아파스 평화특사와 연방의회 평화화해위원회(COCOPA) 소속 의원들이 내외신 기자들을 불러놓았다. 그러나 세명의 사파티스타들은 참석하지 않았다. 한달 전부터 언론을 통해 이 소식을 홍보하던 연방정부의 치아파스 평화 특사 루이스 알바레스의 얼굴엔 실망의 표정이 역력했다. 주인공 없는 맥빠진 이벤트에서 그는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이 이번 석방 조치를 고려해 평화협상 테이블로 나오기를 요청한다”고만 짧게 언급했다.

같은 시각, 에스트라다 고메스는 치아파스 최대 감옥 ‘세로 우에코’(Cerro Hueco·동굴이 있는 언덕)의 육중한 철문 앞에서 기타를 잡고 <사파티스타 찬가>를 선창한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엔 노예노동의 굴레에서 탈주하려고 저항하던 원주민들을 잡아가두는 동굴이었고, 지금은 저항하는 원주민 농민들을 잡아가두는 그 앞에서 원주민들이 반란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꿈만 같았어요! 동지들이 와 있었지요!” 그가 감옥 문을 나설 때의 기분을 전한다. 그러나 그는 기자회견장에 참석해 “의원나리들”과 “포즈를 취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석방은 정부의 대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국내외 시민사회와 동지들의 투쟁 덕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요구했던 세 가지 선결조치 중에 제대로 이뤄진 것이 뭐죠? 정부는 우리를 완전히 배신했어요.” 지난해 초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모으며 ‘원주민의 존엄성을 향한 행진’을 벌일 때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은 이전 세디요 정부의 입장 번복으로 중단된 평화협상을 재개하기 위한 세 가지 선결과제를 제시했다. 원주민의 권리와 문화에 대한 법안을 통과시키고 7개의 군 기지를 폐쇄하며 사파티스타 양심수를 석방할 것을 요구했다. 연방정부는 협력하겠다고 약속했고 연방의회는 원주민 게릴라 사령관들의 의회 연설을 수락하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에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은 평화협상을 재개할 것을 선언하고 치아파스로 돌아갔다.

그 뒤 연방의회는 ‘원주민 권리와 문화에 대한 법안’을 인준했다. 그러나 법안의 핵심적인 내용인 원주민 공동체가 토지와 천연자원을 직접 통제할 권리는 박탈했다. 이에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은 통과된 법안은 ‘대지주의 권리와 문화를 위한 법안’이라고 비난하며 협상 중단을 선언한 뒤 현재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다.

농민들을 땅에서 몰아내는 신자유주의

“제가 정부 구호금 몇푼 받자고 싸운 줄 압니까?” 그는 현 치아파스 주 정부를 비판한다. 72년 만에 제도혁명당 정부가 무너지던 날, 치아파스 주정부도 제도혁명당에서 야당연합으로 교체되었다. 새 정부는 ‘오포르투니다데스’(기회)라는 이름으로 원주민 구호책을 추진한다. 그러나 그는 그것이 원주민 농민의 생존문제를 해결할 근본적인 방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두명 가운데 한명의 농민이 하루에 1달러도 채 벌지 못하는 멕시코의 농촌 현실, 그는 그것이 “농민들을 땅에서 몰아내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필연적인 귀결”이라고 믿는다.

그는 “먹고살기 위해 마약을 심는 농부들”이 있다고 귀띔한다. “몇푼의 정부 지원금에 솔깃한 농민들도 많다”고 전한다. 그렇다면 그는? “저길 봐요!” 산크리스토발의 거리를 함께 걷던 그가 울타리 너머를 가리킨다. 그곳엔 빗줄기 아래서 강낭콩들이 파릇파릇 자라고 있다. “나도 저렇게 강낭콩 밭을 일굴 거예요!” 마을의 어린이들이 어느새 훌쩍 자라 청소년이 될 때까지 감옥에 갇혀 있던 원주민. 이 고집센 사파티스타 농부가 처음으로 환하게 웃으며 전한 소망이었다.

치아파스=글·사진 박정훈 전문위원 jhpark2001@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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